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금 촛대 | [교리비교] 계 1장의 ‘일곱 별의 비밀’의 참 의미는? 10311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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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는 ‘일곱 별의 비밀’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고(갈 1:8~9), 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면 재앙을 받고 거룩한 성에 참예함에서 제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계22:18~19). 이와같이 성경과 다른 거짓증거를 하는 곳에는 천국과 복이 없고 지옥과 저주만이 있을뿐입니다.
여러분께서 직접 영상을 보시고 어느 곳이 성경과 같은 참말을 하고 있고, 어느 곳이 성경과 다른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씨로 나서 참 말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참예할 것이고, 마귀의 씨로 나서 거짓말을 하는 자는 사단의 자식이 되어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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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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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별과 일곱 금 촛대의 비밀 (계 1:12:-20) – 수요예배 설교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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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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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유대교에서 촛대는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사람들의 순종을 상징한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제자들을 ‘세상의 빛’, 곧 세상을 비추는 촛대라 말씀하셨다. 일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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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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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노라 (일곱 촛대)

성경에서 일곱 촛대가 처음으로 소개된 곳은 출애굽기 25장이며,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세우라고 명령하셨을 때, 가지가 일곱 개인 금 촛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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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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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의 비밀

계시록에는 비밀이 3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이다.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 하셨고, 일곱 별은 일곱 사자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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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hinchonji144.tistory.com

Date Published: 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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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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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6. 7.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3PkDeRGflM8

일곱별과 일곱 금 촛대의 비밀 (계 1:12:-20) – 수요예배 설교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승리하는 신앙’의 저자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는 ‘무신론자였던 내가 목사가 되다니’라는 간증을 통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생후 1년이 되기 전에 고아가 되어 어린 시절부터 기쁨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열네 살이 되었을 때는 여느 공산주의자처럼 확고한 무신론자가 되었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인간에게 해롭다고 생각하고 종교에 대해 증오를 가졌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설교가 마음에 와 닫지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신론이 내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견디다 못해 가톨릭성당에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처럼 무릎을 끊고 그들이 하는 말을 따라서 기도를 했지만 나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그것은 나를 무척 슬프게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당신이 계신다면 당신을 믿는 것은 내 의무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에게 당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 당신의 의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 당돌했던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루마니아에 있는 어느 마을에 들어섰는데 그 마을의 어떤 목수가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열정적으로 환대하며 성경책을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에게 성경을 준 목수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죽기 전에 유대인 한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늙고 병들어 유대인을 찾아 떠나갈 수 없으니 유대인 한 사람을 우리 마을로 보내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목수의 기도와 리차드 범브란트의 기도를 동시에 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는 1948년 루마니아가 공산화되면서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14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게 됩니다.

그는 사상범이라 거의 독방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3년 동안은 빛도 거의 들지 않는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후에 그가 기적적으로 석방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고독하고 가혹했던 감옥생활 중에서도 어떻게 소망을 잃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감옥에서 성경을 수백 번 읽으면서 체크해 보았더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365번이나 나와 있더군요. 저는 위협과 두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 말씀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위로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삶 가운데 기쁨과 감사를 놓치는 것은 바로 나의 존재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것만큼, 나는 누구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만큼 큰 불안은 없는 것입니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가 빛도 없는 감옥 속에서도 평강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 하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정확하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요한도 늙은 몸으로 죄인과 같이 유배되어 그 형편과 처지는 너무나도 비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 알고 분명하게 있었기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크신 역사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나는 누구인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 오늘 본문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서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절의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 이 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한은 로마황제 도미티안의 박해로 밧모섬에 유배당했습니다.

그는 90이 가까운 노환의 몸이었지만 다른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채석장에서 돌을 캐는 중노동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그의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교회를 버리신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밧모섬에서 주의 날에 외로이 예배드리는 요한 앞에 주님은 일곱 금 촛대사이에서 일곱별을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여기에서 일곱 금 촛대는 무엇이고, 일곱별은 무엇입니까?

20절에 나와 있습니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회는 누가 붙들고 계십니까?”

주님이십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누가 붙들고 계십니까?”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교회는 교회의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만 교회의 운명은 지도자에게만 맡겨진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누가 붙들고 계십니까?”

주님이십니다.

“교회의 지도자를 누가 붙들고 계십니까?”

주님이십니다.

바로 그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어떤 때에 교회는 박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교인들이 흩어질 수도 있습니다.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곧 무너질 것 같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자들 같았지만, 사도요한까지도 주님께서 교회를 버리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주님께서는 일곱 금 촛대, 곧 교회를 보호하고 계셨고, 주의 사도들이 다 순교하여 모든 것이 끝나 보였지만 주님께서는 여전히 주의 종들을 그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 말씀의 메시지입니다.

처음 초대교회 때부터 세상의 권력들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말로 다할 수 없는 핍박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교회는 사라지지 않고 세계 속에서 더욱 성장하였고,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갖은 수를 다 쓰지만, 교회는 여전히 주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고 든든히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의 운명은 세상 권력자들과 돈 많은 부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또 교회지도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께서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교회를 붙드시고 일으키실 것입니다.

세상의 불의 속에 교회지도자들이 함몰되고,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 빠져 흩어지게 될 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을 욕하고 멸시할지라도, 주께서 의로운 오른손으로 교회와 지도자를 붙들고 계시기에 그루터기의 신앙으로라도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낸다면 반드시 기쁨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 교회를 붙드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에 교회는 결국 이기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교회의 주인이심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13~16절까지의 말씀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상징들이 너무 많아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이 일곱 금 촛대가 교회를 상징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 구절들은 교회를 섬기는 우리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금 촛대 사이에 계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교회에 임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러하신 성품으로 교회에 임재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구절들에서 ‘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뜻 7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13절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고 말씀하는데 이 비유는 교회의 거룩함과 영광을 뜻합니다.

