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네 메네 데겔 우 바르신 | \”메네메네데겔 우바르신\”과 \”로고스\” 당신의 인생은 지금 계수되어지고 있습니다! \” /사막의 생수 Mene, Mene, Tekel, Upharsin And Logos 151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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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 돌아가자 복음으로 돌아가자 (한국어와 영어 자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막을 한국어 혹은 영어로 설정하시면 자막과 함께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Korean and English subtitles are available. If you set the subtitles to Korean or English, you can view the video with subtitles.)
단 5: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And this is the writing that was written, MENE, MENE, TEKEL, UPHARSIN.
메네메네데겔우바르신 과 로고스와의 관계를 알아봅시다
Let’s find out the relationship between Menemenetekel Upharsin and the Logos.
당신의 인생은 지금 계수되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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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 법률신문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MENE, MENE, TEKEL, UPARSIN)은 아람어인데 ‘세었다, 세었다, 달아보았다, 나누었다’라는 뜻이다. 성경 다니엘서에 기록된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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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lawtimes.co.kr

Date Published: 3/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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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입니다. – 복음뉴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입니다. · 1.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달아보시고 심판하십니다. 1) 벨사살 왕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 2. 하나님은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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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1/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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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히브리어 강해] 메네메네데겔 우바르신 다니엘 해석(단 5 …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 문자적 의미는 ‘세어지고 세어지고 달아보니 부족하여 나누어진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벨사살의 죄악을 보시고 그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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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rn153.tistory.com

Date Published: 3/15/2022

View: 9029

메네 메네 테겔 우바르신 – 늘푸른교회

발음이나 철자가 비슷한 단어로 메네는 ‘마네'(겔45:12, 스2:69), 데겔은 ‘세겔’, 바르신은 ‘베라스’의 복수형인데 ‘베라스’는 2분의 1 마네라는 뜻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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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vergreenpromising.org

Date Published: 12/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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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무슨 방언(언어)의 문자였어요?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임금님의 나라의 시대를 계산하셔서, 그것이 끝나게 하셨다는 것이고, ‘데겔’은, 임금님이 저울에 달리셨는데, 무게가 부족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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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5/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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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역사적 배경과 성경의 진실(다니엘5:1 …

갈대아 사람이나 유다사람은 다 아람어를 사용합니다. 히브리어는 아람어의 방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기껏 글자를 쓴 이유가 뭐겠습니까? 단순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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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rw.kr

Date Published: 8/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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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메네 메네 데겔 우 바르신

  • Author: 사막의 생수 그리스도께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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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1. 2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xr_78dm7GxU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MENE, MENE, TEKEL, UPARSIN)은 아람어인데 ‘세었다, 세었다, 달아보았다, 나누었다’라는 뜻이다.

성경 다니엘서에 기록된 말씀이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이 궁중 연회를 즐기던 중 벽에 나타난 사람의 손가락이 아람어 글씨로 기록한 내용이다.

(다니엘 5:25)

나라를 멸망으로 떨어뜨린 벨사살의 우상 숭배는 극에 달하여 그들이 한 낱 술을 하나님 성전의 성스러운 그릇으로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왕궁 촛대 석회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하나님 경고의 글자를 쓴 것이다.

벨사살 왕의 요청으로 다니엘이 해석하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교만하여 예루살렘 성전 그릇으로 술을 마시고 우상을 찬양한 벨사살 왕을 심판하는 내용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미 왕의 시대를 ‘세어서’ ‘달아보니’ 벨사살 왕이 ‘사악하고 한량없이 부족하여’ 하나님께서 ‘나라를 쪼개서 메대와 바사에 주신다’ ”는 무서운 경고였다.

“하나님이 당신의 저울로 바벨론을 측량하니 부족함이 드러나 바벨론이 멸망하고 그 나라가 쪼개질 것이라”고 해석했다. (단5:26-28) 실제로 그날 밤 바벨론은 메데?바사 군대에 의해 BC 539년경 멸망당하고 말았다. 그 날 밤에 벨사살 왕이 사살되고 메대사람 다리오가 왕이 되었다.

지상에 있는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가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이 왕들과 통치자를 세우시고 폐하시는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벨사살 왕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한 것이다.

벨사살 왕의 악정이 극에 달하여 역사의 심판을 받아 하루 밤에 왕은 사살되고 나라는 두 동강이 나서 멸망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경제적으로 급전직하 쇠약해 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첫 번째로 10년 만에 국내 총소득이 감소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실패하여 고용참사, 청년 실업자가 급증하여 성장률 2%도 턱걸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 최저임금은 지나치게 높아서 OECD에서도 우려를 표시하고 있고, 근로자 노동시간도 사실상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상황에 와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이미 전 세계가 다 폐기처분한 정체불명의 경제논리다.

프랑스는 한국의 원전건설비용이 국제적으로 가장 저렴하고도 가장 우수한 기술을 보유했다고 평가를 했다. 영국 등 선진국에서 부러워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명품 원전기술이다.

그런데 문 정권에서 자신이 임명한 친위부대를 앞세워 불법?부당한 방법으로 원전 폐쇄를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은 66% 정도가 원전을 살려야 경제가 살고 에너지가 산다고 했다. 원전폐쇄는 원전 세계 1등국가에서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을 선택했다. 전문가들이 한사코 원전폐쇄를 절대 반대해도 현 정권은 안하무인격 벽창호다.

현 정권이 내세우는 태양광 발전은 전자파 발생으로 인근 목장이나 사람이 거주하기가 부적절하고 질병 유발 등 문제가 있고, 풍력발전은 2킬로미터 이내에서는 소음으로 주민이 밤잠을 설치면서 경제성은 원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전을 폐쇄한 독일은 전기 요금이 30% 이상 올라서 산업용, 가정용 모두 전기요금 인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0기의 원전을 새로 건립한다. 원전은 국가 경제발전의 막대한 견인차 역할을 한다.

최근 불거져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사건들을 본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적폐로 몰던 법원의 국제인권법학회가 만든 인터넷의 익명 게시판에는 울산시장 선거공작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가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거부한 것에 대해 ‘위법?위헌’이라는 글이 수십건이 올라왔다. “적법하게 발부한 영장을 대상자(청와대)가 부적법하다고 거부하면 사법 절차가 어떻게 운용될 수 있나” “이러다 구속영장도 불응한다고 하겠다”는 비판이다. 조국 사태 이후 청와대를 못 믿겠다”는 내용도 있다. ‘사법적폐 청산’에 박수를 보내던 판사들이 “암담한 요즘”이라고 장탄식을 한다.

현 정권과 한 몸인 참여연대에서 검찰개혁문제를 총괄해온 핵심 간부는 여권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 “반개혁”이라며 사퇴했다. 수사권 조정은 “폐병 환자 다리를 절단해 휠체어에 앉힌 격”이라고 비판했다. 공수처는 비현실적 “공포물”이라고 했다. 참여연대의 한 간부는 조국 비판에 앞장서다 나온 후 “작금 사태를 잘 설명해준다”며 ‘직권남용, 수사 무마, 사법 방해, 공무집행 방해’ 라며 영상을 올렸다.

참여연대 전간부 김경율 “조국옹호 보며 광기(狂氣)느껴, 진보 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검찰 인사 학살’에 대해 현 정부 장관 출신 여당 의원은 “정권에 칼을 들이대니(정권이 검찰의) 허리를 끊은 것이란 여론이 있다”고 했다. “조국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는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 한 진보 논객은 “문재인이라는 분이 과연 대통령을 맡기에 적합한 분이었는가 하는 근본적 회의가 든다” 고 평했다.

문 정부 지지층은 ‘내 편이면 무조건 감싼다’는 조폭의식으로 똘똘 뭉쳐왔다. 범죄의 온상이요 파렴치의 대명사인 ‘조국’을 지키겠다며 서초동 집회로 수만명이 몰려나오기도 했다. 이런 무리 중에서도 ‘해도 너무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불법 의혹을 받는 대통령 자신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수사라인을 통째로 날려 버리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검찰이 청구하고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깔아뭉개고, 말 안 듣는 검찰을 무력화하기 위해 위헌적 수사기관을 만들고, 검찰의 권한을 정권의 새 충견인 경찰에 안겨줬다. 이같이 안면몰수하고 벌이는 이런 류의 행태는 좌우 이념이나 법을 떠나 상식과 양식이라는 마지막 경계선마저 폐기해 버렸다. 문 정부에 대해 묻지마 박수를 보내왔던 사람들마저 혀를 찬다면 소시민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대통령 권력의 초 비대화가 삼권분립을 무너트린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대통령 입맛에 맞게 바꾸고, 내각과 여당은 청와대 출장소로 전락했다. 언론은 문 정권에 경도된 지 오래다. 법원과 검찰을 공수처로 옥죄고 공룡 경찰로 시민사회의 일상을 통제하는 경찰국가가 눈에 보인다고들 불만이 고조된다.

문 정권은 합법성의 겉보습만 갖추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유린했다는 전문가의 진단이다. 우리는 지금 민주적 방법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앞장서 합법적 제도를 악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경악스러운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더욱 불편하고 울분이 나는 것은 문 정권의 민주사회 파괴를 떠받친 최대 후원자는 친 정권적 시민단체라는 사실이다. 그런 시민단체는 정부와 한 몸처럼 일체화했다.

