스티브 잡스 연설 |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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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 (Steve Jobs 2005 …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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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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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연설 원문 및 번역문 (by 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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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연설문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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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명언, 좋은 글> 스티브잡스 스탠포드 연설 전문(원문, 영상 …

<스티브잡스 스탠포드 연설 전문>.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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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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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연설 connecting the d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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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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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스티브 잡스 연설

  • Author: 이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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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3.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5R2EV5aoS8Y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 (Steve Jobs 2005 Commencement Address at Stanford University)

오늘 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 (Stanford University)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제가 대학 졸업식이라는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완전히 자퇴를 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저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제가 반드시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태어났을 때 절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의 양부모님은 한밤중에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흔쾌히 입양을 수락하셨습니다.

저의 생모는 나중에야 양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의 생모는 이런 이유로 최종 입양 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저는 정말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평범한 노동자였던 저의 양부모님은 저축한 모든 돈을 제 대학 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모님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학비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제가 지금까지 한 결정 중에 가장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저는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다른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다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숙사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 방의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 위해 콜라병을 반납해서 5센트씩 모았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일요일 밤마다 7마일을 걸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걸 좋아했습니다. 제가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서 한 일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 가치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손글씨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규과목들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이런 모든 것이 제 삶에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대학의 그 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는 맥 컴퓨터를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만일 정규과목을 그만두지 않았고, 서체과목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놀라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인생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아였습니다. 우즈(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와 저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냐고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내부적으로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서른 살이 된 해에 그렇게 쫓겨났습니다. 성인이 되어 제가 초점을 맞춰왔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저는 너무나 비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몇 달 동안 저는 무엇을 할지 몰랐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저는 데이비드 팩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습니다. 저는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저는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저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저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성공의 중압감을 벗어나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을 되찾게 해줬고,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줬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 그리고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만들었고, 지금의 제 처가 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놀랍게도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저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저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저를 이끌어간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에서부터 나왔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훌륭한 관계들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약 1년 전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면서 제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해줘야 하는 말을 단 몇 달 안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종 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 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저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 검사를 받았습니다.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습니다. 저는 마취 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 밝혀져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건강해졌습니다.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몇 십 년간은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죠.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해 갈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니까요. 죽음은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너무나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합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래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그는 자신의 모든 걸 이 책에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PC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개정했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연설 원문 및 번역문 (by 신디)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연설 원문과 번역문

■ 애플의 창립자이자,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주역인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한 졸업식 연설문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인상 깊은 부분이 많습니다. 아마도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관심을 가졌을 법한데요..

예전에 공부할 용도로 원문을 가지고 한 줄씩 번역해 본 적이 있는데,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사람이나, 큰 좌절을 겪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어 올려 봅니다.

스탠포드 연설문 맨 마지막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인 ‘Stay hungry, Stay foolish’ 는 Whole Earth Catalog (전세계 편람) 라는 문고본 책자 뒷표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원문 : http://news.stanford.edu/news/2005/june15/jobs-061505.html

번역 : Cindy of 영어 너 도대체 모니? (ilikeen.tistory.com)

□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연설문 해석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찾으세요’ 스티브 잡스의 말입니다.

이 글은 스티브 잡스 (애플 컴퓨터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사의 대표) 가 2005년 6월 12일 졸업 축사로 준비한 연설문입니다.

오늘 세계 최고 명문 대학으로 손꼽히는 이곳 졸업식에 참석하게 돼 영광입니다. 전 대학 졸업자는 아닙니다. 사실은, 이렇게 대학 졸업식에 가까이 와 보긴 처음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제 인생에 대해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별 게 아니에요. 단지 세 가지 이야기일 뿐입니다.

@ 첫 번째는 점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을 6개월 다니다 자퇴했지만, 도강을 하며 학교를 맴돌다 18개월이 지나서야 정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자퇴한 이유가 뭐냐고요?

