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의 과학성 | ‘더하고 모으고’…한글, 이래서 과학이다! / Ytn 상위 246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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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오늘은 오백일흔세(573) 돌 한글날입니다.
한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적인 문자라는 얘기는 많이 들으셨겠지만, 왜 과학적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기정훈 기자가 짚어 드립니다.
[기자]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음소문자’입니다.
‘뜻 문자’인 한자나 ‘음절문자’인 일본 문자는 비할 게 못 됩니다.
게다가 같은 음소문자인 로마자 알파벳에 견줘도 훨씬 과학적입니다.
먼저 소리가 나오는 곳 모양을 분석해서 문자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입과 이, 혀와 목구멍 모양으로 자음을 만들었고, 모음엔 하늘과 땅, 사람을 뜻하는 철학까지 담았습니다.
어느 문자보다 규칙적입니다.
자음에 획을 더해 된소리나 거센소리를 만드는 방식이 규칙적이고, 모음을 합성하는 방식도 규칙적입니다.
특히 이 규칙들은 5백여 년이 지난 요즘의 스마트폰 문자판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모음의 합성 원리를 가져다 ‘천지인’ 입력방식이 나왔고, 자음에 획을 추가하는 규칙을 이용해 ‘나랏글’ 방식이 나왔습니다.
쉽게 익혀 입력할 수 있습니다.
또 자음과 모음, 자음, 즉, 초-중-종성을 그대로 풀어서 쓰지 않고 모아쓰는 방식이 규칙적이고 실용적입니다.
한 실험에 따르면 자모음을 풀어쓰는 것보다 모아쓸 때 2.5배 더 빨리 읽을 수 있습니다.
한 글자가 대부분 한 소리를 냅니다.
영문 알파벳의 A는 Apple과 Garden, Water에서 모두 다른 소리를 내지만, 한글 모음 ‘ㅏ’는 아리랑에서든 아버지에서든 같은 소리를 냅니다.
또 종성, 즉 받침 글자를 따로 만들지 않고 초성과 같은 자음을 쓰도록 한 것도 돋보이는 점입니다.
[한재영 / 한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종성자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 초성과 중성자를 만들고 그것을 조합해서 그것도 음절단위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언어를 음운론적으로 제대로 파악을 한, 오늘날의 눈으로 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의 경지였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게다가 이 모든 내용은 세계 언어학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문자의 사용 설명서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록됐고 이 책은 유네스코의 세계 기록 유산으로도 등재됐습니다.
세계적인 발명품, 한글.
573돌 한글날을 맞아 뿌듯한 마음뿐 아니라 우리말 우리글을 아끼려는 마음도 되잡아야 할 이유입니다.
YTN 기정훈[[email protecte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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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과학적 원리,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김태희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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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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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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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글의 과학성 – 다음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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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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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은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 보자. 먼저 한글이 ‘과학적인’문자인가 하는 의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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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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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한글 의 과학성

  • Author: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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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0. 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qnyZmC-W_wo

한글의 과학적 원리,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김태희 대학생 기자

한글의 과학적 원리,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2기 김태희 기자

([email protected])

한글은 세계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 가운에 하나이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시기가 분명한 글자이며 1997년에 등록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또한 한글은 세종대왕이 혼자 만든 문자이다. 지구촌에는 수많은 언어와 문자가 있지만 창제 과정이 정확하게 기록된 문자는 우리나라의 한글뿐이다.

이처럼 우리는 흔히 입버릇처럼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남에게 설명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생각 외로 많다. 따라서 한글의 과학적 원리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소리와 철학이 더해진 과학적인 문자

가획의 원리

자음 기본자

조음 위치

자음자의 첫 번째 제자 원리로는 ‘상형[모양을 본뜸]’의 원리를 꼽을 수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때 본뜸의 대상이 된 것이 다른 자연물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 그중에서도 발음기관의 모양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ㄱ’과 ‘ㄴ’은 음을 발음할 때의 혀 모양을 본 따 만든 것이다. ‘ㅁ’은 입의 모양을, ‘ㅅ’은 이의 뾰족한 모양을, ‘ㅇ’은 목구멍의 둥근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이로써 ‘ㄱ, ㄴ, ㅁ, ㅅ, ㅇ’ 5자가 만들어진다. ‘제자해’에서도 “정음 28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제자 원리는 획을 하나씩 더하는 ‘가획[획을 더함]’의 원리이다.

ㄱ → ㅋ

ㄷ → ㅌ

ㅂ → ㅍ

ㅈ → ㅊ

이것은 소리를 낼 때 좀 더 거세어지는 특징을 획이 하나 늘어나는 것으로 반영한 방식에 해당한다. 즉 ‘ㅋ’은 ‘ㄱ’보다 거센 소리, ‘ㅌ’은 ‘ㄷ’보다 거센 소리라 표현하였던 것이다.

자음 글자를 만든 원리를 요약하면, 기본자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고, 나머지 글자들은 소리의 유사성 및 강약을 고려하여 기본자를 바탕으로 하여 획을 더해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중성 기본자

모음 글자의 조합

모음 글자들은 소리에 대한 고려뿐 아니라 철학적인 원리도 바탕으로 삼아서 만들어졌다. ‘·’는 하늘의 둥근 모양을 상징하고, ‘ㅡ’는 땅의 평평한 모양을 상징하고, ‘ㅣ’는 꼿꼿이 서 있는 사람의 모양을 상징한다. 동양의 철학에서는 이 하늘, 땅, 사람을 3재(三才)라고 하여 만물의 근본 요소로 생각하는데, 모음 글자를 만들 때 이 생각을 적용한 것이다.

나머지 모음 글자들은 이 세 글자를 적절히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 · ’를 ‘ㅡ’ 위에 쓰면 ‘ㅗ’가 되고, ‘ · ’를 ‘ㅡ’ 밑에 쓰면 ‘ㅜ’가 되고, ‘ · ’를 ‘ㅣ’ 오른쪽에 쓰면 ‘ㅏ’가 되고 ‘ · ’를 ‘ㅣ’ 왼쪽에 쓰면 ‘ㅓ’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글의 자음 글자와 모음 글자가 매우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글을 매우 쉽게 배울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낮은 편인 것은 한글의 과학성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학자들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문자

훈민정음은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문자이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언어학회와 언론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한글의 편리성과 과학성을 최고라고 인정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류 소설가 펄 벅은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단순한 글자이며,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면 어떤 음성 언어도 표기할 수 있다.”라고 했다. 영국의 언어학자인 제프리 샘슨은 “한글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다.”라고 했다.

디지털 시대, 진가를 발휘하는 한글

한글의 과학성은 디지털 시대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휴대 전화에서 한글로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사용하는 입력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자판의 키가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하나의 키에 둘 이상의 글자들을 배당해야 한다. 이때, 로마자의 경우 각 글자들이 나타내는 소리와 글자의 모양 사이에 아무런 상관성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키에 배당되는 글자들도 아무런 공통점이 없게 된다. 반면에 한글의 경우 소리가 비슷하면 그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들의 모양도 비슷하기 때문에 하나의 키에 비슷한 글자들을 배당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어떤 글자들이 어떤 키에 배당되어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고, 휴대 전화로도 한글을 매우 빠른 속도로 입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글(Google) 회장인 에릭 슈미트도 한글을 예찬했다. 그는 한글에 대해 “쉽고 편리하게 정보를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600년 전에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자적인 글자를 가진 나라로 디지털 기술이 앞서 나갈 수 있는 것도 한글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과학적인 한글, 사람들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기사를 작성하며 나는 왜 사람들이 한글의 과학성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은 알면서 왜 우수한지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우리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소중한 우리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한글의 과학성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언급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글이 왜 과학적이죠?’라고 누군가 묻게 된다면 쉽게 그 이유를 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 역시 한글이 왜 과학적인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었고 마침 「한글과 언어문화」라는 수업을 통해 스스로 조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선 한글의 과학성에 대한 얘기를 하기에 앞서 이 글에서는 한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인 한글의 과학성을 따질 것이지 한국어의 과학성을 따지지는 않을 것이다.

I. 과학적이란 ?

한글의 과학성을 따지기 위해서는 ‘과학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먼저 파악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과학적’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실 그 자체로 뒷받침되고, 논리적인 인식으로 매개되어 있는 (것). 원리적으로 체계가 세워져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관찰을 통해 논리적인 인식으로 도달되어진 것’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과학적인 한글’이라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 ‘과학적인 한글’의 의미

위에서 언급한 ‘과학적’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과학적인 한글’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는 훈민정음의 다음 구절을 통해 추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못한다 .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 내가 이것을 매우 딱하게 여기어 새로 스물여덟글자를 만들어 내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히어 일상생활에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할 따름이니라 .’

㉡ ‘ 이제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처음부터 지혜로 경영하고 힘써서 찾은 것이 아니요 . 다만 그 말소리에 따라 그 이치를 다했을 뿐이다 . 이치는 둘이 아닌즉 어찌 천지음양과 더불어 그 쓰임을 같이하지 않을 수 있으랴 . 훈민정음 28 자는 각각 그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 .’

훈민정음의 구절을 통해 두 가지 방향에서 ‘과학적인 한글’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로 ㉠으로부터 한글은 영어와 같이 오랜 역사를 두고 점차로 진화되어온 문자가 아니라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발명”된 문자이다. 그리고 둘째로 ㉡로부터 알 수 있듯이 한글은 한자와 같은 뜻글자가 아닌 말소리를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위의 ‘과학적’의 의미와 함께 생각해보자. 그리 어렵지 않게 우리의 말소리가 나오는 조음기관을 관찰하고 이를 논리적인 인식으로 분석하여 문자를 만들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필자의 지식이 부족하여 조음기관을 얼마나 과학적으로 분석했는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한글이 얼마나 폭넓게 말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지를 다른 언어와 비교해 살펴봄으로써 한글의 방대한 표현력을 확인해 보고 조음기관이 내는 말소리에 대한 분석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를 느껴 보도록 하자.

2. 영어와의 비교

한글을 세계 공용어로 쓰이는 영어의 모음과 비교해 보도록 하자. 한글이 말소리 문자인 만큼 같은 소리문자 중 현대에 가장 널리 쓰이는 영어와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선 비교에 앞서 자음 체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 어떤 음을 발음하는데 있어 모음만으로는 그 글자를 발음할 수 있지만 자음만으로는 그 글자를 발음할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ㅈ’을 발음하라고 한다면 대다수는 ‘즈’로 발음할 것이다. 즉 모음 ‘ㅡ’를 첨가하여 읽는 것이다. 하지만 모음의 경우 ‘ㅠ’, ‘ㅗ’는 자음 없이도 ‘유’, ‘오’로 발음할 수 있다. 또 영어의 경우 ‘a’ 하나 만으로도 ‘ㅏ’, ‘ㅐ’, ‘ㅔ’, ‘ㅓ’ 등으로 발음되기 때문에 영어의 모음은 발음 기호를 통해 비교하도록 하겠다.

아래 표는 영어의 모음을 구강 내의 위치에 따라 구분한 도표이다. 표의 왼쪽에 적힌 것이 영어의 모음을 표현한 발음 기호이며 오른쪽이 그것을 표현한 한글이다. 영어와 국어의 발음상의 차이에 의해 한글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모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약간의 수정과 약속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래의 도표뿐만이 아니라 영어에는 반모음(semivowel)이 있고 또 r 앞에서의 모음의 소리도 구별하는데 이들 역시 한글로 표현이 가능하다. 애초의 목적이 다른 소리 문자를 표현할 수 있음을 보이려는 의도였으므로 반모음의 예만을 보고 지나가자.

영어의 반모음에는 [w]와 [j]가 있다. [w]의 예로는 won, which, question 등이 있는데 한글의 ‘ㅜ’와 유사한 기

능을 한다. 그리고 [j]의 예로는 yet, bullion, cañon 등이 있으며 이는 ‘ㅣ’와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우’와 ‘이’는 이미 언급되었던 모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모음에서의 [j]와 [w]는

‘우이(위)’, ‘우어(워)’, ‘이어(여)’, ‘이에(예)’ 등의 모음 간의 결합 형태일 경우에 쓰임을 알 수 있다. 필자와 생각

을 같이 하는 독자라면 아마 이 쯤에서 한글이 영어 문자 뿐만 아니라 발음 기호에 비교해서도 보다 경제적이고

과학적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리라.

위에서 볼 수 있었듯이 한국어가 아닌 영어의 모음 기관을 한글이 표현할 수 있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한글이 표현할 수 있는 모음은 영어 알파벳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대답은 매우 간단한 것 같다. 단적인 예로 ‘ㅓ’가 쓰이는 단어는 영어 알파벳으로 표현하기 매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거울’을 ‘Geowool’로 적을 경우 ‘게오울’ 혹은 ‘지오울’등으로 발음이 가능하며 ‘서서히’의 경우 역시 ‘Seoseohee’라고 적어야 할지 ‘Susuhee’라고 적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위의 비교를 통해 영어의 모음 소리를 한글이 매우 근접한 위치까지 표현할 수 있으며 영어 알파벳은 한글이 표현하는 모음 소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함을 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말소리 문자(영어) 보다 폭 넓은 표현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으며 이는 곧 우리 조음기관이 내는 소리를 한글이 얼마나 잘 포착하고 있는지를 좁게나마 알 수 있게 해준다. 한글이 우리의 조음기간이 내는 소리를 잘 포착함을 보여주는 위의 예만으로도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가를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이쯤에서 위의 ‘과학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보자. ‘과학적임’은 사실 그 자체로 뒷받침된다는 관찰의 특징 외에 ‘논리적인 인식으로 매개되어 있는 그리고 원리적으로 체계가 세워져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글이 과학적이라면 이는 논리적인 인식을 매개로 체계를 지니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체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유한한 규칙에 의해 일관적으로 작용된다는 의미이며 이는 “규칙화 가능” 즉, 실용성을 담지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제 한글이 현대 사회에 얼마나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 혹은 얼마나 잘 만들어진 체계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II. 한글의 체계성과 실용성

위에서 한글의 체계성과 실용성의 연결 관계를 개괄적으로 언급했다. 이번 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언어의 사용의 측면에서 한글이 얼마나 이해하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는지를 살펴보고 수학의 공리론적인 체계에 부합하는 한글의 모습을 통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및 과학 분야에 적용 가능성을 살펴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컴퓨터에 적용된 한글 사용의 몇 가지 사례 및 과학자들이 말하는 한글의 가능성에 대한 자료를 통해 한글의 과학성을 보다 뒷받침하도록 하겠다.

