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차 문화 | [티히스토리] 차 문화의 발전 (한/중/일) 한방에 비교하기_Development Of Tea Culture In Asia (Korea🇰🇷/China🇨🇳/Japan🇯🇵) 상위 248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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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돌아온 차덕후의 티 히스토리💖
두번째 이야기는는 중국에서 시작된 차가
한국🇰🇷, 중국🇨🇳, 일본🇯🇵 3개 국가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에 대해
함께 알아보아요!
가까운 곳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온
세 나라의 차 문화, 신기하지 않나요😮?!
I’m back with an interesting tea history💖
And today we’ll see how the tea culture of Korea, China and Japan has changed in different ways.
Isn’t it so interesting that though they were so close and interacted together, but had developed in different ways😮?
#티덕후 #차의역사 #한중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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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녹차 문화의 배경을 알아본다! – Live Japan

녹차는 서양 많은 나라들, 찻집, 오가닉 전문점의 슈퍼마켓등에서도 취급하는 등 현재의 ‘녹차’에 대한 지명도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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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ivejapan.com

Date Published: 9/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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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차의 역사 일본차의 종류 말차의 효용 – 丸久小山園

중국에서는 말차를 마시는 문화가 차츰 사라지고 그 자리를 녹차가 대신한 반면, 일본에서는. 선종의 발달과 함께 다인 센노리큐(千利休、1522-1591)가 대성시킨 와비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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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arukyu-koyamaen.co.jp

Date Published: 3/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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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차(お茶) 문화 – 블로그 – 네이버

안녕하세요, 시사일본어사 홋카이도 통신원 김정은입니다. 제가 일본에 와서 사소하지만 한국과 다르다고 느낀 점이 바로 일본인들은 차(茶)를 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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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5/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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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차의 세계 – att.JAPAN

Culture · ‘일본차’란 무엇인가? 전차; 옥로; 호지차; 말차(연차) · 차를 마실 때 빠질 수 없는 다기 · 먹어도 맛있는 차 · att.JAPAN편집부가 추천하는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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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tt-japan.net

Date Published: 9/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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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차문화의 시작과 발달 – 브런치

센노 리큐 등장 이전, 초기 일본 다도는 선종의 사상에 기반하여 성립되었어도 무인들과 신흥 귀족들이 주로 향유하며 투다(鬪茶, 차 겨루기)를 즐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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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1/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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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일본 차문화의 이해 – 이근수

한국과 중국․일본 차문화의 이해-차도(茶道)와 차덕(茶德)과 차미(茶美) 이 근 수(경희대교수, 경영학박사) 1. ‘차’ 명칭의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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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aks.org

Date Published: 1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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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넘치는 일본 문화, 다도 란? 올바른 예절과 환대의 마음을 …

다도는 정해진 전통 예절에 준거 해 녹차를 점 (기) て, 손님에게 대접하는 행위입니다. 가루 녹차와 물을 그릇에 넣고 대나무로 만든 차筅 (차筅)에서 교반하여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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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jl.athuman.com

Date Published: 11/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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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차의 종류와 효능 정리! 전통차의 기본 | Osaka Metro NiNE

특히 말차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해외에서도 아예 Matcha라는 일본식명칭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죠. 여행객중에서는 진정한 일본의 문화를 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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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etronine.osaka

Date Published: 3/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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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차문화(茶文化) 비교 – 불교평론

일본의 경우, 14세기는 가마쿠라 막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문화와 종교의 요구로 차문화와 선종(禪宗)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차 공급량의 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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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udreview.com

Date Published: 12/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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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히스토리] 차 문화의 발전 (한/중/일) 한방에 비교하기_Development of Tea Culture in Asia (Korea🇰🇷/China🇨🇳/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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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일본 차 문화

  • Author: 이지티룸 Easy Tea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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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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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녹차 문화의 배경을 알아본다!

HOME 일본 녹차 문화의 배경을 알아본다! 일본 녹차 문화의 배경을 알아본다! 공개 날짜: 2019.07.18 녹차는 서양 많은 나라들, 찻집, 오가닉 전문점의 슈퍼마켓등에서도 취급하는 등 현재의 ‘녹차’에 대한 지명도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왔다. 녹차가 어떤식으로 그 역사를 시작하였는지, 지금까지 전해지는 일본의 전통문화의 하나인 “다도”는 어떤식으로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곳곳의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밀접하게 존재하기까지 발전하게 된것일까? 에 대해 알아보려한다.

근래 서양 쪽에서는 녹차가 디톡스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녹차 =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자동판매기, 편의점등에서 많이 취급되어 일상적으로 소비되고있지만 아직까지 해외에서는 녹차의 인식이라고 하면 건강에 좋은 특별한 음료수라는 인식이 강한듯 하다.

일본에서 녹차는 ‘차’뿐만 아니라 푸딩, 케이크, 쿠키, 롤케이크, 사탕, 초콜렛, 비스킷, 아이스크림 등 디저트류를 중심으로 많은 레시피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녹차 디저트의 종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당분간 기세가 꺾일 것 같지 않다. 서양에서는 아직까지 잘보지 못하는 진귀한 것이라는 취급되고 있는 녹차이지만 일본에서는 100년 이상의 깊은 역사가 있다.

녹차의 역사와 철학

차가 탄생된 경위에는 많은 설이 전해져 오지만, 가장 넓게 전해져 오는 설은 신노우(신농)의 설이다. 그는 고대중국의 신화상에 존재했다는 황제로 ‘농업’을 중국에 들여오고 ‘차’를 발견한 인물로 사람들은 믿고있다.

어느날, 신농은 물을 끓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서, 근처에 있던 잎들이 흘러들어와 물을 끓이고 있었던 솥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그 잎은 물의 색깔을 바꾸고 독특한 향을 내기시작하였다. 신농은 궁금하여 그 맛을 보기 위해 물을 입에 옮겼더니 그 맛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수풀에서 날라온 잎이 차의 원료가 되는 찻잎이였다고 한다.

또한 신농은 차가 가지고 있는 숨은 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식물과 허브와 그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실험했다고 한다. 실제로 허브, 찻잎을 그가 씹었다고 하는 자료가 남아있다고한다. 차의 기원은 기원전 273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그 해에 신농이 차를 발견했다는 설이다. 과연 신농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건가 이런 실험을 실제로 행했냐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이 설이 정말이라면, ‘차’가 음료로써 사랑을 받아온 것은 4,000년이 넘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현재의 녹차에 유래된 가루로써의 차의 형태는 서기 960년~1279년경 존재한 중국의 왕조송(王朝宋)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찻잎은 수확하면 증기로 데워서, 건조를 시키고 무거운 것을 위에 놓아서 분말상으로 만든다. 이런 방법을 쓰면 찻잎을 분말로써 용이하게 운반할수 있기 때문에 여행으로도, 운송으로도 중국 곳곳에 간단하게 운반할 수 있게되었다. 그 이유로는 분말상으로 된 차는 부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9세기가 되어서 불교학자 사이초(最澄)와 구카이(空海)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차의 품종을 가지고 돌아왔다고 전해져 오는데 이것이 일본에 처음 차가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도사 에이타다(永忠)는 천황을위해 녹차를 제작하여 사가천황에게 직접 차를 냈다고 전해진다. 천황은 음료로써 차를 아주 좋아하여 그것을 계기로 현재의 칸사이지역에 대규모의 차밭을 만들었다. 또한 사가천황이 즐긴 차는 이 시점에서는 아직 마차는 아니였다고 한다.

녹차

마차의 탄생은 그 수백년후의 일이다. 일본의 많은 전통과 관습과 마찬가지로 마차의 루트도 불교가, 특히 선(禅, 참선,수행)과 깊은 관련이 있다. 텐다이시절의 수도사 묘우안 에이사이(明菴栄西)는 1187년에 차와 선의 성서를 찾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에이사이는 먼저 분말상의 차의 컨셉트를 생각했다. 찻잎을 압축성형한 긴압차(緊圧茶)를 살펴보니 으깨어진 차의 잎으로 막혀있었다. 당시, 명상을 하기전에 차를 마시면 집중력을 지속시켜주는 작용이 있다고 전해져왔다. 중국에서는 이때 가루로 된 차에 대해서는 거의 단념했다고 전해지나 이 효과는 일본의 스님에 의해 중요시 여겨졌다고 한다.

에이사이는 여러 관점에서 왜 차가 인간의 신체에 좋은지, 차가 가져다 주는 이점, 차를 정확하게 마시는 법 등을 기록한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을 집필하였다. 그 책의 첫머리는 ‘차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가능성을 가지는 최고의 의학적요법이다’라고 쓰여져있다. 에이사이가 찻잎에 대해 얼마나 연구를 하고 있었는지는 첫머리 직후에 나오는 구절 ‘차가 음료로써 어떤 관점으로 인체에 효과를 가져오는지 왜 인기가 있는가’ 라는 부분을 읽으면 알수가 있다.

15세기까지해서 마차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린 계기가 된 선의 철학에 기초를 둔 다도가 탄생했다.

다성(茶聖) 센리큐(千利休)

다도는 마차의 만드는법, 마시는법을 당시 장군의 다도가로써 섬기던 귀족이나 무사에게 까지 퍼트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존재가 센리큐이다. 젊은나이에 차, 선에 관한 원리에 대해 공부한 센리큐는 1579년 오다 노부나가의 다도가가 되어서 노부나가가 죽은 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겼다. 또, 다도 때에는, ‘색의 조합을 즐기고, 순수하게 차를 즐기는 마음을 키워,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평정속에 차를 즐길것’ 이라는 것을 널리 퍼트렸다고 한다.

