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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은 1844년 영국 로치데일에서
28명의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협동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었던
로치데일의 개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협동조합의 역사를 알아보는건 어떨까요?
*동영상은영국 The Co-operative Heritage Trust 제작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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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발전의 초기 조건에 대한 연구: 영국의 로치데일과 …

A Study on Initial Condition of Emergence of the Co-operative With Special Reference to 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 and Mondragon Co-operativ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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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i.go.kr

Date Published: 7/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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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은 위기의 시대에 가장 복원력 뛰어난 기업” : 경제일반

“1844년 영국 맨체스터에 처음 설립된 로치데일 협동조합 창립자들은 그들의 비지니스를 위한 원칙을 만들었다. ‘로치데일의 선구자’로 불린 이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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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7/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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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pa.covadoc.vn

Date Published: 2/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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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치데일 협동조합] 로치데일 개척자 이야기
[로치데일 협동조합] 로치데일 개척자 이야기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로치 데일 협동 조합

  • Author: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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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5. 8. 2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_3dP4ru1q_4

2부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시작과 발전- 11회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탄생

[한국농어촌방송=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 1843년 말 로치데일의 지도자들과 노동자들은 다시 모였다. 그리고 40여 명의 사람이 새로운 협동조합설립에 찬동하고 1인당 1파운드의 출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더 나은 삶의 세상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이상적인 협동조합설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윌리엄 쿠퍼, 찰스 호와스, 제임스 댈리와 같은 협동조합 운동의 오언주의자였다. 그들은 존 콜리어와 같이 개혁정치의 영향을 받았고, 제임스 스탠드링, 존 앱스던과 같이 협동조합 운동에도 참여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브렛 페어바이든) 로치데일에 축적된 사회경제적, 정치적 활동 경험을 토대로 그들은 어떻게 하면 협동조합이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토론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작동 가능한 규약을 만드는 일이었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설립의 선구자들

거의 1년에 걸친 노력 끝에 마침내 1844년 8월 11일 창립총회를 열고 챨스 하워스를 조합장에 선출했다. 10월 24일 정관을 만들고 등기를 마쳤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최초의 정관은 오언주의자였던 찰스 호와스와 재임스 댈리가 작성했다고 한다. 당시의 협동조합은 우애조합법(Friendly Society Act)에 따라 법적으로 등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1932년 오언주의자들이 밝힌 협동조합의 원칙과 1837년 설립된 오언주의 공제회의 정관을 참조했다고 한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등록요건을 갖추기 위해 그동안 만들어졌던 수많은 협동조합의 정관들을 참조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최초의 정관은 그들이 주어진 제도적 환경 속에서 어떠한 협동조합을 만들고 어떻게 운영하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건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마지막까지 남은 28명의 조합원이 낸 28파운드의 출자금으로 12월 21일 최초의 식료품 가게를 열었다.

중제 :그런데 왜 ‘공정(한) 선구자’인가?

로치데일 협동조합 설립자들은 자신들의 협동조합 이름을 ‘로치데일 공정(한) 선구자 협동조합(The Rochi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라고 지었다. 그들이 ‘공정(한) 선구자’를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채택한 것은 이 협동조합을 통해 ‘공정과 평등과 정의’를 실천하여 바른 사회를 만드는 선구자적 책임과 역할을 다 하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세상에 알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정(equity)’은 로버트 오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고 한다. (브렛 페어바이든) 영어의 ‘equity’는 ‘바르고 옳음’을 뜻하는 ‘자연법이나 천부적 권리에 입각한 정의와 공의(justice according to natural law or right)’ 그리고 ‘편견과 차별이 없는 공평(freedom from bias or favoritism)’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이윤을 공정하게 나누고, 속이지 않고 정직하고 바른 거래와 교환을 하며, 의사결정 등 협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에 있어 모두가 의무와 책임을 평등하게 나누어지는 등 정의와 평등이 살아있는 거짓 없는 정직한 협동조합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고 혁신하는 ‘선구자(The Pioneer)’가 되기를 원했다. 원래 ‘선구자’는 당시 오언주위자들이 주축이 된 한 노동자단체 기관지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브렛 페어바이든)