이유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친어머니는 갓 대학을 졸업한 어린 미혼모였기 때문에절입양 보내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꼭 대학 졸업자에게 입양되기를 희망했고, 제가 태어나면 어떤 변호사 가정이 절 입양하기로 돼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세상으로 나왔을 때, 그 부부는 마지막에 가서야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입양 대기자 명단에 있던 제 부모님은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남자아이가 생겼는데, 입양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부모님은 “물론이요.”라고 말했어요. 친어머니는 나중에 어머니가 대학졸업자가 아니고, 아버지 역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친어머니는 최종 입양 서류에 서명하기를 거절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서야 동의했는데, 부모님께서 저를 언젠가는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 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17년이 지나서 전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순진하게도 스탠포드만큼 비싼 대학을 택했고, 노동자 계층인 부모님께서 저축해 오신 모든 돈이 제 학비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6개월이 지나서도 대학에 그만한 돈을 투자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인생에서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고, 대학에서 어떻게 이 의문에 해답을 줄 지 몰랐습니다.

지금껏 부모님께서 저축해 오신 모든 돈이 대학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자퇴를 결심했고, 모든 일이 잘 되리라고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그 당시는 너무 두려웠지만, 돌이켜 보면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퇴 후, 저는 흥미가 없는 필수과목 수강을 그만두고, 흥미로워 보이는 수업에 이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게 낭만적이지는 않았어요. 기숙사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 집 방바닥에서 잤고, 음식을 사기 위해 코카콜라 병을 돌려주고 5센트를 받았어요. 일주일에 한 번 괜찮은 한 끼를 먹으려고, 일요일 밤마다 11 킬로 넘는 마을을 지나 하레 크리슈나 사원에 가곤했어요. 그 때가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호기심과 직관에 따라 우연히 했던 일 가운데 많은 것들이 나중에는 값진 경험으로 드러났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리드 대학은 그때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예 교육을 자랑했습니다. 교정 도처에 벽보란 벽보, 각 서랍의 상표란 상표는 모두 아름다운 서체로 그려졌습니다. 자퇴 후 정규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 수업을 들어 한번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바탕체와 고딕체를 배웠고, 각기 다른 글자를 조합하며 여백의 폭을 다양화하는 방법을 배웠고, 위대한 활판술을 더 위대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서예는 과학이 포착하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역사성을 지녔고, 예술적인 절묘함으로 저를 매혹시켰습니다.

이들 가운데 한 가지라도 제 삶에 응용할 수 있을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0년 후, 매킨토시 컴퓨터를 처음 디자인 하던 당시, 모든 기억이 새록새록해졌습니다.

제가 배운 서체를 모두 매킨토시에 응용했습니다. 아름다운 활판술을 구현한 첫 컴퓨터였지요. 대학에서 그 한 강좌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맥은 다양한 활자체나 비례적으로 간격을 둔 글꼴을 갖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윈도우가 맥을 배낀 것을 보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우리 활자를 갖고 있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만일 자퇴하지 않았더라면, 서체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을 테고,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처럼 훌륭한 활자술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대학 시절에는 앞을 내다보며 점을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어요. 그러나 10년 후에 과거를 돌아보면 아주 아주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내다보며 점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뒤를 돌아 보며 연결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점이 어떻게든 미래에 연결되리라고 믿어야합니다. 무언가를 믿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여러분의 배짱, 운명, 인생, 인연 같은 것들이요. 이 접근은 한번도 절 실망시킨 적이 없고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 제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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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니까요. 워즈와 제가 제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할 때가 스무 살이었습니다. 우린 열심히 일 했고, 차고에서 단 둘이 시작한 애플은 10년만에 4000 명 이상을 고용한 20억 달러 가치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야심작인 ‘매킨토시’를 일년 일찍 세상에 내놓을 때, 전 서른 살이 됐습니다. 그리고 곧 해고됐지요.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되느냐고요? 흠, 애플이 성장하면서 저와 함께 회사를 운영할 꽤 유능해 보이는 사람을 고용했고, 1년 정도는 모든 게 잘 됐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비젼에 대한 생각이 엇갈리기 시작하면서 결국 관계가 틀어졌어요. 그때 이사회는 그의 편을 들었습니다. 서른 살에 저는 쫓겨났습니다. 매우 공개적으로요. 성인이 된 이후 제가 전적으로 집중했던 일들이 사라졌고, 한 마디로 끔찍했습니다.