센리큐의 다도에 관한 가르침과 철학은 세개의 유파, 오모테센케, 우라센케, 무샤노코우지센케로 형성되었다. 이들의 생각은 센리큐의 유산으로써 지금까지 계승되어 특히 다도의 종교적인 측면, 정신적인 측면을 잘 표현한 것들이다. 그의 다도 중에 가장 유명한 말로 ‘차그릇에 먼지, 때를 씻어낸다고 한들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느냐’ 라는게 전해져내려온다.

오늘의 녹차

한 때, 다도는 마차를 즐기는 유일한 수단으로 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특권이였었다. 우여곡절의 시간이 지나서 나가타니 소우엔의 활약등에 힘입어 현재의 우지마차가 탄생, 마차를 여기까지 캐쥬얼한 존재로 바꿈과 동시에 현재까지 이어지는 다도의 전통을 잃는 일 없이 귀중한 찻잎을 일반시민에게도 널리 맛볼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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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차(お茶) 문화

일본인들의 차(お茶) 문화 일본 문화 관련 / 일본에서 놀자 https://blog.naver.com/japansisa/220749138549 시사일본어사 통신원이 전합니다

일본인들의 차(お茶) 문화

안녕하세요, 시사일본어사 홋카이도 통신원 김정은입니다. 제가 일본에 와서 사소하지만 한국과 다르다고 느낀 점이 바로 일본인들은 차(茶)를 많이 마신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는 녹차를 제공하고 있고, 일본인 친구들도 보통 음료수를 사서 마실 때 차(茶)를 사서 마십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렇게 차(茶)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차문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차(お茶) 문화의 시작

출처 : www.pinterest.com

일본의 차 문화의 시작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조선에서 다른 문화들과 함께 전래되었다거나, 일본의 승려가 당나라에서 차 씨앗을 일본에 가져와 심으면서 차문화가 시작되었다는 설이 주류입니다. 처음에는 불교의 승려들이 즐기던 것이었는데,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고, 16세기 후반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일본의 차문화가 발전되었습니다. 18세기 전반인 에도 시대부터는 모든 사람들이 즐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녹차)의 종류도 센차, 맛차, 호우지차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저는 녹차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것도 몰랐고, 일일이 구별하며 마셔본 적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호우지차’ 를 처음 봤을 때 ‘새로운 종류의 차다!’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w’

일본의 차(茶)라고 하면 생각나는 말차!

출처 : http://macaro-ni.jp/25702

여러분들은 일본의 녹차! 라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저는 말차가 생각나는데요, 많은 사람들은 일본의 차를 우려 마시는 차가 아니라, 가루로 분쇄한 말차(抹茶)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말차(抹茶)는 찻잎의 새싹이 올라올 즘에 햇빛이 없는 곳에서 재배한 찻잎을 증기로 찐 후, 미세한 분말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찻잎 자체를 먹는 것이다 보니 차의 모든 성분을 먹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군요! 찻잎을 우린 것보다 좀 더 진한 맛이어서 저도 말차를 정말 좋아한답니다! ‘-‘ 이런 말차는 마시는 차 이외에도 음식이나 스위츠 등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다도 – 말차 다도

출처 : http://www.veltra.com/jp/japan/tokyo/a/113996

이번에는 일본의 ‘말차 다도’ 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의 다도는 미의식을 나타내는 규율이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이 화합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그리고 다실과 다구를 청결하게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실에 온 손님은 조용히 앉아 침묵을 지키고, 주인이 완성한 말차를 받으면, 예의를 갖춰 마십니다. 위 사진에는 말차를 만드는 도구가 나와있는데요, 먼저 보통 도자기 재질인 찻그릇, 찻물을 끓이는 가마와 항상 가마 옆에 두며 가마에서 끓이는 물을 담아두는 물 항아리, 그리고 말차를 담아두는 차통과 말차를 꺼낼 때 사용하는 차시(작은 숟가락)가 있습니다. 또, 사진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말차의 거품을 내는 도구인 차선이 있습니다. 대나무 재질로 만들어진 도구인데요, 커다란 붓처럼 생겼습니다.

출처 : http://nikki.awayuki.net/archives/1069

차를 마실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다식이지요! 일본의 다실이나 찻집에서는 꼭 다식이 말차와 함께 제공된다고 합니다. 다식은 말차를 마시기 전에 먹는 과자인데요, 그 종류가 300여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진한 말차를 마실 때는 부드러운 생과자인 오모가시(主菓子)를 먹고, 연한 말차에는 마른 과자인 히가시(干菓子)를 먹는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연한 말차에 곁들이는 히가시입니다.

일본인의 차(茶) 사랑

출처 : http://www.101newsmedia.com/news/11325

일본의 편의점은 굉장히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이런 편의점에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차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시중에 판매되는 차들을 모아놓은 것인데요, 실제로 저렇게 많은 종류의 차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오차(お茶)라고 하는 녹차도 센차, 호우지차 등 여러 종류가 판매되고 있어, 편의점에 가면 어떤 녹차를 골라야 할지 고민이 되고는 합니다. 녹차뿐만이 아니라 자스민차, 보리차 등 각양각색의 차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또, 아무것도 섞여있지 않은 생수를 마시는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인들은 보통 저런 여러 종류의 차를 마십니다. 탄산 음료 등 다른 음료보다도 녹차나 보리차 등의 차를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 써클 활동에서 샤브샤브 파티를 한 적이 있는데, 모두들 탄산음료와 주스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를 마시는 것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정말 차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기사를 마치며

이번 기사에서는 일본의 차(茶)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물론 탄산음료를 마시는 사람들도 많지만, 차를 선호하는 쪽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학교 내에 있는 매점에 가도, 다른 음료들보다 차가 더 많이 진열되어 있고,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음료도 보통 ‘차’ 입니다. 또, 과자나 아이스크림에도 말차(抹茶) 맛은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차(茶)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일본에 차(茶) 여행을 오시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홋카이도 통신원 김정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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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차의 세계

‘일본차’란 무엇인가?

전차

옥로

호지차

말차(연차)

차를 마실 때 빠질 수 없는 다기

먹어도 맛있는 차

att.JAPAN편집부가 추천하는 일본 차 브랜드 ‘와즈카차

일본의 음식과 문화에 깊게 뿌리 내린 ‘일본차’.특히, 말차는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있다.그럼 ‘일본차’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아 보자.‘일본차’란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생산된 녹차를 의미한다.같은 ‘차나무’를 원료로 발효를 시키지 않고 만든 것이 ‘녹차’, 절반을 발효시킨 ‘우롱차’, 완전히 발효시킨 ‘홍차’로 분류한다.‘녹차’는 제조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분류된다.여기서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4종류를 소개한다.일본차를 대표하는 전차. 일본 전국 녹차 생산량 중 54.2%를 차지하며(2020년 통계) 녹차 중에서도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다.햇빛을 차단하지 않고 재배하여 찻잎을 쪄서 비비면서 건조시킨 차이다.고급 차라는 인상이 강한 옥로. 수확 전 20일 전후 차나무 또는 차밭 전체에 덮개를 씌워 햇빛을 차단하는 ‘피복’이라는 작업을 한다. 수확 후에는 전차와 같은 가공법을 거친다.향기로운 향과 깊이 있는 다갈색이 특징적인 호지차. 전차와 반차(새싹을 베어낸 찻잎과 크게 성장하여 딱딱해진 찻잎으로 만든 차)를 고온에서 덖어서 만든다. 덖는 과정에서 카페인이 날아가기 때문에 쓴맛이 없고 산뜻한 맛이 난다. 최근에는 과자와 라테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다도에서 자주 마시는 가루 형태의 차가 말차다.옥로와 같은 과정의 피복 작업을 하고 찻잎을 찐 뒤 비비지 않고 화덕에서 건조시킨 ‘연차’ 상태를 맷돌에서 곱게 갈아 가루 형태로 만든 것 이다.차 종류에 따라 사용되는 다기도 다르기 때문에 다기 고르기는 각각의 차를 음미할때 포인트가 된다. 특히 중요한 점은 차와 맞는 온도의 끓인 물을 따르는 ‘탕관’이다.약80도로 끓인 물로 달여 내는 전차에는 일반적으로 일본 가정에서 사용되고 있는 규스(주전자 모양의 차도구)가 어울린다. 일본의 규스는 몸통 옆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는 특징이 있다.50~60도 정도의 저온에서 달여 내는 옥로는 손잡이가 없는 보병이라는 주전자를 추천한다. 안쪽이 넓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 많으며 찻잎이 잘 우러나므로 옥로의 깊은 맛을 잘 낼 수 있다.먹어도 맛있는 차녹차를 달여낸 뒤 차 찌꺼기는 버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찻잎엔 많은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약70%가 물에 녹지 않고 찻잎에 남아 있다고 한다. 찻잎을 먹으먼 남은 영양소를 통째로 섭취할 수 있다.추천하는 방법은 남은 찻잎에 간장을 몇 방울 떨어뜨린 ‘차 오히다시(나물과 비슷한 요리)’.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 술안주로도 좋다.와즈카차는 ‘차의 낙원’이라 불리는 교토의 와즈카초에서 생산된 차다. 일본을 대표하는 차 브랜드로 일본 3대 차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우지차의 40%가 와즈카산으로 연차에 있어서는 일본 탑클래스의 생산량을 자랑한다.2025년 오사카・간사이 박람회 개최로 긴키지역이 국내외에서 주목 받을것을 예상한 지명도 향상을 지원하는 ‘지역 브랜드’에도 뽑혔다. 앞으로도 점점 인기가 높아질 것이 틀림없는 브랜드.※이 페이지 정보는 2021 년 11 월 현재 기준입니다.

일본 차문화의 시작과 발달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저장할 때 건조하게 하며

마실 때 청결하게 하면 다도는 완성된다.