로치데일 선구자들의 ‘필요와 열망(needs and aspirations)’은 당장 물질적, 경제적 어려움의 해결과 함께 더 정의롭고 공정하고 공평한 바른 사회건설이란 높은 이상에 있었음을 유추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이윤의 배분과 거래의 공정’은 어쩌면 ‘자조’와 함께 협동조합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도덕적 기준이며 협동조합을 다른 사회경제적 기관이나 단체들과 구분 짓게 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창립목적과 규약들은 더욱 이러한 생각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협동조합 오래된미래 ① : 로치데일, 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이 등장하기까지

협동조합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로버트 오언 (1771.5.14 ~ 1858.11.17)

오언의 뉴라나크 방적공장에는 유치원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와 노동자를 위한 야간학교도 개설되어 있었다 . 이 공장은 관행처럼 여겨지던 17 시간 노동을 10 시간 반으로 줄이고 10 세 이하 어린이들의 노동을 제한하였고 , 노동자들의 협동을 바탕으로 한 자주적 생산관리 제도를 도입하고 있었다 . 또한 공장 노동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만든 점포도 개설되어 있었다 .

노동력에 대한 착취가 이윤과 직결된다는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복지를 강화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오언의 생각이었다 . 그런 생각이 실제 성과로도 이어져 방적공장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 유럽 전역에서 공장을 견학하려는 지식인 , 기업가들이 한 해 2 만 명에 이를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

하지만 뉴라나크 공장의 성공도 오언의 원대한 꿈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했다 . 그는 구성원들의 자주운영 , 자주관리에 기반한 자급자족의 협동조합 공동체 건설을 꿈꾸고 있었다 . 그는 꿈의 실현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 주 해안의 8 천여 헥타르의 농지를 사들이고 , 그곳을 ‘ 뉴하모니 ’ 라고 불렀다 . 오언의 꿈에 공감한 8 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 그는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 , 재산을 공유하고 협동적으로 노동하며 충분히 휴식하는 조화로운 마을 건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 하지만 2 년도 못되어 공동체는 해체되어 버렸다 . 어중이떠중이가 모여 갑론을박만 할 뿐 , 실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8 백여 명 중 1 백여 명에 불과했다 . 게다가 이 공동체는 규모면에서도 주민들이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생산하기에는 너무 작았고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노동력 , 조직 , 생산 기술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

로치데일 공정 선구자 협동조합

출판사 리뷰

협동조합운동의 세계적 고전, 협동조합 사람들의 필독서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역사와 사람들』 첫 완역판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영국 랭커셔 주의 작은 마을 로치데일에서 노동자 28명이 28파운드를 가지고 만든 세계 최초의 소비자협동조합이며, 국제협동운동의 기본원칙으로 지금도 계승되고 있는 ‘로치데일 원칙’을 확립한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의 기록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다.

이 책의 제1부는 1857년에 간행되었고, 제2부를 더한 증보판은 1893년에 간행되었다. 제1부가 나온 뒤 150여 년 동안 이 책은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 헝가리, 일본 등 협동조합 선진국을 비롯하여 수많은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완역판이 나온 것인데,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의 ‘협동조합고전총서’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의 산 증인, 홀리요크의 기록

이 책의 지은이는 영국 협동조합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홀리요크.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공장에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직접 몸으로 체험한 홀리요크는 이후 열렬한 오언주의자가 되어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회주의와 협동조합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된다. 홀리요크는 1843년, 강연 여행 도중에 머물게 된 랭커셔의 작은 마을 로치데일에서 ‘28인의 선구자들’을 만난다. 파업에 실패하여 실의에 빠진 그들에게 홀리요크는 협동조합 매장을 만들 것을 호소한다. 다른 오언주의자들이 협동조합운동에 충분한 평가를 내리고 있지 않을 때, 홀리요크는 혼자서 이 운동을 따뜻하게 옹호하며 ‘선구자들’을 독려하고 그가 기고하던 각종 신문을 통해 그들의 활동을 알렸다. ‘28인의 선구자들’ 중 한 사람인 제임스 스미시스 집에 머물면서 홀리요크는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 역사의 산 증인이 되었다. 로치데일 노동자들과의 만남,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의 발자취를 상세히 기록하여 후세에 남긴 이 책을 쓴 것만으로도 세계 협동조합운동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 받는다.