몇 개월간 도무지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대대로 전해져 오던 바톤을 제 차례에서 떨어트린 듯, 이전 세대의 기업가들을 실망시킨 기분이 들었어요. 전 데이비드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났고, 모든 일을 끔찍하게 망친 것에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공공의 실패작이었고, 심지어 실리콘 밸리에서 달아날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분명해졌던 건, 제가 했던 일을 여전히 사랑했다는 것이죠. 애플에서의 예기치 못한 사태들이 저를 바꾸어놓지는 못했습니다. 거절 당했음에도, 여전히 사랑에 빠져있었던 셈이지요. 그래서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사회적 성공에 대한 부담은 새로 시작하는 사람의 가뿐한 마음으로, 즉 상황에 대해 덜 확신하는 태도로 바뀌었어요. 덕분에 제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기로 진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 후 5년간, 넥스트란 회사와 픽사란 또 다른 회사를 창업했고, 제 아내가 될 굉장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곧 이어 세계 최초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입니다.

상황이 극적으로 역전돼, 애플이 넥스트를 사들이면서 전 애플로 돌아왔습니다. 넥스트에서 계발한 기술은 핸재 부흥기를 맞은 애플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저는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뤘습니다.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비록 지독한 맛의 약이었지만, 환자에겐 꼭 필요했다고 생각됩니다. 인생은 불현듯이 여러분의 뒤통수를 칩니다. 신념을 잃지 마세요. 저는 제가 했던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꿋꿋이 나아가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찾으세요. 그것은 여러분의 연인에게 그러는 것처럼 일에 대해서도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일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때가 오는데, 일을 진심으로 즐기려면,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 못 찾았다면 계속 찾으세요. 안주하지 마세요. 마음에 관한 일이 모두 그렇듯, 찾으면 알게 됩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가 그렇듯,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나아집니다. 그러니 찾을 때까지 계속 노력하세요. 안주하지 마세요.

●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열 일곱살 때, 어떤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마지막인 듯 살아라.

언젠가는 그 길이 옳았음이 드러나리라.” 이 구절은 퍽 인상적이었고, 그 후로 33년 동안, 아침마다 거울을 들여다 보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던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 라고 대답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변화가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내가 곧 죽을 몸이라는 생각은 제가 뜻밖에 획득한 가장 중요한 도구였고, 선택의 고비에서 늘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나 자부심, 당혹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모두 죽음 앞에서 떨어져나가고 정말로 중요한 것만 남으니까요.

죽을 운명이라고 유념하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덫을 가장 확실히 피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알몸 입니다. 진심을 따르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약 1년 전 전 암 판정을 받았어요. 아침 7시 30분에 정밀검사를 받고나서, 췌장에 종양이 있다는 게 분명히 보였죠. 췌장이 무언지도 몰랐는데 말입니다. 의사들은 암이 양성이라고 거의 확신했고, 제가 3개월에서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제게 집에 가서 주변 정리를 하라고 했는데, 이는 죽을 준비를 하라는 의사들 만의 암호이지요. 이 말은 제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할 이야기들을 몇 개월만에 전부 하라는 뜻입니다. 나중에 가족들이 편하게, 신변 정리를 확실히 해 두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고하라는 뜻입니다.

저는 하루 종일 각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이후, 조직 검사를 했어요. 목구멍에 내시경을 집어넣어, 내시경이 위와 창자 속으로 들어가면, 췌장에 바늘을 꽂아 종양에서 약간의 세포를 추출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마취 상태였는데, 거기 있던 아내가 전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 검사했을 때 의사들이 기뻐 소리쳤답니다.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매우 희귀한 형태의 췌장암으로 판명되었거든요. 전 수술을 받았고 이제는 건강합니다.

이것이 죽음과 가장 가까이 마주했을 때인데, 앞으로 몇 십년까지도 가까워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죽음이 유용하지만 순전히 지적인 개념일 때보다 더 확신을 갖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거길 가려고 죽고 싶어하진 않아요.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의 종착역입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어요. 이게 멋진 일입니다. 죽음은 삶에서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발명품이 분명하니까요.

