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빌보드 해석 | 죽은 딸의 복수,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 쓰리 빌보드 리뷰 – 라이너의 컬쳐쇼크 24640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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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 뜻은 세 개의 광고판을 뜻하는데, 이것은 피해자 가족의 항의를 뜻합니다. 그러나 쓰리 빌보드 실화는 따로 없고, 어느 지방에 올라왔던 “미해결 범죄 사건 수사 촉구” 광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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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살해당한지 7개월. 무능한 경찰의 움직임을 참지 못하고 움직인 엄마, 밀드레드. 그리고 밀드레드를 압박하는 세상.
세상과 맞서는 서툰 엄마와 그녀를 둘러싼 서툰 사람들의 이야기.
한 편의 완성된 드라마가 펼치는 장관.
흔히 볼 수 없는 수작. 쓰리 빌보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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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쓰리빌보드 줄거리 및 결말. 뜻 – 콜라먹는 곰팅이

제목: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e ebbing, Missouri) 2017년제작 장르: 코미디/범죄/드라마 115분 개봉: 2018.03.15 개봉 감독: 마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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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 – 나무위키

밀드레드 헤이스의 딸 앤젤라는 강간치사의 피해자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이에 밀드레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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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쓰리 빌보드 후기(줄거리, 결말, 마틴 맥도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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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같은 영화 쓰리 빌보드 결말 해석과 감상 후기 – IT 리뷰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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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쓰리 빌보드>, 스스로를 구제 …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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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 비평, 그리고 추가적인 코멘트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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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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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쓰리 빌보드 해석

  • Author: 라이너의 컬쳐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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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3. 2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n14BDvUHfMc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아카데미 수상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아카데미 수상]

골든 글로브 4관왕, 아카데미 5관왕에 오른 영화입니다. 영화 줄거리는 강간살해로 딸을 잃은 어머니와 무기력함을 이겨내려는 퇴직 경찰관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쓰리 빌보드 뜻은 세 개의 광고판을 뜻하는데, 이것은 피해자 가족의 항의를 뜻합니다.

그러나 쓰리 빌보드 실화는 따로 없고, 어느 지방에 올라왔던 “미해결 범죄 사건 수사 촉구” 광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2017년 마틴 맥도나 감독, 프란시스 맥도맨드 , 우디 해럴슨 , 샘 록웰​ 주연으로 개봉했습니다. (이 글은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결말, 뜻, 실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블로그는 “심심할 때 잡지처럼 읽는 지식”이라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즐겨찾기(북마크) 해 놓으면 심심할 때 좋습니다.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 억울한 피해자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끔찍한 범죄를 당한 후 삶의 의욕을 잃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딸이 어떤 무리들에게 강간을 당한 후 죽었는데, 심지어 불에 태워버려 시신까지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참혹한 사건에 지방 마을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딸의 사건이 잊혀져 갑니다. 경찰에서는 사건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고 밀드레드는 더욱 절망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이 쓰리 빌보드 뜻이다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 감독: 마틴 맥도나)

그러던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던 밀드레드는 광고판을 보고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 올리게 됩니다. 이것은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의 핵심적인 사건입니다. 그녀는 세 개의 광고판에 경찰서장의 이름을 쓰고 비난하는 내용을 달기로 했습니다. 쓰리 빌보드 뜻은 바로 이 세 개의 광고판을 말합니다.

이 소식이 마을에 퍼지자 경찰서 직원들은 경찰서장에게 광고판을 강제로 내리자고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에게는 그 광고판에 대한 건의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는데, 췌장암 말기였던 것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6개월이 남았다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인생을 병원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어가긴 싫었습니다. 결국 그는 우울증에 걸리고, 마침내 자살해버립니다.

(수사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 배급사: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그런데 경찰서장이 자살한 사건은 오히려 밀드레드에게 부정적인 여론을 몰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녀 때문에 경찰서장이 책임감에 눌려서 자살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윌러비(우디 해럴슨)의 부하 딕슨(샘 록웰)도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는 쓰리 빌보드 광고판을 제작한 광고업자를 찾아가서 폭행하고 맙니다. 그러다가 이를 목격한 새 경찰서장에 의해 해고까지 당하고 말았습니다.

(피해자 가족 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 제작사: 필름4 프로덕션스)

영화 쓰리 빌보드 결말 – 공권력이 아닌 복수

시간이 또 흐르고, 광고판에 불이 나는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이를 본 밀드레드가 불을 꺼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다 타버린 쓰리 빌보드(뜻: 세 개의 광고판)를 보면서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건 무조건 경찰 짓이라고 생각하고는 경찰서에 찾아가서 불을 질러버립니다.

그런데, 마침 경찰서에는 딕슨이 있었습니다. 그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기 때문에 불이 난지도 모르고 있다가 큰 화상을 입고 맙니다.

(공권력의 사각지대 이야기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 각본: 마틴 맥도나)

병원에 입원한 딕슨(샘 록웰)은 옆 침대에 자신이 때린 광고업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소행이 너무 과격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반성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 후, 딕슨은 술집에 들렀다가 어떤 패거리들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이야기였습니다.

범인이라고 확신한 그는 싸움을 유도해서 그들의 DNA를 확보했습니다.

드디어 범인을 잡게 되었다고 생각한 딕슨은 밀드레드에게 이를 알렸습니다. 그러나… 쓰리 빌보드 줄거리는 쉽게 결말이 나지 않았습니다. 검사 결과 그들의 DNA는 관련이 없었고, 사건 당일에 그들은 외국에 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망한 딕슨은 밀드에게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무기력함에 빠진 딕슨은 범인이 아니었다고 전한 후 자살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열연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개봉일: 2018년 3월 15일)

그런데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담담하게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자세한 이야기에 의하면, 그들이 다른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것은 분명하다고 확신하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밀드레드가 말합니다. 그들이 어디에 사냐고…

영화 쓰리 빌보드 결말은 같이 그들을 찾아가서 범행을 막고 싶다는 밀드레드의 말에 따라, 다음 날 딕슨과 만나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쓰리 빌보드 예고편 보기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결말 뜻 실화 – 아카데미 수상]​

키스세븐지식은 키스세븐과 그룹 사이트입니다.

영화 쓰리빌보드 줄거리 및 결말. 뜻

제목: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년제작

장르: 코미디/범죄/드라마 115분

개봉: 2018.03.15 개봉

감독: 마틴 맥도나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우디 해럴슨, 샘 록웰, 피터 딘클리지

줄거리:

“내 딸이 죽었다”

“아직도 범인을 못 잡은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경찰 서장?”

세 개의 빌보드 광고판에 새겨진 엄마의 분노, 세상을 다시 뜨겁게 만들다

범인을 잡지 못한 딸의 살인 사건에 세상의 관심이 사라지자, 엄마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마을 외곽 대형 광고판에 도발적인 세 줄의 광고를 실어 메시지를 전한다.

광고가 세간의 주목을 끌며 마을의 존경 받는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헤럴슨)와 경찰관 ‘딕슨’(샘 록웰)은 믿을 수 없는 경찰로 낙인찍히고, 조용한 마을의 평화를 바라는 이웃 주민들은 경찰의 편에 서서 그녀와 맞서기 시작하는데…

https://play-tv.kakao.com/v/382423043

[다음영화제공]

<쓰리 빌보드 줄거리>

영화의 주 배경은 미국 미주리주 에빙.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 세워진 세개의 광고판에는 섬뜩한 문구가 적혀있습니디.

미주리주 에빙 마을에서 밀드레드는 몇 달 전 10대 딸이 강간, 살인을 당해 슬퍼함과 동시에 분노에 차 있습니다.

범인의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경찰들을 이해 할 수 없고, 찾을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 이젠 증오합니다.