발에 끌리는 옷은 하나님의 거룩한 대제사장이 입는 옷이고, 금띠는 그 영광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 거룩함을 잃어버릴 때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존경하지 않게 되므로, 교회는 반드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14절의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예수님의 순결하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하심이 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 선포되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순결하지 못하면,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땅에 버려져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엇보다도 흰 양털같이, 눈같이 ‘순결’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이어지는 “그의 눈은 불꽃같고” 라는 말씀입니다.

이 표현은 분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선과 악을 불꽃같이 분별하는 분별력이 교회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진리와 불법을 불꽃같이 구별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물론이고 그 사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악간의 분별력’은 교회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진단하는 척도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15절의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라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풀무불에 단련되었다는 말은 많은 고난 속에서 연단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순교의 정신이 필요함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순교의 정신으로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그리고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단련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라는 표현은 생명의 풍성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같은 성령님의 생명력에 대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구원의 소망과 기쁨과 위로의 주의 말씀을 끊이지 않는 생명의 생수처럼 이 땅에 선포해야 합니다.

여섯 번째는 16절에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다”는 표현은 20절에 나타난 것처럼 교회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교회지도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순결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교회지도자들이 거룩성을 유지하는 데에는 성도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특히 오른손이라는 표현에는 특별한 의미와 상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은 축복이 전달되는 매체요,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에 대한 비유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오른손으로 교회지도자들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게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는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권능’은 성도들이 악한 대적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거룩과 순결, 선악간의 분별력의 기초위에 성령충만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감이 없는 교회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이 7가지의 교회를 향한 예수님 뜻을 기억하고 행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날마다 생각하는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 예수님은 누구이시며,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무엇을 하시기 원하시는가?”

“우리교회가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세상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끊임없이 질문하며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결정의 답은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하실 것입니다”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 삶의 중심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능력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드실 것입니다.

주의 사자들을 통해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말씀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할 때, 우리들의 얼굴에는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은 광채가 날 것입니다.

3. 여러분, 요한계시록에는 아주 무시무시한 세 가지 계시적 단계가 나타납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라는 이러한 상상을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상징들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심판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악한 세상, 그러나 그 한 가운데 교회를 두시고, 교회를 통해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시는 주님, 그리고 역사는 주님께서 친히 다스리신다고 선포하시는 바로 그분….

교회는 때로는 더렵혀집니다.

성도들도 더렵혀집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여전히 거룩한 교회와 성도들을 뽑으셔서 주의 교회를 통해 역사를 이루시려는 주님의 의지를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1:15에 보시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결국 이 말씀은 교회가 넉넉히 이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사도요한은 절망의 때를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그치지 않고, 기도를 그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바라봄으로 결국, 주의 계시를 받는 영광스러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그 중요성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예배를 통해 더 큰 사명으로 나아가는 교회입니다.

더 큰 사명 곧,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을 풀어서 해석해 주어야 할 사명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맡겨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멸시하고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삶들을 조명해 주고, 그늘진 세상에 등불을 비춰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로서, 건강한 교인으로서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기로 결단할 때 비로소 세상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든든히 서 가는 세상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고백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일곱 금 촛대와 일곱별의 비밀을 저희에게 계시해 주셔서 감사하옵나이다. 주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이 일곱 금 촛대와 같은 우리 교회가 주의 거룩하심과 순결하심과 불꽃같은 의로움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언제나 생명수 샘솟는 샘터와 같은 교회, 주의 말씀이 권능으로 선포되어지는 교회, 성령의 역사하심이 좌우에 날선 검 같은 교회, 온성도의 얼굴이 은혜로 해같이 빛나는 교회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모든 축복의 통로는 예배인줄 믿사오니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더 큰 소망으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냉수 한 그릇

◈일곱 교회, 일곱 영, 일곱 금촛대 계1:4, 12 인터넷설교녹취

계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1. 일곱 교회

계시록에 7이란 숫자가 많이 나오는데, 이 개념을 잘 이해해야

7인, 7나팔, 7대접, 7뿔, 7교회, 7영.. 이런 표현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이 편지는 요한이 썼고, 아시아의 7교회에 보내진 것이다.

당시 소아시아에는 골로새, 히에라볼리 교회 등 다른 교회들도 많았다.

그런데 왜 굳이 7교회에게만 (이렇게 숫자를 맞춰서) 편지하는가?

당시 히브리 사람들은 숫자에다 특정한 개념을 부여했는데,

7이란 숫자는 전체, 충만, 완전, 완성을 나타낸다.

그래서 당시 소아시아에는, 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 말고도

다른 여러 교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7교회에 편지하노니..’ 라고 표현한 것은, 1:4a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을 초월한 전체 교회에게 썼다.’ 라는 뜻이다.

사도요한은 각 교회에 편지를 쓰고, 메시지를 주고,

맨 마지막에 동일한 말로 끝을 맺는다.

‘이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러니까 이 계시록은,

어느 특정한 교회들에게 쓴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전체 교회에게 쓴 것이다.

이 7이라는 숫자 개념은 원래 창세기에서 나온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번째 날 안식하신 것에서

‘완전수 7’ 이라는 개념이 나왔다.