죽음은 삶을 바꾸는 대리인입니다.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길을 터줍니다. 이제 새로운 것은 여러분이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여러분은 점차 낡은 것이 되고, 또 없어지게 되겠지요. 너무 극단적이라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타인의 철학으로 인생을 사는 교조주의에 빠지지 마세요.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가 시끌벅적한 타인의 의견으로 덮이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서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일입니다. 어쟀든 이미 우리 마음은 여러분이 진실로 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밖에 다른 것은 부차적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전세계편람’이라는 굉장한 간행물이 있었는데, 제 세대엔 바이블과 같은 존재였어요. 여기서 멀지 않은 멘로 파크(뉴저지주)에서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특유의 시적 필치로 쓰인 생기발랄한 책이었습니다.

때는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탑 출판이 도입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라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이용해 전부 만들어졌어요. 일종의 구글의 문고본과 같은 형태인데, 구글이 출현하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그 책은 이상적이었고, 쌈박한 도구와 훌륭한 생각으로 흘러넘쳤습니다.

스튜어트 외 편집진들은 ‘전세계 편람’을 몇 차례 발행했고, 책이 운을 다할 때쯤 마자막 호를 내놓았습니다. 19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의 나이였을 때 말이에요. 마지막 호 뒷 표지엔, 이른 아침 시골 길을 찍은 사진이 실렸는데 모험심에 가득차 여행을 떠나는 어느 날, 히치하이킹을 하다 만났을 법한 길이었습니다.

그 밑에는 “계속 갈증을 느끼세요. 계속 바보로 남으세요”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전한 마지막 인사말이었습니다. 계속 갈증을 느끼세요, 계속 바보로 남으세요. 그리고 전 항상 제 자신이 그러길 바랐습니다. 이제 졸업을 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여러분에게 바랍니다.

계속 갈증을 느끼세요, 계속 바보로 남으세요, 오랜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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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연설문

매킨토시 컴퓨터를 바탕으로 애플을 탄생시키고, 그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애플을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은 신화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지요. 바로 “스티브 잡스(STEVE JOBS)”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공학적인 소양을 바탕으로 인문학적인 내용을 함께 다루고 있는, 융합형 인재로 자주 소개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공학적인 내용도 적절히 알고 있으면서, 사람들의 감성을 잘 다루기도 하지요.

< 2005년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 >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 졸업식 축사에서는 스티브 잡스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인해서 많은 인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 졸업식 축사에서 나온 말이 그 유명한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열망하고, 우직하라.)”라는 말이지요.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열망하고, 우직하라.)

3가지의 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스티브 잡스의 연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스티브 잡스는 의미 있는 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연설은 크게 3가지의 주요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첫 번째는 “경험”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두 번째는 “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 세 번째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답니다.

그가 언급한 3가지의 이야기는 모두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디디는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요.

1. 경험 (과거 – 현재 – 미래에 관하여)

2. 일과 사랑 (열정에 관하여)

3. 죽음

스티브 잡스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

스티브 잡스는 우선 먼저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여기에서는 그의 삶이 입양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으로 시작이 되지요. 이후, 이야기를 이어나간 그는 대학시절 학교를 중퇴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듣기 위해서 도강을 한 이야기, 그리고 세계를 떠돌면서 유랑한 이야기 등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경험들은 마치 누군가의 눈에는 시간을 낭비하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자신의 모든 경험은 후에 그가 이룬 모든 것에 도움이 되고 밑거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과 사랑, 애플에서 쫓겨난 이야기.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설립한 회사인 “애플”에서 쫓겨난 이야기가 그것이지요. 경영 실적 악화로 인해서, 그는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후 절망적이고 절박했던 상황에서 “픽사(PIXAR)”라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지요. 이후, 픽사를 통해서 멋지게 부활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픽사에서의 성공을 계기로 그는 다시 쓰러져가던 애플로 돌아왔고, 아이팟과 아이폰 시리즈를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다시 애플을 세계 최고의 회사의 반열에 올려두었지요.

죽음,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마지막 부분인 “죽음”에서는 보다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의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항상 죽음을 마주하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라는 조언을 하는 것입니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이라는 질문을 가지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라는 조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여기에서 그는 죽음에 대한 “명언”을 하나 남기기도 합니다.