1. 언어 사용으로 바라보는 실용성

⑴ 가획의 원리

한글의 글자는 기본적으로 가획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가획의 원리’란 ‘ㄱ, ㄴ, ㅁ, ㅅ, ㅇ’와 같은 초성이라 불리는 기호에 획을 하나씩 더하여 글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훈민정음에 매우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ㄱ는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현상을 본뜬 것이요. 혓소리 ㄴ은 입의 형상을 위 잇몸에 닿는 형상을 본뜬 것이요. 입술소리 ㅁ은 입의 형상을 본뜬 것이요. 잇소리 ㅅ은 이의 형상을 본뜬 것이요. 목구멍소리 ㅇ은 목구멍의 형상을 본뜬 것이다. ㅋ은 ㄱ보다 소리가 좀 거세게 나는고로 획을 더한 것이니 ㄴ에서 ㄷ, ㄷ에서 ㅌ, ㅁ에서 ㅂ, ㅂ에서 ㅍ, ㅅ에서 ㅈ, ㅈ에서 ㅊ, ㅇ에서 ㆆ, ㆆ에서 그 소리에 따라 획을 더한 뜻은 다 같다. 그러나 오직 ㅇ 만은 다르게 하고 반혀소리 ㄹ와 반잇소리 △도 역시 혀와 이의 모양을 본떴으나 그 모양을 다르게 하였을 뿐 획을 더한 뜻은 없다.’

아래의 표는 훈민정음에 적힌 초성체계를 분류한 표이다. 그리고 옆은 한글 글자와 음이 유사한 영어의 문자이다. 이 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한글의 기본이 되는 글자(기본자)와 획을 더한 글자(가획자)간의 구조가 소리를 내는 혀의 위치와 입술의 작용에 매우 잘 부합함을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옆의 영어를 보도록 하자. 영어에도 역시 자음과 모음간의 구별이 있기는 하나 글자 표기에 있어 연관성이 없다. 기본자에 한 획을 더한 글자가 같은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문자가 되는 한글에 비해 영어는 연관성 없는 글자들 간의 나열이 된다. 즉 문자를 배우고 사용하는데 있어 영어가 훨씬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⑵ 자질 문자로서의 한글의 특징

영국 리즈대학 음성언어학과 제프리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문자 체계(Writing System, 1985)’에서 세계의 문자를 분류하는데 그는 “문자는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로, 표음문자는 다시 음절문자에서 음소문자의 형태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이 분류에 따르면 한자는 대표적인 표의문자이고 일본 문자인 가나는 표음문자 중에서도 음절문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영어는 음소문자로 분류될 수 있다. 샘슨 교수는 한글에 대해 ‘자질(feature)문자’라고 분류하는데 그는 “한글은 과학적으로 볼 때 의심할 여지없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라며 한글만을 위해 ‘자질문자’라는 조항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제프리 샘슨 문자체계 참조>

이렇게 자질문자로 분류되는 한글은 영어와 같이 음소 단위의 글자를 사용하면서도 이를 음절 단위로 배열한다. ‘음소’란 ‘더 이상 더 작은 음운적 단위로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이며 하나 이상의 음소가 모여 음절을 이룬다. ‘음절’이란 ‘하나의 종합된 음의 느낌을 주는 단어의 구성 요소로서의 음의 단위’이며 우리가 실제 말하고 청취할 수 있는 음성의 최소 단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같은 음소 단위를 사용하는 영어 단어에서 음절을 파악해 보자. 아래 표는 각 영어 단어에 따른 음절수를 정리한 것이다.

영어 단어의 음절 수

가장 왼쪽의 ‘furniture’, ‘impossible’, ‘remember’의 경우는 ‘퍼니쳐’, ‘임파서블’, ‘리멤버’로 쉽게 그 음절의 수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오른쪽의 단어들을 보자. ‘examination’의 경우 ‘이그제머네이션’으로 읽어지며 음절의 수가 7개인 것 같지만 ‘익-제-머-네-이-션’으로 음절수가 5개가 된다. 마지막의 ‘brought’를 보자. 우리는 쉽게 ‘브로우트’라고 생각해 4개의 음절을 가진다고 할지 모르나 ‘ㅂ롯’으로 한 개의 음절을 가진다. 그렇다면 한글은 어떨까?

다음의 음절수는 몇 개인가? ‘한글’, ‘고려대학교’, ‘한글과 언어문화’. 아마도 이러한 단어의 음절수를 묻는 질문에 독자는 매우 당황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도 당연한 것을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의 음절수는 2개이며 ‘고려대학교’의 음절수는 5, ‘한글과 언어문화’의 음절수는 7이다. 이렇게 한글은 음절수와 글자수가 일치된다. 앞서 얘기했듯이 음소단위의 글자를 사용하면서 음절단위로 나누어져있기 때문에 음절을 파악하는데 매우 용이하다. 특히나 음절이 ‘우리가 실제 말하고 청취할 수 있는 음성의 최소 단위’라는 측면에서 글을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매우 용이하다.

지금까지 한글의 가획의 원리와 자질문자로서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이 두 가지만을 통해서도 우리는 한글이 적은 수의 기본 글자를 통해 다양한 음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 언어 교육에 있어서도 지각적으로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 한글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혹은 다른 응용과학 분야에 사용한다면 어떨까? 이제 언어학의 측면이 아닌 수학의 측면에서 한글의 체계성을 살펴보도록 하자.

2. 공리 체계(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측면에서 바라본 한글의 실용성

현대의 많은 학문 중에 가장 체계적인 학문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단연 수학을 꼽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수학 체계는 공리(Axiom)이라고 하는 수학자들 사이의 약속에 의해 그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이 글에서 수학의 공리체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접어두도록 하겠다. 이 글의 주제와는 상당히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공리’라는 말 대신 ‘규칙(rule)’이라는 말로 이를 대신하도록 하겠으며 ‘규칙’이라는 용어 사용을 통해 일어나는 오해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한다.

⑴ 수학의 공리 체계

한글의 체계성을 말하면서 수학을 얘기하는데 대해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20세기 초, 완전한 수학의 체계를 설립하려는 수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세워진 공리체계는 현대 컴퓨터이론의 토대가 된다. 현대에는 수학을 기본적으로 10가지의 ‘공리(Axiom)’라 불리는 규칙으로 이루어진 체계로 해석하는데 이해하기 어렵다면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초가 되는 규칙이 ‘공리’이다. 유명한 페르마의 정리 역시 이 공리로부터 도출될 수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수학자들이 하는 일은 어떠한 수학적 사실이 공리로부터 도출 가능한 ‘정리(Theorem)’인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 규칙체계(공리체계)가 한글의 실용성과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바둑을 예로 들어 보자. 아래는 필자가 임으로 바둑에 대한 기본 규칙을 생각해본 것이다.

① 361(=19×19)개의 움직일 수 있는 길이 있다.

② 흑돌과 백돌만을 사용할 수 있다.

③ 한 번에 한 자리에만 돌을 놓을 수 있으며 한 사람은 한 가지 돌만을 사용할 수 있다.

④ 한 사람이 연속으로 두 번 돌을 놓을 수 없다.

⑤ 한 돌을 다른 돌이 빈 공간 없이 둘러싸면 둘러싼 돌의 주인이 이 돌을 가진다.

⑥ 한쪽이 기권하거나 더 이상 놓을 수 없을 때까지 돌을 놓는다.

⑦ 돌로 둘러싼 공간이 많은 쪽이 이긴다. (상대방의 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상대방의 공간을 채울 수 있다.)

현대에도 바둑은 일종의 신선놀음으로 불릴 정도로 그 수가 매우 다양하며 두뇌 게임의 최고봉에 달해 있을 정도로 그 전문성을 인정받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바둑도 위의 7가지 정도의 규칙으로 이루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몇 천 몇 만 가지의 수가 단 7가지의 규칙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둑의 ‘수’라고 불리는 바둑의 전략을 표현하기에는 7가지 규칙으로는 어려운 점이 많다. 전략 표현을 위해 더욱 많은 규칙을 추가할 수가 있으며 규칙의 추가를 통해 다양한 측면의 규칙을 보다 손쉽게 표현할 수 있다. 말하자면 덧셈만을 가지고 셈을 하는 것 보다 곱셈 체계가 더해졌을 경우 큰 수에 대한 계산이 훨씬 빨라지는 이치다. 이렇게 규칙은 많을수록 복잡한 표현이 보다 손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문제는 규칙이 많을수록 그 체계가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추가하는 규칙이 오류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하는데 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러한 검증 과정을 가지기 힘들다. 컴퓨터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규칙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스템이 오류를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에 규칙을 줄이면 줄일수록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process)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오류를 최소화하면서 가장 빠른 효율적인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학적 체계 즉, 컴퓨터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체계를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한글을 컴퓨터에 구현한다고 했을 때, 한글에 대한 규칙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고 이것이 어떠한 체계성 그리고 효율성을 가지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⑵ 암호화(Coding) 과정을 통한 한글의 경제성 비교

앞서 우리는 한글이 초성자를 기본으로 가획의 원리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 가획의 원리를 앞장의 규칙에 대한 설명에 대응시킨다면 한글이 충분히 수학적 규칙성의 체계(수학적 공리 체계)를 가질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지금까지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글의 글자를 컴퓨터에 인식시키는 방법을 임의로 구성해 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 방법을 영어에도 적용해 봄으로써 영어에 비해 한글이 가지는 체계성 및 경제성을 알아볼 것이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점과 선 그리고 원에 대한 공리와 함께 가획의 원리를 응용할 것이다. 모든 도형의 기본은 “점”이므로 점으로부터 선과 원을 정의할 수 있다. 다음은 필자가 임의로 구성한 점, 선, 그리고 원의 규정이다.

임의의 평면 A = {∈ $R^2$ ∣ 0 ≤ x ≤ 3, 0 ≤ y ≤ 3}에 대해,

규칙 1> 주어진 임의의 평면 A 에 대해 하나 이상의 점이 있다 .

정의 1> 어떤 두 점 A, B 가 있다면 A 와 B 를 포함하며 이들 사이를 빈 공간 없이 채운 점들의 집합을 점 AB 를 잇는 ‘ 선 ’ 이라고 한다 .

정의 2> 어떤 점 A 와 같은 거리에 있는 모든 점들의 집합을 ‘ 원 ’ 이라고 한다 .

위의 정의에 따라 아래 그림의 가장 굵은 선은 $\overline{AB}$ = {∈ $R^2$ ∣ 0 ≤ x ≤ 1, y = 3}와 같이 점들의 집합으로 표현될 수 있다.

ㅅ을 표현하기 위한 두 대각선 역시 $\overline{CD} = \{ \in R^2 | y=2x \wedge 0 \leq x \leq 1, 0 \leq y \leq 2 \}$와 $\overline{EF} = \{ \in R^2 | y=-2x+3 \wedge 0 \leq x \leq 1, 0 \leq y \leq 2 \}$와 같이 점들의 집합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ㅅ은 $\overline{CD} \cup \overline{EF}$로 표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원 역시 $\widehat{G} = \{ \in R^2 | (x-2)^2 + (y-1)^2 = 1 \wedge 1 \leq x \leq 2, 1 \leq y \leq 2 \}$와 같이 점들의 집합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제 다음 규칙으로 넘어가자.

규칙 2> 모든 선의 집합은 x, y 둘 중 하나의 좌표가 꼭 $n \leq 3$ 과 같아야 하며 나머지 좌표의 범위의 크기는 1 을 넘어서는 안 된다 .

규칙 3> ㅅ의 집합은 규칙 2 에 예외로 한다 .

규칙 4> 유일한 원의 집합 $\widehat{G}$ 가 존재한다 .

이렇게 규칙 2, 3, 4를 통해서 \overline{AB}$와 같은 24개의 선의 집합과 ㅅ의 집합 그리고 $\widehat{G}$의 원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도형들의 집합이 구성된다. 그리고 이들을 이용해 아래와 같은 한글의 기본 글자들이 표현된다.

이제 남은 작업은 이들을 컴퓨터에 인식 시키는 작업이다.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2진법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된다.

복잡한 설명은 생략하고 본론만을 말한다면 위에서 구성한 선, 대각선 그리고 원에 특정수를 부여하고 이를 2진

법으로 고친 후 회로를 구성하면 된다. 본격적인 암호화(coding)작업은 생략하고 공리를 하나 더 추가하여 한

글의 모든 문자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도형들만을 추려내면 17개의 선과 1개의 도형 그리고 1개의 원이 필요하다.

모두 20개의 도형만으로 글자 구성 규칙을 도입하여 모든 한글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제 영어를 생각해 보자. 한글처럼 점으로부터 시작하는 기획을 생각할 때, 그나마 가장 구성하기 쉬운 방법이 대문자 표기일 것이다. 영어의 대문자를 나열하면 ‘ABCDEFGHIJKLMNOPQRSTUVWXYZ’가 되는데 글자 모양을 봐서도 알겠지만 대각선 및 곡선의 체계가 매우 복잡하다. 선이 일차방정식으로 표현 가능하다면 원은 x와 y값이 모두 이차인 만큼 그 복잡성이 더하다. 또한 선으로만 구성된 문자를 보더라도 기초 문자의 구성이 한글에 비해 매우 복잡하다. 문자를 구성하는 기초 체계가 없으니 글자 자체를 하나의 점들의 집합으로 구성해 암호화해서 컴퓨터에 인식시킬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역시 26가지 도형을 암호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한글의 20개와 비교해 비경제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각자는 글자 구성 규칙을 적용해 단어 혹은 문장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인데 우리는 앞에서 이미 한글이 영어에 비해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음성을 표현함을 보았다. 기초 도형의 구성에서부터 문자의 사용까지 한글의 체계성, 경제성 그리고 실용성은 더 이상 영어에 비교할 바가 아닌 것 같다.

III. 과학적인 문자 한글

지금까지 ‘과학적’이라는 말의 의미에서부터 한글의 실용성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에의 적용까지 한글의 과학성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이제 실제 현대의 학자들이 언급하는 한글의 과학성과 예찬 혹은 사용에 대한 몇 몇 사례를 통해서 한글의 과학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이 글을 마칠까 한다.