그런 완성의 의미에서 7교회는, 전체로서의 ‘완성된 교회’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7인, 7나팔, 7대접도 그런 의미에서

즉 ‘심판의 완성’이란 의미에서 7이란 숫자를 가져다 쓰고 있다.

심판의 필연성, 현재성, 당위성, 긴박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심판의 이야기를, 7이란 완성이란 수를 요한이 도입한 것이다. 주1)

◑2. 일곱 영

▲1. 일곱 영.. 7교회에 보내진 ‘완전하신 성령’을 의미한다.

요한은 ‘7교회’라고 표현과 아울러.

‘7영’(일곱 영)이라고 했다.

7교회와 마찬가지다.

홀로 온전하시고, 완전하신 성령을 상징한다.

‘일곱 영은.. 7교회에 보내지신 완전하신 성령님이시다.’ 주2)

▲2. ‘일곱 영’은, ‘일곱 눈’이다.

7눈은.. 7교회를 감찰하시는 성령님의 완전한 눈이다.

계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위 본문은 ‘7영은 7눈’이라고 말한다.

그럼 그 의미가 무엇일까?

7영은.. 완전한 하나님의 성령이시고,

7눈은.. ‘눈’은 감찰한다. 본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감찰하심과 보심의 눈이 완전하다’는 뜻이다.

(※입곱 뿔은, 그 권세 가 완전하다는 뜻)

당시 성도들 입장에서 보면,

‘핍박당하는 우리 사정을 누가 알아주랴?’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7영은, 7눈/완전하신 눈으로서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며, 성도들의 딱한 사정을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 분은, ‘7뿔’, 그 권세도 완전하시다.)

※앞서, 계시록의 서론에서 ☞ 계1강 요한계시록 서론

계시록의 4백 여 구절 중에, 거의 3백 구절 가까이가

구약의 내용을 짜깁기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구약을 통해서, 계시록은 얼마든지 수월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7눈’을 해석하기 위해서, 구약을 뒤져야 한다.

‘7눈’은 구약의 어디에 나오는가? ↙

슥4:10,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7)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그런데 슥4:10절의 ‘일곱 눈’은, ‘다림줄’과 관련 있다. (영어성경을 읽어보시라)

일곱 눈은, 성령님의 완전하신 눈으로서,

온 땅을 두루 보고 계시며, 감찰하시는데,

마치 다림줄(어떤 기준, standard)을 갖고서, 온 땅/특별히 7교회를 감찰하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의 감찰(봄)은, 절대 완전하고, 절대 의롭다는 뜻이다.

◑3. 일곱 금 촛대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계1:12

‘일곱 금 촛대’는

당시 유대인 관점에서 보면,

스가랴 4장을 퍼뜩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성소의 7등잔(촛대)이 나오기 때문이다. 주3)

상상도 임.

▲슥4장의 환상은, 하늘의 성전,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고 있다.

천상의 하나님 나라, 성전을 묘사하면서,

그 성전이 지어져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순금등대에 7등잔이 있고, 그 양옆에 2그루의 감람나무가 있다.

그런데 그 감람나무에서 순금등대로 계속 기름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촛대에 불이 꺼지지 않는 장면이다.

천사가 스가랴에게 이 환상을 설명하는데,

네가 보는 그 모습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4:6

즉, 오직 성령으로 이루어진다.. 라고 설명한다.

▲슥4장은, 이어서 성전을 재건하는 스룹바벨의 이야기로 끌고 간다. 슥4:9~10

그러니까 이 장면은 성령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참 성전/참 교회의 모습이다.

성령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참 교회의 모습!

우리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교회다. 엡2:22

그 모습을 슥4장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이 나오는데, 스룹바벨이 누구인가? 주4)을 보세오.

그 성전을 짓는데, 벽돌이 모자라고, 이방인의 반발이 있고 해서

계속해서 성전 재건이 지연되고 있을 때,

선지자 스가랴가 ‘정말 성전이 재건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스가랴에게 하나님은

‘스룹바벨(예수님)이 재건하기 시작한 성전은 반드시 이루진다’ 라고 환상을 보여주신다.

성전은 결국 주전516년에 완성된다. (아래 계속 설명 나옴)

◑7교회, 7영, 7촛대의 연관성

▲에스라, 느헤미야, 스가랴서의 성전 재건은.. 신약 교회의 탄생/재건을 의미한다.

성경에 성전재건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스가랴서, 학개서, 에스라, 느헤미야.. 다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이다.

이 성전 재건 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성경이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묘사할까?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짓는다는 것은,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창조하시는,

즉 교회를 탄생시키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한다.

(예수께서 이 성전을 무너뜨리라. 내가 사흘 만에 새로 짓겠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구원의 모습, 새 창조/새 교회의 모습을

구약의 성전재건의 모습에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방해가 있어도 우리 구원은 완성되고야 만다.. 를 읽어내셔야 한다.

(그래서 슥4장의 환상에서 성전을 재건하는 스룹바벨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런데 그 일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장면이다.

오직 성령으로 될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그 일은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령으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묘사가

슥 4장에 ‘7촛대와 두 감람나무의 환상’이며,

그 환상에 빗대어,

요한은 묵시적으로 계1장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7촛대, 7영의 묵시적 표현을 동원해서..

▲성령과 교회의 연관성

계1:20절은, 7촛대는 7교회라고 말씀한다.

계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그러면 교회와 성령은 어떤 연관이 있기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을까?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완성하셨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하늘에 올라가서, 성령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래서 교회를 완성하셨다.

그 성령께서 교회인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 참 교회의 모습이다.