그래서 밀드레드는 집 근처 버려진 광고판 3개를 빌려 ‘죽어가는 동안 강간’ / ‘아무도 체포하지 않았습니까?’ / ‘어떻게 된 거지 월러비 서장?’이라 광고를 만들게 됩니다.

이 광고판으로 월러비 서장,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이면서 알코올중독까지 있는 딕슨 경관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을 화나게 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있는 월러비서장은 말기 췌장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가 그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의 분노는 더 커집니다.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그 어떤 위협에도 밀드레드는 광고판을 유지하기로 이미 결심 했습니다.

월러비 서장은 매우 유능한 경찰이었고 따듯한 사람이 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광고판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를 이해하고 감싸려 합니다. 그 역시 아이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윌러비는 자신의 병으로 인해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에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합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윌러비의 자살이 광고판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밀드레드에게 더욱 등돌리게 됩니다.

감정이 앞서고, 마마보이에, 인종차별까지 일삼는 딕슨경관은 윌러비를 매우 존경했고, 그의 죽음에 분노하게 됩니다.

그는 광고회사 사장 레드 웰비에게 달려가 그를 폭행하고 창문에서 밀어버립니다.

이 일로 새로 온 흑인 서장에게 해고통보를 받고 경찰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밀드레드가 혼자 일을 하고 있을 때 낯선 남자가 찾아와 위협을 가합니다.

순간, 죽은 윌러비가 남긴 편지를 전하러 온 주민때문에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그는 밀드레드를포함한 몇몇 사람들에게 자살 메모를 남기는데 밀드레드에게 그녀가 자살의 한 요인이 아니며 그가 한 달 더 광고판을 가동하기 위해서 몰래 돈을 지불했다고 설명하며 사람들이 그 살인사건에 관심을 계속 갖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광고판은 방화사건으로 파괴되었고, 경찰의 짓이라 여긴 밀드레드는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져 보복합니다.

경찰서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였으나 그 시각 물건을 가지러 온 딕슨이 그 곳에 있었습니다.

딕슨은 형사가 되고 싶은 소원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증오를 버리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하는 월러비의 편지를 읽으려 그곳에 오래 머물러있었던 것이고, 그 편지에 감명을 받은 딕슨은 밀드레드의 딸인 안젤라 사건 파일을 가지고 탈출하지만 화상을 입게 됩니다.

누가봐도 경찰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밀드레드의 범행이 었지만 목격자는 없었습니다.

유일한 목격자인 밀드레드의 지인 제임스는 밀드레드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하며 그들이 사건 당시에는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은혜를 갚기위해 진짜로 데이트를 하던 중 전남편을 만나게 되고 그가 광고판에 불을 지른 것임을 알게됩니다.

<쓰리 빌보드 결말>

(스포O)

화상으로 병원에 있다가 퇴원한 딕슨은 한 술집에 들르고, 거기서 한 남자가 자신이 한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일부러 그 남자와 싸움을 벌여 얼굴을 긁어 DNA샘플을 얻습니다. 하지는 그 DNA는 안젤라 몸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하지 않으며, 그 남자는 9개월 전에 군 복무 때문에 중동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도 중동에서 한 여자를 강간하고 불태워 죽인 강간살인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딕슨은 그 남자가 다른 강간 살인에 대해서는 유죄가 돼야 한다고 혼자 결론짓고 그를 죽이기 위해 아이다호로 가는 여행에 밀드레드와 합류하게 됩니다. 둘은 총을 챙겨서 그 남자가 사는 곳으로 떠납니다.

딕슨은 말합니다.

– 그를 죽일거야?

밀드레드는 대답합니다.

-생각해보고…

그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들은 뭘 해야 할지 불확실해하고 도중에 뭘 해야 할지 결정하자 하며 총을 들고 떠납니다.

<쓰리 빌보드 그 외..>

쓰리빌보드 그 뜻은 말그대로 3개의 공고판을 뜻하죠.

처음에는 무슨 영화인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이런 광고판으로 이목을 집중시켜 세상과 사투를 벌이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였습니다.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에게 작품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4관왕으로 최다 수상을 얻게되죠.

토론토 국제 영화제 관객상과 수상하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93%의 호평까지 받는 등 평점 또한 높은 영화 입니다.

코미디의 장르가 있는 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시피 블랙 코미디의 성향이 섞여있습니다.

딸을 잃은 엄마의 분노와 슬픔을 희석시키지 않으면서도 무겁지 않은 유머로 이야기를 풀어내어 엄마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입니다.

엄마의 분노는 극에 다르지만 결국 범인도 밝혀내지 못하고, 가해자 없는 싸움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영화 였습니다.

결말에 살인을 위해 달려가던 엄마와 딕슨..

결국 살인을 저질렀을까요??

둘의 인생에서 보면 결말이 나쁘긴 했지만 성공했으면 하기도 하고,

실패했으면 하기도 하는….

열린 결말로 더 먹먹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 결말 (스포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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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드라마, 코미디, 범죄

영국, 미국

115분

감독

마틴 맥도니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 밀드레드 역

우디 해럴드 – 월러비 역

샘 록웰 – 딕슨 역

존 호키스 – 찰리 역

피터 딘클리지 – 제임스 역

케일럽 랜드리 존스 – 레드 웰비 역 | 루카스 헤지스 – 로비 역

샌디 마틴 – 딕슨 엄마 역 | 애비 코나쉬 – 앤 역

젤리코 이바넥 – 세드릭 역 | 캐서린 뉴튼 – 안젤라 역

클락 피터스 – 아베크롬비 역 | 사마라 위빙 – 페넬로페 역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미주리주 에빙 마을에서 밀드레드는 몇 달 전 10대 딸이 강간, 살인을 당해 슬퍼하고 있다. 수사의 진전이 없는 것에 화가 난 밀드레드는 집 근처 버려진 광고판 3개를 빌려 ‘죽어가는 동안 강간’ / ‘아무도 체포하지 않았습니까?’ / ‘어떻게 된 거지 월러비 서장?’이라 광고를 만들어 월러비 서장,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이면서 알코올중독까지 있는 딕슨 경관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 월러비는 췌장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아 마을 사람들의 분노는 더 커진다. 그 어떤 위협에도 밀드레드는 광고판을 유지하기로 결심한다.

월러비는 밀드레드의 고통, 좌절에는 공감하지만 그래도 광고판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딕슨은 자신의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며 밀드레드에게 광고판을 빌려준 사업가 레드 웰비를 체포한다. 밀드레드의 전 남편은 딸 안젤라의 죽음을 비난하며 밀드레드를 찾아간다.

밀드레드가 치과의사의 손가락에 구멍을 뚫자 월러비가 밀드레드를 불러서 심문을 한다. 그리고 심문하는데 월러비는 피를 토한다. 병원에 가서 의사의 소견을 듣고 병원을 떠나서 아내 앤, 딸과 소박한 하루를 같이 보낸다. 그리고 가족들이 자기가 암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는 자살을 한다. 그전에 월러비는 밀드레드를 포함한 몇 사람들에게 메모를 남겼다. 밀드레드에게는 자기가 자살한 요인은 당신 때문이 아니고 자기가 광고비를 한 달 지불해 줬다 설명하며 밀드레드의 딸 살인사건에 사람들이 관심을 계속 갖기를 바란다. 딕슨은 월러비가 죽었다는 소식에 웰비를 폭행한다. 딕슨은 시민을 폭행한 죄로 해고를 당하고 밀드레드는 자신의 가게에서 낯선 사람의 위협을 받는다.