– 초의선사(艸衣禪師, 조선 후기, 1789-1866)

다도(茶道)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차를 마시는 행위는 정신을 수양하는 활동(도를 닦는 행위, 道) 중에 일부였다. 이는 차를 처음 마시기 시작한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그것이 전해진 한국과 일본에서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다도는 종교와 관련이 있는데, 선종(禪宗)이라는 불교 종파 중 하나가 그것이다. 정신수양을 특히 중시했던 선종은 중국에서 시작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이때가 바로 현대까지 이어지는 다도가 정립된 때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다도를 확립한 인물로 센노 리큐(千利休, 1522-1591)를 꼽고 있다. 그를 다조(茶祖)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센노 리큐의 명성을 알 수 있다.

센노 리큐가 꾸민 다실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다이안, 1582, 묘키안에 위치.

센노 리큐가 활동하던 시기는 모모야마 시대( 桃山時代, 1573-1615)로 일본 정치권력 구조가 막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막부의 권력은 정점에 달했을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권세와 무사 정신을 보여줄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과 문화가 꽃피웠는데 그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소박하고 목가적인 건축물 또한 지어졌다. 이렇게 목가적인 건축물은 선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근면하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던 선종과 어울리는 다도문화는 막부 정권의 후원을 받으며 발달하였다. 센노 리큐 등장 이전, 초기 일본 다도는 선종의 사상에 기반하여 성립되었어도 무인들과 신흥 귀족들이 주로 향유하며 투다(鬪茶, 차 겨루기)를 즐기고 중국에서 들여온 미술품이나 공예품으로 서원을 장식하여 차회를 열어 부를 과시하는 사치가 유행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15세기 후반의 센노 리큐 등장은 일본 다도의 중요한 변환점이 된 셈이다.

센노 리큐는 작은 족자와 꽃 한 송이가 꽂힌 꽃병 외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수수한 다다미 두 장 짜리 다실을 설계하였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다실은, 센노 리큐가 완성한 와비차(侘茶, 청명하고 적막한 마음의 상태를 강조) 전통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가 꾸민 다실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초가집 다이안은 본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해 야마자키에 만든 것이었으나 이후 오야마자키의 묘키안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다실을 꾸미는 전통으로 일본인들이 추구하는 다완 역시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것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전해진 조선의 막사발이 다완으로 사용되며 일본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좌) 1867년 파리 박람회 일본관 (우) 박람회 전시실에서 다회를 시연하는 일본 게이샤들

동아시아 삼국은 모두 각자 조금의 차이를 보이며 차문화를 발달시켰다. 삼국의 다도 세계는 깊고도 심오하나 특히 일본에서 차를 마시는 행위는 곧 정신을 수양하는 것과 상통하고 다실과 다완을 정비함으로써 얻는 깨끗한 마음의 정비는 간단하면서도 온 마음을 다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일본인에게 다도문화는 일본인에게 중요한 활동 중 하나였고 현재까지도 다도에 대한 그 애정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일본 다도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현재까지도 ‘다도’하면 일본을 떠올리는 이유 중 하나로는 재미있게도 근대기 때 일본이 세계 박람회에 다수 참여했던 것이 있다는 점이다. 20세기 전후 일본은 근대화를 시작하며 서양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산업적으로는 열세였기 때문에 박람회를 통해 이미 서양에 자포니즘으로 유행을 일으켰던 적이 있던 자국 문화를 선보였다. 그중 하나가 다도문화였다. 1867년 파리 박람회의 일본 전시실에서는 일본의 게이샤들이 다회를 열고 관람객에게 접대를 하는 등을 통해 다도문화를 서양인에게 인식시켰다. 이미 18세기 즈음부터 일본의 도자기 공예품이 유럽으로 전래되었기 때문에 다완에 대한 정보가 있던 서양인들은 일본인들이 직접 다회를 하는 모습에 크게 흥미를 느꼈다. 일본 다도문화가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위의 두 가지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다도의 시작과 발달의 과정은 한 번의 글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을 정도로 가히 넓고도 깊다. 그것은 또한 중국과 한국의 차문화에도 역시 적용된다. 이토록 어려운 다도문화이지만, 근래에 들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는 다도문화를 즐기며 한 번쯤 ‘다도와 다완, 이것의 시작과 발달은 어땠을까?’ 하는 물음이 있는 분들과 생각을 나누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언젠가 한국의 다도문화도 다뤄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며 글을 맺는다.

매력 넘치는 일본 문화, 다도 란? 올바른 예절과 환대의 마음을 배우자│KARUTA

마음을 안정시켜, 녹차의 맛과 향기, 그 자리의 공간을 맛볼 다도.

그 깊은 매력은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로부터도 주목 받고 있습니다. 다도는 단지 차를 마시는뿐만 아니라 환대와 차 도구의 아름다움, 전통 예절 등 많은 일본적인 요소가 막혀있는 것이 인기의 비밀입니다.

“하지만, 다도라고하면 왠지 어려울 것 ……”

이렇게 느끼는 사람도 많은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이 글에서는 다도의 역사와 예절, 센 노리 큐가 말한 환대를 소개합니다.

일본 문화의 대표격인 다도 란?

먼저 다도의 개요와 역사를 설명합니다.

전통적인 스타일에서 차를 손님에게 대접 할

다도는 정해진 전통 예절에 준거 해 녹차를 점 (기) て, 손님에게 대접하는 행위입니다. 가루 녹차와 물을 그릇에 넣고 대나무로 만든 차筅 (차筅)에서 교반하여 세웁니다.

단순히 차를 즐길뿐만 아니라 손님을 대접 점 내외 (앞) 작법, 정원과 다실 등의 공간, 차 도구 등의 공예품, 가이세키 요리 나 과자 등 모든 예술 요소를 제공하여 일본 문화 중에서도 특히 높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다도의 역사

차 일본에 퍼진 것은 가마쿠라 시대의 무렵, 에이 사이라는 승려가 중국의 송나라에서 차를 일본에 가지고 온 것이 시초라고되어 있습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승려의 무라타 珠光 (무라타 수강)가 선 영성을 도입, 작고 간소 한 다실과 차분한 분위기의 ‘와비 차 (와비 위지) “을 시작합니다. 이를 현재와 같은 일본 문화로서의 다도의 원형으로 발전시킨 것이 다인으로 유명한 ‘센 노리 큐’입니다.

다도의 작법에 대해

다도에서 가장 높은 장애물을 느끼는 것이 「작법」는 아닐까요?

분명히 어떤 정해진 규칙은 있지만 포인트를 잡고 익숙해지면, 아무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서는 다실에서 앉는 방법이나 차의 세로 방법 · 마시는 방법, 다과 꼭대기 방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다실에서 앉는 방법

모임을 접대하는 주인 근처 먼저 주빈 인 정객이 앉아 있습니다. 이하, 次客 세 손님들 마지막에 포장하는 순서입니다.

정객은 주인과 상호 작용을하고 다과회를 진행합니다. 말석이라고 불리는 여기 포장은 돌아온 차 도구 등을 정리 등 다과회 지원을하는 역할입니다.

모두 중요한 역할을하기 때문에, 차의 경험이 풍부하고 폭 넓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정객과 여기 포장 2 명, 사전에 주인에 의해 임명되어 있습니다.

다과회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닌, 중간 쯤의 자리에 앉아서 안심입니다.

[記事を読んだあなたなら、このKARUTAの意味を知っているかも?]

차의 세로 방법 · 마시는 방법

· 차의 세로 방법

준비로서 녹차가 다마되지 않도록 토막 둡시다. 물은 연수를 끓는 것을 80 ℃ 정도로 식혀 둡니다.

우선 녹차 1 ~ 2g을 찻 숟가락 (찻 숟가락)에서 그릇에 넣고 국자 (국자)에 물 60 ~ 70㏄를 붓는다. 손으로 그릇을 제치고 차筅 (차筅)을 자주 움직여 교반합니다.

<용어 설명>

 찻 숟가락 (찻 숟가락) : 녹차를 떠서 그릇에 넣는 도구

 국자 (국자) : 물을 떠서위한 도구

 차筅 (차筅) : 녹차 거릴위한 도구

차筅의 움직이는 방법은 유파에 따라 다르며 裏千家에서는 치밀한 크림 거품이 서게 손목의 스냅을 치고 차筅을 움직이는 반면 表千家에서는별로 채찍 않도록 마무리 때문에 차筅를 부드럽게 이동 밖으로 차를 세웁니다.

· 차 마시는 방법

먼저 그릇을 오른손으로 가지고 정면에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도 예법 (앞)받습니다 “라고 주인에게 인사를하고 그릇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도안이있는 그릇 앞에 입을 붙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왼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2 회 그릇을 돌려 보자. 차를 3 ~ 4 번에 나누어 마시고, 마지막으로 마신이라는 신호로 소리를 내며 빨아 키리합니다. 그리고 술 맛을 손가락으로 닦아 손가락은 懐紙으로 닦으십시오.

마지막으로 왼손에 2 번 그릇을 반 시계 방향으로 돌려 정면에 다시 나온 위치에 놓습니다.

이번에 소개 한 것은 裏千家 흐름이지만, 유파에 따라 마시는 방법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다과 꼭대기 방법

다과는 녹차의 맛을 더 돋보이게하기 위해 차를 마시기 전에받는 것입니다.

주인에서 “과자를 부탁합니다”라고 권유 후 인사를하고 일인분을 懐紙에 걸립니다. 그리고 다음 손님에게 “먼저에”한마디 인사를하고 받아보세요.

다과는 懐紙마다 손바닥에 올려 큰 것은 이쑤시개로 끄거나 만두의 경우 손으로 나누는 등, 차가 나오는까지 먹고 자르는 있도록합니다.