1. 조합형

필자가 앞장에서 임의로 구성한 한글 표현방식과 유사한 아이디어로 구성된 방식을 조합형이라고 한다. 조합형이란 한글의 초성과 같은 기본형 문자를 기초로 이들을 조합하여 글자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을’, ‘작’ 등의 완성된 글자를 하나하나 컴퓨터에 입력하여 사용하던 종전의 완성형 방식에 비해 매우 폭 넓은 표현력과 효율성을 자랑하는 방식이다. 현재 조합형은 문서 편집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한글 표현 방식이며 이 방식 역시 훈민정음에 나온 한글의 기본원리를 따랐을 뿐임을 알 수 있다.

2. 조선일보 소개 사례

‘한글 세계화’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한글의 무한한 개방적 구조에 주목한다. 김형배 한글문화연대 학술위원은 “한글은 초성 다섯 자(ㄱ, ㄴ, ㅁ, ㅅ, ㅇ)와 중성 세 자(·, ㅡ,ㅣ)를 바탕으로 가획의 원리에 의해 파생자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연서(連書·세로쓰기에서 자음을 위아래로 쓰는 것)나 병서(竝書·둘 이상의 자음이나 모음을 아울러 쓰는 것)에 의해 더 많은 글자를 만들 수 있다”며 “우리말에 없는 외국어 발음을 적기 위한 발음기호로 한글을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한글 창제 당시 지금은 없어진 4글자(?, ·, △, ?)와 중국어를 적기 위한 6자 등을 조합하면 무려 399억자를 만들 수 있다”며 “정인지가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서 ‘바람 소리, 학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다’고 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글의 가능성을 실제 상품으로 연결시킨 사례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안마태(73) 신부. 그는 작년 6월 영어 알파벳으로 원하는 글자를 찾아오는 중국의 병음(倂音)식 프로세서를 대체할 수 있는 ‘안음(安音) 3.0’을 출시, 중국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안음 3.0’은 한글을 발음기호로 이용해 중국어를 표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 예를 들어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을 병음법으로 표기하려면 ‘zhong hua ren min gong hua guo’와 같이 24개의 알파벳을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그러나 ‘안음 3.0’을 이용하면 ‘쭝훠런민꿍훠궈’를 입력만 해도 화면에 해당 한자가 떠오른다. 동음이의어의 경우 획 수나 성조 등을 참조해 여러 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현재 중국 동항에 거주하며 제품 상용화에 힘 쏟고 있는 그는 “영어나 일본어도 동일한 방식으로 한글을 입력용 발음 기호로 사용할 수 있으며 현재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3. 한겨레 일보 사례 2003. 10. 08

“한글은 과학이다” 한글은 수학으로 분석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문자이며, 슈퍼컴퓨터로도 풀기 힘든 암호문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과학적 문자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앨라배마주립대의 김기항(68,·수학) 석좌교수는 지난 5년여 동안 이런 한글의 ‘과학성’을 분석한 논문을 잇따라 내며 이를 미국 학계와 교민사회에 널리 알려왔다. 한국한림원 종신회원이기도 한 그는 2001년 대한수학회 소식지에 ‘신기한 훈민정음의 수학적 특성’이란 논문을, 최근엔 ‘한글과 암호’라는 논문을 내는 등 한글 분석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전자우편 인터뷰를 통해 “24개 모든 자·모음은 수학의 대칭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한글은 순열을 이용해 슈퍼컴퓨터로도 해독하는 데 수천년 걸릴 암호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점 ‘.’이 모여 수평선분 ‘ㅡ’와 수직선분 ‘ㅣ’을 이루고 이들의 조합인 ‘ㅗ’ ‘ㅛ’ 등을 이동·회전해 모든 모음을 얻을 수 있다. 자음들 역시 ‘ㅡ’와 ‘ㅣ’가 연결·이동하거나 회전해 ‘ㄴ’ ‘ㅂ’ 등을 만든다. 김 교수는 “영어나 아랍어에도 없는 수학적 구조를 한글만이 지녔다”며 “참으로 아름답고 신기한 문자”라고 평했다. 그는 “앨리배마주립대 미국인 학생들도 1시간 만에 한글 자·모음을 쉽게 깨쳤을 정도”라고 소개하며 순열을 이용한 한글 암호문 작성의 실례를 보이기도 했다.

4. 한글, 영어, 일어, 그리고 중국어 문자사용 비교

아래 그림은 한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한글,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문자를 보내보고 불편한 점을 나타낸 그림이다. 기본적으로 ‘한 시간 뒤에 거기서 보자’와 같은 말을 전하는데 한글은 40타 이하 영어는 40타 이상의 키패드를 쳐야 한다고 한다.

위의 네 가지 사례 외에도 한글의 과학성과 실용성을 주장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미 한글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그 과학성이 인정받았다. 가장 큰 문제라면 한글을 가장 많이 쓰는 우리의 한국에 대한 무관심이랄까? 올해로 한글이 세계 공용어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의 사용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과학의 결정체인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미경,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한글』, 자우출판사, 2006

김영욱, 「한글과 언어문화 강의노트」

정경일 외12명, 『한국어의 탐구와 이해』, 박이정, 2002

A.F. 차머스, 『과학이란 무엇인가?』, 서광사, 2003, 신중섭, 이상원 옮김

Hewings, M. & Goldstein, S., Pronunciation Plus, Cambridge university press.

Pyles, T. and Algeo, J,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the English Language, Harcourt, 1992

한글의 창제 원리, 과학성, 문자 위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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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본질은 약속이다. 인류는 차츰 혀와 성대 근육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소리로 의사전달을 하기 시작하고, 이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개발했다. 초기의 문자는 음성과 필연적인 연관이 있지는 않았다. 쐐기문자, 상형문자 등 고대 문자에서는 음가보다 뜻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보인다. 그러다 음가를 그대로 표시하는 데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알파벳 등의 표음문자다.

문자의 출현 과정에서 보듯, 문자는 소리를 그대로 투영한 기호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러한 모양은 이렇게 읽자’고 약속한 기호 체계다. 라틴 알파벳도 약속이고, 한자도 약속이고, 일본 문자인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도 약속이고,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도 약속이다.

오랜 시간 동안 구성원들이 공유한 약속에 따라 문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을 배운 사람들은 모두 그 문자를 잘 쓰고 이해한다. 문자마다 장단점이 있고 언어권마다 표현 방식이나 문법 등이 달라서 문자에 우열을 두기란 어렵다. 어떤 언어든 의사소통과 기록이라는 본연의 기능은 충실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한글이 특별히 더 ‘과학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글의 과학성의 핵심은 그 논리성과 실용성에 있다. 한글을 칭송하는 외국의 언어학자들이 강조하는 부분도 바로 논리적이고 배우기 쉽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라이덴학의 언어학자 포스 교수는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알파벳을 발명했다. 한글은 간단하면서도 논리적이며, 게다가 고도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한글의 과학성을 강조했다.

독일 함부르크대의 한국학자 베르너 잣세는 한글의 과학성을 실용성과 연관시켜 파악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전한다.

“처음 볼 때는 한글이 어렵다고 느꼈지만 실제로 배워보니까 하루 만에 익힐 수 있었다. 특히 한글 글자 모양이 입 모양이나 발음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열 살도 안 된 우리 아이들도 취미로 한글을 금세 깨우치고 나서는 자기들끼리 비밀 편지를 쓸 때 한글을 쓴다. 독일어를 한글로 적는 것이다. 그만큼 한글은 쉽게 익혀서 쓸 수 있는 글자다.”

과학적 근거가 분명한 한글의 제자 원리

한글의 창제 원리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있다. 혹자는 창호지를 보고 모양을 본땄다고 하고, 혹자는 산스크리스트어에서, 혹자는 몽고의 파스파문자를 참고하여 글자모양을 만들었다고 추측한다. 이처럼 흥미로운 가설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처음 문자의 모양을 생각해 낸 계기만을 추측한 것일 뿐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한글의 제자 원리를 글로 분명하게 밝혀,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모음은 세계의 근간인 천지인(天地人) 3재(才)를 본땄다는 것이 지금의 정설이다.

한글의 과학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점이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뜬 글자 모양이다. 우주의 시작이건, 만물의 시작이건, 도량의 시작이건 간에 그 근간이 논리적이어야 한다. 알파벳은 각 글자가 어떤 연유로 생겼고, 또 글자 체계의 구성 원리가 불분명하다. 그 어느 문자도 한글처럼 명징하고 확실한 제자(製字) 원리를 제시하는 문자가 없다. 발음기관은 음성이 나는 원천으로서 ‘최초’의 논리성과 물리적인 근거를 확실하게 부여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이를 어떻게 명시했는지 보자.

“어금닛소리 글자인 ㄱ은 혀의 안쪽이 목구멍을 닫는 모양을 본떴다.”

“혓소리 글자인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떴다.”

“입술소리 글자인 ㅁ은 입의 모양을 본떴다.”

“잇소리 글자인 ㅅ은 이의 모양을 본떴다.”

“목청소리 글자인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다.”

여기서 어금닛소리, 혓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목청소리 이 다섯 소리가 입에서 나는 모든 자음 소리의 기본이다. 이 다섯 글자꼴 중 어금닛소리 ㄱ과 ㄴ은 입 속 혀의 작용을 본뜬 것이고, 입술소리 ㅁ, 잇소리 ㅅ, 목청소리 ㅇ은 각각 발음을 내는 입술, 치아, 목구멍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한편으로 이 5개 음이 모든 소리의 기본이 된다고 하여 전통적인 5행(五行)사상을 반영한다.

바로 이 부분이 이전의 그 어느 문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학성의 근간이다. 물론 다른 언어권에 발음기관을 본뜬 문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화기 발명으로 유명한 벨의 아버지 알렉산더 멜빌 벨(1819~1905)이 19세기 후반에 농아를 위한 문자로 발음기관을 본뜬 문자를 고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대체 문자일 뿐, 온전한 문자는 아니다.

자음이 발음기관의 모양이라는 물리적인 실체에 근거했다면 모음 창제에는 우리의 전통 과학 사유가 오롯이 녹아 있다. 예부터 한민족은 숫자 3을 중히 여겼으며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도 하늘, 땅, 인간으로 구분했다. 세종은 한글의 모음 글꼴에 세계의 3요소를 그대로 담았다. ‘·(아래아)’는 둥근 하늘의 모습을, ‘-’는 평편한 땅의 모습을, ‘ㅣ’는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각각 본떴다. 하늘과 땅이 생기고 그 속에서 인간이 대지에 발을 딛고 생장한다는 이치를 담아 이들이 조화롭게 엮인 모음 11글자가 만들어졌다.

아주 간단한 듯 보이지만 천지인(天·地·人) 3요소를 조합한 모음 글꼴은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한 사물의 형상이 아닌 추상적인 우주관을 글꼴에 표현해 문자가 세계를 이루는 원리임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우주관과 자연관을 간단한 모음의 형상에 온전히 담아낸 재치와 창의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체계적인 음운 분석으로 탄생한 모음

글꼴의 구성 원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음운학적 원리다. 흔히 오해하는 바와 달리, 초성-중성-종성으로 구성되는 음소 단위 조합은 세종의 독자적인 업적이 아니다. 한글 창제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인 음소의 구분은 이미 중국과 몽고의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어는 한글의 초성과 중성을 합한 성(聲)과 한글의 종성에 해당하는 운(韻)으로 구성됐으며, 몽고의 파스파 문자에서는 중성이 다시 음성학적으로 떨어져 나왔다.

당시 중국과 몽고에서는 음성학이 꽤 높은 수준으로 발달해 음소와 관련된 연구성과를 다수 내고 있었으며 세종은 그 성과를 숙지해 한글 창제에 반영했다. 그러나 세종은 파스파문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성인 모음에 독립된 문자를 부여해 한글을 이전 언어와 질적으로 달라지게 했다. 게다가 서로 다른 음소인 초성과 종성의 소리값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 자음으로 통일했다는 것도 한글의 위대한 과학적 성취 중 하나다.

이렇듯 한글은 발음기관의 모양과 전통적인 자연철학에 단단한 근거를 뒀을 뿐 아니라 음운학적인 분석으로 모음을 분리하고 초성과 종성을 동일 소리값으로 묶어 기존의 소리 체계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 이런 점 때문에 한글은 단순한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의 약속이란 차원을 넘어선 ‘과학적인 문자’가 된 것이다.

Ⅰ. 한글창제의 의의

① 한글창제의 연혁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세종25년(1443) 음력 12월에 창제하여 세종 28년(1446) 음력 9월 상순에 반포한 문자이다. 훈민정음은 창제한 사람, 창제한 날짜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으며 창제 원리를 적은 기록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문자이다. 그 기록인 <훈민정음 해례>는 국보 제70호로서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이다.

② 한글창제의 정신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은 세종의 민족 자주 정신과 민본 정신에 입각해 있다.

세종대왕이 ‘우리말은 중국말과 달라 중국 글자로서는 우리의 문자 생활을 해 나갈 수 없어 훈민정음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 것은 강한 민족 자주 정신을 나타낸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이 문자를 만든다고 한 것은 그동안 문자 생활을 누리지 못했던 백성들을 위한 강한 민본 정신을 나타낸다.

이러한 자주 애민(愛民). 민본(民本)정신은 世宗大王의 <訓民正音 序文>을 음미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國之語音異乎中國(국지어음이호중국)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與文字不相流通(여문자불상유통)

문자와 더불어 서로 통하지 아니함이라

故愚民有所欲言(고우민유소욕언)

그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이종부득신기정자다의)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余爲此憫然(여위차민연)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新制二十八字(신제이십팔자)

새로 이십팔자를 만드노니

欲使人人易習(욕사인인이습)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便於日用耳(편어일용이)

날로 쓰는데 편리하게 할 뿐이라.

과학적인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은 만고에 우러러 볼 성군(聖君)이시다.

광화문에 의젓이 앉아 계신 세종대왕께 언제나 감사드린다.

③ 한글명칭의 유래

한글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된 후 낮추어서 언문(諺文) 반절(半切)등의 이름으로 불리웠다. 갑오경장 이후에는 국문(國文)이라고 불렸으나 특정언어에 대한 명칭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글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글이라고 처음 이름 붙인 이는 주시경 선생인데 1913년 어린이 잡지 <아이들 보이>에 집필한 글에서 제목으로 한글이라고 표기한 것이 처음이다.