광고판은 방화사건이 일어나 사라지고 밀드레드는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져서 보복을 한다. 하지만 딕슨은 진정한 형사가 되기 위해 증오를 버리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라는 조언이 적혀있는 월러비의 편지를 보려고 경찰서에 있어서 급히 안젤라의 사건 파일만 가지고 탈출하지만 결국 화상을 입는다. 밀드레드의 지인인 제임스가 그것을 목격해 딕슨의 불타고 있는 옷을 벗겨준다. 제임스는 나중에 밀드레드에게 알리바이를 주기 위해 사건 당시에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말한다. 딕슨은 화상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데 같은 병실에 입원한 자신이 폭행한 웰비에게 사과를 한다.

광고 회사에 취직해서 밀드레드의 메시지를 광고판에 올리던 제롬은 실수가 있을 경우를 위해 만들었던 여분의 광고판을 주고 밀드레드는 광고판 메시지를 다시 세우려고 여분의 광고판을 사용한다.

딕슨은 병원에서 퇴원하고 밀드레드의 딸과 같은 방식으로 여자아이들을 강간하고 살해한, 밀드레드를 위협했던 남자를 술집에서 보고 그 남자의 차 번호판을 적고 그 남자의 얼굴을 긁고 싸움을 만들어서 그의 DNA 샘플을 얻는데 성공한다. 밀드레드는 제임스와 데이트하면서 알리바이를 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해한다. 전남편 찰리는 여자친구 페넬로페와 제임스를 조롱하고 제임스는 밀드레드가 연민 때문에 자신을 만난다는 걸 알고 화나서 떠난다. 밀드레드는 화를 참고 찰리에게 페넬로페나 잘 돌보라 말하고 떠난다.

영화 쓰리 빌보드 결말

아베크롬비는 DNA 샘플을 가져온 딕슨을 칭찬하지만 딕슨에게 DNA 샘플이 안젤라의 몸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하지 않고 사건이 있던 9개월 전에 그 남자는 군 복무 때문에 해외에 있었다고 알려준다. 딕슨은 그 남자가 다른 강간 살인 사건에서는 유죄가 입증되어야 한다고 결론짓고 그를 죽이기 위해 번호판을 통해서 그가 있는 곳으로 떠나는데 밀드레드도 합류한다. 밀드레드는 딕슨에게 자기가 경찰서에 불을 질렀다 고백을 한다. 딕슨은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해하고 그들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불확실해하지만 그냥 해보면서 도중에 뭘 해야 할지 결정하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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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쓰리 빌보드 후기(줄거리, 결말, 마틴 맥도나 감독)

영화 쓰리 빌보드는 마틴 맥도나 감독의 연출작으로 이 영화는 작품성과 다양성을 인정받아 영화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제75회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5관왕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습니다.

영화 쓰리 빌보드의 초반부는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하는 엄마와 무능한 경찰의 대립 구도를 이루는 듯 보였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형태의 이야기로 전개되면서 결국에는 뻔하고 진부할 수 있는 메시지를 관객의 가슴속 깊이 울리게 만드는 마법의 이야기로 바꾸어 버립니다.

“영화 쓰리 빌보드 줄거리 소개”

밀드레드는 딸을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서 세 개의 광고판을 도로에 설치합니다. 그 광고판에는 딸이 어떻게 죽었는지 대한 문구와 또 경찰이 아직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의 내용이었고 경찰 서장인 윌러비는 밀드레드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광고판을 철거해 줄 것을 부탁하지만 밀드레드는 이를 거절합니다.

하지만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경찰 서장의 딱한 사정과 평소 경찰 서장이 성실하게 일해서 얻은 동네 사람들의 평판은 밀드레드를 책망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동네 사람들은 밀드레드를 만나 광고판을 철거해주기를 부탁합니다. 결국 윌러비 서장이 사망하고 세 개의 광고판이 누군가에 의해 불타는 사건까지 겹치자 밀드레드는 억울함의 분노를 경찰서의 방화로 풀어버리는데…

“영화를 이끌어가는 밀드레드와 딕슨”

영화 쓰리 빌보드의 중요 캐릭터는 단 두 명입니다. 한 명은 딸을 잃고 홀로 투쟁하는 밀드레드와 또 한 명은 경찰 서장 윌러비를 존경하는 경찰관 딕슨입니다. 밀드레드는 딸과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고 또 딸이 살해되는 날까지 다툼을 벌인 죄책감과 범인을 잡지 못하는 억울함의 모든 분노를 경찰을 향해 발산합니다.

딕슨 또한 자신이 존경했던 상사가 사망하자 그 원인을 광고판으로 돌려 광고판을 설치한 회사에 분노를 발산하며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 결국에는 경찰직에서 해고됩니다.

“서장 윌러비가 남긴 세 통의 편지”

윌러비는 죽기 전에 세 통의 편지를 남깁니다. 한 통은 자신의 아내에게 자신이 왜 떠나야만 했는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편지였고 다른 한 통은 밀드레드에게 용기와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편지였으며 마지막 편지는 자신이 아끼는 부하 딕슨에게 경찰관으로서의 각성에 관한 내용을 담은 편지였습니다.

서장이 남긴 유언의 편지로 인해 두 사람은 자신의 화를 억누르게 되고 좀 더 신중하고 침착하게 변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다수에게 표출하는 방법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진짜 사건의 본질을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열린 결말에 대한 관객들의 판단”

밀드레드와 딕슨은 딸을 죽인 범인이라 추정되는 남자의 DNA를 획득하고 검사해보지만 그 남자는 밀드레드의 딸을 죽인 범인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중동 여성을 겁탈하고 살해한 남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드레드와 딕슨은 죄를 저지른 대상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 죄를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모두 똑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역 경찰의 소관이 아닌 그 남자를 직접 처벌하기 위해 함께 이동합니다.

하지만 밀드레드와 딕슨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이렇게 하는 행동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 서로에게 의문을 가지게 되고 범인을 살해할지에 대해서 이동 중에 결정하기로 합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찬반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므로 감독은 관객에게 판단의 역할을 돌립니다.

영화 쓰리 빌보드는 동정심 갖게 만드는 사건의 피해자와 무능한 경찰, 잔인한 범인이 얽혀서 만들어내는 뻔한 스토리와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풀리지 않는 한 범죄에 관해서 관객들이 감독이 제시하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하고 영화의 상황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몰입감을 높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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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같은 영화 쓰리 빌보드 결말 해석과 감상 후기

쓰리 빌보드 후기

제 75회 골든글로브의 작품상, 각본상, 남우·여우주연상으로 4관왕을 차지한 영화 쓰리 빌보드.

베네치아, 토론토 국제 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던 이 작품은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기에 그 만큼 많은 찬사를 받을 수 있엇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하스텐의 영화 리뷰 #11

쓰리 빌보드

감독: 마틴 맥도나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 샘 록웰

평점: ★★★★

실화 같은 줄거리의 쓰리 빌보드

“내 딸이 죽어가며 강x당했다”, “아직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윌럼비 경찰서장?”

외곽에 있던 빌보드판에 딸을 잃은 밀드랜드의 분노가 담긴 광고가 달리며 조용하던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쓰리 빌보드. 마치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화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각본의 짜임새와 연출이 완벽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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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때 범인을 잡아 멋지게 복수한다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경찰이 범인을 잡아주기만을 기다리는 것 뿐인데, 이 영화는 이러한 부분을 철저히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밀드랜드의 분노를 숨기지않되 담담하게 표현하면서, 이러한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는 인물들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해석에따라 평가가 달라질 작품

이 영화는 현실적인 설정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인물들이 없다. 블랙코미디로 보일 정도로 다들 미쳐있고 폭력적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것을 딸을 잃은 밀드레드의 분노를 간접적으로나마 과감하게 표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냉정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도 정상일리 없는 어머니의 정신세계를 말이다.