로치데일의 선구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노동자 출신인 홀리요크는 그들의 사회사상과 꿈을 공유하고 온몸을 던져 투쟁한 실천가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탁월한 문장가였다. 그의 글에는 노동자 출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문학과 예술, 자연과학, 정치경제 이론 등에 폭넓은 소양과 지식이 배어 있다. 그의 문장은 한 생을 진솔하게 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진정성이 있으며, 그리하여 한없이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매장을 열기까지의 과정, 조합의 규약과 선언, 창립 뒤의 어려움과 그 극복 과정을 담았다. 제1부를 간행하고 20년 뒤에 쓰여진 제2부에서는 도매조합연합회 창설과 생산조합에서 벌어진 이윤 공유 논쟁을 주요하게 다룬다. 또한 마지막 제19장과 20장에서는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을 위해 한 생을 뜨겁게 살다 간 선구자들의 죽음 앞에 선 홀리요크의 진심 어린 추모의 글을 만날 수 있다.

150년 전 협동운동의 선구자들이 우리 곁에서 말을 건다

홀리요크가 전하는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의 기록은 살아 있다. 150년 전 기록인데, 마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협동운동이 지닌 가치와 의미는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구자들이 고민했던 조합의 어려운 문제들을 지금의 협동조합들도 갖고 있고, 그 당시 조합 운영을 어렵게 만들던 사회적 호저들과 불만을 품은 아웃사이더들은 지금 우리 주위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홀리요크는 이런 어려움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법을 조용히 일러 준다. 수많은 협동조합들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졌지만,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만이 뛰어난 사업 실적을 이루면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진리를 첫째로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구자들에게 이윤은 둘째였다. 이윤 배당의 원칙으로 선구자조합이 성공한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배당을 본 적도 없었다. ‘그들은 남들이 경쟁을 하면서 부정하게 이윤을 얻는 모습에 혐오감을 느꼈다. 디오게네스처럼 원칙의 빛을 따라 공정한 이윤을 추구하고, 이를 정직한 협동운동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본문) 선구자들이 확립한 ‘로치데일 원칙’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말을 걸고 있지 않는가.

선구자들은 또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1. 소득은 꼭 필요한 데에만 쓰고, 그 외 지출은 모두 줄일 것.

2. 저축을 빼 쓰는 일에는 신중할 것.

3. 자신의 지적 향상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잘 쓸 것. 이를 위한 수단이 우리 도서실과 신문열람실에 갖추어져 있음.

4. 언젠가 오게 될 좋은 날을 위해 참고 기다리면서 우리 운동의 명예를 높일 것.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이 유일하게 스스로 남긴 기록인 해마다의 연감은 홀리요크가 이 책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위 4가지 사항은 1862년 연감의 기록이다. 이는 지금 우리들에게도 딱 들어맞는 권고가 아닌가! 이 책에는 이처럼 지금 우리들이 귀 기울여 듣고 싶은 선구자들의 권고와 격려, 때로는 엄정한 충고의 말들이 페이지마다 배어 있다.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은 꿈꾸는 법을 알고 있었다!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은 소비자조합의 원형으로 정직하고 공정한 거래의 원칙을 확립했다.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외상 거래를 완전히 없애고 오로지 현금 거래만을 원칙으로 한 점은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이 성공할 수 있었던 큰 비결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선구자조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조합을 처음 만들 때부터 이윤의 2.5%를 교육기금으로 적립했으며, 당시 런던의 양복 입은 신사들이 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양질의 정보를 조합원들에게 제공했다. 영국이 식민지에 대의제를 도입한 것처럼, 로치데일협동조합은 새 지점을 만들 때마다 신문열람실과 도서실을 두었고 이곳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조합원들은 주머니가 텅 비었어도 얼마든지 정신의 양식을 얻을 수 있다. 통찰력과 분별력을 키워주는 지식을 얻는 일은 숫자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엄연히 경제적인 것임을 선구자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홀리요크는 조합에서 만든 도서실과 신문열람실, 청년들을 위한 각종 학교를 운영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이것이 없었다면 그들은 보다 자유롭고 용기 있는 태도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았기에 협동조합 사람들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어느 곳으로부터도 통제를 받지 않았다.”