懐紙이나 이쑤시개 등의 과자 이쑤시개는 미리 준비해 둡시다.

다도의 환대를 배우자

이제 세계 공통어라고도 말할 수있는 「대접」입니다 만, 다도에서는 그 주춧돌을 쌓아 올린 센 노리 큐의 가르침이 짙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도의 환대의 정신 “리큐 일곱 법칙”

센 노리 큐가 말한 환대의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있는 다도의 일곱 가지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리큐 7 법칙”

1. 차는 옷의 좋은 같이 세로 (차는 손님의 상황이나 기분을 생각 세로하십시오)

2. 숯은 물이 비등 놓고 (준비는 포인트를 제치고 정확하게 할)

3.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 따뜻한으로 (대접은 도구 나 과자를 이용하여 상대방이 편하게 느끼도록하는)

4. 꽃은들에있는 것처럼 활 (꽃 본래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바탕으로 본질을 표현한다)

5. 刻限 일찍 (아무것도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할)

6. 내리지 않고도 비오는 준비 (어떤 경우에도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상대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한다)

7. 相客에 心せよ (주인과 손님, 그리고 손님 끼리도 서로를 존중하고 마음을 나누어주십시오)

상대를 배려 섬세한 곳까지 배려를 해 만전을 다한다는 바로 환대의 정신의 본질을 말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것이 무슨 상관 이죠? 함께 일본어를 배우지 않습니까? ]

다도 대접을하는 때의 주의점

「일기 일회」는 다도의 마음가짐을 나타내고 있고, “그 다과회를 일생에 한 번 뿐인 기회 포착 환대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 그 시간을 소중히하는 것”이라며 있습니다.

환대하는 지점으로 계절의 꽃을 장식하거나, 향과 아로마 향기의 연출을하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배부하고 고객이 기분 좋게 보낼 공간을 연출합시다. 긴장하고 차의 맛도 즐길 수 없게되어 버리므로 적당한 대화를 끼워하면서 부드럽게 모임을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를내는 타이밍은 고객이 좌석에 앉아 당장은 아니라 한숨 차분한 무렵을 가늠해 내놓으합니다.

느긋한 시간을 즐기고 돕기 위해 초조해하는 일이 없도록 섬세한 배려가 중요합니다.

또한 차의 즐거움은 향기와 맛뿐만 아니라 그릇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그릇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그릇의 디자인은 고객의 앞쪽으로 냅시다.

정리

무로마치 시대부터 발전을 계속 계승되어, 이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일본의 다도. 그 매력은 녹차의 맛은 물론, 간단한 다실에서 와비 사비를 맛볼 선 영성과 센 노리 큐가 말한 “손님을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서비스 정신”에있는 것이 아닙니까 여부.

다과회가되면 처음에는 주눅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집에서 자신을 위해 차를 세우고 좋아하는 그릇에서 천천히 맛 본다는 것도 추천합니다.

계절의 꽃과 다과를 준비하고, 마음 진지한 시간을 보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미니 레슨 코너

일본과 일본어에 대해 배우자!

“90 초에 아는 엽차 도로라고 말차를받는 다도와 무엇이 다른가?”

이 기사는 Nihongo Biyori 에 게재 된 기사를 KARUTA에서 일부 재 편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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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차의 종류와 효능 정리! 전통차의 기본

● 전통 일본 차의 세계를 알아보자!

이번 테마는 말차입니다. 식후에 찻주전자로 차를 직접 우려서 마시거나 슈퍼나 편의점에서 페트병으로 구입하는 등 간편하게 수분을 보충할 수 있는 매우 친근하고 대중적인 음료입니다. 음식점에서 음식이 나오기전 말차를 먼저 마시게되면 자연스레 요리에 대한 기대도 높아집니다.

특히 말차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해외에서도 아예 Matcha라는 일본식명칭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죠. 여행객중에서는 진정한 일본의 문화를 알고 가기위해 다과회에도 참가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해요. 아래의 모습처럼 어둠 속이나 야외에서 먹는 색다른 다과회도 있답니다.

친밀한 듯하면서도 의외로 모르는 일본녹차의 세계를 함께 즐겨봅시다!

● 차 업계의 판도, 그 비밀은 역사에 있다!?

2021년 봄, 차 업계에서는 어떤 충격적인 발표를 하였습니다. 차 산출액(매출액)에서 50년 이상 일본 제일의 자리를 지켜온 시즈오카 현이 처음으로 가고시마 현에 밀린 것입니다.

2019년 차 산출액/농림수산성 1위 : 가고시마 (252억엔)

2위 : 시즈오카 (251억엔)

공동3위 : 미에(66억엔), 교토(66억엔)

5위 : 후쿠오카 (35억엔)

차라고 하면 시즈오카, 교토가 아니었어!?라는 인식이 차 업계의 판도를 뒤짚히는 날이었습니다. 가고시마가 매출액 1위를 달성한 이유는 바로 역사에 있습니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차 재배가 시작된 것은 가마쿠라 시대(1185-1333년). 중국에서 선종을 배운 승려들이 차 조제법을 일본에 전파해 우지(교토부)야 이세(미에현) 스루가(시즈오카현) 하치메(후쿠오카현) 등 각지에서 다원을 개최하였습니다.

15세기 중반 선(禪)의 정신을 도입한 ‘간소하고도 차분한 아취를 느낄 수 있는 차’ 이른바 ‘와비차(佗び茶)’가 생겨나고, 센노 리큐(千利休)가 ‘다도(茶の湯)’로 완성되자 무사들 사이에서 특히 우지차의 평가는 높았으며, 히데요시와 노부나가, 도쿠가와 쇼군 등 시 권력자들로부터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센노 리큐(千利休, 1522 – 1591) : 일본 전국시대의 다인(茶人). 와비차(わび茶) 사상 등, 참선을 접목한 다도법을 확립시켰으며, 일본에서 다성(茶聖,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무사들의 시대가 끝나고 메이지 시대(1868-1912년)가 되자 일자리를 잃은 무사들이 시즈오카 현 각지에서 다원을 개간하여 일본을 대표하는 차의 명소로 발전했습니다. 한편 가고시마에서 차 재배가 활발해진 것은 그 제 2 차 세계 대전 후의 일입니다. 온난한 기후나 평지의 많음을 무기로 첨단 기계화를 진행시켜 일본 최고의 차 산지가 되었습니다.

● 일본을 대표는 차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전차, 옥로, 녹차… 그 중 일본차 하면 일단 떠오르는 건 이런 말차입니다. 그 원료가 되는 것이 차나무. 우롱차나 홍차도 같은 차나무로 되어 있어, 차이는 발효의 정도에 따라 차의 종류를 구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따낸 잎을 바로 가열하여 발효를 멈추면 말차, 반정도 가열한 것은 우롱차, 완전히 발효시킨 것이 홍차입니다. 고소한 풍미가 특징인 호지차는 색은 갈색이지만, 전차를 볶은 것이므로 말차와 같은 종류입니다. 그럼 대표적인 말차 종류를 제조법별로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차(센차, 煎茶)

색상 : 투명한 황금색~연두색

맛 : 단맛 · 쓴맛 · 떫은맛의 밸런스가 좋다

향기 : 신선하고 상쾌하다.

특징 :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으며 항상 새로운 브랜드가 생겨날 때마다 큰 인기를 끈다. 제조 공정에서 생잎의 오래동안 끓여낸 후카무시센차(深蒸し煎茶) 라고 하며,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옥로차(교쿠로차, 玉露茶)

색상 : 옅은 연두색

맛 : 단맛이 강하고 산뜻하다

향기 : 파래같은 독특한 향

특징 :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피복재배로 만들어지는 고급차의 대명사. 매니아층은 작은 콩사발로 조금씩 맛을 본다.

말차(맛차, 抹茶)

색상 : 선명하고 크리미한 연두색

맛 : 강한 쓴맛 속에서 풍부한 맛을 낸다

향기 : 잎의 신선한 향기

특징:피복재배로 만드는 맷돌로 갈아 만든 것. 다른 차와 달리 찻잎의 영양을 그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포인트.

호지차(ほうじ茶)

색상 : 밝은 갈색

맛 : 카페인이나 타닌이 적어 마시기 편함

향기 : 향기롭고 풍성한 향기

특징 : 엽차, 엽차, 줄기차를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서 만든다. 최근에는 호지차를 사용한 푸딩이나 초콜릿도 인기.

현미차(玄米茶)

색상 : 옅은연두색

맛 : 쓴맛 · 떫은맛이 적고 깔끔한 맛

향 : 쌀의 단맛과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특징 : 차에 여우색이 될 때까지 볶은 쌀을 블랜딩한 것. 일본산 플레이버티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번에 소개한 것 이외에도 말차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요. 또한 찻잎의 품종과 산지에 따라 맛이 다른 것도 지역의 역사와 문화 차이입니다. 일본에 여행하시면서 본인에게 맞는 차를 찾아보는것도 테마중 하나일겁니다.

● 매일 꾸준히 마시고 건강하게! 일본녹차의 효능

옛날에는 약으로 먹던 말차. 쓴맛 · 떫은맛 · 감미 · 단맛, 말차의 영양 성분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 카테킨

말차의 떫은맛 성분인 카테킨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 비만 등의 생활 습관병 예방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항균효과가 커서 감기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감기가 신경 쓰이는 계절에는 차로 가글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2. 카페인

졸음을 쫓거나 피로회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카테킨.말차의 쓴맛의 근원이며, 전차나 옥로차에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3. 테아닌

감칠맛과 단맛의 토대가 되는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급 엽차나 옥로 등 고급차일수록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카테킨과 카페인은 고온의 물로 내리면 성분이 녹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침 기상시간이나 집중하고 싶을 때는 따뜻하게 하고, 취침 전이나 위장이 약해져 있을 때는 미지근하게, 그 때의 상황에 맞게 마시는 방법을 바꾸면, 보다 말차의 효능을 몸소 느낄 수 있습니다.