법무부, 윤석열 의견 묵살하고 정권 수사팀 간부들 교체. 속보 ‘검 2차 대학살…정권 수사 실무책임자 전원 교체’가 언론에 떴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유력일간지는 오늘도 ‘문재인 한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다’ 라는 사설이 눈에 띄인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중앙지검 사이의 도로상에 오늘 시위대가 목소리를 높였다. 정경심 교수를 석방하라. 조국은 우리의 자랑이다.

청와대 문 대통령 집무실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손가락이 나타나 글씨를 쓰지나 않을 지 국민적 우려를 보면서 시국에 대한 소회를 양식있는 애국 국민 앞에 몇 자 적어본 것이다.

2020. 1. 22.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메네(Mene) 데겔(Tekel) 우바르신(Upharsin)

제목이 무슨 주술문 같다고 생각되시나요? 그러나 이것은 아주 오랜 전 고대 바벨론(Babylon), 갈대아(Chaldean) 혹은 아람어(Aramaic)입니다. 자, 이 주술문 같은 제목에 대한 출처와 배경 그리고 그 의미를 찾아서 잠시 저와 함께 여행을 따나 보시겠습니다. 주전 539년, 바벨론 왕궁에서는 1천명 이상의 그 나라 귀빈들이 함께 모인 대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벨사살(Belshazzar)왕이 베푼 연회였습니다(단 5:1). 먼저 잠시 이 벨사살이란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 합니다. 다니엘서 본문에는 그의 부친을 느부갓네살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문헌상에는 벨사살은 나보니두스(Nabonidus)의 아들로 되어 있습니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느부갓네살이 죽고(BC 563) 그의 아들 이빌-메로닥(Evil-Merodach)이 약 2,3년간 통치하다가 네리그리사(Neriglissar)가 그를 피살하고 4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어린 아들 라바시-마둑(Labashi-Marduk)에게 왕위를 이양하였으나 9개월 후 제사장들에 의해 폐위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등장한 인물이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 장군입니다. 그리고 그가 주전 539년 바벨론이 멸망할 당시의 통치자로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이 문헌에 의한 바벨론의 역사 기록입니다.

따라서 벨사살왕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그 기록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서 기록에는 나보니두스에 대한 언급 대신 벨사살을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부 비평가들은 다니엘서의 진실성 여부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나보니두스 장군은 느부갓네살의 딸인 공주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벨사살은 그들의 아들입니다. 따라서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왕의 사위의 아들이 되며 외손주가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고대에는 손주를 자신의 후계자 아들로 표현하는 것이 상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발견된 다른 문헌에 의하면 나보니두스는 후에 아라비아 지역을 다스리는 동안 벨사살에게 대신 바벨론 통치권을 맡김으로 결국 그들 둘은 공동통치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벨론이 멸망하던 날 왕궁에 남아있던 왕이 벨사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바벨론의 역사를 압축하여 실제 현장 위주로 기록하여 가장 중요한 두 인물 곧 바벨론 창시자 느부갓네살과 마지막왕 벨사살의 이름 만을 기록한 것은 오히려 사건을 더욱 명료하게 해 주는 것이며 따라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벨사살의 불경한 연회-벨사살은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유대 성전에서 탈취해 온 성전의 금과 은잔들을 꺼내어 자신의 후궁들에게 까지 그 잔으로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신 앞에 축배를 드리도록함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술에 취해 흥이 고조되어 있을 때 갑짜기 사람의 손가락이 벽에 나타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자를 남겼습니다. 이에 놀란 벨사살은 자신의 두 무릅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 나라 술사들을 급히 불러 그 글을 해석하라 명했으나 아무도 능히 해독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 때 느부갓네살의 왕후는 다니엘을 해석자로 왕에게 천거했습니다. 그 자리에 불려 온 다니엘은 이를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문자의 해석- “메네”는 수를 의미하여 “수를 세었다”(numbered)라는 뜻이며 강조를 위하여 두번 사용하였고, “데겔”은 무게를 의미하며 “무게를 달아 보았다”(weighted)란 뜻이며, 우바르신의 첫글자 “우”(U)는 “그리고”(and)란 뜻이며 “바르신”은 분리란 의미로 “나누다”(to divide)로 해석하였습니다.

영어로 재 번역하면 “NUMBERED, NUMBERED, WEIGHTED, AND DIVISIONS”(세어 보았다, 세어 보았다, 무게를 달아 보았다, 그리고 나누다)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벨론이 끝나는 날까지를 다 세어 보셨고, 그리고 벨사살을 하나님의 저울에 달았더니 그 부족함이 들어났음으로 이제 바벨론을 메데와 바사의 손으로 나누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벨사살이 연회를 베풀던 날 밤, 바사(Persia)의 우그바루( Ugbaru) 장군이 이끄는 군사들은 성내로 진격하여 들어 와 벨사살을 살해하고 바벨론을 명망시켰습니다(BC 539).

그리고 바벨론은 메데와 바사로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교훈은?-하나님은 우리들 인생을 다 세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을 그의 저울에 그 무게를 달아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저울에 의해 들어나는 모든 불의한 행위와 죄악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 20:11-15). 그날은 천국과 지옥 두 곳으로 나뉘는 날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함 받은 자들은 이러한 형벌의 심판에서 이미 생명으로 옮긴 자들입니다(요 5:24).

[겨자씨]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바벨론 왕 벨사살은 당시 세계 최강대국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난공불락의 성에서 문무백관 및 왕후 궁녀들과 더불어 잔치를 열며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용하는 성전 기명(器皿)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그 당시 왕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영적 지도자들도 그 앞에서 침묵했고 백성들은 바른 길을 알지 못해 우왕좌왕했습니다.

이때 왕 앞에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자를 씁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 해석하니 ‘너를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보니 모자란 인물로 네 시한은 다 끝났다. 네가 수고해 세운 나라는 메대와 바사에게 준다’(단 5장 26∼28절)란 뜻이었습니다. 결국 그날 밤 하나님을 대적했던 왕은 죽임을 당합니다.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늘 고백하지만 때때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직자로서 늘 두렵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사역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선가.”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저울은 착오가 없기에 염려할 것도, 거만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동안 주어진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보이는 사람을 두려워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합시다.

김성태 목사(삼척 큰빛교회)

[다니엘 5장 히브리어 설교]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 뜻”(단 5: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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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5장 히브리어 설교 중에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의 뜻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이 잔치를 배설했는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탈취하여 온 성전의 기물들로 술을 마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을 심판하기 위해서 벽에서 손가락이 나와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저울에 달아보았더니 부족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바벨론을 고레스 왕에 의해서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고레스 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도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뜻”(단 5:24-31)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벽에 써진 글씨를 해석해 주면서 먼저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어 정신병이 들게 해서 7년 동안 동물과 같은 인생을 살았던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벨사살 왕이 이것을 알면서도 교만하게 하나님의 성전 기구들을 가지고 유흥을 즐기며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현재 하나님의 저울에 달리게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을 저울에 달았는데 미달된 인생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인생들을 저울에 달아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도 하나님의 저울에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나의 신앙도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울에 미달된 인생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자만과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저울에서 미달되어 죽게 됩니다. 복음의 저울에 달렸을 때 미달되었다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울에 달릴 때 하나님의 마음에 충족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4절 베다인 민 코다모히 쉘리야아흐 파사 디 예다 우케타바 데나 레쉼

단 5:24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설명해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손가락이 나와 벽에 글씨를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나와서’라는 단어는 (셸라흐 7972 ViPP(Q) 동사 페알 분사수동) 보내다, 전하다, 답장하다, 통보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벨사살 왕을 지켜보고 있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내어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하나님의 통보이며 현재까지 벨사살 왕이 살아왔던 인생에 대해서 답장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교만하게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전의 기구들을 가지고 세상의 쾌락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로 왕에게 답장해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 일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사촌 지간이므로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동사의 문법은 더 아람어가 많습니다.

손가락으로 벽에 쓴 글씨는 하나님께서 직접 보낸 손가락의 글씨입니다. 하나님께서 벽에 직접 글씨를 쓰신 것입니다. 벽에 쓰인 글씨는 하나님이 쓰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쓸 수 없는 글씨이며 벨사살 왕이 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 하나님이 쓰셨으며 이 글씨를 쓰신 목적은 벨사살 왕을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손가락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쓰셨습니다.

‘기록하였나이다’라는 단어는 (레샴 7560 VjAMZS(N) 동사 페일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어인을 찍다, 기록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벽에 글씨를 쓰심으로 왕이 어인을 찍듯이 벨사살 왕을 심판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에 왕이 한 번 어인을 찍으면 그대로 행동에 옮겨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이 기록은 사람이 지우려고 해도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록하셨기 때문에 지울 수 없고 이렇게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은 이미 왕을 심판하기로 계획하셨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나는 현재 하나님 앞에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믿음을 세우며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언젠가 나에게 편지를 보낼지 모릅니다. 더 이상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타락하여 있다면 마지막 진노의 최후통첩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25절 우데나 카타바 디 레쉼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

단 5: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하나님께서 쓰신 글씨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입니다.

‘메네’라는 단어는 (메네 4484) 세다, 조사하다, 지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메네는 무게를 다는 단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글씨의 메네는 무게를 달듯이 이미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의 모든 인생을 조사하고 잘못을 세어보고 난 후에 저울에 올려 정확하게 수치를 알아보도록 지정된 것입니다.