성령이 오셔야, 교회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과 교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리하면,

지금 스가랴서 4장의 환상은,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기름이 공급되고 있다. 그 기름은 성령님이시다.

그래서 그 기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촛대(교회)는 탄생되고,

성령님으로 유지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성령이 오심으로 탄생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성령의 조명과 인도와 충만을 받아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묘사한다.

▲적용

그 교회가 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땅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여러분 각자가 교회이다. 여러분은 이미 ‘불이 붙은’ 교회이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부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교회는 빛을 발하면서 살게 된다.

교회라는 것은.. 이렇게 성령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

교회라는 촛대에 불이 붙어서,

그것이 촛대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불이 붙어야 비로소 촛대가 된다.

교회와 성령은 불가분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7촛대’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탄생되고, 성령으로 빛을 발하게 되는 교회

라고 이렇게 (슥4장을 묵시적으로 표현하며) 설명하고 있다.

▲마치는 말 우리는 ‘보좌 앞의 일곱 영’, 즉,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으로 향하고 있는 순례자들이다. 나그네들이다.

주님이 계속해서 우리를 조명하고 계시고, 힘을 주고 계시고, 우리들 안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계신다.

감람나무에서는 지금도 계속 기름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 등불/촛대는 불타고 있다. 빛을 발하고 있다.

여러분, 힘 내셔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보좌 앞에 일곱 영’이란 말만 듣고도 (슥4장을 떠올리며) 그렇게 힘을 얻었다면, 우리도 동일한 평강 안에 거하셔야 한다.

(슥4장을 떠올리며) 스룹바벨이 그 엄청난 방해를 극복하고, 기어코 새 성전을 완성해 지었듯이, 하나님은 반드시 속히 그 교회를 지어가실 것이고, 완성하실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고 계신데, 누가 막으랴? 그러므로 힘을 내시라.

하나님은 ‘이미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복을 가지고, 우리에게 역동적으로 오고 계신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함께 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 마시라. 평강을 찾으시라. 은혜와 평강(계1:5) 그것은 우리 것이다. ▲우리는, 자기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증인들이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다.

교회는.. 이 땅에서 수천만 불짜리 건물 짓고 사람들 모아서.. 대단한 일 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면서.. 우리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이다

진정한 부흥은, 교회의 멤버들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지어져 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많이 모이고, 건물 큰 것 사는 것이.. 부흥인줄로 (잘못) 안다.

참된 부흥은 우리가/이 ‘교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빛을 발하는 존재로 잘 지어져 가는 것이 부흥이다. 하나님 보좌 앞의 여호와의 일곱 영이, 그 일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슥4:6, 계1:4

………………….. 더 읽으실 분 ………………….

▲(성막에서) 촛대는 지성소 앞의 성소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보좌(지성소) 앞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촛대에 불을 밝혀서

1년 365년 24시간, 불이 꺼지면 안 된다고 하나님께서 명하셨다. 레24:1~4

제사장 아론의 사명은, 그 등불을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레24:3~4

성막에서도 감람유를 끊임없이 촛대에 공급해서 등불이 꺼지지 않게 했다.

그게 제사장들이 했던 주요 업무 중 하나이었다.

그래서 옛 성전, 성막에는 제사장들이 감람나무 기름을 부지런히 날라야 했다.

그런데 슥4장, 스가랴 환상은, 감람나무에서 직접 기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옛언약과 새언약의 차이다.

옛언약에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무엇을 해야 했었다.

새언약에서는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저절로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기름/성령님이 하신다.

성막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다.

그 성막 안에 촛대(교회/성도)는,

그 하나님 나라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고,

하나님 보좌 앞에서, 그 하나님의 영광을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이다.

그 무리가 교회(성도)이다.

그런데 그 교회는 성령의 기름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 교회는 성령의 기름으로만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성령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 교회(성도)는 일단 불이 붙여지면, 영원히 불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성령을 소멸치 않으면…

당시 유대인들은 ‘보좌 앞에 7영’ 이란 말을 듣는 순간, 계1:4

슥4장의 7촛대(등잔)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구약에 능통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성막에서 지성소 하나님의 보좌 앞에 7등잔/금촛대가 있고, 거기에 기름이 공급되고 있으니까)

그 촛대에 부어지는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으로

촛대에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그 스가랴의 환상을 떠올리면서,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 슥4:6

바로 이 말씀을 떠올렸을 것이다.

스룹바벨 성전은 기어코 완성되어짐을 떠올렸을 것이다. 슥4:9a

그러면서 하나님 백성의 삶을 재확인 했을 것이다.

‘맞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는 교회다.

이렇게 소심하게 겁쟁이처럼 살 수 없다.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하지..’ 하면서 결단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교회이다.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게 하시는 교회이다.

그런데 정말 여러분의 삶 속에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그 빛이 비춰지고 있는가? 그 삶이 나오고 있는가?

그 불은 이미 2천 년 전 오순절 날에 성령이 교회에 오심으로 켜졌다.

여러분의 심지에 그 불이 붙어있는가? 빛이 나오고 있는가?

▲당시 계시록의 수신자들은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었다.

힘겨운 핍박과 고난에 겁먹고 있었고, 자신감을 잃고 있었고,

자폭하고 싶을 만큼 고통당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요한계시록을 받았다.

누군가가 이 계시록을 감동적으로 읽어주었을 것이다.

그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읽었을 때, 계1:4~5

그들은 감격했을 것이다.