한글의 뜻은

글중에 가장 큰(大)글,

글 중에 오직 하나(一)인 좋은 글,

온 겨레가 한결(一致)같이 쓰는 글,

글 중에서 가장 바른(正)글,

결함이 없어 원만(圓滿)한 글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Ⅱ. 한글 창제의 원리

세종은 전부 17개의 자음과 11개의 모음자를 만들었다. 자음은 발음기관를 상형화 하여 만들었고,모음은 음양의 원리에 따라 천지인(天地人)을 본따 만들었다. 각각의 창제원리를 고찰해본다.

1. 자음 창제 원리

현재 자음은 14자인데 당시는 17자 였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ὁ ṓ △

이중 ㄱ, ㄴ, ㅁ, ㅅ, ㅇ 들은 다른 글자를 만드는 기본이 되는 글자이며 이것을 기본자(基本字)라 한다. 이 기본자에 획을 하나씩 더해서 나머지 글자가 만들어졌다.

기본자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ㄱ> 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 어금니 옆에서 소리가 난다하여

‘엄소리’라고 했다.

<ㄴ > 혀가 윗 잇몸에 닿는 모양 .혀옆에서 소리가 난다하여 ‘혀소리’

<ㅁ > 입술의 모양 . 입시울소리

<ㅅ > 이의 모양 니소리

<ㅇ> 목구멍의 모양 → 목소리

이 자음을 비슷한 모양끼리 묶으면

ㄱㅋ ㄴㄷㅌ ㅁㅂㅍ ㅅㅈㅊ o ṓ ㅎ

즉, 말소리를 내는데 필요한 중요발음기관을 상형(象形)하여 자음의 기본글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ㅋ은 ㄱ보다 획이 하나 더 많다. ㄱ보다 소리가 더하다.

기본자 ㄱ에 획을하나 더하면 소리가 세진다. 이렇게 획을 더하는 것을 ‘가획’ (加劃)이라고 한다.

ㄴ역시 획을 하나 더하면 ㄷ이되고 여기에 획을 하나 더하면 ㅌ이 된다.

당시에 만들어 졌던 글자들중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ㄹ, △, O 모양을 달리하여 만든글자.

모양이 다르다고 다를이(異)에 몸체(體)자를 써서 이체자(異體字)라고 한다.

된소리 나타내는 ㄲ, ㄸ, ㅃ, ㅆ, ㅉ 등은 ㄱ ㄷ ㅂ ㅅ ㅈ을 나란히 두 번썼다고 해서 병서자 (竝書字)라고 한다.

2. 모음 창제의 원리

모음은 천지인(天地人)인 ‘․, ㅡ, l ‘ 의 모습을 본따 만들었다.

옛날사람들은 하늘은 둥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둥근 모양을 본따서 ‘․’ (아래아)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땅의 평평한 모습을 본따 ‘ㅡ’자를, 마지막으로 사람의 서있는 본따서 ‘ l ‘를 만들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모습을 본따 모음의 기본자를 만든 후 이들은 서로 결합하여 다른 모음을 만들었다.

l + ․ → ㅏ ㅏ + ․ → ㅑ

․ + 1 → ㅓ ․ + ㅓ → ㅕ

․ + ㅡ → ㅗ ․ + ㅗ → ㅛ

ㅡ + ․ → ㅜ ㅜ + ․ → ㅠ

이와같이 ‘ l ‘에 ’․‘를 더하면 ’ㅏ‘ 가 되고 ’․‘ 더하면 ㅑ가 된다.

또 ‘․’에 ‘l ‘를 더하면 ’ㅓ‘가되고 ’․‘를 ’ㅓ‘를 더하면 ’ㅕ‘가된다.

‘ l ‘와 ’ㅛ‘ ’ㅜ‘와 ’ㅠ‘역시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이때 기본이 되는 세 모음을 결합하여 ㅏ ㅓ ㅗ ㅜ를 초출자라하고 초출자에 다시 기본모음을 더하여 만든 ㅑ ㅕ ㅛ ㅠ를 재출자라고 한다.

․(아래아)는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은 ㅏ 와 ㅓ의 중간소리로 측정되는데 18세기 이후 ㅡ나 ㅏ등으로 변했다.

위와같이 한글은 모음조화 현상을 이해하고 문자에 반영했다. 모음의 기본글자를 이 세상의 중요한 세가지, 즉 하늘, 땅, 사람을 기본으로 잡고 그 글자를 각각․, ㅡ, ㅣ로 형상화했으며 한 부류의 모음은 ․를 각각ㅡ와 l의 위쪽과 오른쪽에 두었으며(ㅗ, ㅓ) 모음글자끼리 어울릴 때도 ‘ㅘ, ㅝ’ 처럼 같은 부류끼리 어울리는 글자를 만들었다.

3 초성, 중성, 종성의 삼분법원리

한글은 성운학의 원리를 답습하지 않고 한 음벌로 세 부분으로 나누는 새로운 원리를 발견했다. 예를 들면 ‘동’을 ‘ㄷ’, ‘ㅗ’, ‘ㅇ’으로 나누어 하나의 음절이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것은 당시의 성운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개념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같다.

① 한글은 음(절)을 초성과 중성, 종성으로 분석하였다.

② 초성과 중성을 구분하여 각각의 문자를 별도로 만들었다.

③ 종성에 대해서는 따로 문자를 만들지 않고 초성자를 같이 쓰기로 하였다.

④ 초성과 중성 모두 약간의 기본자를 먼저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나머지 문자를 만들었다.

⑤ 초성의 기본자는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따 만들고, 중성의 기본자는 천, 지, 인을 상형(象形)하였다.

⑥ 초성의 경우, 각 발음 위치별로 가장 약한 소리를 기본자의 대상으로 삼고, 나머지는 센 정도에 따라 거기에 획을 더하였다.

⑦ 중성의 글자꼴 결정에는 음양오행설 등의 철학적 원리도 반영되었다.

⑧ 실제로 글을 적을 때에는 초성과 중성, 종성을 합해 적기로 하였다.

주지하듯이, 음을 세 부분으로 분석하고, 각각의 목록과 체계 그리고 특징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내용을 제자(자형)에 그대로 반영했던 것이다. 이는 소리의 체계와 특징을 글자(꼴)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Ⅲ. 결어

한글의 창제원리는 상기 기술한 바와같다. 이러한 한글창제의 언어사적, 문자학사적 의의는 문자 발달의 최고 단계인 자질문자를 창안했다는 점이다.

한글은 ‘ㄷ,ㅌ,ㄸ’처럼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거나 같은 글자를 반복함으로써 음소 자질을 체계적으로 나타내 주는데, 이러한 특징은 다른 문자 체계에서는 찾아 볼수 없다.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인류 보편적인 문자로 창제했으며, 세계에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입체적인 과학적글자이다.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이 처음부터 따로 만들어진 문자이다. 상형문자에서 발달한 문자는 자음글자만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른 글자가 단층구조라면 한글은 2층구조로서 입체적인 가장 뛰어난 문자인 것이다. 단층집과 2층집은 그 외양이 다를 뿐 아니라 , 건물구조 내용도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한글은 이층집, 알파벳은 1층집의 문자이다.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있다. 배달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글자가 한글이다.

한글은 당시 언어인 한국어 음운의 운율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표기에 반영했다. 소리의 높낮이를 정확하게 표기한 문자 또는 문자 체계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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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ㄱ의 순간’ 한글의 과학성, 예술성에 매료되다

한글이 현대 미술로 재탄생했다. 전시 ‘ㄱ의 순간’은 문자 이전의 시기부터 한글 창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초월한 미적 상상력을 펼친다. 김환기, 박수근, 백남준, 남관, 이응로, 황창배 등 작고한 거장부터 김창열, 서도호, 이우환, 이건용, 최정화, 강익중, 전광영 등 현재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 47명의 신작, 희귀작을 통해 한글의 잉태와 탄생, 일상과 미래를 미술 언어로 제시한다.▶Info-장소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기간 ~2021년 2월28일-티켓 성인 1만2000원, 초·중·고교생 8000원, 유치원생 5000원-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이번 기획 전시에는 베네치아비엔날레 심사 위원장을 지낸 이용우 중국 상하이대 석좌 교수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자문 위원,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감독을 지낸 이대형 큐레이터가 기획 위원으로 각각 참여했고, 국내 화랑들도 행사 취지에 공감하며 참여했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한글의 탄생과 일상을 현대 예술과 역사 유물의 대화로 보여 주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또 한글이 갖는 무한한 잠재력을 다시 보여 주는 것이 이번 전시의 취지다”라고 설명했다. 생존 작가 38명, 작고한 작가 9명 등 총 47명 작가의 작품 100여 점이 전시되며 특히 현대 미술 작가들의 회화, 영상, 설치, 서예 등을 한자리에 모았다.김환기는 뉴욕에서 활동할 때 돈이 없어 『뉴욕타임스』 신문지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때 남긴 ㄱㄴㄷㄹ 문양의 ‘무제’를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민화가 박수근은 손주들을 위해 평강 온달 이야기를 책으로 남겼다. 현대 미술뿐 아니라 그간 접하기 힘들었던 미공개 유물과 희귀 그림 등이 국내외에서 이 전시를 위해 모였다. 신채호 선생이 쓴 친필 ‘새벽의 별’, 조선 시대 수양 대군이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한글로 옮긴 『석보상절』 3권, 일본에서 발견된 서화 역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전시는 한글 창제에 담긴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ㄱㄴㅁㅅㅇ’의 다섯 섹션으로 구성된다. ‘ㄱ씨’는 한글의 잉태와 탄생 지점을 다룬다. 암각화와 청동 거울, 토기 등 고고 유물에 각인된 문양과 이를 재해석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어울리며 의미를 획득한다. 훈민정음은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양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양’에 인간의 말을 합한 것이 ‘문자’다. 인간의 발음 기관을 본뜬 자음과 천지자연의 모습을 상형화한 모음처럼 ‘문양’에서 ‘문자’로 한글이 탄생하는 과정을 현대 미술을 통해 목도할 수 있다. 소리를 시각화한 김호득, 백남준, 서용선, 태싯그룹 등의 작품이 천전리 암각화, 훈민정음 해례본 등의 유물과 함께 전시된다.‘ㄴ몸’은 자음과 모음의 결합 구조, 즉 건축성을 다룬다.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의 결합으로 시각화되는 원리를 담은 현대 미술 작품들로 구성했다. 낱개의 소리 언어가 모여 하나의 몸체가 되듯 산스크리트어 불경 독송이 한글 자막으로 변화하는 서도호의 영상, 방탄소년단과 아미를 주제로 추상에서 점차 유기적 형태로 나아가며 한글의 확장성을 드러낸 강이연의 프로젝션 맵핑 등도 선보인다.‘ㅁ삶’은 한글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 주는 공간이다. 한글은 삶의 희로애락을 표출한다. 시서화의 전통에서 출발해 현대 미술 언어로 진화하면서 오늘날 삶의 빛과 어둠을 드러내는 한글의 속성을 소개한다. ‘ㅅ얼’은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이 굳건했음을 보여 주는 공간이고, ‘ㅇ꿈’은 현대 미술의 가장 근원적 지향을 확인하는 공간이다.우리말과 글, 소리와 그림의 원형은 바로 하늘, 땅, 사람이다. 암각화, 고대 토기, 청동 거울 등의 유물에 새겨진 문양을 재해석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실제 유물과 함께 전시된다.[글 김은정(프리랜서) 사진 예술의전당][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65호 (21.02.01) 기사입니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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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한글 과학성에 대한 교육 전략 /김 슬옹

* 출전: 교육한글 14호(2001.12, 한글학회)

-차례-

1. 머리말 4. 한글의 구체적

2. 과학성에 대하여 과학성을 위한 교육 전략

3. 훈민정음 문자 5. 맺음말

과학의 실체

〈벼리〉 이 글은 훈민정음/한글이 왜 과학적인지와 과연 그런지를 교육 전략 속에서 설명해 본 글이다. 특히 훈민정음을 문자과학 측면에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면서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추상적 과학성을 실제 삶 속에서 실현되는 구체적 과학성으로 연결하는 교육 전략을 제시했다.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과학성은 그 동안의 논의를 좀더 체계적으로 종합하고 그 맥락을 좀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해 최대한의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과학성은 구체적 과학성으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단지 추상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과학성으로 머문다는 것을 강조해 문자의 사회적 맥락에 따른 역동적 전략을 제시했다. 곧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과학성은 문자의 내적 체계에서 기본적으로 설정된 추상적인 과학성이며, 실제의 구체적 과학성은 시대마다 문자를 부려쓰는 사람들의 구체적 방식으로 설정됨을 강조했다.

1. 머리말

교육 현장에서 훈민정음이나 한글의 과학성을 한결같이 얘기하지만 과학성의 실체를 제대로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그러한 과학성을 성급하게 민족주의와 연결하는 경우가 많아 과학성을 따져야 하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하게 된다. 물론 과학성은 여러 전략으로 이용할 수 있고 민족주의와 연결하는 것이 우리 현실로 보아 주요 전략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다만 그런 전략은 과학성의 실체를 좀 더 정확하고 냉정하게 파악한 뒤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 하면 그런 성급하고도 일방적인 의도는 과학성의 풍부한 효과를 단순화시킬 수도 있고 과학성의 본질을 변질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글이 과학적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과학적이며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는 담론 차원에서의 과학성이 중요하다.