‘데겔’이라는 단어는 (테칼 8625) 저울로 달다, 측량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벨사살 왕의 잘못을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아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의 저울에 정확하게 측량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를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우리의 생활을 하나님은 정확하게 측량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주님 안에서 의로운 생활을 하는지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저울에 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우바르신’이라는 단어는 (페라스 6537) 갈라지다, 나누다, 라는 뜻입니다. 벨사살 왕의 행동들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렸는데 하나님의 기대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벨사살 왕의 나라를 가르시고 자신이 누렸던 모든 부귀영화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복을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26절 데나 페샤르 밀타 메네 메나 엘라하 말쿠타크 베하쉘르마흐

단 5: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다니엘은 글씨를 벨사살 왕에게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메네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이미 벨사살 왕의 나라를 세어보니 끝이 났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라는 단어는 (셸렘 8000 VbAMZS(H) 동사 하펠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끝나다, 마치다, 완전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벨사살 왕의 나라는 저울에 달았을 때에 미달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왕국을 주시지 않고 끝마치게 하셔서 완전하게 바벨론 제국이 망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끝마침은 벨사살 왕이 싫다고 해서 연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 번 마음먹으신 하나님은 벨사살 왕의 바벨론 제국을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지게 하셔서 나라의 근본을 뽑아버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가 나라의 흥망성쇠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27절 테켈 테킬르타 베모자네야 베히쉐트카하트 하시르

단 5: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데겔은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까 너무나 많이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저울은 숫자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것입니다. 물건을 눈으로만 보면 정확한 무게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울에 올라가면 너무나 정확하게 숫자를 보여주기 때문에 무게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벨사살 왕을 하나님의 저울에 인생을 올려놓았더니 너무나 정확하게 미달되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요?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저울에 올라가면 나의 모든 행실과 신앙이 나올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 미달된 신앙과 믿음이 된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제받기 힘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즐거움과 기쁨으로 살아도 영원한 세계에서는 고통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저울이 나를 달고 있습니다. 복음의 저울에 올라가서 나의 믿음이 부족하다면 이 시간 나의 신앙이 복음의 말씀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보였다 함이요’라는 단어는 (셰카흐 7912 VeAMYS(T) 동사 히트페엘 완료 남성 2인칭 단수) 명백하다, 알다, 발견하다, 라는 뜻입니다. 벨사살 왕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명백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면서 모욕했던 일들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며 성전 기구들을 가지고 술을 먹으면서 연회를 베풀고 육체의 쾌락을 즐긴 것을 발견하여 심판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벨사살 왕은 하나님께 무엇이 보였습니까? 육체의 욕심을 따라갔던 삶이 보였습니다. 영적인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 세상의 일에만 몰두하면서 살았던 것이 하나님의 눈에 발견된 것입니다. 노아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육체의 삶을 살아갈 때에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았더니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벨사살은 우상을 섬기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더니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살았다면 벨사살은 나라가 망하지 않고 자신도 목숨을 건지는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럼 나는 현재 노아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벨사살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벨사살은 마지막 날에 고난당하고 죽은 자들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노아는 구원받아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자의 표상입니다.

28절 페레스 페리사트 말쿠타크 비히바트 레마다이 우파라스

단 5: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베레스라고 쓰인 것은 왕의 나라가 나누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바벨론 제국은 역사적으로 메대와 바사에 의해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고레스 왕에 의해서 벨사살은 죽고 나라는 메대와 바사에게 넘어갔습니다.

‘나뉘어서’라는 단어는 (페라스 6537 VjAFZS(N) 동사 페일 완료 여성 3인칭 단수) 두 개로 쪼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벨사살의 나라를 두 개로 쪼개어 메대와 바사에게 주었습니다. 이 나라는 벨사살이 지키고 싶어도 절대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빼앗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인 바벨론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빼앗겨 다른 나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은 역사 속에서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찬란했던 나라입니다. 세계를 호령하고 의기양양하면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나라인데 하나님께서 나라를 멸망시키신 것입니다.

29절 베다인 아마르 벨샤차르 베할비쓔 레다니엘 아르게바나 베하모느카 다하바 알 차베레흐 베하케리주 알로히 디 레헤베 샬리트 탈타 베말쿠타

단 5: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벨사살은 다니엘이 글씨를 해석해준 말을 듣고 자신이 약속했던 것을 지키게 됩니다.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또한 바벨론 제국의 세 번째 통치자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벨사살은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메대와 바사의 군대가 이미 바벨론을 포위하고 왕을 죽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자신이 왕이라고 위엄을 보이면서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멸망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을 세 번째 통치자로 삼고 있습니다. 다니엘에게 자주색을 옷을 입힌 것은 왕의 권세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주 옷감을 입는 것이 아무나 입지 못했습니다. 자주색 염색을 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라껍데기에서 염료를 발췌하여 만드는데 염료가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귀한 신분의 사람들만 이 옷을 입다 보니 자동적으로 자주색 옷을 권세, 명예, 힘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입니다.

30절 베렐레야 케틸 벨샤차르 말카 카세다야

31절 베도르야베 마다야 카벨 말쿠타

단 5:30-31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벨사살 왕이 연회를 베풀고 하나님의 손가락이 벽에 글씨를 쓰던 날에 고레스의 연합군에 의해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벨사살은 죽음이 닥쳐오는데도 육체적인 쾌락에 빠져 멸망이 홀연히 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왕이 타락하여 술에 취해 있을 때에 고레스의 연합군은 바벨론의 군대를 이기고 무혈입성하면서 바벨론 성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벨사살이 여유만만했던 것은 바벨론 성은 유브라데 강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적이 쉽게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벨사살은 안심하고 술에 취해 있었고 1000명이나 되는 나라의 귀족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때를 틈타 고레스의 연합군은 유브라데의 강을 변경시키기 위해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강을 넘어 바벨론 성을 함락하기 위해서는 강의 줄기를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레스의 군대가 강줄기를 바꾸고 있을 때 바벨론의 군대들은 성벽을 타고 넘어오기 위해 언덕을 쌓고 있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사실은 물줄기를 바꿔 침투했던 것입니다. 바벨론이 멸망당한 가장 큰 이유는 그 날에 모든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큰 종교 축제일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에 취해 육체적인 즐거움과 쾌락에 빠져 무방비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고레스의 군대가 침투하여 왕을 살해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육체의 탐욕에 빠지고 술에 취해 방탕한 삶을 살 때에 결국 이것 때문에 영혼을 지키는 데는 소홀하여 사탄에서 공격당해 죽고 말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기름진 음식으로 유혹하여 영적인 일에는 절대 신경 쓰지 못하도록 하면서 때가 되어 공격해 죽일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활개를 치고 있는 사단의 종들인 이단들입니다. 벨사살 왕의 죽음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영혼을 준비하지 않는 자들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멸망은 준비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홀연히 오는 것입니다.

결국 벨사살은 멸망당할 것을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멸망의 날이 올 것을 준비하는 자는 절대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이 멸망이 자기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만하고 나태하여 준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이 홀연히 오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현재 얼마나 멸망의 때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신부의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벨사살처럼 이 세상이 끝이라고 생각하여 영원의 시간을 준비하지 않고 있습니까? 오늘 벨사살은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갔을 때 최하의 등급을 받았습니다. 전혀 상품가치가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사람도 상품을 고를 때 최상급을 골라 사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지금 당신의 신앙의 상품가치는 몇 등급입니까? 최상급입니까? 아니면 상급에도 끼지 못하는 열외의 상품입니까?

이 시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멸망이 홀연히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육체의 쾌락과 기쁨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내세의 삶이 있습니다. 지금 아파트 평수 늘려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영원한 천국에서 내가 거할 집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내 육체의 옷을 입기 위해 고급 브랜드 옷을 사기보다는 내세에서 입을 의로운 세마포 옷을 사야 할 때입니다. 육체의 신발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되기보다는 내세에서 신고 다닐 복음의 신발을 준비할 때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가도 절대 부족함이 없는 신앙과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5장 헬라어 강해설교] 성령을 속여 죽은 삽비라 사건(행 5:7-11)

[사도행전 5장 헬라어 강해]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의 죽음(행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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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입니다.

본문말씀 : 단 5:18~28

제 목 :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입니다.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라신이라.(단5:25) And this is the writing that was written, MENE, MENE TEKEL, UPHARSIN.(Daniel5:25)

하나님은 전지(全知) 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십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 영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범하는 작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손에 있는 일곱별과 일곱 촛대의 비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계1:20) 일곱별은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의기양양하였으나, 아이성 전쟁에 패한 이유는 아간의 아주 작은 범죄 때문입니다.(수7:11)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린 이유도 아무도 모르게 가축을 숨겼다가 사무엘선지자로 부터 책망을 받고, 버림을 받습니다.(삼상15:26)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본문에 느브갓네살은 바벨로니아 2대왕으로 큰 권세를 누렸습니다.

힘이 있는 왕은 국정을 마음대로 하며, 신상에 만들어 놓고, 모든 백성 에게 숭배하도록 했고, 이를 거역한 이들을 풀무불에 던지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하게 핍박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권력 앞에 공포와 두려워 떨었습니다.

사람 죽이는 일을 너무 쉽게 하며, 뇌물을 주고 잘 통하는 사람에게만 벼슬을 주는 코드정치를 일삼았습니다.