● 유래를 알면 재미있는, 차에 얽힌 이야기

우리들의 생활에 친숙한 일본차. 그렇기 때문에 차에 관련되는 관용구도 많이 있습니다.

1. 찻줄기가 서면 재수가 좋다.

차를 우려냈을 때 찻잎의 줄기나 축이 찻잔 안에 선 상태로 떠 있는 것. 드물기 때문에 길사(吉事)의 전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물코가 달린 주전자는 줄기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좀처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2. 차를 갈다

딱히 할 일이 없고 한가한 날에서는 유곽 등에서 손님이 없을 때, 유녀가 맷돌에 찻잎을 가는 작업을 하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3.차를 탁하게 하다. ( = 불리한 상황을 얼버무려 무마시키는 행동)

적당히 얼버무려 임시변통 하는 것. 다도의 예절을 모르면서 차를 탁하게 해서 말차처럼 보이게 한 것이 어원으로 알려져 속담으로 쓰이고있습니다.

4.오름(아가리, あがり)

갓 우려낸 차를 뜻하는 ‘오름꽃’의 약자라고도 하여 초밥집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원래는 손님이 아니라 가게 측이 사용하는 은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초밥집에서 나오는 차의 대부분은 찻잎이 고운 가루차가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일본 차의 세계. 이번에는 차의 기본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맛있게 끓이는 방법과 다도, 즐기는 방법 등, 일본 차의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오사카에서 차의 매력을 만날 수 있는 멋진 장소를 찾아서, 지금부터 리서치해 보려고 합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한국과 일본의 차문화(茶文化) 비교

* 이 글은 불교평론과 경희대 비폭력연구소가 주관하는 열린논단(2017년 2월 16일)에서 발제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이 발제문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 〈草衣와 利休의 禪茶文化 비교 연구〉(동국대학교, 2012)와 《한국불교학》(한국불교학회, 2017) 제81집에 게재된 〈와비차(侘び茶)의 禪세계 고찰〉의 일부 내용이 수정 보완되어 함께 수록되었다.

1. 들어가는 말

한국과 일본의 차문화(茶文化)는 다르다. 그러나 한편으로 초기의 차문화는 비슷한 전개양상을 보였으며,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전개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지리적으로 근접한 거리에 있고, 역사적으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밀접한 관계에 있는 양국의 ‘문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비슷하다’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양국의 차문화가 서로 ‘다르다’라는 인식은 16세기를 전후로 하는 양국의 차문화의 현실에서 비롯된 듯하다. 좀 더 넓게 기간을 잡아보자면 14세기 후반, 조선의 건국을 기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다.

한국의 입장에서 살펴보자면, 이 무렵 차문화는 침체기로 들어섰으며 이후 일제 식민지하와 6 · 25 등의 암울한 민족의 역사와 함께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조선 후기 초의선사(草衣禪師)에 의해 차문화의 중흥을 이루기도 했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고, 1970년대에 들어서야 서서히 활성화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14세기는 가마쿠라 막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문화와 종교의 요구로 차문화와 선종(禪宗)이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차 공급량의 증가와 함께 대중화가 이루어졌고, 16세기에는 ‘와비차(侘び茶)’라는 독특한 문화가 완성되었다. 이 무렵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기이다. 조선으로 보자면 큰 전란으로 인해 차문화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쇠멸했지만,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의 경우는 최고의 융성기였다.

이러한 상반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의 차문화는 극명하게 다른 양상을 보여 왔다. 이 발제문에서는 이러한 양국 차문화의 흐름을 시대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의 먼저 살피고, 차문화의 중심에 있는 두 인물, 초의(草衣)와 리큐(利休)를 통해 양국의 차 정신과 문화의 차이를 엿보고자 한다. 또한 그들의 차 정신과 연결되는 민족 정서, 다시 말해 양국의 차문화에서 강조되는 정서적 특징을 찾아보고자 한다.

2. 한국과 일본의 차문화 전개

1) 한국 차문화의 흥망성쇠

한국에 차문화가 유입된 것은 사료에 의한 기록으로 보자면 7세기 무렵이다. 《삼국사기》 흥덕왕 3년(828)에 당(唐)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大廉)이 귀국길에 차 종자를 가져왔는데, 이를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다는 내용과 더불어, 차가 이미 선덕여왕(재위 632~646) 때부터 있었으나 이때 이르러 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7세기 선덕여왕 재위 시에 이미 차가 유입되어 있었고, 9세기에 이르러서는 왕명으로 차밭을 만들 정도로 차에 대한 인식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차문화의 융성기는 고려시대(918~1392)이다. 삼국의 차문화는 그대로 고려로 이어져 더욱 발전하였다. 각종 국가 행사의 일환으로 차 의례가 시행되는가 하면, 차와 관련한 일들이 제도적으로도 완비되었다. 왕실에서는 왕의 하사품으로 차가 사용되었고, 태자 탄생 의례, 태자 책봉 의례, 혼인례 등의 각종 왕실 의례와 팔관회, 연등회와 같은 국가적 불교 행사, 사신 맞이 의례에서도 차는 중요한 물품이었다. 또한 죄의 형을 선고하고 왕의 재가를 구하는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를 행할 때도 사용되었다. 왕실과 관련된 차를 전담하는 곳으로 다방(茶房)이라는 관청을 두었고, 다방에는 다군사(茶軍士)라고 하여 다구와 짐을 나르는 군인이 별도로 있어 왕이 행차할 때 함께 수행하였다. 사헌부에서는 ‘다시(茶時)’를 마련하여 정기적으로 매일 차를 마셨는데, 이는 정신을 맑게 하는 차의 효능에 주목하여 정확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함이었다. 이는 차의 성질을 실생활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차가 수행에 도움을 주는 음료로 인식되면서 차와 불교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 속에서 함께 등장하고 있다. 고려는 불교국가로 불교가 흥할수록 차 역시 성행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 승려들을 중심으로 차와 샘물을 품평하는 명전(茗戰)이 행해졌으며, 다촌(茶村)이라는 사찰 주변의 차농사 지역이 있어 승려들의 차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또한 승려들과 문인들은 차와 시로 서로 교유하며 차문화를 더욱 발전시켰다.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문인들의 시를 통해 차생활 및 문화를 엿볼 수 있을 정도로 문인들은 차를 마시며 시심을 돋우었고, 차 맛을 찬탄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백성들에게도 차가 대중화되었다. 서민들 역시 다점(茶店)을 통해 차를 마시거나 구매할 수 있었으며, 제사에 차를 올리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차문화가 발전할수록 차의 고급화를 추구하는 경향과 사치 풍조가 더욱 만연하면서, 그 폐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이규보(1168~1241)는 이러한 세태를 한탄하면서 “화계에서 차 따던 일 논하였으니/ 관에서 감독하여 늙은이와 어린아이까지 징발하였네/ 머나먼 서울에 등짐 져 날랐네/ 이는 백성의 애끓는 고혈이니/ 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얻은 것이라네”고 하며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 차문화 역사의 침체기는 조선시대(1392~1910)를 들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의 음다(飮茶) 풍속이 어느 정도 이어지기도 했으나, 쇠퇴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하였다. 왕실 행사에 차가 사용되었던 것이 점차 줄어들고, 차 대신 술이 사용되었으며 다방, 다시 등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이름만 남았을 뿐 실제로 차가 사용되지는 않았고 형식적으로 변했다. 조선 후기 초의(草衣, 1786~1866)를 중심으로 중흥기를 맞이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오래가지는 못했다.

조선시대 차문화가 퇴조한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을 들 수 있다. 조선은 유학을 정치 이념으로 하면서 불교를 배척하였다. 조선왕조의 억불정책으로 수많은 사찰이 통폐합되었고 승려들은 환속 당했으며 그나마 존속한 사찰과 승려들은 양반관료제 사회에서 온갖 수탈을 겪어야 했다. 한때 보우(普雨, 1505~1565)의 노력으로 승과가 부활되고 선교양종 체제를 재확립하는 등 일시적 중흥을 보이기도 했으나, 문정왕후 사후 보우가 유배되고 선교양종은 폐지되는 등 다시 불교탄압이 지속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차문화는 곧 불교를 중심으로 꽃피운 문화이다. 불교와 차문화는 운명공동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국가주도하에 의도적으로 불교적 색채를 배제시키는 상황에서 차 역시 쇠퇴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둘째로 언급되는 이유로 과도한 차 세금과 차 공납이다. 고려 말의 차 고급화와 사치풍조 폐단은 그대로 조선으로 이어졌고 백성들은 더욱 세금 압박을 받게 되었다. 더욱이 실제 차밭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록에 의해 차세가 부과되기도 했다. 이는 김종직(金宗直, 1431~1491)이 “나라에 바치는 차가 본 군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 그런데 해마다 백성들에게 이를 부과한다. 백성들은 값을 가지고 전라도에서 사오는데, 대략 쌀 한 말에 차 한 홉을 얻는다.”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김종직은 그러한 폐단을 알고 군에서 자체적으로 차를 사서 공물로 바치는가 하면, 차나무를 찾아내어 차밭을 일구는 등 세금에 따른 폐단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셋째, 임진왜란 이후 정치적, 경제적으로 피폐한 상황은 백성들을 더욱 궁핍하게 했고 당연히 차를 마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밖의 이유로 우수한 한국 물의 품질이 언급되기도 한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수질이 뛰어나기에 굳이 차를 마실 필요가 없는 자연적 여건 역시 차문화 발전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또한 일상생활의 긴장감과 연관시켜 살피는 견해도 있다. 일본의 경우 차가 크게 유행한 것은 전국시대에 이어 절대정권이 들어설 무렵의 무사사회로, 사회 전반적으로 극도의 긴장감이 만연한 시기였기에 긴장완화를 위해 차문화의 보급이 더욱 요구되었던 반면, 농업 중심의 전통사회였던 한국에서는 차보다 곡주가 더 유행했다는 지적이다.