경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떤 이익을 준 적이 있었던가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12월 21일, 동짓날 즈음이면 남다른 감회에 젖을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가난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의 처지가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던 끝에 협동운동을 선택하고 ‘직공들의 낡아빠진 가게가 문을 열었네!’라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견디며 로치데일 토드레인의 허름한 1층 건물에서 매장 문을 연 날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상인이 되고 제조업자가 되려는 꿈을 지니고, ‘마법의 부적’이라고 해야 할 2펜스에 의지해 세계를 구원하리라 마음먹고 보잘것없는 단 4가지 품목만을 가지고 매장 문을 연 날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호황을 이뤄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지만 보기 좋게 실패하고, 도움을 요청한 상인들로부터 ‘부랑자들아, 가서 일이나 해!’라고 모욕을 당한 노동자들이 이제껏 경쟁이 가져다 준 적 없는 이익을 협동의 원칙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일을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1844년 동짓날의 깊은 어둠이 지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긴 어둠을 원칙과 진리의 빛으로 지나온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일이 지금 우리들 앞의 어둠을 비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고 정당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협동의 로치데일 시스템은 인간이 창조한 것 가운데 가장 작고, 가장 희미하고, 가장 의지할 데 없고, 가장 무시받고, 가장 비난받고,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성공할 것 같지 않은 조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자라고 있으며, 영국 노동자의 상태 개선을 위해 시도된 것들 가운데 가장 번영하는 조직이 되었다.”(본문)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이런 조직을 운영하고 유지할 수 있었는지, ‘28인의 선구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조합의 탄생에서부터 선구자들의 죽음까지 곁에서 지켜본 홀리요크를 따라가 보자. 선구자들이 그들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낸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써서 세상에 알리겠다고 약속한 홀리요크의 책이 바로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역사와 사람들』 이 책이다.

협동조합 발전의 초기 조건에 대한 연구: 영국의 로치데일과 스페인의 몬드라곤을 중심으로

이 논문은 영국의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과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초기 조건에 대한 연구이다. 로치데일조합은 협동조합의 원칙을 정립한 최초의 사례로 소비자협동조합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노동자생산협동조합 중 가장 성공한 사례에 속한다. 이 연구는 대표적인 성공사례의 초기 조건을 분석함으로써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진 이후 조합의 설립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한국에서 협동조합의 초기 조건의 성격을 가늠해 보기 위한 시도다. 협동조합은 정치 경제적 환경에 따라 사회마다 다양한 형태를띠고 있어 성공적인 초기 조건을 일반화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구체적인 형태와 전략을 비교하기보다 협동조합이 기존 체제에 대한 대안 운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주체적 조건(추진 세력의 존재와 역량)과 환경적 요인(사회적 위기의 정도)의 측면에서 두 사례를 분석했다. 로치데일과 몬드라곤은 시간 격차만큼이나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상이하다. 그러나 사례를 분석하기 위한 두 가지 요인으로 구체적인 상황에 접근했을 때 두 지역은 상당한 유사성을 나타냈다. 특히 장기간의 전면적 갈등과 쟁투의 과정에서 거듭된 패배로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없었던 운동가들이 우회적 전략을 모색하는 방법론으로 협동조합의 설립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두 사례는 유사성을 보였다. 사회 경260 동향과 전망 90호제적 위기의 심화와 저항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전제 조건인 신뢰와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됐다는 점 역시 두 사례의 공통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두 사례의 이러한 조건을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초기 조건으로 파악했다. 이러한점에서 기본법 이후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고 볼수 있다. 창업의 방편이나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연구는 한국의 사례에 대해 본격적인 분석을 시도한 것은 아니어서 추후 해외의 사례 연구를 확대하면서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검토가 추가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This article is a study on the initial condition of emergence of the co-operativewith special reference to 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 andMondragon Co-operative. It focuses on the analysis of two factors; the existenceof a driving group as a human factor and the degree of social conflictas an environmental factor, which play a pivotal role for the cooperatives toemerge. Even though there were lots of difference in two co-operatives,they were remarkably similar in such two factors. When the co-operativemovement began, their societies were commonly in serious danger becauseof social conflict caused by political and economical transition. This changewas mainly attributed to the Industrial Revolution (Rochdale) and theSpanish Civil War (Mondragon). The period of conflict also saw the rise ofthe driving group necessary for cooperation which were trained in the processof conflict and resistance. These kind of comparative studies can providea lesson to the Korean cooperatives which are rapidly increasing since establishmentof a Framework Act on Cooperatives at the end of 2012.