영화의 재미는 보았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는 재미와 나중에 다시 곱씹을 때 오는 즐거움이 있는데 쓰리빌보드는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부분에 해답을 내놓기보다는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놓았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한번 생각 했을때 진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영화 감상 직후에는 세 개 반 정도의 점수를 생각했는데, 후기를 작성하면서 생각해볼 수 록 소름끼치는 부분이 많았고 말이다.

선과 악이 없는 설정

쓰리 빌보드는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다. 범인이라는 절대악이 있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딸이 죽었다는 설정은 어디까지나 상황부여의 용도이지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와는 상관 없으며, 피해자인 밀드레드조차 선한 인물이라 볼 수 없었다.

인물마다 분노의 대상이 있고, 저마다 처한 상황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캐릭터의 생명감을 불어넣어준 것 또한 이 작품의 장점인데, 어떻게 보면 철저히 계산된 이러한 설정들을 실화라 오해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배우들의 힘이다.

마무리

솔직히 이런 영화는 후기를 쓰기 굉장히 까다롭다. 애초에 스포일러를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하나 상황별로 해석을할 수 도 없을뿐더러, 좋은 영화를 표현할만한 단어가 그리 많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몇마디 문장이면 끝날 것을 굳이 길게 늘여놓다보니 내가 뭘 쓰고 있나 싶기도하다.

이 영화에 긴 말은 필요없다. 쓰리빌보드는 정말 좋은작품이며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를 극대화 시켜놓았다.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작품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지루해보일 수 도 있으나, 감상으로 끝내지말고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이런 재미도 있다는 것을 느껴보길 바란다.

*독과점 때문에 상영관이 몇개 없다보니 영화관에서 보는 사람이 많을까 싶지만 쿠키영상은 없습니다.

-다른 영화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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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 스스로를 구제하려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쓰리 빌보드>(2017)에는 <디어 헌터>(1978)와 <쳐다보지 마라>(1973)에 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에 관해서는 과거 이 지면에서 한회차를 통째로 할애해 소개한 적이 있다.

영화 속에서 다른 오래된 영화들의 흔적을 찾는 건 즐거운 작업이다.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경우라면 영화사라는 거대한 흐름이 개별의 영화들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어 영향을 주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어 즐겁다. 정말 재미있는 건 감독이 의도했을 경우다. 노련한 이야기꾼은 이야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결승점 혹은 고취시키고자 하는 바에 관해 작품 안에서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굳이 작품 안에서 창작자의 주제의식 따위를 설명하고 싶다면 영화를 만들 것이 아니라 거리에 나가 웅변을 하거나 사설을 쓰는 게 낫다. 다만 어떤 감독들은 이야기에 질감을 더하고 해석에 일종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오래된 영화들의 특정한 장면이나 대사를 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영화 속 장면에서 어느 낡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면, 거기에는 의도가 있다.

<쓰리 빌보드>로 돌아와보자. <쓰리 빌보드>는 범죄로 딸을 잃은 어머니가 수사 당국을 책망하는 메시지를 마을 외곽 대형 광고판에 실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누군가는 여기서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우디 해럴슨 그리고 샘 록웰의 빼어난 연기를 볼 것이다. 누군가는 매우 효과적인 유머들을 통해 무능한 경찰 권력이 조롱당하는 걸 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장 잘못된 순간에 가장 잘못된 말을 내뱉어버린 어머니의 후회를 읽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차원은 보다 보편적인 데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 말이다.

<쓰리 빌보드>는 신도 희망도 없는 세상에 자력구제를 위해 나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영화다. 힌트처럼 심어둔 두편의 영화 그리고 그것을 언급하는 행위를 통해 감독이 극복하고자 하는 것들에 관해 함께 생각해보자.

우선 영화의 도입부를 떠올려보자. 타이틀 이후 첫 번째 시퀀스. 주인공이 빈 빌보드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두 번째 시퀀스. 광고업자를 찾아가서 계약을 한다. 세 번째 시퀀스. 샘 록웰이 경찰차 안에서 ‘스트리트 오브 러레이도’를 부르다 말고 “마우!”라고 여러 번 소리친다. 그리고 주인공의 광고판을 발견한다. 여러분이 <디어 헌터>의 팬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샘 록웰이 “마우”를 외치는 대목은 <디어 헌터>의 전설적인 러시안룰렛 장면에서 가져온 것이다. 베트남전쟁 중 포로로 잡힌 크리스토퍼 워컨과 로버트 드니로에게 러시안룰렛을 강요하며 위협하는 적군이 반복해서 소리치는 대사다.

영화의 중반. 샘 록웰의 어머니가 주인공을 괴롭히고 싶으면 그 주변 사람을 먼저 괴롭히라고 조언한다. 샘 록웰은 주인공의 친구를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체포한다. 이에 화가 난 주인공이 항의를 하기 위해 경찰서를 방문한다. 주인공이 머리에 밴디지를 두르고 등장한다. 그녀가 늘 군복처럼 보이는 점프 슈트 스타일의 작업복을 입고 다닌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장면은 머리에 밴디지를 두른 <디어 헌터> 속 크리스토퍼 워컨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앞선 두 장면을 통해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하는 주인공과 샘 록웰이 연기하는 경찰은 각각 <디어 헌터> 속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겹친다. 사실 <쓰리 빌보드>의 마틴 맥도나 감독과 샘 록웰은 전작 <세븐 싸이코 패스>(2012)에서 크리스토퍼 워컨과 작업하면서, 인터뷰를 통해 <디어 헌터>의 광적인 팬이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디어 헌터>에서 크리스토퍼 워컨이 어떻게 되는지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베트남전쟁에서 살아남지만 러시안룰렛을 동원한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싸웠지만 그에 잠식되어버린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로버트 드니로는 러시안룰렛만 반복하며 유령처럼 살고 있는 워컨을 발견한다.

<쳐다보지 마라>의 인용은 좀더 직접적이다. 장면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대사를 통해 영화 자체가 언급된다. 샘 록웰의 어머니가 주인공을 괴롭히고 싶으면 주변 사람을 먼저 괴롭히라고 조언하는, 앞서 설명한 시퀀스다. 어머니가 계속해서 도널드 서덜런드가 나오는 영화만 보고 있으니 샘 록웰이 핀잔을 준다. “또 도널드 서덜런드 영화예요?” “마음에 들어. 머리 스타일이.” “머리 스타일이요? 풋.” “여기서 도널드 서덜런드 딸이 죽잖아.” “언제나 그렇죠.” “그래서, 그 광고판 여자는 어떻게 됐니?” 여기서 언급되는 “도널드 서덜런드 딸이 죽는 영화”가 바로 <쳐다보지 마라>다. <쓰리 빌보드>의 엄마처럼 <쳐다보지 마라>의 부모도 딸을 잃었다. <쓰리 빌보드>처럼 무능한 경찰과 무책임한 성직자가 등장한다. 즉 체계도 신도 부재하니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도널드 서덜런드가 연기하는 아버지는 딸이 왜 죽었는지에 관한 해답에 이르기 위해 이국에서의 여정을 거친다. 신비주의와 공포로 얼룩진 여정 속에서 그 모든 경고와 암시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문제에 몰입한 나머지 문제 자체에 먹혀버리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소름끼치는 파국을 맞는다.

<디어 헌터>와 <쳐다보지 마라>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어섰다. 아군의 도움 없이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해 살아남아야 했고, 경찰이나 사제의 도움 없이 딸의 죽음에 관련된 미스터리를 풀어야 한다. 이들은 모두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면하고 맞서 싸워야 했던 폭력의 체계 안에 갇혀버리고 끝내 파멸한다.