나라가 왕성하여, 그가 교만을 행하여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재정치로 힘을 과시하니, 하나님이 왕위를 폐위시켰습니다.(5:20)

그의 말로는 왕위를 빼앗기고, 사람 중에서 쫓겨나니 그의 마음이 들짐승 같았고, 또 들 나귀와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뜯고 먹으며 살았습니다.(21)

그는 하늘이슬에 젖었으며, 인생말로를 비참하게 보냈습니다.(5:21)

느브갓네살이 죽고, 그의 아들 벨사살이 왕이 되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였습니다.(22)

왕은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5:23)

그는 성전 그릇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 것 으로 술을 마시고 파티도 하였습니다.(5:23)

바벨론에 벨사살 왕은 어느 날 천 여명의 귀인을 초청하여 왕궁에서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5:1)

마침 왕이 술을 마시고 거나할 때 맞은편 벽을 바라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왕궁 촛대 맞은편 벽에 사람도 없고, 팔도 없이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서 벽에 큰 글씨를 써 놓고 사라졌습니다. (5)

그것을 본 벨사살 왕은 너무도 놀라서 겁먹고, 낯빛이 변하고 번민 하며, 다리 마디가 녹는 듯 하고, 두 무릎이 맞부딪쳐 와들와들 사시나무처럼 떨렸습니다.(6)

왕은 즉시 무슨 글씨인지 알아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술자리를 치우고 전국의 술객들과 박사들과 점쟁이들을 불러서, 그 글씨를 읽고 해석하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급기야 그 글씨를 해석하는 자에게는 자주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드리우며 나라의 세 번째 치리 자를 삼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으나, 놀랍게도 아무도 그 글씨를 읽지 못 하고, 해석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두려움은 더해 갔는데 마침 태후가 이 소식을 듣고, 왕에게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를 불러서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면했습니다. (10)

왕이 그가 누구냐고 묻자, 태후는 벨드사살이라는 청년 다니엘을 천거 하였습니다.(12)

갑자기 부름 받은 다니엘이 왕궁에 들어오니 왕은 그에게 후한 상과 나라의 셋째자리를 줄 터이니 그 글씨를 읽고 해석하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상급과 예물은 다른 사람에게 주십시오.(17)

그러할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씨를 읽으며, 그 뜻을 알게 해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글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입니다.(25)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를 세어보니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두 번 쓴 것은 강조하기 위함입니다.(26)

그 다음, 데겔은 달아도 보았다는 뜻입니다. (27절)

왕을 저울에 달아 보았더니 부족하여 치워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저울은 공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속이는 저울추는 하나님의 미워하신다고 했습니다.(잠11:1)

벨사살 왕을 저울에 달아 보았더니,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함량이 부족합니다.

또 우바르신은 왕의 나라를 나뉘어서, 메대 와 바사 사람에게 준다는 뜻입니다. 라고 해석했습니다.(28)

이에 벨사살 왕은 깜짝 놀라서, 빨리 수습을 명하고, 조서를 내려 다니엘에게 자주 옷을 입히게 하며, 금사슬로 목에 드리우게 하고, 나라의 셋째 자리를 삼으니라.(29)

왕은 다니엘에게 빨리 수습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30~31)

다시 말하면, 그동안 벨사살 왕의 행적을 세어보고, 달아 보아도 부족해서 다른 나라에 넘기시겠다는 하나님 심판의 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메데 와 파사, 두 나라가 연합하여 성문을 부수고 처들어와 왕과 그 나라는 멸망하였습니다.(30~31)

하나님이 징계하시니 왕의 권위는 하룻밤에 추풍낙엽이요, 잔치자리는 초상자리가 되었고, 호화왕궁은 죽음과 멸망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 글씨는 오늘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나님의 손가락 글씨 인“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고 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달아보시고 심판하십니다.

1) 벨사살 왕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아버지 느브갓네살 왕이 말년에 교만해지고, 완악해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미쳐서 들짐승처럼 풀을 뜯어먹고, 머리와 손톱 발톱이 독수리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후임으로 왕위에 오른 벨사살 왕이,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2) 그는 계속하여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을 만들고 찬양하게 했습니다.(5:23)

3) 아버지가 멸망한 교만의 자리에 계속 있었습니다.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이 낮추어지지 아니했습니다.(22) 4) 거룩한 신성을 모독하였습니다.

(1) 성전의 기물을 가지고 술을 마셨습니다.(5:23)

이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행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기물들을 가지고 천 명이 넘는 귀인들을 초대해서 술 먹는 도구로 썼습니다.

(2) 성도의 몸은 거룩한 성전입니다.

너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 니라.(롬12:1하)

우리 몸도 마음도 함부로 더럽히면 안 됩니다.

내 몸이라고요? (NO)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죄입니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산제사는 삶 자체가 예배요,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3) 주의 날을 구별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날은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날은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58:13~14)

(4) 물질도 구별해야 합니다. (말3:10)

하나님이 아무리 세어보고 달아보아도 느브갓네살 보다 나은 것이 없기에 왕궁 잔치 자리에 심판하겠다는 메세지를 주시고 결국 그와 나라를 심판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하시고 우리들에게 읽게 하시는 것은, 우리 신앙의 바른 자세를 촉구하고, 경고하시는 하나님 손의 글, 인줄로 믿습니다.

경고는 신호등과 같습니다.

경고 사인을 무시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합니다.

이 경고등은 말씀을 통해, 양심을 통해, 성령을 통해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계2;7)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여러분! 벨사살 왕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무시하고, 교만과 불순종의 자리에 있지는 않았습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데, 마귀의 자녀로 앞잡이 노릇하고 살거나,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거나 먹고 마시는 죄악의 삶을 만들지는 않았습니까? 교회의 거룩한 성물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 하기는 커녕, 세 상물건 보다도 가치 없게 여기고, 세상 목적이나 내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나 예물을 내 것처럼 쓰고, 주님께 서원한 약속 을 식언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신 직분과 사명을 폄하하고, 경솔이 여기며 값없이 여기고, 내 기분 에 따라 충성하기도 하고, 불 충성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회개할 줄 모르는 예루살렘 사람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식을 위하여 울라고 간곡 하게 당부하셨습니다. (눅23:28)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고 우리 하나님께 우리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용서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쟁마다 이기게 하시고, 나라가 승승장구하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게을러지고 교만해졌습니다.

어느 날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의 자태를 보고 반하여 왕의 권세로 그 여인을 불러 간음죄를 범하였습니다.

그 여인이 잉태하자. 자신의 죄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그 남편을 전쟁터에서 불러 휴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충직한 우리야는 전쟁 중이라며, 그 아내와 동침하지 아니하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습니다.

다윗 왕은 군대장관 요압에게 명하여, 우리야를 격렬한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감추고, 합리화시키려 하였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자, 그 남편을 죽이는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책망의 말씀을 들으며“내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도다” 하고 그 즉시 금식하고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달아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달아보시고 징계와 책망의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고, 우리의 사랑의 행위도 달아보시고, 마음에 합하시면 그 분량에 따라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도행전 10장에 이달리야 군대, 백부장 고넬료 라는 사람을 소개 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도에 힘쓰고, 많은 구제를 행하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천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행 10:3-4)

고넬료가 백성들을 향하여 베푼 사랑의 행동은, 세상 이야기로 남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의 저울에 합격하니 천사를 보내어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저울에 합격하도록 열심을 품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누구를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1)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무한대의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사도요한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0-11)

그러니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 사랑에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2) 또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웃사랑을 실행하다가 어느 날 부지중에 하나님과 천사를 대접하고, 그로 인하여 100세에 이삭을 선물로 얻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통해, 남들에게도 받지 못할 고난을 받았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하다가, 결국 애굽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귀한 집의 아들이 졸지에 남의 나라에 와서 종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한번 종이 되면 자손 대대로 종이 되는 때였습니다.

이런 기막힌 처지에서 원인 제공자인 형들을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에도, 감옥에 갇혀서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을 원망하고, 보디발의 아내를 미워하며 신세를 한탄했다면, 보잘 것 없는 죄수로 그의 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했습니다.

20여년 만에 만난 형들을 보고 반가워 울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죽고 요셉이 보복할 것을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당신들은 내 원수가 아니고 나를 애굽에 팔아 총리대신이

되게 한 은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은혜를 갚고 형제들과 조카들의 장래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렸으니,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고, 누구도 누리지 못한, 복을 누린 요셉이 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도! 매일 저울에 몸무게만 달지 말고, 하나님과 이웃사랑의 무게도 달아 보시기 바랍니다. 싸움 한번하고, 맺은 미움 원망 평생 풀지 못하고 산다면, 하나님 기뻐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벨사살 왕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저울에 합격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요셉과 같은 놀라운 축복을 누리시는 영안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우리의 충성을 달아보시고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는 우리의 충성을 달아 보신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달란트 비유, 므나, 포도원의 농부 비유가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비유가 많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충성을 중요하게 보신다는 것이고, 그 심판도 분명하게 하신다는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칭찬과 더 큰 것을 맡김과 주인의 잔치자리에 초대를 받았으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있는 것조차도 빼앗기고 책망과 내어 쫓김을 당하였습니다. 불충성의 징계를 상징하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포도원 비유에서는 불 충성한 농부들을 모두 진멸 하겠다고, 경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다 충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충성하는 자들에게는 복을 주시고, 불충성하는 자에게는 책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택함 받은 성도로서 충성의 자리에 들어가셔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말없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가로 채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사업이 잘되면 하나님이 잘되게 해 주셨습니다 자식공부 잘하는 것도, 좋은 직장도 하나님이 갖도록 주셨습니다. 벨사살 왕의 사건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찬 죄입니다. 말씀을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이 없으면 신앙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세어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면, 손을 대면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21C 에 복병,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납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나라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미국, 영국 등 강대국이라고 개발도상국이라고, 영세국이라고 봐주지 않았습니다. 우르바신 은 다른 곳으로 넘겼다는 뜻입니다. 메데사람 다리오가 쳐들어와 나라가 찢어지고, 벨사살왕은 죽었습니다. 아버지 느브갓네살 왕을 반면교사로 삼지 않았다 고 했습니다.