그들은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은,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 우리는 지금 이렇게 약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이루시겠구나’

그 스가랴서의 일곱 촛대 옆에 있는 그 감람나무로부터

기름이 계속해서 공급되어서, 그 촛대에 불이 꺼지지 않듯이

우리는 이렇게 약하지만, 교회는 성령으로 탄생되었고,

성령의 기름공급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그 새하늘과 새 땅에 끌고 가시겠구나.. 하면서

평강을 얻었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평강이다.

여러분 크리스천의 평강은.. 아무 근심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전쟁이 나지만, 전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

고통이 없는 게 아니라, 고통이 있지만,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누리는 것,

-이것이 크리스천의 평강이다.

하나님은 왜 교회를 이 땅에 던져 놓으셨는가?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는’ 존재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과 경건을 연급하고 훈련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

그게 기독교요, 교회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에게 훈련교관을 붙이신다.

말도 안 되는 억지, 분냄, 짜증, 핍박, 횡포.. 이런 것들로 우리를 괴롭히신다.

그러면 우리는 인내, 사랑, 용서, 온유를 배운다.

‘어떻하다가 내 삶에 저런 원수를 만나서 내가 이 고생인가?’ 하지 마시고,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뭔가를 지금 가르치고 계시는구나!’ 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핍박과 환란을 기뻐하는 수준으로까지 올라가야 한다.

하나님이 세심한 관심과 배려로 여러분을 만들고 가고 계신다.

지어 가고 계신다.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기서 ‘보다’는.. 타토트리조마이/반영하다/반사하다/거울에서처럼 보다.. 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 내게 되어 있다.

이 시제는 현재형이다. 헬라어의 현재형은 계속 진행형이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빛으로 반사해내는 촛대로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위 말씀들은 그 빛을 발하는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어떻게 돌리는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오직 빛을 드러내는 성도의 삶을 통해서이다.

요일1: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세서 행하면, 빛이신 하나님처럼, 너희는 교회다. 라는 뜻이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이 되어라’가 아니라, ‘빛이다’ 이다.

성경은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에게,

빛을 받은 자로서, 빛을 발하며 살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빛을 발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 교회(성도)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은,

빛으로서, 빛을 발하며 사는 것이다.

무엇이 빛을 발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가?

빛으로 살다 가신 분(예수님)의 삶을 닮아 가면 된다. 그 삶을 본 받으면 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다.

요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그 빛이 왜 왔느냐 하면, 우리를 빛으로 만들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불을 붙여서,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해서,

그 빛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

주1) 완전수 7

레16:18 너희가 그렇게 되어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면

너희 죄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7배나 더 징치할지라.

여기서 ‘7배’도 딱 ‘7배나 더 벌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 전체, 충만 이런 뜻이다.

너희들에게 내려진 벌은, 중한 것이며, ‘필연적’인 것이란 뜻이다. *필연적 : 완전과 연결되는 이미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70번씩 7번 용서하라 하셨는데,

490번까지 용서하고, 491번째는 응징하라는 뜻이 아니고,

‘7’이란 ‘완전 숫자’의 의미를 놓고 볼 때

끝없이, 완전히 용서해라.. 는 뜻이다.

주2)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聖父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聖靈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聖子

위 구절에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일곱 영>의 전과 후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배치되는 것을 보면, ↖

<일곱 영>을 ‘성령 하나님’으로 해석하는 것은 맞다.

주3)

계1:12절의 촛대는 헬라어 ‘루흐니아’ 인데, 이 말은 70인역에 히브리어 ‘메노라’의 번역이다.

히브리어 ‘메노라’는 슥4장에 나오는 그 등장(촛대)이며, 성막의 성소에 있던 촛대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계시록 수신자 유대인들은, 촛대(루흐니아)란 말을 들었을 때,

금방 슥4장의 촛대(메노라)를 떠올리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덴뿌라 하면 오뎅이고, ‘이까’는 오징어이듯이, 루흐니아는 메노라이다.

주4) 스룹바벨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는데,

그런데 주전536년,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서,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한다.

스룹바벨은 1차포로귀환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총독)이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 왕의 손자이다. 그는 왕의 후손이었다.

그런데 그가 지도하여 성전을 재건하는데, 엄청난 방해가 있었다.

스가랴 선지자는 주전520년 경부터 사역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페르샤의 다리오가 애굽의 충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군대를 정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불똥이 또 자기들에게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방해하고 있었다.

주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했는데, 앗수르가 혼합정책을 쓰기 시작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수르로 데려갔고, 앗수르 사람들과 이방인들을 이스라엘 땅에 심어놓았다. 그래서 피가 섞였다.

남유다가 포로귀환을 하고 성전을 재건한다고 하니까,

북이스라엘인(사마리아 인)들이 자기들이 성전재건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남유다 귀환민들은, ‘너희 같은 더러운 혼혈자들과 협력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열이 받아서, 그 성전재건을 오히려 방해했다.

그 현장에 시체를 갔다 놓기도 했다.

그리고 (요4장 수가성 여인이 말한 것처럼) 사마리아 사람들은,

근처 그리심 산에다 자기들 자체로 성전을 지었다. 거기서 제사를 지냈다. ▣ 계시록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 요한계시록 1장 8절~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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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 요한계시록 1장 8절~20절

1. 하나님의 변증

① (8절)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에 대해 변증(辨證,apology)하신다. 이는 요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나는 선한 목자라”와 같은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의 형식, ‘나는 어떠한 존재이다(I am, I exist)’ 스스로 자신을 변증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기 자신이 누구신지에 관해 설명하시는 까닭은,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랐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도 삶에서 고난이 계속되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다. 믿음의 대표선수였던 욥도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고난이 계속되자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원망에 빠졌다.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 2:10).”,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 하니라(욥 3:1).” 1919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교회지도자들이 1940년 이후 독립이 묘연해지고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하자, 친일에 앞장서며 배교를 선택했던 것과도 같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로 시작되는 이 말씀은 계속되는 박해 속에 믿음이 흔들리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시는 세 가지 변증(辨證,apology)이다.