그러한 인식과 교육 모순 때문인지 정보화 시대의 핵심인 컴퓨터를 통한 한글 문자 제약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지금은 운영 체제의 한글 문자 시스템 보완으로 큰 문제는 없지만, 우리는 한동안 컴퓨터의 상당한 영역, 그것도 통신망, 국가 전산망, 일부 문서 작성기에서 한글을 완전하게 구현할 수 없었다. 정확히 ‘찦차’의 ‘찦’과 같은 음절 글자를 칠 수 없었는데, 그것은 곧 해당 낱말을 표현할 수 없는 문제를 넘어 표현의 제약이었고 문화의 제약이었고 그런 문제는 지금도 잠재되어 있다. 그런 문제가 정보 시대에 한글이 과학적인 글자라는 담론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문자가 과학적이라고 해서 모든 언어 생활이 다 과학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절(문자)조차 구현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학적이란 말을 내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문자 부려쓰기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한글이 왜 과학적인 문자인지를 다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글은 과학적인 글자다’는 말은 ‘훈민정음은 과학적인 글자이다’와 같은 말을 같은 의미로 쓰거나 혼용하여 쓰고 있지만 일단은 구별해야 할 문제다. 단순히 ‘한글’과 ‘훈민정음’이라는 용어의 차이가 아니라 각각의 용어가 표상하는 문자의 자리매김이 다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창제 당시와 근대 이전의 상징성을 간직한 문자를 뜻하고, ‘한글’은 근대화 과정에서 ‘국문’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상징화시킨 말이다. 훈민정음이 다소 고정된 문자 이름인 데 반해 한글은 지금까지 그리고 당분간은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역동적 이름이다. 이런 차이에서라면 위의 두 말을 혼용해서 사용할 수는 없다. 훈민정음은 고정된 문자 이름이므로 과학적이냐 아니냐 판단하기 쉽지만, 역동적인 문자 체계인 한글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 가느냐에 따라 과학적이냐 아니냐가 판단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글이 비록 19세기 이후에 생긴 이름이지만 15세기부터 사용해 온 한국인의 문자 체계를 추상적으로 가리킬 수는 있다. 그런 맥락이라면 훈민정음도 마찬가지다. 비록 15세기와 지금의 문자 체계가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 골격까지 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이 글에서 일반적 자연과학 측면에서는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역동적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회과학 측면에서는 ‘한글의 과학성’을 주로 논할 것이다. 일반적인 자연과학으로서의 과학성은 추상적인 과학성이다. 구체적인 과학성은 실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구현된다는 것이 이 논문의 출발점이다. 물론 자연과학 측면에서의 과학성조차 역동적인 가치변화를 함의하고 있다. 모든 과학은 순수하지도 가치중립적이지도 않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이런 이치와 같다. 아주 과학적으로 설계된 전자 제품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이 전자 제품의 기능을 자기 용도에 맞게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제 기능의 10분의 1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전자의 경우는 구체적 과학성이 실현된 경우이지만 후자의 경우, 구체적 과학성이 실현되었다고 볼 수 없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서는 그 전자 제품은 과학적인 전자 제품이 아니다. 훈민정음이 과학적으로 창제되었다고 하지만 실제 쓰임새에서 그 과학성이 제대로 구현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추상적인 문자 체계로서의 한글은 과학적일지 모르지만, 앞에서 지적한 완성형 프로그램에서의 한글은 과학적일 수 없다. 한자를 섞어 쓰는 글에서도 한글은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 다른 문자를 섞어 의사 소통을 시도한다면 한글의 과학성을 완전히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훈민정음이나 한글이 과학적이므로 우수하다라는 담론이 근대 이후 민족주의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잡아 왔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과학성으로 실현되지 못한 것은 추상적인 과학성을 구체적 과학성으로 착각하거나 아니면 추상적인 과학성을 지나치게 상징화한 오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먼저 ‘과학성’에 대한 개념 설정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의 문자 과학의 특성을 규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교육 전략을 논하기로 한다.

2. 과학성에 대하여

훈민정음이 과학적인 문자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과학적이며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라는 거친 물음이 이 글의 동기이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 특히 국어학자들이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얘기해 왔지만 과학성 자체를 총체적으로 규명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 희성(1994), 변 정용(1991)에서는 전산학자로서 주로 자연과학이나 수학적 측면에서 과학성을 규명한 적이 있다. 국어학자들도 많이 논의해 왔지만 이 글에서와 같은 종합적 설명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먼저 이 글에서 말하는 ‘과학, 과학성, 과학적’이란 개념이 무엇인지 밝혀 둘 필요가 있다. 누구나가 과학을 논의하고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 정의가 만만한 것은 아니다. ‘과학’은 형식과 내용, 정신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 이론과 실천 등의 대립적인 측면을 동시에 아우르는 복합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여러 논의를 종합하여 볼 때, 과학은 체계적인 인식의 틀이거나 종합적인 지식 체계이다. 여기서 체계라는 것은 실험이나 실천을 통해 검증된 이론 체계를 갖추었음을 뜻한다. 자연과학이건 사회과학이건 ‘과학’이란 말을 붙이는 이상은 그런 기본방향은 같다. 이론과의 구별을 통해 과학의 실체를 더 잘 알 수 있다. 과학은 반드시 이론을 함의하지만 이론이 과학을 반드시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론은 특별 개인만의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과학은 특정 개인만의 과학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의 이론이 여러 검증을 거쳐 과학으로 발전할 수는 있다. 유물론적 과학은 마르크스라는 개인에 의해 처음으로 성립한 이론이 발전한 사회과학이다. 따라서 과학은 이론에 비해 종합적이다. 종합적이라고 해서 과학의 개별성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곧 수학,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처럼 과학은 실제 구체적인 분야에서는 개별적 과학으로 작동할 수 있다. 물론 인지과학처럼 여러 과학의 종합을 추구하는 과학도 있다.

과학이 체계적인 인식의 틀이라는 측면을 더 주목해 보자. 수학은 수의 체계와 그에 관한 이론을 통해 세계의 여러 현상을 인식하고 해석한다. 유물론적 과학은 유물론과 생산 관계에 대한 체계를 통해 세계의 여러 현상을 해석한다. 그래서 유물론적 사회과학, 유물론적 언어과학 등 다양한 과학이 성립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 체계는 그 자체가 독자적인 지식 체계를 이룬다. 언어 과학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고자 하는 과학이다. 이러한 언어 과학은 음성론,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 등 일정한 지식 체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는 여기서 ‘과학’이란 말과 ‘과학적’이란 말을 구별하고자 한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과학에 비해 널널하게 쓰이는 말이다. 과학은 종합적인 체계이다. 그러나 과학적이란 말은 어떤 특정 요소가 과학 특성을 보인다는 말이다. 어떤 개인의 이론을 무척 과학적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다. 그것이 실제 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과학의 특성을 지녔다는 것이지 그 자체가 과학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상 생활에서는 과학이라는 말과 과학적이라는 말을 혼용해서 쓴다. 훈민정음이 과학적 글자라고 한 때의 과학적은 과학성 그 자체를 뜻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이 과학적 글자’라는 담론은 문자를 만든 원리나 문자 체계가 체계적이고 자연과학처럼 객관적으로 검증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학적 특성 때문에 훈민정음은 독자적인 문자과학이라는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자과학과 문자학을 구별할 필요성을 느낀다. 문자학은 그야말로 문자에 관한 학문이지만 문자과학은 문자의 과학성을 뜻한다. 어떤 문자가 과학적이건 아니건 그것은 문자학의 대상이 되지만 문자과학은 아니다.

그렇다면 문자과학은 무엇인가. 문자가 지향해야 주요 조건을 충족시킬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틀과 내용이다. 틀은 모든 문자에 적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되고 내용은 각 문자마다 다를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틀에 해당하는 주요 조건은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해당 입말을 가장 충실하게 적을 수 있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곧 입말 수용의 과학성이다. 무릇 문자는 입말을 제대로 적을 수 있을 때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므로 입말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한 것이다. 이 첫째 조건만으로는 문자과학을 이룰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입말과 글말을 함께 부려쓸 주체인 인간과 사회적 시스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 조건이 필요하다. 둘째는 문자는 인간 생활의 편의성을 위한 것이므로 모든 계층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곧 활용의 과학성이다.

두 조건을 만족시켰다면 그것은 이론적인 측면에서의 만족이다. 문제는 실제로 역동적인 삶의 변화 속에서 제대로 부려쓰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론적인 측면에서의 과학성이 추상적 과학성이라면 실제 실천을 통해 그 과학성을 이루는 것은 구체적 과학성이 된다. 다시 말하면 앞에서 언급한 문자의 내적 체계의 과학성이 추상적 과학성이고 구체적인 현실에서 어떤 조건과 방식으로 쓰이느냐는 것이 구체적 과학성이다. 그러니까 훈민정음은 이론적, 추상적 과학성을 갖춘 문자이며 그 때의 과학성은 자연과학에 가까운 것이며, 구체적 과학성은 자연과학을 포괄할 뿐 아니라 사회 맥락 속에서의 자리매김이 강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훈민정음 문자과학의 실체

훈민정음이 문자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인 문자 과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지만 그것은 철저히 한국(조선)이라는 특수 조건을 전제로 한 것이다. 현실에서 쓰이지 않는 인공문자는 존재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과학이라는 말과 우월주의로서의 우수라는 말을 혼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글이 과학적이기 때문에 우수하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한글이 한자나 일본 가나보다 더 우수한 문자라고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다. 서로 개별적인 문자는 굳이 문화 상대주의 관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우월성을 따질 수 없다. 극단적으로 일본 사람들에게는 일본의 가나 문자가 가장 우수한 문자이며 중국 사람들에게는 한자가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글이 한자나 가나보다 더 과학적인 글자라고 얘기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과학은 보편적인 인식의 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이 보편적인 문자과학으로 정초될 수 있다는 것은, 훈민정음을 세계 모든 나라의 문자로 해야 한다든가 하는 국수주의 입장이 아니고, 보편적인 문자과학으로 볼 때 이상적인 과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입말 수용의 과학성에 대해서 알아 보자.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의 분절성을 문자화시킨 음소문자(낱소리글자, 자모문자) 체계를 적용하였다. 앞에서 얘기하였듯이 한글이 일본의 가나보다 더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 가나가 한자보다 더 과학적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단어 문자보다는 음절 문자가, 음절 문자보다는 음소 문자가 더 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것은 자소의 수가 적을수록 좋다는 자소 최소주의와 풍부한 음성언어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그렇다.

다음으로는 소리(음성, 입말)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문자는 단순히 음성언어의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능을 갖지만 일단은 음성언어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음성언어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이 아니라 음성언어와 문자언어가 효율적인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음성언어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하는 것은 필수 요소이다. 15세기에는 중국의 글말을 빌려 쓰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중국 글말과 우리 입말과의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였다. 먼저 창제 배경과 취지가 나와 있는 ‘세종 어제’ 부분을 보자.

〈해례본 ‘본문’ 중 세종 어제〉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 故 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 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언해본 ‘분문’ 중 세종 어제〉

나랏말미 中國귁에 달아 文문字와로 서르 디 아니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 노미 하니라. 내 이 爲윙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듧 字 노니 사마다  수 니겨 날로 메 便뼌安킈 고져  미니라. (방점 생략)

〈현대말 옮김〉

우리 나라의 말(한국어)이 중국과 달라서, 한문과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런 처지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히어 날마다 사용할 때 편안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

그 당시는 소중화를 자처하던 시기다. 그렇지만 아무리 정치적으로 학문적으로 소중화를 내세워도 문화, 특히 언어는 비슷해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위 글은 정치적 자주 의식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문화의 자주 의식을 언어를 통해 인식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문자의 과학성은 철저히 해당 문화를 과학적으로 인식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종은 문화의 자주 의식이 투철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보기로 제례 음악 따위에서 중국식 음악을 버리고 한국식 음악을 정리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文字以通其用 是猶枘鑿之鉏鋙也 豈能達而無礙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정 인지 꼬리말)

그런데 사방의 풍토가 따로 나누어 있고, 소리도 또한 따라서 다르다. 무릇 다른 나라의 말은 소리는 있어도 글자는 없어서 중국 글자를 빌려서 씀에 통하였다. 이는 마치 도끼 자루가 구멍이 맞지 않아 흔들거림과 같으니 어찌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겠는가? 모두 각각 입장에 따라서 편안하도록 함이 필요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吾東方禮樂文章 侔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정 인지 꼬리말)

우리 나라는 예와 음악과 문화가 중국과 흡사한 수준이나 오직 우리말이 중국과 같지 않아서 글을 배우는 이는 그 뜻을 깨침이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를 다스리는 이는 사유를 통찰하기가 어려움을 안타까워 하였다.

이러한 과학적 인식은 음절에 대한 삼분법 인식과 분석으로 이어졌다. 곧 중국말은 성모와 운모로 이분법적으로 분석되었는데 운모를 다시 중성과 종성으로 갈라 결국 초, 중, 종성으로 분석해 낸 것이다. 그 동안 끊임없이 지적되어 온 것처럼 이러한 삼분법은 단순히 한 음절을 초, 중, 종성으로 갈랐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 음운 체계를 독창적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소리와 관련된 훈민정음의 과학성은 다른 문자와는 달리 음성 기관에서 출발하였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곧 자음의 경우 원형 문자를 발음 기관에서 추상화하였다.

〈표 1〉 글자 만든 방법에 따른 초성 17자 분류

원형 문자 상형 원리 명칭 가획자 이체자 ㄱ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象舌根閉喉之形) 아음, 엄쏘리 ㅋ  ㄴ 혀끝이 윗 잇몸에 닿는 모양 (象舌附上愕之形) 설음, 혀쏘리 ㄷ, ㅌ ㄹ (반설음) ㅁ 입의 생긴 모양 (象口形) 순음, 입시울소리 ㅂ, ㅍ ㅅ 이의 생긴 모양 (象齒形) 치음, 니쏘리 ㅈ, ㅊ ㅿ (반치음) ㅇ 목구멍의 둥글게 생긴 모양 (象喉形) 후음, 목소리 ᅙ, ㅎ

그렇다면 이러한 방식이 문자 과학성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정 희성 교수는 이런 내용은 과학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렇게 과학이 아니라고 본 것은 과학을 자연과학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문자과학으로 보면 상관이 있다. 원형 문자를 발음 기관에서 추출한 것은 문자를 음성언어와의 합리적(과학적) 관계 설정으로 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음 기관을 체계적으로 표상화하였기 때문에 음성언어(한국말)를 효율적으로 적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다른 기본 문자를 생성하는 데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발음 기관 모방은 자음에만 한정하고 모음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도 과학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음은 발음 기관에서의 위치가 분명한 데 반해 모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곧 자음과 모음의 분절성을 인식한 것뿐만 아니라 그 차이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문자에 반영하였다는 것이다. 대신 모음의 원형 문자는 하늘 땅 사람을 형상화하였다. 이는 소리와는 전혀 별개의 상징화처럼 보이지만 하늘이 양성을, 땅이 음성을 상징하므로 이도 소리의 성질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곧 우리말의 주요 특징인 모음조화를 문자에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음과 모음의 차이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자음과 모음을 아예 기하학적 구조를 달리하여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자음 – ㄱ, ㄴ, ㄷ, ㄹ, ㅁ, ㅇ, …

모음 – ㅏ, ㅑ, ㅓ, ㅕ, ㅗ, ㅛ, …

훈민정음은 결국 자음과 모음을 분리함으로써 최소주의의 1차 조건을 만족하였다. 다음 2차 조건으로 자음, 모음 각각 복합 자소 생성주의를 채택하였다. 이는 원형 문자를 만들어 복합 자소를 생성해 가는 방식이다. 최소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체자도 같은 계열로 보면 이체자이지만 전체 연관관계로 보면 획 더하기와 다를 바가 없다. 이 밖에 겹치기 방법을 추가시켜 초성 23 체계를 얻는다.