4) 아버지의 멸망을 거울로 삼지 않았습니다.(5:21~22절) (1)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달아 보고 계십니다.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막2:5) 믿음을 보시고……. 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좋은 것 같았는데 문제 앞에 서게 되니 형편없는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죽은 믿음이 있고, 적은믿음이 있고, 큰 믿음도 있습니다.

큰 믿음을 하나님 앞에 보이시길 축복합니다.

2) 우리의 기도를 달아 보십니다.

그 사람이 손에 줄자를 잡고 재어 본다고 했습니다.

발목에 무릎에 허리에 오르더니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 찾다고, 했습니다(겔47:3~5)

물이 끊기 시작하는 100도(임계점) 가 되도록 끓치 않습니다.

기도 조금 하다가 포기하지 말고 영적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도의 분량을 재어 보십니다.

낙심치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을, 과부의 억울함을 통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눅18장)

3) 중심도 달아 보십니다.(삼상16:2)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 시간도, 우리를 세어보시고, 달아보고 계십니다.

일곱별과 일곱 촛대사이로 다니시는 그분이 함량 미달이면 우바르신 촛대를 옮긴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달아보실 때 믿음이, 기도가 충성이 부족하지 않게 하소서.

일평생 거룩하고 구별되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경고에 민감하게 하소서.

겸손히 하나님만 섬기게 하소서

회개하고 기도하면 삽니다.

깨닫고 돌이키면 삽니다.

하나님이 세어보고 달아보실 때, 함량미달 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다니엘 히브리어 강해] 메네메네데겔 우바르신 다니엘 해석(단 5: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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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다니엘 해석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벨사살 왕이 보았던 손가락 글씨를 다니엘이 벨사살에게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도 해석하지 못한 글자를 다니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해석해 줍니다. 결국 벨사살 왕이 교만하여 여호와의 성전 기물을 가지고 술을 마시고 우상 숭배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 이단의 미혹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항상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복음의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성도의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다니엘 해석(단 5:25-31)

25절 우데나 케타바 디 레쉼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

단 5: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5:25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 문자적 의미는 ‘세어지고 세어지고 달아보니 부족하여 나누어진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벨사살의 죄악을 보시고 그 제국의 기한과 멸망의 날 수를 정하심으로써 종국적으로 바벨론을 메대와 바사의 손에 넘겨주시겠다는 의미이다.

한편 혹자는 이 글자들을 아람어의 글 자체로 이해할 때 ‘한 미나 한 미나 한 세겔 그리고 반 세겔’이란 뜻을 가진다는 점(1 미나-60세겔)에서 당시 바벨론의 박사들은 이러한 무의미한 무게 단위의 나열 속에서 특별한 메시지를 발견하기 어려웠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한다(Thomson). 단지 하나님의 영감에 힘입은 다니엘만이 이 글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26절 데나 페샤르 밀타 메네 메나 엘라하 말쿠타크 베하쉘르마흐

단 5: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5:26

메네는…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 ‘메네’는 원어상 ‘계수하다’, ‘세다’란 뜻인 ‘메나’의 수동태 분사형으로 ‘계수된다’란 뜻인 바, 본 구절은 벨사살의 통치 햇수가 하나님께 세어진 바 됨으로써 종국에 이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25절에서 이 ‘메네’가 반복 사용된 것은 벨사살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바벨론 제국의 종말이 급박하게 다다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7절 테켈 테킬르타 베모자네야 베히쉐트카하트 하시르

단 5: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5:27

데겔은…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 ‘테켈’은 ‘저울로 무게를 달다’란 뜻으로 ‘메네’와 같은 수동태 분사형이다. 곧 본절은 벨사살이 저울로 비유된 하나님의 판단 기준에 의해서 그 필요한 무게가 극히 부족한 자, 곧 종교적, 도덕적 저급성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되고 엄중한 심판을 받을 대상이 되었음을 알려준다(Delitzsch). 이는 곧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 기준과 공의로우심을 반영한 말이다.

28절 페레스 페리사트 말쿠타크 비히바트 레마다이 우파라스

단 5: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5:28

베레스는…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 ‘페레스’는 ‘우바르신’의 단수 수동태 분사형으로 ‘나뉘게 되다’, ‘조각나게 되다’란 뜻이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벨론 제국의 기한이 찼고(26절), 또 그 왕 벨사살 역시 하나님의 기준에 미흡한 자였기에(27절)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적 의지에 따라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인의 수중에 떨어지게 될 것이란 의미이다. 특별히 ‘나뉘다’란 말은 바벨론이 별도의 메대 지역과 바사 지역으로 분할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짧은 메대의 통치(31절; 6:1)에 이어 바사의 통치로 넘겨진다는 의미(6:28), 곧 두 나라가 연이어 바벨론 제국을 통치하게 되리란 뜻을 내포한 말이다(Delitzsch).

29절 베다인 아마르 베샤자르 베할르비슈 레다니엘 아르게바나 베하모네카 디 다하바 알 차베레흐 베하케리주 알로히 디 레헤베 샬리트 탈르타 베말쿠타

단 5: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5:29

자신에 대한 심판 예고에도 불구하고 벨사살이 다니엘에 대한 자신의 상급 약속을 이행한 이유는 (1) 다니엘의 신적 권위에 압도되었거나, (2) 하나님의 대언자 된 다니엘을 해칠 경우에 혹 받을지도 모를 신적 진노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거나, (3) 다니엘에 대한 상급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완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0절 베흐 벨렐레야 케틸 벨샤차르 말카 카세다야

단 5:30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5:30

그날 밤에 – 하나님 심판의 즉각성과 확고한 성취적 면모를 보여주는 말이다.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 1절 주석에서 언급된 바 있듯이 벨사살의 연회가 벌어지는 동안 메대의 군사들이 바벨론 성을 포위하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 벨사살은 메대 군대의 야음을 탄 기습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 B.c. 484-430)는 벨사살의 연회로 성 안의 모든 자들이 취중에 있었기 때문에 메대 군사들의 기습이 용이했다고 기록한다.

31절 베도르야베쉬 마다야 카벨 말쿠타 케바르 쉐닌 쉬틴 베타르텐

단 5:31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 이세였더라

=====5:31

메대 사람 다리오가…얻었는데 – 벨사살의 죽음과 함께 바벨론 제국이 멸망된 사실을 시사하는 본절은 2장에 언급된 다니엘의 신상에 관한 꿈의 해석과 일치하는 것으로(2:36-43) 하나님 예언이 반드시 성취됨을 잘 보여준다. 한편 본절은 맛소라 원전상 6:1로 구분되어 있다.

왜냐하면 메대 왕 다리오가 바벨론을 그의 수중에 넣은 것은 벨사살이 죽은 직후라기보다는 얼마의 시간이 경과한 때로 추측되기 때문이다(Thomson). 70인 역(LXX)도 동일한 구분을 사용한다. 특별히 여기서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다'(케발)는 말은 원문상 ‘받아 가지다’란 뜻을 가지는 바, 이는 바벨론에 대한 침공이 다리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고레스에 의해 행해졌으며 그가 다리오에게 바벨론 지역의 치리권을 이양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 특별히 다리오의 나이가 언급된 사실은 그의 연로함과 더불어 메대 국가의 단명(短命)에 대한 상징적인 암시로 볼 수 있다.

[칼빈 기독교강요] 자아의 지식이 있어야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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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무슨 방언(언어)의 문자였어요?

(다니엘5:24-28) 공동번역—->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손가락을 내보내시어 저 글자들을 쓰게 하신 것은 그 때문입니다.

저기 쓴 글자들은 ‘므네 므네 드켈.’ 그 다음은 ‘브라신.’입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왕의 나라 햇수를 세어보시고 마감하셨다.’는 뜻입니다.

‘드켈.’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시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브라신.’은 ‘왕의 나라를 메대와 페르시아에게 갈라주신다.’는 뜻입니다.” #개역한글&개역개정—->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우바르신)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킹흠역—> 그러므로 그분께서 손의 일부를 보내사 이 글을 기록하게 하셨나이다.

기록된 글은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니이다.

그것의 해석은 이러하니 메네는 하나님께서 왕의 왕국을 세셔서 그것을 끝내셨다는 것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다니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며

베레스는 왕의 왕국이 나뉘어서 메대 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니이다.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하나님이 손을 보내셔서, 이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기록된 글자는 바로 ‘메네 메네 데겔’과 ‘바르신’입니다.

그 글자를 해석하면, 이러합니다.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임금님의 나라의 시대를 계산하셔서, 그것이 끝나게 하셨다는 것이고,

‘데겔’은, 임금님이 저울에 달리셨는데, 무게가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것이고,

‘바르신’은 임금님의 왕국이 둘로 나뉘어서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쉬운성경—->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손을 보내셔서 벽에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벽에 적힌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 바르신’입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메네는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의 끝날을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데겔은 왕이 저울 위에 달리셨는데, 무게가 모자란다는 뜻입니다.

바르신은 왕의 나라가 나뉘었다는 뜻입니다. 왕의 나라는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손가락으로 이 글을 쓰게 하셨습니다.