▶ 첫째,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글자(Α,α)와 마지막 글자(Ω,ω)다. ‘처음과 끝’을 뜻하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심판주심을 증거 한다. 지금은 비록 로마 제국의 천하지만 로마 제국의 황제는 세상의 주관자가 아니고,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선포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낙심과 절망 중에도 끝까지 인내와 소망을 권면하고 있다. 둘째,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공을 초월한다. 과거의 성경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은 미래에도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핵심은 맨 앞에 나오는 ‘이제도’에 있다. 고난을 만난 지금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버리셨다고 여기지만,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도’ 여전히 함께 계시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 ‘전에’ 기록된 성경은 잘 믿고, ‘장차 올’ 천국도 잘 믿는데, 정작 ‘이제’ 지금 삶에서 만난 위기의 순간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한다. 새541장은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의 작사한 찬송가다. “꽃이 피는 봄날에만 주의 사랑 있음인가, 열매 맺는 가을에만 주의 은혜 있음인가, 땀을 쏟는 여름에도 주의 사랑 여전하며 추운 겨울 주릴 때도 주의 위로 변함 없네!” 요한계시록은 순교자의 고백처럼 언제나 한결 같은 믿음을 전한다.

▶ 셋째, ‘전능한 자라’ 인간의 유한성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무한성,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 한다. 전능하심은 삶의 주관자, 곧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고백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관한 증언은 믿음의 원조 아브라함에게 처음 하셨다.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창17:1~2).” 99세의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온전하게 믿지 못했다. 그래서 아내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던 해,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대로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셨다. 이를 통해 아브라함은 비로소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 훗날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기꺼이 바칠 수 있었던 이유는 맹신이 아니라 삶에서 체험한 근거 있는 확신이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히11:19).” 죽어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삶의 주관자로 경외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으로 연결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누구나 자신이 경외하는 대상을 찾는다. 죽음, 종말, 위기와 같은 종말론적 상황에서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절망적인 상황과 환경 때문이 아니다.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 같은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으면 낙심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온전한 믿음을 증거 하고 있다. 삶에서 만나는 고난은 무엇을 경외하는지 믿음이 드러나는 때이자,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선물로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전대미문의 재난을 통과 하는 지금, 얕은 물가에서 헤엄치던 믿음에서 비가 오고 창수가 나는 재난을 이기는 믿음으로 나가야 할 때다.

2. 밧모섬의 사도 요한과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① (9절)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는 섬에 있었더니 ”

▶ (메시지성경) “예수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시련과 그 나라와 열정 어린 인내에 참여해 온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의 증언 때문에 밧모라는 섬에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를 믿음의 형제, 곧 하나님의 자녀라고 밝힌다. 믿음의 형제와 하나님 자녀의 조건은 단 하나다.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고난 함께’다. “자녀이면 또한 우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예나 지금이나 영광만 받고 고난은 안 받으려고 한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여기에 예외는 없다. 고난 없이 영광도 없고, 십자가 없이 부활도 없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모두 순교했다. 사도 요한만 생존해서 계시록을 썼다.

▶ ‘밧모라 하는 섬’은 소아시아 에베소 남서쪽 약 90km지점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유네스코문화 유산에 등재된 ‘파트모스’다. 로마 시대에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된 유배지다. 사도 요한은 왜 밧모 섬에 유배되었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이는 구약 성경이 증거 하는 메시아 왕국의 도래 곧 하나님의 통치와 신약 성경이 증거 하는 하나님 나라, 천국 복음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가리킨다. 로마제국의 황제가 통치하던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증거 하는 것은 국가의 전복을 노리는 반역죄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서 전해진 성경과 하나님 나라 곧 그리스도의 통치를 꿈꾸는 천국 복음은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한국교회가 민족의 독립과 나라의 해방에 앞장서는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친일 기독교혁신교단에 앞장서던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에서 구약 특히 예언서를 배제시키고 메시아, 그리스도, 왕, 구세주, 재림, 평화와 같은 단어가 들어간 찬송을 삭제하거나 개작한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경의 본래적 메시지를 상실한 채, 개인 구원과 교회 성장에 매몰되어 민족정신과 역사의식이 소멸한 원인과 배경이 여기에 있다.

② (10절~11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 (메시지성경) “그 날은 주일이었고, 나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우렁차고 쩡쩡한 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주의 날’은 원어를 살펴보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심판의 날이 아니라, 주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곧 주일(主日, The Lord’s Day)을 가리킨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전하는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요한에게 전한 주님의 음성은 지금부터 보여주는 계시를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글로 써서 보내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말씀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기록된 말씀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대적 배경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주후 70년 헤롯이 지은 예루살렘성전이 로마제국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서 파괴되었고,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에 의해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전 지역에 세워진 초대 교회들에게 주후 80년~90년경 도미티안황제에 의해 자행된 극심한 기독교 박해를 배경으로 한다.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 지역에 실제로 존재했던 초대교회 신앙공동체를 향해 박해 속에서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소망을 계시로 증거 하는 말씀이다.