여하튼 조선시대에 들어 점차 퇴조한 차문화는 중기 무렵이 되면 음다풍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조선왕조실록》 선조 31년(1541) 6월 23일의 기록이다. 중국 사신 양 대인이 남원(南原)에서 생산되는 차(작설차)의 품질을 높이 평가하며 왜 조선인들은 차를 마시지 않느냐고 묻자, 선조는 “우리나라는 풍속이 차를 마시지 않소.”라고 응대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불교를 이단시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다소 완화되면서 차문화 역시 서서히 살아나는 경향을 보였다. 배불의 경향이 다소 완화된 것은 중기 이후 조선은 이미 제반 분야에서 성리학의 가치가 불교를 압도하여 더 이상 경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한편으론 서학(西學, 천주교)의 확산으로 공동 대응이라는 의식이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물론 거센 억불정책으로 존망의 위기에서 살아남고자 한 불교계의 노력 역시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초의가 선사로서 차(茶), 시(詩), 서(書), 화(畵)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며 유학자들과 교유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고, 차문화의 중흥을 이끌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양상은 후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2) 와비차(侘び茶)의 형성과 전개

일본 다도를 일컫는 용어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이 사용되며 그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이 와비차(侘び茶)이다. 와비(侘, 侘び)란 다도의 근본 이념이자 미의식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이는 비단 차문화뿐만 아니라 다른 예능 분야에서도 공통으로 적용된다. 다도에 사용되기 이전의 와비의 의미는 ‘외롭다’ ‘쓸쓸하다’ ‘초라하다’ 등의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였다. 그러나 차문화에 사용되면서 ‘와비’라는 용어는 그 뜻의 대변혁을 가져왔다.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지만 ‘외롭게 느끼지 않고’ ‘쓸쓸하게 느끼지 않고’ ‘초라하게 느끼지 않는’ 의식의 세계로 그 의미가 변화된 것이다. 부족하지만 부족한 그대로 완벽함을 아는 것, 소박하지만 소박함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것,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로 완전하게 바라보는 안목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와비의 뜻이다. 와비의 의미는 다도에서 비롯되어 도자기, 꽃꽂이, 요리 등의 여타 일본문화 속으로 침투되어 갔다.

일본의 차문화가 ‘와비차’라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데에는 불교의 여러 종파 중에서도 특히 선종의 영향이 컸다. 일본의 차와 선(禪)에서 에이사이(榮西, 1141~1215) 선사는 중요한 인물이다. 차는 견당사(遣唐使)에 의해서 전래되었으나, 견당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문물의 유입 역시 단절되었다. 이후 12세기 말 가마쿠라(鎌倉, 1192~1333) 시대에 에이사이가 입송(入宋) 후 임제종 황룡파의 법맥을 계승하고 귀국하면서 차 종자를 가져왔다. 에이사이가 귀국할 당시는 정치적으로는 가마쿠라 초기의 무사정권이 개막되던 불안정한 시기였으며, 종교적으로도 기존 불교계의 부패 등으로 새로운 사상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 차와 선종은 무사 계급의 비호를 받으면서 급속하게 성장해 갔다.

무로마치(室町, 1336~1573) 막부가 들어서고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차는 약용에서 기호음료로 변화되었다. 이때의 차문화는 ‘투차(鬪茶)’라는 새로운 형식의 문화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투차는 일종의 투기성 놀이문화로, 상당한 고가의 당물(唐物)이 상품으로 배정되는 등 사치와 화려함의 극을 이루었다. 투차와 더불어 성행한 귀족들의 차문화를 서원차(書院茶)라고 한다. 서원차는 서원 양식의 저택에서 즐기는 유희풍의 차문화로, 서원은 원래 책을 보관하고 공부하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고가의 미술품 등을 장식하고 회의나 화려한 연회 등을 즐기던 사교 모임 공간으로 변모되었다. 사교 모임을 위해 당물 중심의 화려한 다도구 등을 갖추어 놓고 차를 즐긴 것이었다.

이 무렵 등장하는 인물이 와비차의 시조로 불리는 무라타 슈코(村田珠光, 1423~1502)이다. 그는 11세 무렵 나라(奈良) 칭명사에서 출가하였으나, 지나치게 차에 몰두하여 쫓겨났다고 한다. 이후 슈코는 잇큐(一休, 1394~1481) 선사와의 만남으로 차문화에 선 정신을 도입하게 되었다. 슈코는 차를 통한 심신 수련을 강조하였고, 차를 행할 때의 마음으로 ‘히에카루루(冷え枯るる)’ 할 것을 주장했다. ‘히에카루루’란 냉정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연희풍의 차를 즐기던 정서에서 차분하고 간소한 마음가짐으로 한층 와비의 의미에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 무라타 슈코 이후 다케노 조오(武野紹鷗, 1502~1555)에 의해 와비차는 한층 더 발전하였다. 조오는 〈와비의 글(侘びの文)〉에서 와비를 “가깝게는 정직하고 조심스럽게 여기며 자만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정의하면서 와비차의 외형적 틀을 갖추어 갔다.

와비차는 조오의 제자 센 리큐(千利休, 1522~1591)에 의해 완성되었다. 슈코와 조오가 다소 은둔적 생활을 하며 와비차를 구현했다면, 리큐는 보다 적극적이며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와비차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리큐는 “와비의 본뜻은 청정무구한 불(佛) 세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중략) 이것은 곧 불심을 여실히 드러내는 바이다.”라고 정의하였다. 부정적 의미가 강했던 와비는 슈코, 조오를 거치면서 소박하고 자연적이며 은둔적인 의미로 바뀌었고, 리큐에 의해 깨달음의 선(禪) 세계이자 불심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으로 또 한 번의 대변혁을 이룬 것이다.

무로마치 중기 무렵 발생한 오닌의 난(応仁の亂)을 계기로, 일본은 100여 년간 내란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 시기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한다. 전국시대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434~1582)의 전국 제패가 달성될 무렵 서서히 막을 내리는 듯하지만, 노부나가가 암살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가 뒤를 이어 중앙집권화를 이루는 동안 계속 이어졌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30여 년 동안의 집권기를 아즈치 · 모모야마(安土桃山, 1573~1600) 시대라고 하는데, 리큐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다두(茶頭, 茶匠) 역할을 하면서 차와 관련된 모든 일을 총괄했다.

무로마치 시대 중후반에서 아즈치 · 모모야마 시대에 이르는 이 시기는 극심한 혼란기였던 반면, 문화적으로는 대단히 융성하였는데, 수도인 교토(京都)와 사카이(界)를 중심으로 와비차 역시 완성되었다. 사카이는 일본 최대의 무역 자치도시로 무기, 특히 유럽에서 수입된 조총을 취급하는 주요 상인들이 모인 곳이었다.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자유도시였던 사카이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예술문화를 항유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조오나 리큐 역시 사카이의 상인(町人) 출신이다.

노부나가는 권력의 정점에 오르자 사카이를 차지하기 위해 정치적 자유를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군사비를 부담시키면서 직할지로 삼았다. 노부나가는 개인적 취향으로 다도를 즐기는 한편, 전쟁에 공훈을 세운 무사들에게 자신이 사용한 차 도구를 하사하는 등 무사들을 장악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루는 데 활용했다. 노부나가는 차 도구를 재화로 인식하여 적극적으로 수집하였는데, 권력을 바탕으로 강제매수하거나 혹은 자진해서 진상하도록 유도하는 방법 등을 사용하였다.

노부나가가 암살된 이후 히데요시는 여러 전투에서 승승장구하며 세력을 확장하였고, 10월 15일 임제종 대덕사(大德寺)에서 진행된 노부나가의 장례식을 주관하며 ‘차노유(茶の湯)는 곧 정치의 도(御茶湯御政道)’라고 하며 노부나가가 자신에게 차를 하도록 허락한 것은 곧 정치를 하도록 허락한 것이었다고 천명했다. 이를 통해 자신이 노부나가의 후계자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히데요시 역시 차에 심취해 차 도구를 수집하고 측근들을 중심으로 다회(茶會)를 열며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했다. 특히나 자신의 관백(關白) 취임에 대해 감사하는 금리다회(禁裏茶會), 실질적으로 전국 통일을 이룬 후 기념한 북야대다회(北野大茶會) 등 대규모의 다회를 개최하여 자신의 위상과 권력을 과시하는 측면이 강했다. 히데요시가 차를 통해 점점 더 화려함을 추구하고 극도의 사치로 치달을수록 리큐가 추구하는 선풍(禪風)의 와비차와 현격한 차이를 보였고, 이에 따라 리큐와의 관계는 점점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와비차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발전하였으며, 일본의 전통문화이자 생활문화로 자리매김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무사정권의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사카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町人)들의 문화로, 그리고 선종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 것이 와비차라고 할 수 있다. 평화를 추구하고 구현하고자 한 와비차는 역설적으로 전쟁과 폭력이 난무했던 시기에 성행하였고, 무력과 전쟁을 업으로 하는 무사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대표적인 무사문화로 대두하였다.