기록된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입니다.

그 뜻을 해석하면 메네는 수를 센다는 말인데 이것은 왕이 통치하는 날수를

하나님이 세어서 이미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데겔은 저울에 단다는 말이며 왕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린 결과 표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바르신은 나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왕의 나라가 나누어져 메디아와 페르시아 사람에게 주어질 것을 가리킵니다.

#NASB—-> “Then the hand was sent from Him and this inscription was written out.

“Now this is the inscription that was written out: ‘MENE, MENE, TEKEL, UPHARSIN.’

“This is the interpretation of the message: ‘MENE’–God has numbered your kingdom and put an end to it.

” ‘TEKEL’–you have been weighed on the scales and found deficient.

” ‘PERES’–your kingdom has been divided and given over to the Medes and Persians.” #KJV—-> Then was the part of the hand sent from him; and this writing was written.

And this is the writing that was written, MENE, MENE, TEKEL, UPHARSIN.

This is the interpretation of the thing: MENE; God hath numbered thy kingdom, and finished it.

TEKEL; Thou art weighed in the balances, and art found wanting.

PERES; Thy kingdom is divided, and given to the Medes and Persians. (1) 어떤 설교자 께서는 아람어 방언이라구 하구요.. Mene Mene Takel UParsim 왕국의 분벽에 씌어진 이 글은 아람어로서, 이방인들 세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언어였다.

벨사살의 현명한 신하들이 왜 이 글을 읽지 못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니엘의 해석이 필요했던 이유는

아마도 영적인 분별력이 없이는 읽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역사가 있지 않던 게 아닐까 한다.

(2) 어떤 설교자 께서는 히브리어 방언이라구 해요..

다니엘서 5장 25절 – 28절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저울로 달아보십니다.

느브갓네살왕의 손자인 벨사살 왕은 나라가, 성도가 적군에 에워싸여 있는데도, 그 성의 높고 안전함을 믿고서

자기 부하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할아버지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하는 그릇으로

자기의 처첩들과 함께 술을 먹으면서 우상을 숭배하며 헛된 짓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잔치판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다가 글씨를 써 놓았습니다.

아무런 사람들이 이 글을 읽지를 못하고 해석을 못하여 벌벌 떨고 있을 때에 다니엘을 잘 아는

왕의 어머니가 다니엘을 불러오게 하여 다니엘을 불러서 이 글을 해석하였습니다.

1. 메네 메네

아랍 방언을 히브리 문자로 쓴 것입니다 . 왕의 나라의 시대를 계수해서 끝마쳤다는 뜻입니다.

벨사살 왕은 선친 느부갓네살 왕이 7년 동안 교만하였다가 큰 벌을 받아서 미친 생활을 하고 회개 할 때에

다시 제 정신으로 돌아와

”내가 높으신 이에게 축사하며 이를 찬양하며 존경하노니(다니엘 4장 37절)“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4장의 말씀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고 교만하여, 하나님 대신 우상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성물을 모욕, 멸시하다가 결국 메네 메네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존경하지 않으면서 멸시를 할 때에

메네 메네의 저주가 그 사람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끝까지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공경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2. 데겔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저울은 물질을 달아보고, 세어 보고, 학력을 달아보고, 외모를 달아보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저울은 인간의 영혼 상태의 경중을 달아보시는 것입니다.

신앙의 크고 작음을, 진위를 달아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벨사살 왕을 달아보니 극히 가증스럽고, 음란하고, 교만하고, 우상 숭배를 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국가의 존망 상태에서도 술만 먹고 있는 자로 심히 부족한 자로 나타났습니다.

사무엘 상 2장 3절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하나님은 사람의 행동을 달아보십니다.

욥기 31장 5절 – 6절 “언제 나의 행위가 허탄하였으며 내 발이 궤휼에 빨랐던가 그리하였으면

내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저울은 공평하게 모든 사람을 달아보시고 그 대가를 지불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스스로가 먼저 나를 한번 나의 영혼 상태를 달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부족하면 회개하고 더욱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일에 고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시편 62편 9절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예수님께서도 부자 청년을 달아보시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잘 믿었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의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서 너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할 때에 이 청년은 이것을 실천 못하고 근심하는 일만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 하지만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지면 입김보다 가벼우니

우리는 회개하고 말씀에 항상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행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목사로서 목사다운 무게가 있습니까?

장로답게 장로의 무게가 있습니까?

집사의 무게가 있습니까?

성도다운 무게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우바르신

왕의 나라를 나누어 준다

모든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 날 밤에 벨사살 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수도로 침투하여 성을 점령한 메데 바사 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바벨론은 메데와 바사 나라로 둘로 나누어지고 완전히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판결이 있다 하여도 우리가 즉시 회개하고 눈물과 금식으로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판결을 보류하시기도 합니다.

니느웨 성이 40일 후에 망하리라는 하나님의 판결이 났을 때에 니느웨 성읍의 왕과 백성이 금식하며 재에 앉아서

회개 할 때에 하나님은 그 뜻을 돌이키시고 판결 실행을 거두시었습니다.

우리도 금식하면서 회개할 때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긍휼과 자비가 많으신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항상 우리는 나 스스로를 저울로 달아보십시다. 하나님의 저울인 말씀의 저울과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저울로 매일 나를 달아보고 부족한 일은 회개하면서 고쳐 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목사답게, 장로답게, 집사답게, 성도답게 무게 있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저울에 합격하고 하나님의 약속한 복락에 참례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역사적 배경과 성경의 진실(다니엘5:1-32)/홍종일목사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역사적 배경과 성경의 진실 (다니엘5:1-32)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자를 우리는 잘 압니다. 벨사살의 연회장 벽에 나타난 손가락들이 쓴 글입니다. 이걸 본 사람들에게 이 손가락과 글자는 공포요 신비요 충격입니다.

벨사살과 귀족들의 연회장은 공포로 물들었고 왕은 “열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고 합니다.

1.셋째 치리자/성경이 진리라고 하는 증거

벨사살은 지금 그의 귀족 천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왕궁의 연회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금 그릇으로 술을 마십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시름을 잊은 듯이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는 왕궁 연회장 촛대 맞은편의 석회벽에 갑자기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글자를 썼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문제는 그 자리의 아무도 그 글자를 읽고 해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분명 뭔가 아주 중요한 글귀인 것 같은데 뭐라고 썼는지를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래서 왕은 놀라고 무서워서 부들부들 떱니다. 완전히 흥이 깨어졌습니다. 즐겁던 잔치 자리가 공포의 무대로 변한 겁니다. 뭔가 신의 계시같습니다.

왕은 크게 소리 질러서 갈대아의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명령합니다.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해석하면 그 사람을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겠답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둘째 치리자도 아니고 셋째 치리자가 뭡니까? 조선시대에 보면 영의정같은 재상을 일러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두 번째 자리란 말입니다. 왕 다음의 권세가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둘째가 아니라 세 번째 자리입니다. 도데체 왜 그렇지요?

그런데 이 말이 바로 이 성경 기록이 진실이란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됩니다. 왜냐면 당시 벨사살은 왕이라고 소개되어 있고 왕으로서 통치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그는 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왕은 ‘나보니두스’인데 그는 고레스2세와의 싸움에서 패전하고 실의에 빠져서 통치에 회의를 느끼고 테이마라고 하는 오아시스에 머물렀고 아들 벨사살이 공동 통치자로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총리대신의 직위에 올린다면 왕과 태자에 이어 세 번째 자리에 앉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1854년까지 사람들은 벨사살 왕이 실제의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바벨론의 왕들 중에서 벨사살이란 이름은 없었고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854년에 한 영국의 영사가 나보니두스가 달의 신에게 바친 신전의 폐허 속에서 몇 개의 점토기둥들을 발굴했는데 그 내용에 “바벨론의 왕인 나 곧 나보니두스가 당신께 죄를 짓지 않도록 해주소서. 그리고 나의 장남이며 사랑하는 아들인 벨사살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경외심이 있게 하소서”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벨사살이 실재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때요? 성경의 기록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네의 지식이 불완전해서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의 사실과 다른 기록들을 우리는 성경난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난제들은 언젠가는 진실로 밝혀지고 그 배경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2.손가락과 글귀

자, 왕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바벨론의 어떤 술사나 점쟁이도 그 글자를 읽지 못합니다. 술사니 술객이니 점쟁이니라고 말하지만 이들은 당대의 지혜자 들입니다. 왕의 자문을 맡는 이들입니다. 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모두 들어와도 아무도 해석은 커녕 읽기조차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9절에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 낯빛이 변하였고 귀인들도 다 놀라니라”

사실 그 글자는 당시의 국제어인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갈대아 사람이나 유다사람은 다 아람어를 사용합니다. 히브리어는 아람어의 방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기껏 글자를 쓴 이유가 뭐겠습니까? 단순히 사람들에게 겁주려고 그 글자를 쓴 게 아닙니다. 뭔가를 경고하기 위해 그 글자가 쓰여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그 글자를 연회장의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썼을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심지어 지혜자라고 하는 이들조차 읽고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했을까요?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 글자들이 단순하게 기록된 게 아니라 코드나 암호형태로 기록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둘째로는 수평으로 읽어서는 안되고 수직으로 읽어야 되도록 기록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셋째는 자음만 기록되었고 모음이 없어서 무슨 뜻인지 몰랐다는 겁니다.