선구자들의 여정을 따라 로치데일로 향하다

아이쿱생협 해외 연수단이 7박 8일(10/28 ~ 11/5)의 일정으로 영국으로 떠났다. 연수단은 왕복 23시간을 비행했고 107,432보를 함께 걸었으며 버밍햄-맨체스터-글라스고 세 도시를 이동하며 영국의 다양한 협동조합과 관련 기관을 방문했다. 협동조합을 꿈꾸고 실패를 거듭하며 역사 속에서 실현했던 과정을 되짚어간 방문기를 아래순서로 소개한다. (1) 미드카운티 소비자 협동조합

(2) 로치데일 박물관

(3) 흄 커뮤니티 가든 센터

(4) 유니콘 노동자 협동조합

(5) 코퍼라티브 대학

(6) 뉴라나크

영국 랭커셔주의 로치데일 토드레인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매주 2펜스를 1년 동안 1파운드로 모은 28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맨체스터에서 버터 25kg, 설탕 25kg, 밀가루 6봉지, 곡물가루 1봉지, 양초 24개를 구매하고 손수레에 실어 로치데일까지 가지고 왔다. 28파운드로 마련한 매장과 26시간을 걸어서 가지고 물건은 세계 최초의 소비자 협동조합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로치데일 원칙’은 국제 협동조합운동의 기본원칙으로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로치데일 선구자들

바퀴 셋 달린 수레를 끌고 물품을 구해 밤새 걸었을 그 길에 서 있으니 영화 ‘로치데일 선구자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현재 로치데일 토드레인 매장은 로치데일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로치데일 매장이 처음 문을 열던 날을 상상하니 로치데일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이 설렌다.

로치데일 박물관

로치데일 박물관과 아카이브는 협동조합유산트러스트의 운영협약에 따라 코퍼러티브 컬리지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하 전시 공간에서는 로치데일 협동조합 운동의 시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층은 당시 매장의 진열대, 계산대, 회의록, 영상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2층 전시실은 코퍼러티브 컬리지에서 매년 컬렉션의 주제를 기획해 교체 전시하고 있는데 현재는 ‘차와 비스킷’이라는 주제로 초기협동조합운동의 차 상품, 영국 차 문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3층에서는 로치데일 관련 영화 상영과 선구자들이 이용했던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1층은 당시 로치데일 토드레인 매장처럼 구현해 놓았다.

1844년 당시 로치데일 토드레인 매장 안에는 놀랍게도 신문 열람실과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곳을 뛰어넘어 교류 장소였다고 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조합원에 대한 교육이었다. 매장이익의 2.5%는 교육기금 사용할 정도로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음식이 맛이 없다는 조합원과 가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미각 교육을 했다. 173년 전 로치데일협동조합에서도 ‘식생활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 ‘로치데일 선구자들’

로치데일 협동조합 원칙

▲ 자금은 자체 조달하고 이자율은 고정해야 한다. ▲ 조합원에게 조달 가능한 범위에서 가장 순정한(맞습니다) 물품만 제공해야 한다. ▲ 저울이나 자를 속이지 말고 정확한 양을 제공해야 한다.▲ 시장가격으로 판매하고 외상은 주지도 요구하지도 말아야 한다. ▲ 이익은 각 조합원이 구매한 양에 비례해서 분배해야 한다. ▲ 1인 1표의 운영을 지키고 조합원은 성별로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 조합의 경영은 정기적으로 선출한 임원과 위원회가 맡는다. ▲ 일정한 비율의 이익은 교육에 배정해야 한다. ▲ 조합원에게 수시로 사업보고서와 대차대조표를 보여주어야 한다.