3. 한국의 초의(草衣)와 일본의 리큐(利休)

1) 한국 차의 중흥조 초의

한국 차문화에서 대표적 차인을 들자면 단연 초의 선사이다. 초의는 사라져간 한국의 차문화를 다시 일으켰으며, 그나마 남아 있던 차의 흔적을 정리하고 개발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게 했다. 선사가 남긴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은 차문화가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초의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한국 차문화는 더욱 암중모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의의 문집이나 시집에는 유학자들과 주고받은 시와 편지, 서문 등이 수록되어 있어 그들과의 두터운 친분을 엿볼 수 있다. 초의는 정약용에게 시와 유서(儒書)를 배우고, 김정희(金正喜)와는 평생의 지기로 함께 하면서 차와 시, 그리고 불교에 대해 담론하곤 했다. 특히 초의의 차가 확산되는 데는 김정희와 신위의 역할이 컸다. 그들은 자신의 주변 인사들과 초의가 교유할 수 있도록 해 추사의 제자들 및 다산의 자제들, 홍현주와 그 형제들, 신위, 박영보 등 많은 사대부들이 초의의 차를 애호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어 주었다. 《동다송》 역시 홍현주의 부탁으로 저술된 것이었다.

선사는 손수 만든 차를 지인들과 나누며 차를 보급하고 제다법을 정리하였는데, 김명희(金命喜)가 초의가 직접 만든 차를 받고 “죽순 껍질로 싼 응조차(鷹爪茶) 손수 열어보았네. (중략) 이 비법 5백 년 만에 비로소 헤쳐 내었으니”라고 언급한 것에서 잎차[散茶: 葉茶] 제다법이 초의에 의해 정리되고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초의의 차가 “초의 차가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마치 금루옥대처럼 귀하게 대접받은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는 박영보의 글에서 이미 많은 이들에게 명차로 알려졌음을 알 수 있고, “요즘 들어 차가 나는 산지의 사람들이 차를 따다가 끓여 마신다.”고 한 신위의 구절에서 차문화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의는 다도를 정의하기를, “채다(採茶) 시에는 묘(妙)를 다하고, 조다(造茶) 시에는 정성[精]을 다하며, 물은 참된 것[眞水]을 얻고, 포다(泡茶) 시에 중(中)을 이루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조화롭고 건(健)과 영(靈)이 함께 아우른다. 이 경지에 이르면 다도를 이룬 것”이라고 했다. 초의는 ‘채다’ ‘조다’ ‘물[眞水]’ ‘포다’로 나누고 그 각각에서 참된 것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채다에서부터 포다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초의가 말하는 다도는 채다에서 포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음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참됨을 이루어야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상황, 처처(處處)에서 최선을 다해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다도라고 할 수 없다.

여기서 초의가 차를 우려낼 때(포다 시에) ‘중(中)’을 내세운 점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 ‘중’과 관련해 《동다송》의 각 번역서 및 논문에서 인용되어 번역된 것을 살펴보면 ‘중’을 ‘중정(中正)’ 또는 ‘중도(中道)’로 번역하고 있다. 초의는 중을 다시 설명하기를, “중에 현묘함[妙]이 있으나 드러내기 어려우니, 참된 정기는 체와 신을 분리하지 않음이네.”라고 하여 ‘중’에 바로 차의 묘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체와 신을 분리시키지 않는 것[無分離: 不二]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체와 신의 무분리(無分離)로 차의 묘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초의의 방법론이고 곧 ‘중’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다. 이는 체와 신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분리되지 않은 것이며 동시에 진다(眞茶)와 진수(眞水), 체와 신의 각각의 성질이 확연히 나타난 상태를 의미한다. 체와 신의 불이(不二, 不異, 不離) 가운에 진다와 진수의 성(性)이 확연해질 때 차의 묘가 드러난다. 이러한 차의 묘는 곧 “알가[茶]의 참된 체의 묘한 근원을 궁구하면, 묘한 근원은 집착 없는 바라밀이로다.”라고 했다.

초의가 말하는 다도는 체와 신, 건과 영이 모두 중정(中正)으로 불이(不二)에 이른 것이다. 불이는 곧 일미(一味)이고 중정이고 중도이자 중이다. 이러한 다도의 세계는 처처에서 참됨을 실천하고자 한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삶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과 동일하다. 잎을 따고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끓여 마시는 마지막까지 중정의 현현이 있을 때 다도가 되며, 이것은 곧 수처작주의 선적(禪的)인 삶이다.

한국의 차 정신은 ‘중정’으로 대표되고 있는데, 이는 위 글귀 중 ‘중’에 근거한 것이다. 현재까지 연구된 초의의 차 정신은 크게 ‘다선일미’와 ‘중정’으로 정리되고 있다. 다선일미는 초의의 선사상에 내포되 불이의 선관에서 비롯된 것이고, 중정은 초의가 직접 저술한 《동다송》에 나타난 용어이다. 이 중 ‘중정’의 의미를 불교의 중도와 유교의 관점으로 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또한 유교의 중도로 해석하는 한국의 차인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정에는 양쪽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고 그런 여지 또한 충분하다. 그러나 초의가 말한 ‘중’은 다도에 이르는 법칙이자 다도의 지극한 경지이고 바라밀이다. 여기에는 ‘다선일미’의 중(中)의 원리와 ‘수처작주’의 정(正)의 실천이 모두 내재되어 있다.

2) 와비차의 완성자 리큐(利休)

리큐는 오랜 기간 임제종 대덕사에서 수행하며 “작은 다실에서의 다탕(茶湯)은 불법의 수행득도가 제일의 목적”이라고 하며 와비차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다. 그리고 “그 법식들을 출발 단계로 해서, 지금보다 좀 더 높은 깨달음에 이르고자 뜻을 두고 대덕사, 남종사(南宗寺) 등의 화상들에게 열심히 배우고 아침저녁으로 선림(禪林)의 청규를 바탕으로 정진하였다.”고 자신의 수행을 소회했다. 와비차는 그렇게 형태를 갖추어 갔다.

리큐는 스승인 쇼레이 화상으로부터 자신이 고안한 여러 가지 차와 관련한 작법들이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만 그 역시 한 변에 떨어진 것임을 지적받고 깨달음에 이르렀다. 자신이 혼신의 노력으로 고안하여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규칙-차를 타는 행위, 차 도구의 모양, 차 도구를 놓는 위치, 손님의 차제(次第), 물과 불의 사용법 등-은 곧 수행이라는 이름의 상(相)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규칙들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고정불변의 틀이 되어서도 안 되며, 오직 이 ‘한마음에 상응하여 작용’해야 진정한 차가 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여기에서의 마음은 일체유심조의 마음이며, 일체만물의 자성(自性)이자, 마조가 무조작 · 무시비․무취사 · 무범성 등으로 다만 오염만 되지 않으면 평상심이 도라고 한 바로 그 마음이다. ‘한마음에 상응하여 작용한다’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마음 작용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에 계합(卽)하여 일어나는 그 마음에는 시비, 분별, 조작, 취사, 단상 등의 오염이 침범할 틈이 없다. 오직 처처에서 마음에 상응한 작용의 차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순간의 차는 곧 무분별의 차, 무조작의 차, 무범성의 차가 되며, 《선다록(禪茶錄)》에서 리큐의 차를 평한 것처럼 “무빈주(無賓主)의 차노유”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리큐가 와비를 가리켜 ‘깨달음의 불(佛)세계를 나타내고 불심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 의미는 성립된다.

선은 일체만물에 대한 절대적 평등의 입장에 있다. 일체만물은 불이적(不二的) 관계로 존재하며 그 각각의 본성은 한마음(一心)으로 동등하기 때문이다. 일심과 일미는 다르지 않다. 일심으로 평등하기 때문에 일미, 즉 다선일미가 성립된다. 와비차의 모든 구성요소 손님, 주인, 각각의 도구들은 일심의 본질 세계이자 일심의 형상물이다. 그렇기에 작은 찻잔에조차 최고의 존경을 표할 수 있다. 리큐는 “차노유(茶湯)라는 명칭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차와 탕의 상응이 가장 중요하다. (중략) 다탕(茶湯)이라는 명칭이 깊고 깊은 도리를 담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고 했다. 리큐가 말하고자 하는 차와 탕의 상응의 도리란 차와 탕의 불이적 관계 속에서 한마음에 상응하여 작용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응의 관계는 차와 탕이 각각의 본질이 일심으로 평등한 것이며,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적 경계를 초월하여 경계가 허물어진 화(和)이며, 진정한 평화를 의미한다.

당시는 오랜 전란으로 인해 무사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모든 이들이 극도의 긴장감과 피로감에 휩싸여 서로에 대한 불신이 만연했던 시대였다. 리큐는 그러한 인간 내면에 와비차를 통해 진정한 평화의 뜻을 심어주고자 했다. 선을 바탕으로 완성된 와비의 정신은 다시 평등 · 평화 정신으로 와비차의 구성요소에 투영되었다. 초암다실(草庵茶室), 노지(露地)정원, 다실로 들어가는 문인 니지리구치(躙口), 다실 내의 장식물 등의 유형적 요소뿐만이 아니라 주인과 손님의 관계, 손님과 손님의 관계, 사람과 도구의 관계 등 일련의 모든 것들이 평등과 평화, 화(和)의 정신이 유형, 무형의 선문화로 창조되었다.