성경이 자음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음이 없어서 정확히 무슨 뜻인지를 모르기에 아버지가 읽었던 방식대로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경을 가정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은 손자에게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읽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 글자가 아람어의 고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지혜자라고 하는 이들이 자기 나라말의 고어를 제대로 모를 정도로 바벨론의 인문학이 침체되었다고 그래서 나라가 멸망할 정도로 문화가 침체된 걸 나타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모든 학설이 다 일리가 있습니다.

3.다니엘의 등장과 해석

이렇게 설왕설래하고 있을 때 태후가 잔치 자리에 나왔습니다. 지금 성경은 태후를 왕비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심각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번역입니다. 아마 이 사람은 나보니두스 왕의 아내 니토크리스였을 걸로 봅니다. 그러니까 벨사살의 어머니.

그녀는 예전에 시아버지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해준 다니엘의 실력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왕궁에 변고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벨사살에게 다니엘을 추천합니다.

‘그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알아내고 해몽함으로써 왕명으로 모든 지혜자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벨사살이 모든 지혜자를 다 불렀다고 하는데 다니엘은 없습니다.

사실 다니엘은 벨사살이 섭정으로 나라를 통치하면서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벨사살 앞에 서있는 다니엘은 약 85세였을 정도로 늙었기 때문에 벨사살로부터 무시를 당한 겁니다. 그러니까 벨사살이 집권할 때는 75세였겠지요.

아마 벨사살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높이는 느부갓네살이나 그 권위를 인정하는 아버지 나보니두스에 상당한 반감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여호와의 권위를 인정하면 그의 계시인 느부갓네살의 꿈에 결국은 바벨론이 멸망한다는 예언도 맞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버지 나보니두스는 바벨론의 국가 수호신인 벨 신, 말둑 대신에 갈대아 우르지역의 수호신 달 신 나나를 섬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아시스 도시 테이마에서 달 신을 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벨사살은 그런 패배자 아버지와 달리 나는 바벨론의 국격을 드높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다니엘을 배격하고 그의 신인 하나님을 모욕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여호와를 의도적으로 짓밟고 조롱함으로써 그의 멸망의 예언이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 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지혜자가 도저히 읽어 내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왕과 귀인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어머니가 나타나서 다니엘을 불러서 물어 보라고 권면합니다.

“네 할아버지 느부갓네살이 그를 모든 지혜자의 어른으로 삼았다. 그런데 그 ‘지혜자 중의 지혜자 에게는 왜 물어 보지 않느냐?”

그래서 마침내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이 죽고 권력에서 배제 된지 13년 만에 벨사살의 잔치 자리에 나와서 왕에게 그 글귀를 읽고 해석하게 됩니다.

사실 웃기는게 다니엘의 바벨론식 이름은 벨드사살입니다. 벨사살과는 같은 뜻입니다. 벨드사살은 벨이여 그를 보호하소서이고 벨사살은 벨이여 왕을 보호하소서이지요. 똑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벽에 쓰여진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다니엘이 읽은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뜻을 성경에서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온 바벨론의 왕궁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 넣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습니다.

우선 메네는 므나, 복음서에 예수님의 열므나 비유에 나오는 므나가 메네로. 즉 므나는 돈이니까 세어 보는 겁니다.

데겔은 세겔, 이 세겔은 정말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무게단위가 됩니다. 그러니까 달아 보는 거지요.

보통은 므나는 세겔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집니다.

우는 그리고

바르신은 좀 어렵습니다. 물론 ‘나누다’란 뜻으로 절반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성경에 나와 있지만. ‘파르티안’과도 비슷합니다. 페르샤인이란 말이되는 겁니다.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예언이 이런식이 많습니다. 표면적인 의미와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르게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만원 만원 천원 그리고 절반.

아니면 점점 작아 진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세어보고 달아 보고 그래서 점점 작아 집니다. 마침내 반으로 나누어서 페르샤인에게 나라를 준다는 겁니다.

‘바르신’을 ‘바르시’안 즉 ‘페르시안’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뭐 당시 페르샤인들이 바벨론성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연히 바르신을 바사인이라고 해석할 만 합니다. 결코 별다른게 아닙니다.

4.왜 다니엘인가?

메네는 므나의 고어이며 데겔 역시 세겔의 고어입니다. 유대인들은 원래가 아람인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람에서 나온 것을 기억하면 그들의 언어는 아람어와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어가 아람어의 방언이기 때문에 아람어의 고어가 유대어에는 많이 살아있었습니다.

우리가 한자를 공부할 때 현재 지나식의 간소화된 한자가 아니라 고대 지나의 원형인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우리의 한자 실력으로 현재 지나식의 간자체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아람사람들에게 아람어는 변했지만 유대에서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고대 아람어로 쓰여진 이 글자의 뜻을 바로 해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고대 아람어를 유다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하나님은 아람어로 계시를 하시면서도 고어를 사용하여 바벨론 사람이 아니라 유대인만이 그 글자를 읽을 수 있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을 다시 한번 역사의 전면에 내 세울려고 하신건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왜냐면 ‘내일이면 늦으리’기 때문이지요. 내일이면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샤가 패권을 잡기 때문에 하나님은 페르샤가 패권을 잡기 전에 바벨론이 망하기 전에 다니엘을 총리의 자리에 올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다니엘이 새롭게 서는 페르샤의 총리가 될 수 있고 그래야만이 다니엘이 고레스를 만날 수 있고 그래야 만이 고레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알게 되고 그래야 만이 고레스가 이스라엘 민족들을 포로에서 해방하여 본토로 돌려보낼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그렇게 자기의 섭리를 이루시기위하여 신실한 종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러한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나이는 필요가 없습니다. 나이 85세에 다니엘은 다시 한번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페르샤에서 또 한번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에게만 전념하면 그가 우리를 높이 들어 사용하십니다. 늦었다고 한탄하고 포기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벽에 쓰여진 글자는 읽을 줄만 알면 해석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람사람이 아람의 고어를 모르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자를 가지고 제대로 된 해석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주로 신의 언어, 즉 예언이나 비결 같은 것은 뭔가 은근한 비유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다르거나, 인연이 아니거나 학문이 깊지 못한 자들이 즉각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합니다. 또 풍부한 상상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현실에 대한 올바를 이해가 해석의 근거가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벨사살이 그 나라의 박사와 술객들을 다 불러서 그 벽의 글자를 읽고 해석하게 했지만 해석은 고사하고 읽어내는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 나라의 멸망이 결코 이유가 없는 어쩌다 일어난 사고 때문은 아님을 나타내 줍니다.

바벨론의 박사와 술객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점을 치거나 아니면 마법을 연구하고 금을 만드는 것을 연구하는 연금술사들입니다. 오늘의 천문학자이거나 예언자. 화학자같은 지식인들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이 자기 나라의 고어조차 읽을 줄을 모르게 되었다면 이 나라가 얼마나 학문이나 문화적 소양이 떨어져 있는 상태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등학교에서 고어를 배운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고어는 어렵기는 하지만 전혀 이해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언어란 살아있는 것이고 역사적인 것이기 때문에 연관성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어와 비슷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뜻은 고사하고 읽기도 못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학문을 등한히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현실을 보는 안목입니다. 이들 벨사살과 왕후와 후궁들과 귀인들은 지금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바벨론은 벌써부터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페르샤와 메대의 연합군에게 전 국토가 점령당하고 지금 수도는 적군에게 포위되어 있습니다. 이미 2년이상 포위된 상태에서 저들은 연회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웃기는 사람들이지요. 전 국토를 적에게 빼앗기고 겨우 수도만 남은 상태에서 그 수도마저 포위되어 있으면서 잔치를 베푼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수도가 2년 동안이나 적에게 함락되지 않아서 이들이 다시금 교만해 졌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성은 이중 성벽입니다. 원래부터 이 성은 높고 두껍고 견고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벽을 연장해서 느부갓네살이 증축을 했는데 내벽은 두께가 7.7m이고 외벽은 8.3m가 되었답니다. 그리하여 성벽위를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갈 정도가 되었답니다. 이 성벽의 길이는 무려 27km이고 높이는 14m입니다. 난공불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성에는 무려 10년을 버틸 수 있는 양식이 쌓여 있었다고 하니 벨사살과 귀인들이 기고만장할만합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공격해봐라 이 성이 꿈쩍이라도 하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귀인들을 불러서 잔치를 열었는데 명목은 이들에 대한 위로잔치입니다. 이 귀인들은 실제로 각 지역에 있었던 자기들의 영지를 페르샤군에게 빼앗기고 수도로 도망쳐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잔치를 여는 겁니다.

처지가 이런데도 불구하고 저들은 전혀 겸손하거나 새롭게 각오를 다지지도 않고 오늘 당장 적에게 성이 함락되지 않음을 가지고 스스로 교만하며 음탕하고 허영에 들뜬 한심한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잔치에서 술을 마시기위해 특별히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온 금은그릇을 가지고 와서 그것에다 술을 마십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다른 금은 그릇들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지고 온 금은그릇을 가지고 술잔을 삼아 마신 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모욕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벨 신은 결코 이스라엘의 여호와보다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 줄려고 한 것입니다. 왜냐면 벨사살 왕의 이름 ‘벨사살’은 ‘오 벨이여 왕을 보호하소서’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벨신의 능력이 아직 쇠하지 않았고 저 위대하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여호와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신전의 금그릇으로 우리가 술을 마신다는 걸 보여 줄려고 굳이 성전의 금그릇을 가지고 오게 한 것입니다.