로치데일 박물관은 역사적인 유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선구자들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지역에서 역동하고 있다. 박물관 2층 계단 옆에는 다양한 간식과 차를 비치해 언제든지 지역사람들이 방문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지역 상점들에 기증받아 배고픈 지역주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식료품을 나누기도 한다. 운영에 참여할 자원 활동가를 모집하기도 하는데 참여하는 활동가들의 자부심이 매우 크다.

낡고 오래된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없는 것이라 폄하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현실이다. 역사가 남긴 흔적들 속에서 무엇을 계승하고 배울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것을 후세와 공유하려는 노력은 로체데일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로치데일 프로젝트의 전체 비용은 230만 파운드였으며 영국 전통 유산 복권기금이 140만 파운드를 지원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전용 교육 공간을 마련하고 전시장을 열었으며 계단을 설치해 접근성을 강화했다. 또한 1970년 개조 공사에서 철거된 3층을 복원했다. 3층에서는 로치데일 관련 영화를 상영하고 한편에서는 당시 선구자들이 이용했던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왕복 23시간을 비행했고 107,432보를 함께 걸은 영국 협동조합 연수단

협동조합은 빈곤과 결핍에서 시작된다. 요즘 태어난 세대는 상대적으로 누릴 게 많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시스템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자 대안은 협동조합이라고 믿고있다.

공동체적인 삶이 위협받고 개인화되는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협동의 가치를 환기하고 함께 사는 삶이 더욱 풍족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협동조합이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존의 조건임을 전하는 굳건한 메신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로치데일 박물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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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은 위기의 시대에 가장 복원력 뛰어난 기업”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

아리엘 과르코 ICA 회장 인터뷰

협동조합 3억개 일자리 창출

G20보다 많고 전세계 10% 차지

사람 중심 경제의 경쟁력 보여줘

코로나 이후 삶의 방향 제시

요즘 유행하는 ESG 성공하려면

이윤창출의 부산물 취급 안 돼

협동조합의 세계적 권위자 가운데 한명인 스테파노 자마니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교수는 협동조합을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에 비유했다. 모순되지는 않지만 뚜렷이 구분되는 두가지 특성이 결합된 조직이라는 것이다. 시장 안에서 작동하고 그 원리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경제적 차원의 기업이다. 반면 경제 외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공익 창출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사회적 단체이기도 하다. 이런 이중적 특징은 협동조합을 설명하기 어렵게 하고, 실제로 운영할 때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12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를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자리로 만들려는 이유다.

아리엘 과르코 국제협동조합연맹 회장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대해 “공동 소유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통해 경제, 사회,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기업”으로 정의했다. 협동조합은 인간의 이기심보다 사회적 이익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기업도 얼마든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협동조합이 이뤄낸 성공은 개인의 합리성이 반드시 유일한 경제적 합리성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공유와 공익을 추구하는 경제활동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르코 회장과의 인터뷰는 11월 15~16일 전자우편으로 진행됐다.

아리엘 과르코 ICA 회장이 201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5차 아메리카 협동조합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ICA 제공

“1844년 영국 맨체스터에 처음 설립된 로치데일 협동조합 창립자들은 그들의 비지니스를 위한 원칙을 만들었다. ‘로치데일의 선구자’로 불린 이들은 당시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아 사회에 필요한 요구들을 제공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은 공동 소유와 민주적 운영 체제를 기반으로 했다. 협동조합의 효시인 이 모델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포함한 여러 위기 속에서도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다해왔다. 지금 인류가 생산과 소비 활동에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을 때 다시 협동조합의 가치를 되새기고 이 운동을 확산시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은 시장의 특성과 사회적 특성이 함께 정체성을 구성한다. 시장의 특성이 지배적일 때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이윤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사회적 특성이 월등히 우세할 때는 협동조합이 경제적으로 뒷걸음치거나 한계 상황에 부닥친다. 따라서 두 가지 특성이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둘 중 하나가 희생당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결국 협동조합의 본성이 사라지고 정체성을 잃게 된다.