ㄱ → ㅋ

→ ㄲ

ㄴ → ㄷ → ㅌ

→ ㄸ

→ ㄹ

ㅁ → ㅂ → ㅍ

→ ㅃ

ㅅ → ㅈ → ㅊ

→ ㅉ

→ ㅆ

→ 

ㅇ → ㆆ → ㅎ → ㆅ

→ ㆁ

소리 성질 소리내는 자리 전청(全淸) 예사소리 차청(次淸) 거센소리 불청불탁 (不淸不濁) 울림소리 전탁(全濁) 된소리 牙音 엄쏘리 ㄱ ㅋ  ㄲ 舌音 혀쏘리 ㄷ ㅌ ㄴ ㄸ 脣音 입시울쏘리 ㅂ ㅍ ㅁ ㅃ 齒音 니쏘리 ㅅ, ㅈ ㅊ ㅆ, ㅉ 喉音 목소리 ㆆ ㅎ ㅇ ㆅ 半舌音 반혀쏘리 ㄹ 半齒音 반니쏘리 ㅿ

〈표 2〉 초성 23 체계의 소리 성질에 따른 분류

그 밖에 일상어에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ㆀ, ㅥ도 있었다. 그리고 또 연서법(위 아래 합치기)에 의해 네 개의 복합 자소를 얻는다.

ㅁ → ㅂ → ㅍ → ㆄ

→ ㅃ → ㅹ

→ ㅸ

→ ㅱ

다음으로는 옆으로 합치는 방법(합용 병서)에 의해 10개의 복합 자소를 만들었다.

, , , ᄩ

, ᄮ, ᄮ, 

ᄢ, ᄣ

이로써 자음을 만들 수 있는 생산적인 방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필요한 자음을 충분히 만들어 냈다.

모음은 하늘, 땅, 사람을 추상적으로 본뜬 원형글자 , ㅡ, ㅣ를 조합하여 기본 모음 11자를 만들었다.

〈표 3〉 모음의 기본자와 합용자 분류

구분 양성모음 음성모음 중성모음 기본자 (基本字) ∙ 하늘의 둥근 모양 ㅡ 땅의 평평한 모양 ㅣ 사람의 서 있는 모양 초출자 (初出字) ㅗ, ㅏ ㅜ, ㅓ 재출자 (再出字) ㅛ, ㅑ ㅠ, ㅕ

위 11자를 서로 합성하여 복합 모음 14자를 만들었다.

두세 글자:  ㅢ ㅚ ㅐ ㅟ ㅔ  ㅒ  ㅖ: ㅘ ㅝ: ㅙ ㅞ

자소 최소주의를 위해 마지막으로 택한 원리는 종성 글자를 따로 만들지 않고 초성 글자를 그대로 갖다 쓴다는 원칙이다.

終聲 復用初聲者 以其動而陽者乾也 靜而陰者亦乾也,乾實分陰陽而無不君宰也. 一元之氣 周流不窮 四時之運 循環無端 ,故貞而復元 冬而復春. 初聲之復爲終 終聲之復爲初 亦此義也. (합자해)

종성에 초성을 다시 씀은, 그것이 움직여 양이 된 것도 건(乾)이요, 멎어 음이 된 것도 건 때문이니, 건은 실로 음양으로 나뉘어 주재하여 다스리지 않음이 없음이라. 태초의 기운이 두루 흘러 다하지 않으매, 4철의 운행이 순환하여 끝이 없으므로 정(貞)에서 다시 원(元)이 되고, 겨울이 다시 봄이 되노라. 초성이 다시 종성이 되고 종성이 다시 초성이 됨도 역시 이러한 이치니라.

그 동안 여러 사람이 강조했지만 만일 우리 나라 말에서 유난히 발달되어 있는 종성을 따로 문자로 만들었다면 훈민정음의 자소는 무척 늘어나 실용성을 크게 훼손했을 것이다.

종성

1) 단자음: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2) 중자음: 없음.

3) 복자음: ㄳ, ㄴㅅ, ㄴ, ㄵ, ㄶ, ㄺ, ㄺㅅ, ㄹㄷ, ㄻ, ㄻㄱ, ㄼ, ㄼㅅ, ㄹ, ㄽ, ㄾ, ㄿ, ㅀ, ㅁㄱ, ㅁㅅ, ㅁ, ㅄ, ㅅㄱ, ㅅㄷ, ᄝ, , ㅇㄱ, ㅇㅅ.

자음과 모음의 결합 방식에서도 과학성은 드러난다. 곧 자음에 모음을 결합하고 다시 자음을 결합하는 방식에서 체계적인 구조를 이루게 하였다. 특히 초성에 중성을 결합하는 방식이 위상 구조(topology)로 설계되었다. 쉽게 말하면 ‘ㅏ’를 90도씩 회전시키면 ‘ㅜ, ㅓ, ㅗ’ 등이 생성되는데 이는 최소 공간 속에서 최대 음절을 생성하는 원리로 이어진다.

가 각

고 거 곡 걱

구 국

정 희성(1994:205)에서는 위상 구조를 6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수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1형 : (ㄱ ㅏ ) → (가)

2형 : (ㄴ ㅗ ) → (노)

3형 : (ㄱ ㅗ ㅏ) → (과)

4형 : (ㄷ ㅏ ㄷ) → (닫)

5형 : (ㄹ ㅗ ㄹ) → (롤)

6형 : (ㄱ ㅗ ㅐ ㄴ ㅎ) → (괞)

결국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때 훈민정음은 소수의 자모와 소수의 규칙으로 최대한의 음절을 생성할 수 있는 문자의 과학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입말 수용 측면에서 보았지만 더불어 중요한 것은 입말을 기록한 문자를 읽어내는 방식에서의 합리성도 주목할 일이다. 이런 특성에서도 훈민정음은 과학성을 지니는데 그것은 1자 1음주의 원리를 최대한 지켰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문자의 구체적 작동으로 볼 때 1자 1음주의를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지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자가 입말과의 연계 속에서 작동되는 것이라면 한 자소가 한 음소를 나타내는 것이 이상적이다. 왜냐 하면 문자는 단지 음소를 적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다시 읽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한 소리가 여러 문자로 표기되거나 한 문자가 여러 소리를 표상한다. 이를테면 a는 열 가지 정도의 발음으로, e, o는 열세 가지 정도, u는 아홉 가지 정도로 발음된다. 거꾸로 [o]라는 발음은 “ a ll, c au ght, p o ll”와 같이 다양한 문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발음 기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글은 몇 가지 예외는 있으나 한 음소가 한 문자로 표상되고(/a/-ㅏ), 거꾸로 한 문자는 한 음소(ㅏ-/a/)로 표상된다. 이 원리가 지켜진다면 배울 때 좋고 표기법 수립에서 많은 장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생물학자인 다이아몬드의 아래와 같은 체험적 고백은 주목할 만하다.

“영어를 읽고 쓸 줄 아시오?”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의당 이렇게 답할 것이다. “물론이지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잡지를 어떻게 읽고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영어의 글말에 숨어 있는 규칙(맞춤법)을 남에게 설명해 보려고 한 적이 있어요? 말하자면, ‘seed’란 낱말은 왜 ‘cede’나 ‘ceed’, 또는 ‘sied’로 쓰지 않고 하필 그렇게 적으며, [sh] 소리는 왜 ‘ce'(ocean)나, ‘ti'(nation) 또는 ‘ss'(issue)같이 여러 가지로 적을 수도 있는 것인지 말이오.” 물론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모두 영어의 글말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드러내고 있는 악명 높은 보기들이다. 요즘 내가 1학년에 다니는 우리 집 쌍둥이 아들들을 통해서 새로이 느끼고 있는 바이지만, 영어의 맞춤법은 너무나 일관성이 없어서 비록 맞춤법의 기본 규칙(그런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을 익힌 어린이라고 해도, 아직도 읽지 못하는 낱말이 많을 뿐 아니라, 들은 말을 글로 적지 못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덴마크의 글자살이 역시 어렵고, 중국과 남한은 더 어려우며, 일본은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글자살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프랑스 어린이들은 적어도 글말을 거의 다 읽을 수는 있으나, 말을 듣고 맞춤법으로 적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핀란드와 북한에서는 말소리(발음)와 글자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이 낱말을 어떻게 맞춤법으로 적느냐?”와 같은 질문은 아예 있을 수가 없다. (남한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글자살이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결국 남한이 한자를 섞어 쓰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북한에서 발음과 글자가 일치한다는 것은 북한이 한자를 쓰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왜냐 하면, 한자를 접어둔다면, 남한과 북한의 글자살이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옮긴이) ‘개명한’ 사람들은 글자살이야말로 자기들을 미개 야만인과 구별해 주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만일 개명한 영어 사용자들이 앞으로 새로운 글자 체계를 고안해 낸다면 핀란드 사람이나 북한 사람들같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Diamond, Jared, 1994,〈Writing Right〉, Discover, June/ 이 현복 옮김,《한글 새소식》1994년 8월호.)

다음으로, 훈민정음은 철저히 역학 원리를 적용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므로 글쓴이가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런 원리는 단지 추상적인 상징 부여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문자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역학은 자연의 질서와 변화는 일정한 조화와 통일 속에 이루어진다는 사상을 뼈대로 한다. 음양오행론은 그 핵심 이론인 것이다. 먼저 이러한 사상의 배경에 대한 훈민정음 구절을 보자.

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 坤復之間爲太極 而動靜之後爲陰陽. 凡有生類在天地之間者 捨陰陽而何之. 故人之聲音 皆有陰陽之理 顧人不察耳.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제자해)

천지의 도는 오직 음양오행일 뿐이다. 건과 복 사이에서 태극이 생겨 움직이고 멎고 한 뒤에 음양이 생긴다. 무릇 어느 생물이든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은 음양의 이치를 버리고 어찌 가겠는가. 그런 고로, 사람의 말소리에도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는데, 다만 사람이 살피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정음을 만듦은 처음부터 지혜로써 계획하고 힘을 써서 찾아 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에 따라 그 이치를 밝혀 냈을 뿐이다. 이치란 본래 둘이 아니니, 곧, 어찌 천, 지, 귀, 신과 더불어 씀이 같지 않겠는가.

夫人之有聲本於五行. 故合諸四時而不悖 叶之五音而不戾. (초성해)

무릇, 사람이 소리를 가짐은 오행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네 계절에 맞추어도 어긋나지 않으며, 오음에 맞추어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보려 한 까닭은 무엇인가. 다음 정 인지 꼬리말에서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정 인지 꼬리말)

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다.

소리가 천지 자연의 질서 중의 하나라면 글(문자)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리의 세계를 최대한 정확하게 문자에 반영하려는 의도이다. 한국어의 소리(정확히는 음소) 세계를 과학적으로 전사할 수 있는 문자 체계를 이룬 것은 바로 이러한 철학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훈민정음에 적극적으로 적용된 음양 이론은 단순히 추상적 상징 체계가 아니라 구체적 문자 효과를 보여 주는 원리라는 점이다. 실제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보자.

〈표 4〉 자음의 음양 오행론 분류

오음 구분 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 초성 ㄱㅋㄲ ㄷㅌㄸㄴ [ㄹ] ㅂㅍㅃㅁ ㅅㅆㅈㅊㅉ [ㅿ] ㆆㅎㆅㅇ 오행 木 火 土 金 水 사시 春 夏 季夏 秋 冬 방위 東 南 映 西 北 오음 角 徵 宮 商 羽

모음도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상형 원리와 합성(결합) 원리, 그리고 음양 사상의 생성 원리에 의해 정밀하게 구성되었다. 하늘을 형상한 아래아는 양성 모음이고, 땅을 형상한 ㅡ는 음성 모음, 사람을 형상한 ㅣ는 중성 모음이다. 이러한 음양론은 양성은 양성끼리, 음성은 음성끼리 어울린다는 모음조화 취지를 구체적 문자 실현으로 반영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역학 원리는 자연의 소리와 원리를 문자에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그렇다면 역학 적용은 문자학적으로 볼 때 소리(한국인이 인식하는 소리일지라도)를 가장 잘 반영하려는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의 소리, 한국인의 자연스런 소리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이 성공하였기에 다음과 같은 자신감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字韻則淸濁之能辨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 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戾 鷄鳴狗吠 皆可得而書矣. (정 인지 꼬리말)

글자의 소리는 청음과 탁음을 분별할 수 있고 노래는 율과 여를 조화시킨다. 씀에 갖추지 않는 바가 없다. 비록 바람 소리, 학의 울음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다 적을 수 있다.

다음으로 훈민정음은 조형 원리 측면에서도 과학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자는 기호다. 기호는 판별이 빨라야 하고 아름다울수록 좋다. 훈민정음은 그래픽 글자라고 할 만큼 그러한 점이 뛰어나다. 먼저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의 형체를 확연히 구별되게 하였다. 자음은 직선, 네모, 세모, 동그라미를 통해 만들었고 모음은 긴 직선과 짧은 직선, 그리고 점을 통해 만들었다. 그리고 자음의 경우는 발음이 비슷한 같은 계열의 문자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판별이 쉽게 하였다. 이러한 문자의 실용주의 과학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아래와 같은 선언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정 인지 꼬리말)

28자로써 둘러바꿈이 그지없고 간단하고 요약되었으며 자세하고 두루 통하므로 지혜로운 이는 아침 나절이 다하기 전에 이해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쯤이면 배울 수 있는데 이것으로써 글을 풀이하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것으로써 소송에서 사유를 들으면 그 사정을 알 수 있다.

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臣崔恒 副校理臣朴彭年 臣申叔舟 修撰臣成三問 敦寧府注簿臣姜希顔 行集賢殿副修撰臣李塏 臣李善老等 謹作諸解及例 以敍其梗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정 인지 꼬리말)

드디어 상세히 풀어 새겨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라고 명하셨다. 이에 저와 집현전 응교 최 항, 부교리 박 팽년, 신 숙주, 수찬 성 삼문, 돈녕부 주부 강 희안, 행집현전 부수찬 이 개, 이 선로 들이 삼가 여러 풀이 등과 보기를 지어서 그 줄거리를 서술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치도록 하였다.