▶ 더 중요한 사실은 요한계시록은 이천년 전 소아시아에 세워졌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라는 사실이다. 소아시아 지역에 실제로 존재했던 초대교회 신앙공동체를 향해 박해 속에서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소망을 계시로 증거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자주 등장 하는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로, ‘일곱 교회’는 특정한 교회를 넘어 핍박과 박해 가운데 있는 모든 교회들을 가리킨다. 해서 요한계시록은 시공을 넘어 초대교회와 같은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는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소망의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삶의 자리는 예루살렘성전의 파괴와 초대교회를 향한 로마제국의 박해다. 성전의 파괴는 믿었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의 표상이다. 성전이 무너져 내릴 때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요한계시록은 이천 년 전의 것이고 특정한 한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것이지만 성경의 기사가 다 그런 것같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경험하는 모든 시대와 상황에 동일하게 읽혀지고 적용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구약의 예언서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에게는 민족의 독립과 나라의 광복을 위한 비전이 되었다.

3. 일곱 별과 일곱 촛대

① (12절~16절)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켰을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달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 손에는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의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 ‘일곱 금 촛대와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는 무엇을 가리키나? 일곱 금 촛대는 스가랴가 본 순금 등대의 환상과 일치한다.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 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슥4:2)”,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는 다니엘과 에스겔이 본 이상과도 같다. “정월 이십 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단10:4~5).”,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대고 땅에 엎드렸더니(겔43:2~3).” 바벨론 포로기에 예언자들(에스겔, 다니엘,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비전을 사도 요한에게 다시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이들은 모두 절망의 순간에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았다.

② (17절~20절)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려져서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은 내 오른 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이고 ‘인자 같은 이’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使者)’다. 교회의 사자(使者)는 누구인가?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신저 곧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모든 종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2~3).” 일곱 교회의 사자는 순교와 배교가 뒤섞인 박해의 시대에 성도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명을 맡은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지금 사도 요한은 어디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초대 교회의 극심한 박해 가운데서 구약의 예언자들이 보았던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일곱 촛대 사이에’ 곧 박해 가운데 있던 초대 교회와 함께 계시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의 핵심은 ‘내 오른 손에 일곱 별의 비밀’이다. 이는 주님께서 오른 손으로 박해 가운데 절망하고 낙심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붙들고 계시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전하는 계시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지금도 주님께서 오른 손으로 교회의 지도자를 붙드시고 교회 가운데 운행하고 계시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죽음 같은 절망의 순간에도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촛대 사이에 운행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려지길 바랄 뿐이다.

* 메노라 (일곱 촛대)

히브리어는 메노라( מְּנֹרָ֖ה )라고 표기하는데, 이 4 글자(멤, 눈, 레쉬, 헤이 이 4글자의 조합)로 이루어진 글자인데, 각 글자마다 의미를 조합하면, “가장 높은 진리를 드러내는 삶(Life of overpowering to reveal the highest things)”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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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의 비밀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의 비밀

– 배도자의 비밀 –

* 본문 : 계 1:20

[계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시록에는 비밀이 3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이다.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 하셨고, 일곱 별은 일곱 사자라 하셨다. 이를 비밀이라 한 것은 일곱 교회 사자뿐 아니라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 이다.

이 일곱 교회와 일곱 목자(사자)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와 일곱 목자라면 비밀이라 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그것은 당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계시록의 일곱 금 촛대 교회(장막)와 일곱 별(사자)은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일곱 목자를 빙자한 비유이며, 계시록 성취 때 예수님이 세우신(계 1:12-16) 길 예비 장막과 사자이다.

계시록 17장에서도 음녀(바벨론)와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을 비밀이라 하였다. 이들도 옛 바벨론의 존재들이 아니고 계시록 때인 오늘날 나타난 자들이며, 이 또한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비밀 이라 한 것이다.

이 계시록의 사건은 예수님 재림 때 있게 되는 사건이며, 일곱 교회 일곱 사자의 일로 시작된다. 이들이 바로 계시록 2, 3장의 사자들이며, 6장에서 쫓겨난 자들이요, 8, 9장의 희생된 자들이며, 또한 이들은 13장의 배도한 장막 사람들이요, 16장에서 배도로 인해 진노의 대접을 받은 자들이다. 계시록의 모든 사건은 2, 3장에서 있게 된 사건이다.

초림 때 길 예비 사자는 세례 요한이었다. 이 세례 요한의 때에 대적자(뱀) 바리새인이 나타나 세례 요한의 성전을 멸망시킨 것(마 23장)같이, 오늘날도 계시록 13장에서 뱀 곧 사단의 목자가 선민을 멸망시키고 그 장막을 주관하였다. 오늘날의 일곱 사자(7별)는, 초림 때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등불 역사를 한 것같이 등불 곧 일곱 금 촛대의 역사를 한 것이다. 초림 때의 길 예비자 세례 요한 다음에는 말라기 3장에 약속한 목자 예수님이 오셨다. 이와 같이 오늘날 약속의 목자 이긴 자도 길 예비 일곱 별의 역사 후에 나타난다. 곧, 일곱 별 다음에 오실 분은 계시록 12장의 이긴 자이다(계 2, 3장 참고).

모세 때는 모세의 대언자 아론이 일곱 등불을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끊이지 않고 켰으며(출 27:20-21, 출 37:23 참고), 예수님 초림 때에는 세례 요한이 일시 켜서 비취는 등불이었고(요 5:35), 계시록 때에는 일곱 별이 일곱 금 촛대로 나타났다. 이 근본은 계시록 4장의 영계 하나님 보좌 앞 일곱 등불이며, 이것이 모세 때, 예수님 초림 때, 재림의 계시록 때 길 예비 역사를 하는 등불로 등장한 것이다.