협동조합은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과 충돌한다. 협동조합의 경제 외적인 목적이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행동 가설에 반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경제적 행동은 인간의 이기심보다 다른 동기들에 의해 작동된다.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시민시장’(civil markets)의 존재로 이를 설명한다. 시민시장은 경제와 사회의 격차를 줄여 나가고 개인이나 집단이나 누구나 경제적 게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덜 가진 자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가진 자의 분배를 재배분 받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돌봄을 제공받게 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때로는 내부 요인에 의해, 때로는 주변 사회의 경제적 동인에 의해 큰 변화를 겪어왔다. 19세기부터 20세기 후반부에 생산자, 노동자, 소비자 및 이용자 협동조합들이 주로 영국과 같은 경제 선진국에서 태동해 성장했다. 경제적 하위 계층이 스스로 시장 지배력을 키워 사회적 배제를 막아내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산업사회에서 후기 산업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협동조합은 새로운 목적을 찾게 됐다. 개인 서비스 같은 특정 경제 영역에서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기업보다 효율성에서 더 뛰어남을 보여줌으로써 명백한 경제적 동인(이윤 추구)이 생겨난 것이다.

협동조합을 통해 진보적 사회 질서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불거졌다.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민주주의 공간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사회적 자본, 즉 시민의 신뢰 네트워크를 창출하는 역할을 요구받았다. 협동조합은 이런 역할들을 훌륭하게 수행해왔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이나 국제 투자가 미치지 못하는 분야나 지역에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끄는 데 적합한 기업 형태로 진화하기도 했다.

“팬데믹 동안 확인된 사실은 협동조합이 위기의 시대에 강한 복원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물론 협동조합도 팬데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팬데믹에 필요한 사회적 요구에 잘 대응해왔다. 우리는 일자리와 상품·용역의 공급, 건강과 주거지,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등 최근 중요해진 이슈들을 진지하게 토론하고 연구했다. 일자리의 경우 협동조합은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비전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은 청년과 이주민, 미숙련노동자, 심지어 공식적인 일자리에 접근하기 어려운 전과자나 죄수들까지 일자리를 제공한 경험을 많이 갖고 있다. 또한 여성에게 특히 불리했던 돌봄 노동 등의 분야에서 젠더평등을 이뤄낸 경험도 많이 있다. 협동조합은 프리랜서 방식으로 일하는 이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했고,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도 가장 평등한 방식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일자리 복원이다. 이익을 많이 낸 기업들과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부족하다.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설립되고,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 가운데 하나다. 다행히도 인류는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수준의 합의를 갖고 있다. 협동조합은 환경과 사회,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협동조합은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3억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는 전 세계 일자리의 10%에 해당하는 규모이고, G20이 만들어낸 일자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또 300여개의 대형 협동조합들의 매출 총합은 세계 6대 경제대국의 총생산과 비슷하다. 양적인 성장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을 리드하는 조합들도 있고, 수익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춘 모델로도 충분히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조합들도 있다.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과 달리 커뮤니티에 기반한 가치와 원칙을 갖고 있다. 협동조합이 위기에 맞서 복원력이 뛰어난 이유다. 팬데믹 이후 정상 상태로 향하는 길을 밝히는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이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기업 경영의 주요 이슈로 고려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려면 이 모델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단순히 의지와 약속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과 환경을 기업 활동의 중심에 두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디엔에이(DNA)를 바꾸는 작업이다. 이윤 축적을 최고의 목표로 정한 뒤 (이에스지를) 이를 달성하기 위한 부산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협동조합은 사람과 환경을 중시하는 디엔에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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