若其淵源精義之妙 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정 인지 꼬리말)

그것의 일어남과 정밀한 내용의 세밀함 따위는 저희들이 드러낼 수 없는 바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훈민정음의 과학성은 피지배 계층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문자의 과학성은 당연히 문자가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라는 기능적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보 전달과 정보 저장이 문자의 핵심 기능이라고 했다. 정보 저장도 결국은 정보 전달이다. 저장하는 목적은 자기가 다시 보건 남에게 남겨 주려 하건 결국 전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자는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문자의 존재 이유를 완전히 충족할 수 있다.

문자가 대개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결국 문자는 특히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피지배 계급이 쉽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훈민정음 해설서인《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언급하고 있다. 철저한 민본주의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문자(한문)를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려운 한문 때문에 자기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 사례가 최 만리, 정 창손 등과의 논쟁에서 드러난다. 곧 재판 따위에서 백성들이 자기 뜻을 제대로 못 펴 억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吾東方禮樂文章 侔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우리 나라는 예와 음악과 문화가 중국과 흡사한 수준이나 오직 우리말이 중국과 같지 않아서 글을 배우는 이는 그 뜻을 깨침이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를 다스리는 이는 사유를 통찰하기가 어려움을 안타까워 하였다. (정 인지 꼬리말)

형살(形殺)에 대한 옥사 같은 것을 이두문자로 쓴다면 문리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의 착오로 혹 원통함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이제 언문으로 그 말을 직접 써서 읽어 듣게 하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모두 다 쉽게 알아들어서 억울함을 품을 자가 없을 것이라. (최 만리 상소문의 인용문 재인용)

물론 최 만리는 백성들의 억울함이 문자에 있지 않고 인간(양반 관리)에게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올바른 지적이다. 계급 모순에 의한 인권 탄압이 극심하던 시절이다. 양반들은 각종 조세, 부역, 공물 납부 등을 하지 않았으며, 양인(백성)과 천민들을 제멋대로 다룰 수 있었다. 이런 실정이었으니 피지배 계급이 문자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려 한들 제대로 먹혀들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건 안 받아들여지건 간에 자신의 뜻을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상황과 그럴 수 없는 상황은 차원이 다르다.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기본 전제일 뿐이다. 최 만리 논리대로 인간이 문제라고 해서 그것을 근거로 문자 창제까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서문의 구절이 창제자 스스로 밝혀 놓은 동기와 목적이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지 모르나, 최 만리와의 논쟁이나 세종의 다방면의 업적과 치적으로 볼 때 민본주의로 해석하는 데 아무 이의가 없다. 민본주의는 지배 계급 위주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피지배 계급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세종은 지배 질서 확립을 위해서나 백성들을 위한 정책적인 측면에서나 쉬운 문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자연과학 측면과 그런한 과학성이 작동되는 맥락을 문자과학으로 자리매김해 보았다. 이러한 과학성은 실제 언어 생활에서의 과학성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실제로 훈민정음이 피지배 계층의 주요 표현 도구로 되기는 했지만 우리 겨레의 독립된 문자로 500년이 넘도록 자리잡지 못했다. 지금도《조선일보》와 같은 수구 보수 신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에서는 한글을 독립된 문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과학성을 우리 현실에서 제대로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4. 한글의 구체적 과학성을 위한 교육 전략

훈민정음의 과학성이 한글의 과학성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구체적 과학성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때 훈민정음과 한글의 과학 담론은 제대로 된 생명력을 얻게 된다. 문자는 시대 변화에 잘 적응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두 가지 교육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이 글 맥락과 같이 설명하되 아래와 같은 대립 논쟁을 유도해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전략이다. 토론이나 논술 주제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한글, 이래서 우수하다/ 이 광형 9일은 한글날. 유네스코가 최근 조선 왕조 실록과 함께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 올해 한글날은 더욱 뜻깊은 날이 되었다. 한글이 과학적이고 우수한 글자라는 것을 배웠지만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그 우수성을 증명하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첫번째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프랑스어와 영어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등학교 정도의 교육만 충실히 받으면 한글의 맞춤법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대학교 졸업자는 물론이고 교사들까지도 자주 철자를 틀리게 쓰는 경우를 보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교사들이 그렇고, 또 그들 모두가 자격증 소지자라는 것을 알고는 그들의 글자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발음할 수 있는 말은 모두 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발음을 해도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말과 글이 얼마나 일치하느냐, 일치하지 않느냐를 잘 나타내 주는 것으로 한글이 쉬운 글자라는 것을 증명한다. 한국의 문맹률이 0%에 가까운 데 반하여 서양의 문맹률은 20%를 웃도는 현실은 이런 관찰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두번째 우수성은 컴퓨터 공부를 하다가 발견했다. 정보화 시대에는 문자 인식이라 하여 컴퓨터가 사람이 쓴 글자를 읽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의 원리는 컴퓨터가 문자(패턴)를 기억하고 있다가 읽은 내용을 이 기억된 문자와 비교하여 일치하면 해당 문자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 때 인식하는 단위를 어느 것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학교(School)」라는 단어를 인식한다고 해 보자. 영어에서는 알파벳 문자(s, c, h 등)와 단어(School) 단위 등 두 가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알파벳 문자 단위로 읽으면 글자 획이 단순해서 다른 문자와 구별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알파벳 문자 P와 R는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단어 단위로 인식하게 하려면 기억하고 있어야 할 단어가 수십만 개나 되어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알파벳 문자 단위로 읽는다. 즉「학교」를 영어로 인식하게 하려면 s, c, h, o, o, l의 6개 문자를 각각 읽어 이것들을 기억된 알파벳 모양(패턴)과 비교하게 한다.

그런데 한글에서는「모아쓰기」라는 특징이 있다. 영어에서처럼 자모를 옆으로 나열하지 않고 모아서(「학」,「교」등으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한글에서는 컴퓨터가 인식하는 단위를 정할 때 세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는 한글 자모 단위(ㅎ, ㅏ, ㄱ 등), 둘째는 글자 단위(학, 교 등), 셋째는 단어 단위(학교, 소년 등)로 읽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영어에서처럼 획이 너무 단순하여 구별이 잘 안 되고, 셋째 방법은 기억해야 할 단어가 너무 많게 된다. 그런데 두 번째 방법인 글자 단위로 하면 글자 하나 하나가 적당히 복잡하여 다른 글자와 구별이 잘된다. 또한 한글 자모로 이루어지는 글자가 3만 자가 안 되기 때문에 컴퓨터가 기억하기도 쉽다. 앞의「학교」를 읽게 하려면「학」,「교」라는 두 개의 글자를 받아들여 이것을 기억하고 있는 패턴과 비교하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동일한 수준의 문자 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영어와 한글을 인식하게 하면 한글 인식률이 더 높다. 위와 같은 비교 관찰은 전문적이고 종합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조건 한글이 우수하다고 가르치는 것보다는 외국어와 비교해서 이 같은 장점이 있음을 설명해 주며 가르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동아일보, 1997. 10. 8.)

한글 우수성 살리려면/ 이 한우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알려진 한글이야말로 한국 문화의 가장 훌륭한 ‘작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글만큼 효율적이고, 과학적이고, 철학적이면서 멋있는 글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한글을 한국에 와서 처음 배웠다. 가끔은 각 나라 외국사람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면서 한글의 우수성에 놀란다. 외국사람들이 다른 어느 외국어보다 한글을 빠르게 배운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말 자체는 복잡해 외국사람이 배우기 어렵지만 문자인 한글은 음소글자로서 발음 기호 익히기가 너무나 쉽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말을 전혀 접해 보지 않은 외국사람들은 한글 구조에 대한 설명을 한 시간만 듣고도 한글을 떠듬떠듬 읽기 시작한다.

그것은 한글의 글자꼴 디자인이 매우 논리적․체계적이기 때문이다. 글 모양에 그 글을 발음하는 혀나 입의 구조가 표현된다. ‘ㄱ’ 자의 모양은 ‘ㄱ’을 발음할 때, ‘ㄴ’ 자의 모양은 ‘ㄴ’을 발음할 때 혀의 구부러진 모양이다. 한글의 모든 자음(닿소리)은 혀의 모양이나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반면 한글의 모음(홀소리)은 발음할 때 입의 모양 그리고 그 소리의 방향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ㅏ’는 입을 크게 벌리며(수직의 긴 획) 앞으로 나가는 소리를(앞으로 향하는 작은 수평의 획) 표현한다. 한글의 그런 발음 원리들은 음소로 이뤄진 세계 어느 나라 말과도 꼭 같은 원리다. 그래서 외국 학생들은 한글에 대한 이런 발음이 나오는 구조적 원리에 대한 설명을 한 번만 들으면 너무 인상적이어서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느리게라도 한글을 읽기 시작한다.

한글의 발음 기호 체계는 정렬돼 있어 우수하며,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 앞에 보여 줄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한글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이를 갈고 닦아 세계에 보급해야 한다.

그러나 한글에도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주 한글날에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이야기 손님으로 나온 한글학자는 이렇게 말을 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로서 세계 어느 나라 말이든 그 발음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한글은 사람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꼭 그렇지는 않다. 한글은 한국말의 발음을 완벽하게 나타내지만 외국어마다 한글이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영어만 봐도 한글로 그 발음을 표현하면 매우 어색하다. 영어의 ‘R’과 ’L’의 구별이 한글로 어렵고(red나 led를 한글로 어떻게 구별하나?) ‘F’, ‘V’, 또는 ’th’의 정확한 영어 발음은 한글로 거의 불가능하다. 독일어의 ‘ch’ 등의 발음은 부자연스럽다.

이런 한글의 한계를 볼 때 몇몇 학자들이 주장하는 한글의 세계적인 보편성이 나 같은 외국사람들에게는 좀 엉뚱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글이 세계적인 발음 기호가 되려면 한국말 자체가 세계적 공통어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 한글이 세계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컴퓨터 합성 발음을 만들 때 한글이 매우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글로 쓴 글을 합성 발음을 만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로마자로 된 글을 그 나라 말 발음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보다 훨씬 쉽다. 한글로 된 글을 완벽하게 합성 발음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비교적 쉽게 다른 나라 말에 응용할 수 있다. 영어 ‘발음 규칙’ 프로그램도 조금만 확장된 한글 ‘발음 규칙’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다 발음을 바꾸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 한글의 세계적인 우수성을 보여 주려면 한글학자나 정부가 나서서 이런 한글 정보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글날에 ‘우리끼리 하는 연설’에서처럼 위에서 말한 좀 엉뚱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음성 합성 발생 기술과 같은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겨레신문, 1999. 10. 12.)

첫 번째 글은 전통적인 철자법과 최신 정보화 시대 컴퓨터의 문자 인식까지 아울러 한글의 우수성을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 또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이라는 점과 국어학자가 아닌 전산학자가 쓴 글이라는 점에서 보통 학생들에게 설득력을 줄 수 있다. 다만 영어 글자와의 비교에서는 단순 비교 우월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문자를 부려쓰는 사회적 맥락이 다르므로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글은 무조건적인 한글 우수성론이나 우월주의를 경계할 수 있는 칼럼이다. 훈민정음이 과학적인 문자과학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 적용 맥락에서의 문제는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 문자는 지극히 보수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한우의 글은 외국인으로 한국에 오래 살면서 느낀 점이라 막연한 한글 과학주의나 우월주의를 경계하기에 좋다. 물론 이 한우도 지적했지만, 이 한우가 지적한 한글의 단점 그 자체 때문에 한글의 과학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변화되는 삶 속에서 한글의 과학성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두 글 모두 정보 시대 한글의 장점과 적응 방향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훈민정음 과학성에 대한 두 번째 교육 전략은 정보 시대 한글의 위상과 반드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전산학자들은 훈민정음의 과학적 체계는 컴퓨터 원리에 그 어떤 문자보다도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지적해 왔다. 그래서 세종은 정보 시대 도래를 예견해서 훈민정음을 만든 거 아니냐는 농담까지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이다. 다만 컴퓨터와 운영 소프트웨어가 영어권에서 주로 개발되다 보니 완성형이나 조합형이니 하는 코드 갈등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물론 기본 전제가 그렇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훈민정음과 한글의 구체적 과학성은 현실 속의 실천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고 볼 때, 성공한 점도 있지만 실패한 점도 꽤 크기 때문이다.

한글이 진정 과학적인 글자라면 정보 시대에도 잘 적응되어야 한다. 정보 시대에 한글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에 따라 구체적 과학성의 성격이 결정될 것이다. 그동안 숱하게 지적되어 왔듯이 컴퓨터 보급률이나 인터넷 활용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것은 한글의 과학성에 크게 힘입었다. 그렇다고 한글 때문만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글의 역할이 컸다 할지라도 다른 요인과의 복합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다고 해서 인터넷을 좋은 쪽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의미 있는 지적이다. 어차피 양적 팽창은 긍정, 부정 양쪽의 질적 측면을 함의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한글 과학성의 장점과 컴퓨터 연계성을 강조하되 절대화시키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문자가 컴퓨터에서 제대로 자리매김되는 분야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문자를 컴퓨터로 입력하기 위한 자판의 과학성이며, 또 컴퓨터 내부에서 글자를 처리하는 코드의 과학성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컴퓨터로 구현되는 글꼴의 과학성이다. 이 세 분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은 없다. 자판의 경우, 현재 남한 표준인 2벌식은 독재 정권 아래서 졸속으로 제작되어 현재 북한의 표준 자판보다도 효율성이 20%나 뒤진다. 마침 1996년 중국 연변 자치주에서 중국, 북한, 남한의 학자들이 만나 자판 공동 시안을 마련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곧 자판구조와 배치 구조는 2벌식을 기준으로 26 타건에 24개의 홑글자와 2개의 겹모음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옛글자 4자는 현대글과는 별도로 처리하되 각각 해당 음가와 유사한 위치에 배치키로 하고 쌍자음 5자는 사용자 선택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합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된 새로운 공동 자판(통일보다는 ‘공동안’이란 표현을 쓰기로 하였다.)은 아래와 같다.

〈그림 1〉공동 자판의 배치도

 ㅁ ㅃ ㅂ ㄸ ㄷ ㅉ ㅈ ᅙ ㅎ ㅕ ㅜ ㅓ ㅐ ㅔ [ ] ㄹ ㄲ ㄱ  ㅇ ㄴ ㅆ ㅅ ㅗ ㅡ  ㅏ ㅣ ; ‘ ㅋ ㅊ ㅍ ㅌ ㅠ ㅛ ㅑ , . /

그러나 이러한 합의안도 남‧북 당국의 성의 부족으로 교착 상태에 있다. 코드의 경우는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한글 구현만이 문제가 아니고 다른 언어와의 교환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글은 영어와는 달리 모아쓰기 때문에 완성형과 조합형이라는 두 코드가 생겼는데, 영어와의 호환을 생각하면 완성형이 편하고 한글만의 구현을 위해서라면 조합형이 합리적이다.