벨사살은 너무나 어리석습니다. 지금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잔치는 무업니까? 게다가 나라가 망하기 직전인데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을 왜 저지릅니까? 지금 저들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메대와 페르샤의 연합군에게 포위되어 있는데 왜 엉뚱한데 화풀이를 하는 것인지.

그런데 이때 다니엘을 맞이한 벨사살의 말은 기가 찰 정도로 어리석고 교만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중의 그 다니엘이냐”

여러분

이 벨사살의 말에서 뭔가 좀 베베꼬인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바벨론에서 정복한 나라들과 민족들이 한두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나 유다가 그렇게 비중이 있는 나라나 민족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꼭 집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그릇으로 술을 마시고

또 다니엘에게 말하면서 ‘부왕이 사로잡아 온 유다 포로’냐고 묻습니까?

왕궁에 있는 금그릇이 설마 예루살렘 성전의 금그릇보다 숫자가 적었을까요?

생각해 보세요. 성전에서 신에게 제사지낼 때 쓰는 거룩한 그릇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기가 여호와 하나님하고 맞먹는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신과 같이 높였다는 것은 교만의 극치입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에게 큰 원한을 품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래서 다니엘도 그렇게 무시하고 자기가 부탁하는 처지에 있을 때조차 다니엘을 욕보이려 합니다.

다니엘이 그 벽의 글귀를 읽고 곧바로 바벨론의 멸망을 연상한 것은 그가 사물을 직시하는 눈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의 작은 징조를 보고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한다면 그 글귀가 나라의 멸망을 예언한다는 것을 당연히 알 수 있습니다.

바르신, 파르신을 페르시안으로 해석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또한 메대와 파사로 나뉘니까 ‘우바르신’이 쓰인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왕이 하는걸 보니까 왕의 자격이 없어서 나라가 나뉜다는 얘기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에 참여한 천명의 귀인들과 왕의 후비와 후궁들에게서 아무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의 난다 긴다하는 지혜자들 중의 누구도 그 글귀를 읽지 조차 못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읽어 냈다 하더라도 해석은 절대로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로서는 바벨론이 멸망한다는 생각조차 하는 것이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집단 밖에서 보면 모든게 너무나 명약관화하게 보이는데 그 안에서는 마치 술취한 듯 안개에 쌓인 듯 전혀 알아 차리지 못하고 미망에 쌓인채로 결국은 멸망의 구렁텅이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5.하나님의 섭리와 타이밍

세상을 보면 지금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에 하는 것이 벨사살이 당시에 여호와에게 한 것과 비슷합니다. 유대인 다니엘에게 한 것이 마치 기독교인에게 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실력으로 그 모든 차별과 비웃음을 뛰어넘었습니다.

세상은 유독 기독교에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중 어떤이들은 이 땅에서 기독교를 박멸하는 사명을 띠고 나온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사실 다니엘은 어릴 때 바벨론으로 잡혀와서 교육을 받았고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몽한 뒤에는 바벨론의 술객들과 점쟁이들과 술사들 박사들의 우두머리로 왕의 자문이 되어 수십년을 고위관리로 지냈지만 결코 총리대신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질시때문이지요. 포로의 후손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답니다.

그러다가 벽에 쓰여진 글자를 해석함으로 바벨론이 멸망하기 하루 전에 총리대신의 직위에 올랐습니다.

오르자 마자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총리가 괜히 된 것 같지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다니엘은 새로운 나라의 세명의 총리대신가운데 한명으로 발탁된 것입니다. 다리오 왕이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했다고 해서 그의 지혜를 높이 산 것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멸망의 직전에 총리가 되지 않고 그 이전에 국정의 책임자로 오래 있었다면 나라가 멸망할 때 함께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보통 나라가 망하면 왕과 왕족 그리고 고위 관리들은 대부분 처형됩니다. 그 전쟁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멸망 하루 전에 아니 겨우 몇 시간 전에 총리가 된 것은 정말 절묘합니다. 그게 바로 다니엘을 더 돋보이게 했고 책임은 지지 않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다니엘을 향한 안성맞춤식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2년동안 포위를 해도 꿈쩍도 하지 않던 바벨론성이 함락된 것은 바로 그날 벨사살이 천명의 귀족들과 잔치를 벌였기 때문입니다. 이 잔치가 오랜 포위생활에 찌든 귀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잔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벨사살은 귀인들뿐만 아니라 오랜 싸움에 지친 성의 수비병들에게도 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잔치가 말이 안되는게 벌써 왕궁의 연회가 밤늦도록 열렸다고 하는 점입니다. 5절에 보면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지라”라고 하지요. 이게 연회가 밤에 열렸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게다가 바벨론이나 메대와 파사에서는 왕궁에서 금하는 법도가 있는데 남자들의 술자리에 부인들은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마 당시 그 지역 남자들은 술만 취하면 고약한 술버릇으로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많았고 이로 인해서 기강이 무너지는 일이 많아서 이를 방지하고자 남녀가 합석하는 잔치를 금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잔치에 참여하는 여자는 춤추고 시중드는 하녀나 노예로 국한한 것이지요.

그런데 왕후들과 후궁들이 귀족들과 함께 잔치에 참여해서 술을 마셨다고 하는 점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엄청나게 한심한 일을 한 겁니다. 왕실 법도를 어긴 것이지요.

그날 밤에 고레스는 수비병들이 술에 취한 틈을 타서 바벨론성을 둘러 흐르는 유브라테스 강물을 막아서 수위가 낮아진 강을 도보로 건너서는 성벽을 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첩자의 안내를 받아서 수비병들을 피해 벨사살의 연회장으로 바로 가서 술을 마시고 있던 벨사살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그 글자가 쓰여진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경고의 글이 그대로 이루어 진 것이고 그 주인공인 다니엘이 자동적으로 부각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85세의 나이에 역사의 전면에 재등장한 다니엘을 살펴 보았습니다. 벨사살의 연회장 벽에 쓰여진 글자를 해석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다니엘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글자로 말미암아 다니엘이 페르샤의 총리대신이 되었고 고레스의 뇌리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심어 준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마치 옛날 동화를 읽는 것 같습니다. 개연성도 없고 말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주인공들이 너무 극적으로 잘되기 때문입니다. 공주를 구하고 나라의 절반을 받았다고 하는 동화책의 내용하고 너무 비슷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알게 되면 성경본문 뒤에 숨길 수 없는 역사적인 진실들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위해

하나님의 섭리의 주인공을 위해

세상의 역사가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일이 중요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쓰임을 받는 이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생각하고 그의 명령을 더 우위에 두며 세상에 대해서도 청렴하며 순전하고 성실히 살아야 합니다.

내가 일생을 그렇게 산다면 남들이 볼 때는 이미 다 끝난 것 같을 때에라도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우리를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성도의 삶에서 포기나 절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믿음을 보시는 분이시지 그의 나이나 재산이나 능력을 보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하나님의 눈에는 전혀 중요한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한 것들을 채우셔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들어 시시는가가 중요하지 내가 가진 것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하시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든 하게 하실 수가있습니다.

벨사살이 하나님을 욕하며 자기의 벨 신을 찬양할 때 고레스의 메대 바사 연합군은 바벨론성의 해자를 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의 멸망을 말할 때 이미 고레스는 바벨론 성내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여전히 강대한 나라고 우리는 충분히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부하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려고 베푼 잔치가 실제로는 바벨론의 멸망을 재촉하는 홍문연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술자리에서 벨사살은 고레스의 군대에게 살해되고 다니엘은 새나라의 총리가 됩니다.

하나님은 실로 세상의 나라와 군대를 이용하여 자기의 일을 이루시는 역사의 주재자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면 세상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섭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옛날 다니엘처럼 요셉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믿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며 나가면 됩니다.

그런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통하여 이룰 하나님의 꿈이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 믿음대로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6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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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솔마루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email protected]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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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이상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무서운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약에 빠져들어서 쾌락을 좇는가 하면, 조현병(정신분열)에 걸려서, 타인을 묻지마 살인을 해놓고선 담담하다고 말합니다. 현대 사회라고 해놓고 공포와 불신은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보다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다움이 무엇인가? 옛 사람들은 가난해도 당당한 마음을 추구했고, 부귀를 누릴지라도 음란하지 않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즉, 물질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자본주의 라고 해놓고, 모든 것을 돈으로만 줄 세우기 바쁩니다. 청년들이 간신히 취업해서 들어간 곳에서는, 겨우 최저임금에 맞춰서 돈을 주고서는 힘들게 일을 시키고, 눈치밥을 줍니다. 갑질의 횡포는 어디서나 보기 흔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이토록 어려운 세계라서, 어느 소설의 표현처럼 아무리 여행해봐도 천국이 없었노라고 고백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성도들부터가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 곁에 서서 지지해주고, 당신이 희망이라고 이야기 하고, 쓰러져 가는 사람을 세워줘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테지요. 때로는 오해를 받을테지요. 욕도 먹을지도 모릅니다. 너희 기독교는 왜 그렇게 가식적이냐고 항의받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을 도와야 합니다.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멍들고 병든 사회에서,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힘을 냅시다. 작은 실천이라도 해봅시다. 열심히 돈벌어서 겨우 3% 남을 위해서 온전히 쏟아부어봅시다. 그리고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줍시다.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이 세계가 선하게 달라져 감을 믿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다고, 그렇게 희망의 이야기가 들려오기를 저는 두 손 모아 소망합니다. / 2016. 05.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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