<쓰리 빌보드>의 주인공도 같은 수순을 밟는다. <디어 헌터>의 프레임 안에서 주인공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흡사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는 사람마냥 상대보다 거칠고 대담하게 행동하려 매 순간 애쓴다. <쳐다보지 마라>의 프레임 안에서 딸의 죽음에 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분투한 나머지 이에 집착하며 조금씩 더 큰 파국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영화는 중반에 이르기까지 <디어 헌터>와 <쳐다보지 마라>라는 힌트를 제시하면서 이대로 가다간 저 두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그녀 또한 끝내 파멸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나를 구원할 신도, 나를 구제할 체계도 부재한 세계. 거기서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이 왜 항상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경찰서 방화 장면에 이르러 크리스토퍼 워컨과 도널드 서덜런드와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잔상이 겹치는 순간, 영화 <쓰리 빌보드>는 전환을 맞는다. <쓰리 빌보드>는 스스로를 구제하려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앞선 암시와 징조들을 극복해내고자 한다. 그것은 우디 해럴슨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디 해럴슨은 경찰 서장이다. 주인공의 광고판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처한다. 여론은 서장의 편이지만 정작 그는 마음이 편치 않다. 서장은 주인공의 행동에 당황하고 언짢아하면서도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 그는 이해할 수 있다. 혼자 힘으로 버티며 싸워나간다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기암을 앓고 있는 서장이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 대목에 이르러, 그의 선한 의지는 묘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간다. 살면서 한번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인정으로, 희망이 절실한 사람에게는 희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싸우던 사람들이 서로를 돕기 시작하면서 작은 진전을 이루어나가는 마술 같은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기댈 수 있는 신적 존재도, 제도적 안전장치도 없이 혼자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피폐해진다. 싸우기 위해 거칠어진다. 불신만 남는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사람들끼리도 상대를 증오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발견했을 때, 우리는 공감과 이해보다 질타와 선긋기를 우선하기 마련이다. 버티어 살아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끝내 우리가 싸웠던 어둠 안에 갇히고 만다. 너무 오랫동안 혼자 힘으로 살아남은 탓에, 타인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잊은 것이다.

끝까지 버티고 싸우되 피폐하고 곤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선의를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하며 서로를 도울 것. <쓰리 빌보드>는 자력구제를 위해 일어선 사람들 사이의 선한 의도와 행동 그리고 연대만이 <디어 헌터>나 <쳐다보지 마라>와 같은 비관적 결말을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멋지고 빼어난 것들 덕분이 아니라 언제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된 선행들 때문에 구원받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쓰리 빌보드> 비평, 그리고 추가적인 코멘트

<씨네21>에 기고했던 <쓰리빌보드> 비평은 지면의 한계상 언급하지 못한 부분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생략했던 말들을 여기에 남깁니다

아래에는 기고했던 비평문이고, 그 아래에 추가 평이 이어집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걸작의 탄생

영화의 시작,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맨드)는 광고 회사의 창가에서 뒤집힌 채 버둥거리는 벌레가 되살아나도록 도와준다. 그런 그녀의 귀에 웰비(케일럽 랜드리 존슨)의 말이 날아와 꽂힌다. 광고 기간은 부활절 전까지입니다. 전남편 찰리(존 호킨스)는 빌보드를 세운들 죽은 안젤라(캐서린 뉴턴)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광고의 내용은 딸을 죽인 범인에 관한 것이건만, 어째서인지 영화는 자꾸 무언가의 ‘부활’을 언급한다. 그러므로 이 글은 하나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려 한다. <쓰리 빌보드>는 무엇의 부활을 기다리는가.

언어의 엄중함

대답에 닿기 위하여 먼저 영화를 회상해보자. 빌보드 앞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딕슨(샘 록웰)이다. 그는 “마오!” 같은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질문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쩔쩔맨다. 그는 늘 서툴고 어눌하게 말하지만 간혹 젠체하며 ‘환경보호법’ 혹은 ‘유색인종’ 같은 단어들을 언급한다. 이때 딕슨이 서툴게나마 어려운 용어를 구사하는 이유는 그가 다름 아닌 경찰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경찰서는 언어 권력의 공간이다. 민간인이 경찰서에서 욕을 하면 그들은 크게 화를 낸다. 이곳의 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는 마을에서 좋은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실상 그의 언어 사용 방식은 의뭉스럽다. 그는 규칙을 내세우며 실체를 가리고 이를 우아한 언어로 포장하길 좋아한다. 범인 추적에는 ‘인권법’을, 딕슨의 고문 혐의에는 ‘확증’을 운운하는 식이다. 그의 캐릭터를 단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낚시 게임에 관한 장면이다. 윌러비는 담요를 벗어나선 안 된다며 아이들이 발음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용어들로 규칙을 설명하고, 뒤에서는 아내와의 은밀한 섹스를 즐긴다. 그가 죽기 전 뇌까리는 “오스카 와일드”의 실상은 음담패설에 다름 아니다. 밀드레드는 이런 위선적인 언어들을 파헤쳐서 그 속에 숨겨진 실체를 찾으려고 한다. 암에 걸렸다고 하면 알고 있다고 받아치고, 낯선 남자가 던지는 폭력적인 질문에는(“내가 그 강간범일까?”) 진실을 따져 묻는다(“진짜야?”). 그녀의 곁에는 늘 진실의 말을 감당하는 자의 비애감이 감돈다. 그녀의 유일한 실수는 언어의 엄중함을 더 일찍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녀가 딸에게 내뱉은 실언은 잔인한 현실로 되돌아온다.

그런 면에서 밀드레드는 딕슨의 어머니와도 만난다. 여자친구(woman)가 없다는 딕슨의 말에 딕슨의 엄마는 알고 있다(yeah, I Know)고 짓궂게 대답하고(이는 딕슨이 동성애자임을 알고서 조롱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유독 깔깔대며 오래 웃는다. 집을 떠나는 아들의 모습 위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오버랩된다. 그 후 딕슨은 폭행을 당한 채 피를 흘리며 집에 되돌아온다. 무심코 던진 폭력의 언어는 현실의 폭력으로 되살아나 그녀들을 오열케 한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언어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은 어린 여자들이다. 페넬로페(사마라 워빙)는 자신을 비하하는 맥락을 모른 채 동물원에서 해고된 사정을 열심히 설명하고, 광고사 여직원은 잘했다는 빈말에 진심으로 기뻐한다. 원뜻 그대로 언어를 구사하는 그들의 천진난만함은 밀드레드의 분노를 누그러뜨린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사건의 범인으로 서장 윌러비를 의심한다. 밀드레드가 딸 안젤라에게 강간을 언급하는 장면 뒤에 윌러비는 아내의 엉덩이를 더듬고 있다. 윌러비가 딸들을 재우는 장면과 아내에게 키스하는 장면은 너무 긴밀하여 당황스럽고, 아내는 윌러비를 두고 “아빠”라고도 부른다. 영화는 자꾸만 어린 여자들과 윌러비를 성적으로 연결 짓는다. 그는 결국 언어의 권위가 배제되는 마구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복수의 수단이 광고 언어인 이유