바로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내용의 이야기였지요. 영어로는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라고 언급을 했던 바 있습니다

.

그리고, 마무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그의 명언인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로 졸업식 축사를 끝낸답니다.

여기까지,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연설 앞에서 다시 한번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경영 명언, 좋은 글> 스티브잡스 스탠포드 연설 전문(원문, 영상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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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스티브잡스 스탠포드 연설 전문>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지금 뒤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자퇴를 하니 평소에 흥미없던 필수과목 대신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또 매주 일요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인 것이었고, 전 그 것에 흠뻑 빠졌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사실, 이 때만해도 이런 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를 처음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아마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인쇄술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제 인생의 고비 때마다 힘이 되어줬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은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세상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쇼.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 할만한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앞에서는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오직 진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 있는 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치워야 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당장 죽는 건 원치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이란 삶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잡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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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연설 connecting the d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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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업가를 넘어 전 세계인의 생활 방식마저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위대한 인물 스티브 잡스.

그가 2005년도에 스탠포드 대학에서 했던 연설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픈 상태를 유지하고, 멍청한 상태를 유지하라 = 항상 배움을 갈망하라!)

개인적으로는 이 명연설을 10년 전에 처음 보았다.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기 전이었는데 영어 공부하기 좋다고 해서 수십수백 번 돌려보며 잡스와 똑같이 흉내를 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말하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땐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영어공부를 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냥 ‘아 좋은 연설이네~’ 정도…

하지만 사회생활도 하고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겪다 보니까 이 연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은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ㅎㅎ

연설은 총 3가지 주제로 나뉘는데,

1. 점들의 연결 (connecting the dots)

2. 사랑과 상실 (love and loss)

3. 죽음 (death)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첫 번째 주제인 ‘connecting the dots’ (점들의 연결)을 가장 좋아한다.

잠깐 연설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잡스는 처음에 리드 칼리지(Reed college)라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곳의 학비가 비싼데 비해 그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해 자퇴를 하였다. 더 이상 필수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어진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곳에서 서체(캘리그래피) 수업을 듣기로 했다.

잡스는 이 수업에서 서체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 경험은 10년 후 그가 첫 번째 매킨토시 컴퓨터를 구상할 때 빛을 발했다. 매킨토시는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으며, 만약 그때 잡스가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개인용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씨체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을 다닐때는 미래를 보고 점들을 연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하지만 10년 후 되돌아보니 그것은 아주 아주 분명했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다시 말해, 지금 당신은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과거로 되돌아보았을 때 그것들을 연결할 수 있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니까 지금의 점들이 당신의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당신의 배짱, 운명, 삶, 업보 등등 무엇이든지 간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ould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worn path.”

왜냐하면 현재의 점들이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을 따라 살아갈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깨달음을 간단히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잡스는 그것을 “점들의 연결(Connecting the dots)”이라는 말로 딱 정의했다.

나의 좌우명은 ‘일단 시작하라’이다.

이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때도 할까 말까 좀 망설였다. 유명 블로그들을 들어가 보면 이미 글이 수백 개 수천 개씩 되는데, 내가 어느 세월에 그 정도 양을 따라가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시작해보기로 했다. 블로그가 잘 안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나는 재테크 공부도 할 수 있고, 글 쓰는 연습도 되기 때문이다 ㅎㅎ

그렇게 하나씩 포스팅 하다보니 지식들은 온전히 내 재산이 되었고, 내 기대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들어오고 있고, (하루에 100명 들어오면 많이 들어오는 거라고 생각했었음ㅋㅋ) 애드센스로 생각지 못한 수익도 생겼다!

지금 하는 일이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고 쓸모없는 일 같아 보여도 (=하나의 점)

그 경험이 훗날 다른 일에 도움이 되어 큰 성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점들의 연결)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또 이 선들이 모여 하나의 도형을 만들어 낸다.

주말을 맞아 나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지며,

과거와 현재의 점들이 연결되어 나의 미래에 어떤 아름다운 도형을 만들어 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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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에 대한 정보 스티브 잡스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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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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