● 초림 때 세례 요한의 사명과 결과

세례 요한은 말라기 3, 4장에 약속한 길 예비자로 온 엘리야이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라 하였다(요 1:23).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오리라 한 엘리야’라고 하셨다(마 11:1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기를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마 3:11, 요 1:32-34, 3:30).’고 했다.

세례 요한은 자기 말과 달리 양 떼를 예수님께 주지 않았고, 계속 자기가 세례를 주었고, 다른 곳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었다(마 11:2-12, 요 3:22-23 참고). 또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쟁변(爭辯)이 있었다(마 9:14-17).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였으며,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라고 책망하셨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 대해 “여자가 낳은 자 중에는 가장 큰 자이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는 크니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천국(예루살렘)은 세례 요한 때부터 침노를 당했다고 하셨고, 율법도 예언도 선지자도 세례 요한 때까지라고 하셨다(마 11:2-15). 이는 세례 요한의 때까지로 한 시대가 끝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며, 또 세례 요한은 일시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하셨으니 빛이신 예수님이(요 8:12, 12:46) 오심으로 끝인 것이다. 예수님을 시인했던 세례 요한이 시험에 빠져 처음의 믿음이 흔들렸고, 불신(不信)하는 말을 자기 제자들에게 한 것이었다.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세례 요한이 작다고 하였으니, 그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되었겠는가?

그의 죽음은 복음을 전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고, 악인들의 가정 문제를 간섭하다가 죽은 것이었다(마 14:3-12). 세례 요한의 영적 구원에 대하여는 사람이 ‘이거다, 저거다.’ 말할 수 없고, 심판 때 주께서 하실 일이다.

● 주 재림 때 신약의 길 예비자의 사명과 결과

예수께서 예언하시고, 세우셨고, 들어서 역사하신 일곱 별(사자)의 사명과 결과는 본 자만이 그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계시록에 기록된 사건의 시작 시점은, 일곱 별이 범죄한 일과 그것을 회개하라는 내용을 기록하여 편지한 그 때부터이다. 일곱 별의 장막은 사실상 당시 14년 간의 역사로는 급성장하여 수천 명의 성도들이 있었다. 계시록에 기록된 것은 사단 니골라당이 일곱 별의 장막에 들어온 그 때부터의 일이다. 계시록의 사건의 현장은 대부분 일곱 별의 장막이었다. 이 길 예비자 일곱 별은 그들의 장막에 침입한 사단의 목자(니골라당)에게 우상의 제물을 받아먹고 사단의 교훈을 받았으며 그들과 행음하였다.

이 때 예수님은 한 목자를 택하여 일곱 별에게 회개의 편지를 보내게 하시고 사단의 목자를 알려 주셨으며, 사단의 목자와 싸워 이기라고 하였다(계 1, 2, 3장). 이는 초림 때 세례 요한의 장막 예루살렘에 사단 바리새인 목자가 들어와서 우상의 제물을 먹이고 사단의 교훈을 받게 하고 행음하게 한 것과 같은 일이었다. 이 일곱 별이 있는 일곱 금 촛대 장막(계 1:20) 곧 계시록 13장의 하늘장막에서는 성도들이 용의 목자 짐승에게 표 받고 경배하였으니, 이는 열왕기상 11장에 솔로몬이 이방 신에게 경배한 것과 같다. 아담도, 솔로몬도, 세례 요한도, 일곱 별도 같은 입장에 처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들은 목자에 의해 양들의 처지가 달라짐을 보여 준다. 이 중 세례 요한은 이방 신의 목자에게 경배한 것은 없었으나,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 있었고, 그로 인해 결국 천국(예루살렘)을 침노당했다(마 23장). 그리고 광야로 나갔으니(마 3:1, 막 1:4), 요한복음 10장에 양 떼를 버리고 도망간 삯꾼 목자는 누구를 두고 말한 것이겠는가?

그리고 예수님과 예수님 이전의 목자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계시록 20:12에 ‘누구를 막론하고 다 백보좌(白寶座) 앞에서 자기 행위에 따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다(요 12:48 참고). 그리고 믿지 않는 자들도 둘째 사망인 불못에 던져진다고 하였다(계 21:8). 계시록 2, 3, 13장의 배도자들이 16장에서 멸망자들과 함께 진노의 대접을 받았다.

길 예비자의 역사를 등불의 역사라 함은 그 때 그 나라(이스라엘) 풍습을 빙자한 것으로서, 그들은 밤에 결혼식을 했고 등불은 신랑을 맞이하여 신부 집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길 예비 등불의 일곱 사자는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결혼식장(소와 짐승을 잡아 놓은)의 신부에게 인도하는 사명을 가졌다. 이 사명의 역할을 하는 자가 신랑을 신부 집으로 인도하지 않거나 신랑을 의심하고 맞아들이지 않으면, 신랑의 입장과 신부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오늘날 길 예비 등불의 사자가 미혹을 받아 성도들을 이방 신의 목자에게 붙여 그들의 표를 받고 경배하게 하고 장막을 침노당하게 했다면, 하늘 장막 곧 천국과 그 성도들을 이방(사단)에게 넘겨 준 것이 된다. 이 죄가 적다 하겠는가? 세상 교회에서는 이들을 큰 자라 하겠으나, 신천지 곧 천국에서 볼 때는 그 누구보다도 작다 할 것이다. 이러므로 이를 배도자라 한다. 이들에 대한 상벌(賞罰)은 주께서 판단하실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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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비교] #계 #1장의 # #’일곱 #별의 #비밀’의 #참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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