언어의 냉혹함을 온몸으로 깨우친 밀드레드가 복수의 수단으로 광고를 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빌보드는 공중에 떠다니는 실체 없는 언어를 단단히 붙잡아서 그것을 붉고 거대한 실체로 돌려놓는다. 온 마을은 혼비백산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품위 있는 언어 뒤로 도피한 마을 사람들을 끌어내어 사건의 진실을 똑똑히 목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때 빌보드의 붉은색은 진실을 까발리는 외설의 색인 동시에 안젤라의 몸에 붙었던 불의 귀환이다. 이때부터 빌보드의 붉은 이미지는 마치 주술처럼 차례로 다른 것에 옮겨간다. 윌러비는 빌보드가 언급될 때마다 피를 흘리고, 결국 얼굴의 메모지를 피로 붉게 물들이며 마치 빌보드가 얼굴을 덮친 것 같은 형상으로 죽음을 맞는다. 붉은 이미지는 빌보드에 붙은 불로 되돌아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결정적 장면과 마주한다. 까맣게 타버린 빌보드와 활활 타오르는 다른 빌보드. 밀드레드는 그 사이를 온몸으로 내달린다. 위선과 권위의 언어에 맞서 저항하던 그녀의 힘겨운 싸움은 이제 거대한 불길을 향해 질주하는 실루엣으로 드러난다. 그 무모하고 치열한 움직임은 뭐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비장하고 아름답다. 밀드레드는 경찰서에 불을 내고, 마침내 경찰서는 붉은색의 ‘안젤라 파일’을 세상 밖으로 토해낸다. 그 후 화상을 입고 입원한 딕슨은 웰비와 마주친다. 이때 딕슨의 시선을 오래도록 담아내는 시선 숏을 기억해보자. 이 영화에서 폭력을 응시하는 자들은 주로 흑인이며 딕슨은 과거 흑인을 고문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지금 본인이 고문한 자의 자리에서 본인이 폭행한 자를 응시하고 있다. 이 잔인한 자리바꿈은 끝내 딕슨을 변화시키며 그로 하여금 피해자의 자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밀드레드가 문구멍을 통하여 흑인 제롬을 내다보던 자리에 딕슨이 서서 인사하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딕슨은 범인을 잡기 위하여 온몸으로 폭력을 받아내고, 마침내 자신의 피 묻은 손 사이에서 단서를 찾는다. 그러나 결과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영화는 진실을 폭로하던 붉은색은 이제 잠들어버렸음을 보여주며(붉은 조명 아래 잠든 딕슨의 어머니와 붉은 티를 입고 잠든 아들 로비) 길었던 여정의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이 완연한 실패 앞에서 마침내 부활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딕슨이 되찾은 배지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피 흘리며 범인을 찾고 나서야 잃어버렸던 경찰 배지를 되찾는다. 이것은 밀드레드가 빌보드를 통하여 마침내 회복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영화는 무너지는 언어 속에서 몸을 던져 실체를 찾는 자만이 새로운 길을 떠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부활하는 것은 아마도 그 길을 떠날 수 있는 자격일 것이다.

<쓰리 빌보드>는 교묘한 말들로 실체를 옭아매는 세상에 대하여 마틴 맥도나가 선사하는 언어의 서부극이다. 그들은 쏟아지는 언어 속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향하여 뚜벅뚜벅 나아간다. 떠나가는 밀드레드와 딕슨의 모습 뒤로 빌보드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더 이상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자신이 경찰서에 불을 질렀다는 밀드레드의 고백에 딕슨은 뻔한 소리라고 응답하고 밀드레드는 환한 미소로 화답한다. 그들은 이제 남자를 죽이는 것에 확신이 없다. 아마도 남자의 공허한 말들을 의심하는 것이리라. 밀드레드는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하지만 그들의 답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영화는 잠자코 길을 가는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끝이 난다. 영화의 영향인가. 내게 <쓰리 빌보드>는 무수히 나부끼는 언어들 속에서 처절하게 빛나던 단 몇 장면으로 남았다. 그러므로 어찌하여도 이들을 언급하며 글을 끝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불붙은 빌보드 사이를 내달리는 밀드레드, 피 묻은 손을 떨며 글씨를 새겨 넣는 딕슨, 마지막에 그들을 감도는 무심하고 평온한 공기. 두말할 것 없는 걸작의 탄생이다.

비평에서 생략했던 부분들

1. 캐릭터와 언어의 사용

밀드레드

먼저 밀드레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체를 가리는 언어에 맞서 싸우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이 세계의 언어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광고를 하기 전에는 먼저 법적으로 ‘쓸 수 없는 말’이 무엇인지 묻죠. 이 웰비는 “ass”를 언급합니다. 밀드레드는 좋다고 대답합니다. 합법의 언어에는 법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죠. 반면 친구가 잡혀간 것에 화가 나서 경찰서에 갔을 때 그녀는 큰 소리로 “ass”가 들어간 욕을 합니다. 이것은 언어의 두 가지 층위(합법적 언어 / 비속어) 모두를 동원하여 싸움을 진행하겠다는 태도로 보입니다.

밀드레드와 윌러비의 대화는 두 언어의 싸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윌러비가 “사실 난 암에 걸렸어”라고 말을 하는 것은 곧 광고를 내려달라는 의미죠. 그러나 밀드레드는 그런 맥락을 거부하고 “알아”라고 대답합니다. 죽으면 효과가 없다는 말도 덧붙이죠. 광고를 둘러싼 화제의 맥락을 ‘자신의 건강’ 쪽으로 끌고 오려는 윌러비의 시도를 무마시키고 ‘범인 수사’ 쪽으로 다시 가져가는 것입니다.

반면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밀드레드 조차도 자식들을 대할 때는 말장난을 친다는 것인데요, 딸이 화가 난 결정적인 이유는 그녀가 차를 빌려줄 생각도 없으면서 “차를 빌려줄지 물어보라”고 말했기 때문이죠. 그녀는 아들의 말에도 의도를 피하며 말을 돌리는 행동을 자주 합니다. “old cunt”라는 욕에서 화가 나야할 부분은 “cunt”인데도 나는 늙지 않았다(“I’m not old”)라고 받아치고, 새들도 암에 걸리냐는 말에는 개들은 걸리더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늘 직설적인 진실의 말을 던지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인데, 이것은 그녀가 자식에 대하여 부모로서 언어 권력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밀드레드의 눈은 자주 진실을 향합니다. 그녀가 경찰서에서 맞은편 광고사의 직원과 레드를 보는 순간 역시 의미심장하죠. 이런 맥락에서 레드는 이성애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가 동성애자라는 딕슨의 추측과, 영화상에서 나오는 근거들(이것들은 관객을 속이는 역할을 합니다)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성애자가 아니며 밀드레드는 이 진실을 간파하고 미소 짓는 것입니다. 그 장면 뒤에 밀드레드는 다시 한 번 진실을 바라봅니다. 딕슨을 향하여 흑인 고문을 언급하는 것이죠. 딕슨은 자신은 고문하지 않았고 어머니도 인종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이 말은 거짓입니다. (영화의 초반에 딕슨을 보고 익숙한 얼굴이라며 침을 뱉는 제롬의 행동으로 보아 그가 고문한 상대가 제롬일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 볼 때 문구멍을 통하여 제롬이 보이던 자리에 딕슨이 서 있는 것은, 그가 피해자의 자리로 옮겨왔음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겠죠.)

윌러비 서장

윌러비 서장의 경우 소위 말하는 ‘좋은 말’들로 상황을 얼렁뚱땅 넘기는 행동을 자주 합니다. “고문 경찰을 모조리 내보내면 인종 차별적 경찰들만 남는다”(기억상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같은 말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언어의 외면을 중시하기에 아내가 음담패설 끝에 ‘오스카 와일드’를 언급하는 것을 듣고서 매우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가 권위적이고 위선적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이유는 그가 이 마을의 공권력의 핵심인 서장이기 때문입니다. 경찰들은 위선적 언어에 능하기에 말장난도 자주 하죠. “그냥 물어본거지 명예훼손한 게 아니야” 같은 대사가 대표적입니다. 그 말은 실체와 상관없는 언어 규칙을 내세워서 상황을 모면합니다. 이런 언어 사용은 상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대답하는 페넬로페와 비교하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윌러비 역시 언어 사용을 조심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딕슨을 대할 때인데요, 그는 딕슨과 대화할 때 욕도 곧잘 합니다. 그가 언어의 대외적 모습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그에게 딕슨은 유사 아들과도 같은 내부자이기에 자신의 언어를 검열하지 않는 것입니다.