리큐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하에서 신분의 타파, 일체 존재의 평등한 관계 구현을 와비차라는 문화적 접근을 통해 이루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리큐가 고안한 초암다실, 노지정원이라는 공간은 비일상적 공간으로 청정한 불세계를 나타내는 곳을 의미한다. 그러한 깨달음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불성을 가지고 있는 평등한 존재가 된다. 그러한 곳에서 신분의 고하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리큐는 그러한 평등한 관계를 실현시키기 위해 신분이 높은 사람(貴人)과 하급무사(下人)들이 각각 별도로 사용하도록 구분된 기닌구치(貴人口)와 니지리구치(躙口)를 하나로 통일시켜 동일하게 사용하도록 하였다. 더욱이 낮은 계급이 사용하는 작은 출입문인 니지리구치로 통일시킴으로써 하심과 겸손을 배우도록 했다. 또한 작은 문을 통해 다실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므로 무사들은 자연스럽게 칼을 풀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다실은 평등과 평화의 공간으로 재창조되었다. 당시는 100여 년 이상의 오랜 전란에 휩싸였던 시기라는 점, 그러므로 무사들의 권력이 최고조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평등, 평화의 시공간을 연출하고 따르도록 했다는 것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리큐의 업적이다. 더구나 리큐는 상인의 신분이었다. 리큐는 선풍의 와비차를 통해 자신의 평등, 평화의 사상을 아무런 마찰 없이 관철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 한국과 일본의 정서와 차

1) 일본문화 속의 와비차와 ‘화(和)’

평등과 평화의 리큐의 차 세계는 다선일미, 화경청적(和敬淸寂)의 차 정신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일본 다도의 차 정신으로 표방되고 있다. 다선일미와 화경청적은 ‘화(和)’라는 키워드로 일본문화와 연결된다.

‘화’라는 단어는 조화, 화합을 뜻하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지만, ‘일본’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일식을 ‘화식(和食)’, 일본 과자를 ‘화과자(和菓子)’, 일본 옷을 ‘화복(和服)’, 일본풍을 ‘화풍(和風)’ 등으로 표현한 용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대화(大和)’라는 단어는 일본 정신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고 있다. 이 ‘화’ 정신의 기원은 6세기 쇼토쿠(聖德) 태자의 17조 헌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쇼토쿠 태자는 일본불교를 중흥시키고 관료제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로, 불교가 일본에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7조 헌법의 제1조는 ‘화를 귀하게 여길 것’, 제2조는 ‘불교를 숭상할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쇼토쿠 태자가 화를 제1조로 내세우며 강조한 것은 당시 불교의 유입을 두고 숭불파와 배불파의 오랜 정쟁 때문으로, 화합을 중시하여 명기했다고 한다. 불교가 일본에 전래되면서 신도(神道)와의 마찰이 있었고 이는 신불(神佛) 습합의 과정을 거치며 일본의 종교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습합 사상의 밑바탕에는 쇼토쿠 태자의 ‘화’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화’란 화합을 의미하는 용어이자, 외래문물을 받아들여 일본화하는 원리이며, 그 자체로 일본, 일본의 정신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라는 용어는 와비차의 태동을 알린 무라타 슈코의 〈마음의 글(心の文)〉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글은 최초의 다도론으로 여겨지며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 가운데 차 도구와 관련한 내용으로 ‘화(和)와 한(漢)의 경계를 허물어 조화롭게 사용하라’고 한 부분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귀족풍의 화려한 서원차에서 중국의 차 도구(唐物)만을 귀한 것으로 여기던 경향을 경계한 것으로, 슈코는 중국(漢)의 차 도구와 일본(和)의 차 도구를 잘 조화시켜 사용해야 올바른 와비차가 된다고 한 것이다. 이는 와비차가 내적으로는 마음의 수행을 중시하고, 외적으로는 중국 일변도의 차 도구에서 일본의 것과 조화를 강조하면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독창적 일본 차문화, 와비차가 탄생되었다. 슈코의 글을 통해서도 화는 일본을 지칭하는 용어이자, 조화(和)를 통한 차문화의 일본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슈코가 화와 한의 차 도구의 조화를 강조하면서 차의 일본화를 열었다면, 리큐는 와비차에 화의 마음, 화의 정신을 심어놓으며 사상적 깊이를 더했다. 리큐의 화는 화합, 조화의 화이자 일체만물의 평등에 입각한 일심의 화를 의미하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리큐의 화의 마음은 다선일미, 화경청적의 차 정신으로 연결되며, 일본문화를 관통하는 ‘화’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와비차는 일본의 차문화이다. 와비차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은 곧 일본이 중국의 문화, 조선의 문화, 선종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일본화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 ‘화’의 마음, ‘화’의 정신이 뒷받침하고 있다.

2) 한국 차문화 속의 ‘정(正)’

조선 후기에 서서히 되살아난 음다 풍습은 일제 강점기에 다시 침체되었다. 일부 일본인들에 의해 차의 생산과 보급 등 한국 차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이는 식민지배를 위한 수단이었고 일제의 국익을 위함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한국 차의 확산과 보급, 그리고 차문화 부흥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차문화의 중요성에 주목한 차인들은 특히 초의가 거주했던 일지암(一枝庵)을 복원하면서 도약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였고, 초의의 차 문헌에서 비롯된 ‘중정(中正)’을 한국 차의 정신으로 규정하여 차문화 발전의 기틀을 세웠다.

앞서 살펴보았듯, 한국 차의 정신으로 선포한 ‘중정’은 초의가 내세운 다도의 정의이고 처처에서 참됨[眞]의 구현을 의미했다. 초의가 말한 중, 중정은 중도이자 정도(正道)이다. 다시 말해 중(中)은 올바름[正]이자 참됨[眞]을 뜻하는 것이다. ‘차’의 기원과 관련된 설화 중 대표적인 하나는 달마가 수마(睡魔)를 쫓기 위해 눈꺼풀을 떼어 던졌더니 그 자리에 차나무가 자랐다고 하는 설이다. 이 설화를 통해 차가 수마를 쫓아준다는 각성의 효능을 짐작게 한다. 이러한 효능으로 차는 전통적으로 수행에 도움을 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음료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한국의 차는 선사들의 수행에 도움을 주는 음료로, 또한 문인들의 기호에 알맞은 음료로 자리 잡아 왔다. 한국의 차인들은 차의 맑고 곧은 성질에 주목했으며, 그러한 차에 대해 바른 성품, 올곧은 기질을 가졌다며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 또한 그러한 차의 효능에 주시하여 고려시대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의 의식차로 사용하였고, 다시(茶時)를 통해 공정하고 공평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중요한 매개체로 활용하였다.

역사적으로 강조해 온 차의 효능, 정신을 맑게 하고, 깨어 있게 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참됨을 구현하고자 하는 ‘정(正)’의 실천은 오늘날 한국 차문화에서 주목해야 할 가치이다. 바름, 정, 참됨을 한국 차문화 속에 녹여내고 살리는 것은 차문화를 통해 보급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5. 나가는 말

연구자가 처음 차를 접했던 시기만 해도 중국의 차는 예(藝)를 중시하여 다예(茶藝)라고 하고, 한국의 차는 예(禮)를 중시하여 다례(茶禮)라 지칭하고, 일본의 경우는 도(道)를 중시하여 다도(茶道)라고 한다고 구분하여 명명했다. 또한 각각의 특성을 살려, 중국의 차는 향(香)을 중요하게 여기고, 한국의 차는 맛[味]을 중시하며, 일본의 차는 색(色)을 중시한다고 각국의 특징을 내세웠다. 그러나 오늘날의 차문화는 그러한 분류가 무색하리만큼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한국의 차문화에서도 초의가 다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초의보다 앞서 이규보는 시에서 ‘한 잔의 차는 곧 선(禪)’이라고 했으며, 여타의 여러 시, 특히 고려시대의 시 중에는 차와 선을 연결시키는 구절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차문화에서도 다례의 모습은 헤이안 시대부터 보인다. 궁중에서는 염불하는 승려들에게 인다(引茶)라고 하여 차를 대접하는 의례가 있었으며, 선원에서는 《영평청규》를 바탕으로 하여 선원다례가 행해졌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국빈을 맞이하는 정부의 의례로 와비차가 행해지는 것을 보면 꼭 다례가 한국 차문화의 특색을 나타낸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차가 전래된 직후는 그 약용성에 주목하였고, 이후 의례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양국의 차문화의 공통된 전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차문화에서 서로 다른 양상을 극명하게 보이는 것은 16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이는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 불교와 더불어 차문화가 융성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 점차 침체의 길을 걸었다. 이는 국가의 억불정책으로 불교와 명운을 함께한 것이 큰 이유겠으나, 그 외에도 과도한 차 세금과 공납으로 인한 폐해가 컸고, 또한 임진왜란 이후에 더욱 궁핍해진 당시의 생활상으로 인해 차문화는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에 이른 것이었다. 조선 후기 초의선사에 의해 차문화는 일시적으로 중흥의 모습을 띠기도 하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리큐(利休)에 의해 완성된 일본의 차문화는 막부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더욱 성행하였고 선종의 영향으로 한층 깊이를 더하며 성장하였다. 리큐는 오랜 전란 속에서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평화의 마음을 심어주고자 했다.

평화를 추구하고 구현하고자 한 와비차는 역설적으로 전쟁과 폭력이 난무했던 시기에 성행하였고, 무력과 전쟁을 업으로 하는 무사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대표적 무사문화로 대두되었다. 반면 한국의 차문화는 문인들의 문화로 일본의 무사문화와 대비될 수 있다. 일본의 차는 전란 속에서 화합과 평등, 평화를 열망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면, 한국의 차는 선승들의 수행을 위한 음료이자 시와 더불어 향유된 문인들의 문화로, 정신을 맑게 하여 올바른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정영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졸업(철학박사). 日本茶道 裏千家 전임강사. 주요 논문으로 〈草衣와 利休의 禪茶文化 비교 연구〉 〈대학생의 올바른 목적의식 정립을 위한 선(禪)수행 프로그램 개발 연구〉 〈와비차(侘び茶)의 禪세계 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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