딕슨

딕선의 경우 본인 스스로 말하듯이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합니다(어릴 때 영어를 못해서 노력했다는 대사). 그는 “눈이 이상한 아주머니”같은 표현을 썼다가 서장의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마지막에 새로운 서장이 남자가 복무한 곳에 대한 힌트를 줘도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윌러비 서장이 고 맥락을 사용하는 언어의 권력자인 반면, 딕슨은 이런 맥락들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그가 언어에 서툴다는 점은 영화에 등장하자마자 바로 제시되죠. 빌보드에 대한 질문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웃긴 상황을 만들어 내니까요.

밀드레드는 치과에 들러서 치과 의사의 손톱에 피를 냅니다. 이 장면은 거의 유일하게 밀드레드가 직접 행한 폭력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 뒤 밀드레드는 잠시 말투가 어눌해집니다. 이는 왜 딕슨의 말이 늘 어눌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의 말투가 늘 느리고 어눌한 것은, 그가 과거에 수많은 폭력을 자행해 왔음을 짐작케 합니다.

반면 딕슨이 언어에 서툴다는 점은 그가 밀드레드의 유일한 동료가 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그가 서장의 편인지, 진짜 범인을 찾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적어도 후반부터) 위선적인 언어를 버리고 직접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언어에 서투른 점이 밀드레드에게는 오히려 친근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말만 번지르르한 인물을 가장 혐오하니까요. 같은 이유로 그녀는 페넬로페의 순진한 태도에 자주 분노를 누그러뜨립니다(집에서 찰리와 싸울 때, 레스토랑에서 찰리를 만났을 때).

딕슨과 밀드레드의 관계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딕슨은 불타는 경찰서에서 이어폰을 끼고 서장의 유언을 읽는데요, 이어폰과 유언의 영향으로 딕슨은 주변에 불이 난 것도 모릅니다. 이때 딕슨의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는 것은 밀드레드의 화염병입니다. 화염병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지며 귀에서 이어폰이 빠지고 딕슨은 뒤를 돌아보며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죠. 밀드레드의 행동이 딕슨으로 하여금 새로운 소리를 듣고 새로운 것을 보게 할 것임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그 다음 장면에서 영화는 웰비를 보는 딕슨의 시선샷을 오래 보여줍니다. 딕슨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의 시선에서 화면은 네 귀퉁이가 붕대로 가려져 동그랗게 보입니다. 이후 이와 동일한 형태의 시선샷이 한번 더 등장합니다. 그것은 문구멍으로 문 밖을 내다보는 밀드레드의 시선숏입니다. 이때 화면은 딕슨의 때와 같이 동그랗게 표현되고, 이 장면은 딕슨의 시선숏에 뒤에 연이어 등장합니다. 둘이 유사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는 시선숏의 연대로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둘은 그 후에 부쩍 가까워지죠.

영화에서 딕슨이 화재 이후 갑자기 웰비에게 사과하고 밀드레드와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의문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 서사적으로 해석한다면 사랑을 가지라는 윌러비의 유언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딕슨의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는 밀드레드의 화염병, 딕슨의 시선숏, 밀드레드의 시선숏, 그 자리에 등장하여 밀드레드의 시선으로 포착되는 딕슨의 순으로 영화적인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밀드레드가 딕슨으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자리에 서게 하며, 이를 유사한 시선숏의 연속으로 다시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서장

새로운 흑인 서장은 경찰서의 분위기를 단번에 파악합니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글자가 안 보이냐가 아니라 글자를 못 읽냐고?”라고 되물으며 경찰의 오만한 언어 사용을 지적합니다. 서장임을 증명하라는 말에는 “꼭 보아야 알겠냐”고 호통을 치기도 하죠. 위선적 언어, 불필요한 절차를 버리고 실체를 보라는 뜻입니다. 이 맥락 역시 알아듣지 못하고 입증을 요구하는 딕슨은 그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그러나 그 역시 서장의 신분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딕슨에게 ‘기밀’을 언급하며 장소에 대한 힌트를 던지죠. 이는 ‘인권법’이나 ‘확증’을 운운하던 윌러비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그러나 그가 조금 다른 면이라면 실질적인 단서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맥락적 언어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딕슨은 당연히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중고차 세일즈맨 제임스

제임스는 ‘선의의 언어’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밀드레드를 만났을 때부터 “인터뷰에서 조리 있게 말하더라”고 칭찬을 하죠. 언어를 이용해서 싸우고자 하는 밀드레드의 욕망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또한 “밀드레드는 화재 당시 자신과 있었다”는 거짓말을 반복해서 하고, “사다리를 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모두 밀드레드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의 선한 언어 사용은 단연 돋보입니다. 그런 그도 상처받고 난 후에는 밀드레드에게 “웃지도 않고 경찰서에 불을 지른 여자”라며 선의의 거짓말이 아닌, 아픈 진실의 말을 쏟아냅니다.

범인으로 의심받는 낯선 남자

이 남자는 제임스와 대비되게 ‘위악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밀드레드를 찾아와서 “내가 죽은 윌러비의 친구라면?”, “내가 그 강간범이라면?” 이라며 실체 없는 악한 언어들을 쏟아냅니다. 그는 위악의 언어를 쏟으며 상대를 조롱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와중에도 밀드레드는 꿋꿋이 진실을 따져 묻습니다(“진짜야?”).

그는 토끼 인형이 7달러라는 말에 그 인형을 부수고서 이젠 아니라고 하죠. 그는 눈에서 사라지면 가치 또한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이 말이 딸을 잃은 밀드레드에게 얼마나 잔인한 폭력인지 아시겠지요. 그는 지금 죽으면 끝 아니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 로비

아들 로비는 엄마와 달리 진실을 보면서도 그것을 외면합니다. 그는 안젤라 케이스 파일도 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안젤라가 죽기 전 아빠와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전남편 찰리의 말에 밀드레드는 진짜냐고 따져 묻습니다(그녀는 또 한 번 진실의 말을 요구합니다). 이때 로비는 모르겠다고 말하죠. 그러자 밀드레드는 “알잖아, 로비”라고 말합니다. 아들이 자주 진실을 외면함을 알고 있는 것이죠.

2. 윌러비가 이 세계의 가해자이자 책임자인 이유

글에서 윌러비에게 ‘범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것은 직접적인 범인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더 넓게는 이 세계의 가해자이자 책임자임을 의미합니다. 영화가 주로 보여주는 쪽은 후자입니다. 제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밀드레드가 딸에게 “강간이나 당해라”고 말한 것을 후회하는 장면 뒤로 윌러비는 아내의 엉덩이를 더듬고 있습니다. 또한 윌러비는 침대에서 딸들의 눈을 감겨주며 재우죠. 그 뒤의 장면에서 윌러비가 아내에게 키스를 하는데요, 이때 잠든 아이의 얼굴과 키스하는 윌러비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너무 긴밀하기 때문에 모종의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물론 아내가 “아빠”라고 언급하는 것 역시 윌러비와 어린 여자들 사이의 성적인 긴장감을 은밀하게 암시합니다.

이것은 경찰과 어린 소녀들 간의 관계의 특성으로도 보입니다. 19세의 페넬로페 역시 전직 경찰 찰리와 관계를 맺으니까 말이죠.

윌러비는 아이들에게 낚시 게임을 시킨 뒤 뒤에서 부인과의 섹스를 즐깁니다. 이때 언어에 미숙한 아이들과 어려운 용어를 구사하는 윌러비의 대조적인 모습은 이 마을 전체의 모습으로 확대됩니다. 곧 불필요한 규칙과 권위적 언어로 사람들을 제자리에 묶어둔 뒤(실제로 그는 범인 검거를 얘기할 때마다 ‘인권법’, ‘확증’ 같은 절차를 요구하죠) 뒤에서 자신의 쾌락을 즐기는 모습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그 후 윌러비가 죽고서 아이들이 떠난 강가에는 곰인형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그다음 장면에서 인형에 돋보기를 대고 쳐다보는 딕슨의 모습으로 곧장 연결됩니다. 딕슨이 돋보기로 관찰하는 대상은 주로 피해자일 것인데, 이는 윌러비가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사이 피해자가 발생하였음을 드러냅니다.

윌러비는 딕슨더러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요, 실은 딕슨은 인종차별자이자 흑인 구타 혐의를 가진 사람입니다. 유책 한 사람이죠. 온 마을이 윌러비더러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윌러비 역시 무결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딕슨은 “서장님을 따라 사람들을 돕겠다”는 말과 동시에 레드를 흠씬 두들겨 패서 창문 밖에 던지기도 합니다. 윌러비가 폭력에 대한 책임이 있음이 여러 번 암시되는 것입니다.

윌러비의 유언 역시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딕슨에 대한 그의 유언들은 대부분 사실과 어그러집니다. ‘행운이 있으리라’는 말과 동시에 딕슨은 화염병을 맞고, ‘차분하게 행동하면 형사가 될 수 있으리라’고 말하지만 딕슨은 해고되며 범인 검거에 실패합니다. 밀드레드에 대한 유언 역시 유사합니다. ‘술집에서 범인이라고 떠드는 놈을 잡아서 범인을 검거할 수도 있다’는 말 역시 사실과 다르죠. 유언을 시작하며 ‘죽은 사람 윌러비’라고 하는 부분도 따지고 보면 사실이 아닙니다(살아있을 때 쓴 편지). 비평에서 언급하였듯이 자신의 죽음이 빌보드와 관련이 없다는 말 역시 이 영화적 세계의 진실이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유언들은 대부분 거짓말이며 ‘범인을 찾고 싶었고, 찾을 수 있을 것이다’는 말 역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수사를 했을지언정 규칙과 권위의 언어로 옭아맨 세계를 해방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이죠.

이 세계에서 어린 소녀들은 대부분 언어적으로 무력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녀들은 엄마의 농담에 걸려들기도 하고(차를 빌려달라고 해봐) 맥락에 숨긴 뜻을 읽지도 못합니다(페넬로페와 광고회사 여직원). 언어 권력이 실질적인 권력과 동일시되는 이 세계에서(언어 사용에 능한 경찰과 밀드레드는 강한 존재) 그녀들은 폭력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딕슨의 고문 혐의를 모른척하고, 경찰의 폭력을 농담으로 넘기고, 위선적 언어로 상황을 모면하는 윌러비는 이 폭력적인 세계의 체제 유지자이며 가해자이자 가장 큰 책임자일 것입니다. (여기에 서장과 어린 여자들 간의 성적인 연결을 암시하는 영화의 장면들까지 고려하면 그를 사건의 직접적인 범인으로 볼 여지도 있기에 ‘범인’이란 표현을 썼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것이 글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3. 언어의 서부극

영화는 밀드레드의 싸움에 서부극의 정취를 연결시킵니다. 밀드레드가 빌보드의 불을 끌 때도 서부극의 음악이 깔리죠.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경찰서에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이때 경찰서를 향해가는 밀드레드의 뒤로 서부극의 음악이 들려옵니다. 그녀가 뚜벅뚜벅 걸어가서 한 행동은 경찰들에게 욕을 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가 공권력의 언어 규칙을 깨부수는(경찰서에선 욕을 해선 안 된다는 모종의 규칙) 언어의 서부극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밀드레드는 빌보드가 불탄 후 침대에서 일어나서 토끼 신발을 가지고 인형극을 하죠. 그녀는 귀여운 두 개의 토끼 신발을 가지고 서부극에 나올 법한 대사들을 읊습니다(그 놈들에게 복수할 거야? 그럼 복수해야지). 이 장면에서 서부극의 요소를 가진 것은 오로지 밀드레드의 말입니다. 이 영화가 언어를 통한 서부극임이 다시 한번 드러납니다.

만일 이 세계가 진짜 서부극의 세계라면 밀드레드는 직접 범인을 찾아서 욕을 퍼붓고 총질을 해댈 것입니다. 자신만의 정의를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죠. 그러나 이 세계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 인권법, 확증, 기밀 같은 규칙에 가로막혀 있으며, 거친 언어를 쓰는 것은 교양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밀드레드는 “변호사와 광고 회사를 신뢰할 수 없으면 미국이 어찌 될지”라고 말하죠. 이것은 마틴 맥도나가 생각하는 지금의 미국 사회와 직결됩니다. 실체와 상관없는 광고가 판치고, 언어로 실체를 가리는 변호사들이 승리하는 세계. 그렇기에 밀드레드는 싸움의 도구로 언어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경찰서의 전면에 광고 회사가 있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죠. 밀드레드는 광고와 비속어 모두를 사용하며 이 세계의 싸움을 이끌어 나갑니다. 이것은 서부극이 불가능해져 버린 세계에서 마틴 맥도나가 언어로서 되갚아주는 서부극인 셈입니다.

4. 실패에서 시작하여 실패로 끝나는 이야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실패한 때로부터 활동을 시작합니다. 엄마는 딸이 죽고 나서야 범인을 찾기 시작하며, 딕슨은 해고되고 나서야 진짜 수사를 시작합니다. 이런 시도들도 물론 실패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밀드레드가 유일하게 기뻐하는 순간이 언급되는데요, 그것은 딕슨이 범인을 쫓던 순간입니다. 이 영화는 허울뿐인 규칙들을 뒤로한 채 몸을 던지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인 것이죠.

딕슨은 영화상에서 웰비를 폭행하고 나서 경찰 배지를 잃어버립니다. 서장에게 그때 잃어버린 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그 후 술집에서 남자로부터 폭행을 당할 때까지도 딕슨은 배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데요, 이후 어디서 찾았다는 말도 없이 그는 배지를 되찾아 경찰서에 반납합니다. 곧 어디선가 찾긴 찾았다는 것인데, 이 시기는 그가 화장실에서 피 묻은 손을 떨며 범인의 신상을 적던 순간으로 수렴됩니다. 즉, 그가 실제로 배지를 어디서 찾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몸을 던져 실체를 찾는 순간에 영화가 그를 경찰로서 복권시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밀드레드가 빌보드를 둘러싼 힘겨운 싸움에서 무엇을 회복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이제야 엄마로서 박탈된 자격을 되찾고 과거를 정리하고서 새로운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딕슨과 밀드레드가 차를 타고 떠나던 순간, 밀드레드는 자신이 방화범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때 딕슨은 “뻔한 소리”라고 말합니다. 딕슨이 이토록 누군가의 의중을 파악하며 원만하게 소통하는 모습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 딕슨의 모습에 밀드레드도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죠. 몸으로 세계를 뒤흔들며 활동하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순간입니다. 마지막에 그들을 감싸는 평화로운 공기는 마틴 맥도나가 그들에게 선사하는 작은 상찬과도 같습니다. 동시에 이 장면은, 어째서 우리가 무수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매일 집을 나서서 뚜벅뚜벅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쓰리 빌보드>는 실패로 시작해서 실패로 끝나버린 활동을 오롯이 긍정하며 끌어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쓰리 빌보드>를 잊기 힘든 이유겠지요.

※ 비평에 등장하는 추측들은 당연히도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언급들을 한 것은 영화를 보는 새로운 재미가 되시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 글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생각을 가로막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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