한글 모아쓰기는 그 동안 같은 음소 문자인 영어와는 다른 장점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컴퓨터와 관련해서는 이런 갈등 유발 요인이 되었다. 다만 그것은 컴퓨터 자체 원리로 인한 갈등은 아니다. 영어 중심의 국제 코드나 운영 체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에선 모아쓰기 때문에 한글 기계화나 정보 시대 적응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풀어쓰기를 주장하지만 현실성은 없는 얘기다. 컴퓨터 원리 자체로만 본다면 모아쓰고 모아쓰지 않고는 상관이 없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컴퓨터는 복잡한 과정이나 결과를 해결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영어 중심의 컴퓨터 시스템 문제와 혼동하지 않도록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다만 요즘은 확장 완성형으로 글자 실현이 안 되는 갈등은 없어졌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안고 있는 셈이다.

5. 맺음말

한글은 한국의 문자이고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자랑스럽다는 차원을 떠나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의 문자가 삶의 구성 요소로서의 과학적인 도구라는 측면에서 교육 전략을 세워야 한다.

문자는 인간의 삶을 생산적으로 구성해 가는 주요한 실천 요소이다. 문자는 사회 역사적 배경 아래 생겨나 역시 그런 배경 아래 발전하기도 퇴보하기도 한다. 훈민정음은 봉건주의라는 차별적 계급 사회 모순을 최대한 딛고 창제된 문자이다. 문자가 지향해야 할 세 가지 원칙인 다양한 계급의 포용성, 음성언어와의 과학적 관계 설정과 교육과 보급․실천의 대중성, 실용성 등을 훈민정음은 두루 충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충분 조건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는 문자를 다뤄 나가는 사람과 사회에 달려 있다. 남한은 한자를 아직도 섞어 쓰는 등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이르러서는 독재 정권(5, 6 공화국)이 서구의 컴퓨터에 한글을 맞추는 완성형 코드를 채택함으로써 훈민정음의 과학성을 제대로 발휘 못하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시련 속에서도 한글은 영어권 문자 외의 다른 어떤 문자보다도 적응을 잘해 정보 문화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글의 과학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할 문제이다. 훈민정음과 한글 과학성의 교육 전략을 고려해 본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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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슬옹: 목원대 겸임교수, 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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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1. 과학과의 찰떡궁합, 훈민정음

이제 한글(훈민정음)의 과학성은 세계의 전문가들이 두루 입증하는 세상이 되었다. 유엔의 유네스코에서 문맹 퇴치에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 이름을 ‘세종대왕상(The King Sejong Prize)’라고 명명한 것은 아주 상징적인 예이다.

‘문맹률 0%’에 가까운 국민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한글의 과학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과학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과학의 꽃 컴퓨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자임을 입증하면 된다.

컴퓨터 과학자인 변정용 교수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컴퓨터야말로 한글과 궁합이 매우 잘 맞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만능의 기계로 생각하는 컴퓨터는 단 두개의 숫자 ‘0’과 ‘1’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되풀이하는 것인데 이 세상을 순식간에 정보화시대로 만들지 않습니까? 서양음악의 경우도 ‘도레미파솔라시도’ 일곱 개의 음만을 가지고 모짜르트의 고전음악에서부터 우리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서태지의 랩음악까지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냅니다.

한글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28글자의 유한수의 기호와 몇 가지의 규칙만으로 천지자연의 무한한 소리를 만들어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한글의 특성이지요. 그런 점에서 한글은 다른 어떤 글자보다 과학적이며 현대 첨단과학의 산물인 컴퓨터의 원리에 매우 잘 부합하는 문자입니다.

한글이 로마자보다 컴퓨터에 더 적합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자판에 글자를 배열할 때 타자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사용하고 집게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좀 더 자주 사용할 수 있게 배열해야 되는데, 로마자의 경우 소리마디의 구성에서 자음과 모음이 어울리는 규칙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배열이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현행 쿼티키보드에서 R, E, A, D를 칠 때 왼손만으로 쳐야 합니다. 그런데 한글은 한 소리마디 구성에서 자음-모음, 또는 자음-모음-자음의 두 가지로 일정합니다.”1)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한글이 핸드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자임을 입증하면 된다. 핸드폰이야말로 컴퓨터 원리의 최고 집적물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과학의 꽃이라면 핸드폰은 컴퓨터의 꽃인 셈이다. 핸드폰의 자판은 컴퓨터의 자판보다 글자쇠가 더 적기 때문에 한글의 과학성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현재 휴대전화 자판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표 1>에서 보듯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뚜렷하지만 저마다 회사의 이익이 걸려 있어 표준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가획과 배합의 한글의 과학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자음과 모음의 과학적 원리를 어느 쪽이 더 많이 반영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자음위주의 배치방식은 모음 최소 배치를 통해 모음자 만드는 원리를 최대한 반영하고, 모음위주의 배치방식은 자음 최소 배치를 통해 자음 만드는 원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세종대왕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방식이든 간에 영자 자판과 비교할 때 그 운용체계가 훨씬 합리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널 사랑해’와 ‘I love you’만 비교해 봐도 금방 드러난다. 자모음의 자소 자체는 한글은 10자지만, 영어는 8자로 두 자가 적다. 그러나 실제 자판을 누르는 횟수는 한글은 18번, 영문은 커서를 옆으로 옮기는 것을 제외하고도 26번이다.

또한 한글은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도 무슨 뜻인지 거의 알 수 있지만 영문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면 정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가령, ‘널사랑해’와 ‘ Iloveyou’를 보면 알 수 있다. 또 한글과 달리 영문은 대소문자가 나누어져 있어 메뉴버튼을 눌러서 대소문자를 변환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에 매번 메뉴버튼을 눌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 세종대왕 동상

2. ‘과학 한글’의 실체

2-1. 문자 생성의 과학성

일반적으로 과학이라고 하면 자연과 대립적인 말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학을 기술이나 물질문명 차원에서 얘기할 땐 자연과 대립적인 개념이지만, 알고 보면 과학 그 자체는 자연과 하나가 된다. ‘자연과학’이란 말이 있듯이 자연 속의 보편법칙을 찾아내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근대과학을 열고 완성한 갈릴레이나 뉴우튼 역시 자연 속의 보편법칙을 제대로 찾아내 설명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종은 인간의 소리에서 보편법칙을 제대로 찾아내 문자화시켰다. 이는 자음자와 모음자의 상형방식에서 드러난다.

▲ 훈민문에서 본 정자각 ▲ 영릉(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 ▲ 영릉에서 본 정자

▲ 영릉 묘역

자음을 순우리말로 ‘닿소리’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모음과는 달리 발음하는 과정이 특정 발음기관, 발음부위와 연관되어 있다. 반면에 모음은 순우리말로 ‘홀소리’라고 하는데 자음자와 달리 특정 발음기관과 관련이 없다.

세종은 이런 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자음자의 원형문자 다섯 자를 발음기관과 발음작용을 상형해 만들었고, 모음자의 원형문자 세 자를 하늘과 땅과 사람의 추상적인 모습으로 상형했다. 그래서 한글은 창제과정이 분명한 가장 인공적인 문자이면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문자가 되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문자를 만들고 보니 가장 과학적인 문자가 된 셈이었다. 소리문자의 대표격인 서양의 알파벳이 소리의 자연 이치를 직접 반영하지 않은 데 반해 한글은 직접 반영한 소리문자인 셈이다. 나머지 문자도 이러한 원형문자에서 배합 확장해 나가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기본 문자 모두가 소리문자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이체자라는 것은 가획의 원리를 전혀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계열의 문자들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른바 꼭지이응은 생긴 것은 목소리 글자들과 같은 계열이지만 소리로서는 기역과 같은 계열이다. 소리 성질에 따라 어금닛소리는 목소리에서 이어져 나는 곳이므로 목소리 동그라미에 꼭지를 가획하여 만들었다.

소리 나는 과정을 반영하다 보니 박쥐(이것과 저것을 함께 포함하는)같은 기호가 되었다. 반설음과 반치음도 가획의 원리를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가획의 의미가 없고 소리성질의특이성 때문에 특별한 명칭과 더불어 이체자라 한 것이다. 곧 다른 가획자는 획을 더함으로써 거센소리가 되고 원형문자와 논리적 관계에 놓이게 되지만 이들 반설음과 반치음은 그렇게 논리정연한 자리매김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운용(응용)문자는 <표 5>에서 보듯 합체방식에 의해 가로로 합체하는 병서와 세로로 합체하는 연서글자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각자병서의 ㅇㅇ,ㄴㄴ는 글자 설명에는 나오지 않지만 실제 문헌에서 쓰인 글자이다. 이 두 자를 빼면 자음자는 모두 37자, 두 자를 합치면 39자가 된다. 실제 우리말 표기에 쓰이지 않은 글자도 있지만 ‘원형문자’에서 ‘기본문자’로 ‘기본문자’에서 ‘응용문자’로 확대해가는 과정이 논리정연하다.

모음자의 경우는 원형문자 세 자를 1차 배합하여 초출자 4자를, 2차 배합에서 4자를 만들어, 기본자 11자가 되었다. 초출자, 재출자에 쓰인 아래아(·)는 다른 글자(-, 1)와 대등하게 합쳐진 것이 아니라 글자 생성의 기준역할을 한 셈이다. 운용글자 18자에 쓰인 아래아(·)는 대등한 자격으로 합쳐진 글자이다.

2-2. 문자 도형의 과학성

한글의 두 번째 과학적인 특성은 도형의 과학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치 수학의 연산기호처럼 간단한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도형의 기본이 점과 선과 원이라면, 한글은 이런 기본도형으로 이루어졌다. 직선과 사선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가로와 세로, 긴 선과 짧은 선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그야말로 도형문자, 그래픽 문자를 만들어냈다.

특히 자음자와 모음자를 막론하고 도형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대칭구조가 되었다. 기본 자모음자 28자 가운데, 대칭원리가 적용되지 않은 글자는 ‘ㅋ’자가 유일하다. 자음자를 대칭방식별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ㄱ ㄴ’ 의 경우 두 글자 대각선 대칭이다. 모음의 경우는 글자 각각으로 보면 상하, 좌우 대칭이지만 기본 글자를 모두 모아 보면 사방 대칭이 된다. 모음자의 경우, 한 글자 내부 대칭은 물론 기본자 11자가 짜임새(시스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자음자와 모음자가 대칭구조로 되어 있다 보니 자음자 모음자도 합리적인 배치가 가능한 것이다. 더욱이 아래 그림처럼 21세기 첨단 입체수학인 위상학(topology)의 원리와도 같이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문자결합을 이뤄낸다. 한 글자를 같은 자리에서 90도 단위로 회전시키면 새로운 글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음자와 모음자를 확연하게 다르게 도형화시킨 것도 과학적인 특성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훈민정음은 다른 문자와는 달리 자음과 모음의 균형대응이 된다. 영어는 26자 자모 중에 모음은 다섯 자(a, e, I, o, u) 뿐이면서 자음이 21자나 되지만, 훈민정음은 자음이 17자, 모음이 11자로 수적인 균형이 어느 정도 맞는다.

실제 쓰임새에서 영어는 자음과 모음의 배열이 들쑥날쑥하다. ‘school’은 ‘자자자모모자’이고, ‘apple’은 ‘모자자자모’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은 매 음절마다 모음이 배치되어 일종의 기준 역할을 한다. 이런 자음과 모음의 효율적인 대응성은 컴퓨터 자판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한글자판은 왼쪽은 자음, 오른쪽은 모음으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어 배우기 쉽고 치기 쉽다. 이에 반해 영어는 모음의 글쇠 위치에 일정한 원칙이 없고 칠 때도 ‘read’의 경우와 같이 오로지 왼손으로만 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음운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삼분법으로 나누되 문자는 초성자와 종성자를 같이 쓰게 하는 이원화의 방법을 채택했는데, 오늘날 두벌식 표준화 자판이 가능한 것은 훈민정음의 이런 중층 (이분법과 삼분법)의 속성 때문이라 볼 수 있다.

2-3. 소리성질의 과학성

흔히 한글을 자질 문자 또는 소리 바탕 문자라고 한다. 문자 자체가 소리의 성질을 과학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의 저명한 문자 학자 샘슨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뒤로 붙여진 이름으로 이제는 자연스러운 명칭이 되었다.

“과학적으로 볼 때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라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글은 일정한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문자라는 점에서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습니다. 로마자, 그리스 문자 등 세계의 모든 문자들은 오랜 옛날에 중동지방에서 생겨난 알파벳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글은 음성기관의 소리 나는 모습을 따라 체계적으로 창제된 과학적인 문자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문자 자체가 소리의 특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영어의 T와 N이라는 글자는 소리를 갖고 있지만 그들과 음성기관의 모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글의 ㄴ은 혀가 잇몸에 닿는 모습을 본떠 만들었고 또 T에 해당하는 ㄷ은 ㄴ에 한 획을 더하여 같은 자리에서 소리 내는 것을 나타내고 글자는 이런 방식으로 발성기관의 모양을 따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계의 다른 어떤 문자에서도 그런 과학적 원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한글은 500년 전에 그런 언어학적 원리에 따라 창조되어 실용화되었습니다. 서구의 많은 학자나 지식인들은 이 특이한 한글의 창조원리에 감탄해마지 않습니다.”2)

자음의 경우 발음기관 위치에 따라 다섯 음으로 나눈 뒤 네 가지 소리성질을 반영해 분류했다. 원형문자 다섯 자 가운데 세 자가 가장 여린 소리인 울림소리에 해당된다. 문자 만드는 원리에 소리성질을 바탕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거센 소리는 가획자로 이루어져 있고, 된소리에 해당되는 전탁자는 전청글자를 거듭 써서 만들어 소리와 문자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모음자도 아래아(·)가 위쪽과 오른쪽으로 향해 있으면 양성모음이요 아래쪽과 왼쪽으로 향해 있으면 음성모음이다. 모음조화의 성질을 문자 자체에 반영해 놓은 것이다. 자음의 경우 발음기관 위치에 따라 다섯 음으로 나눈 뒤 네 가지 소리성질을 반영해 분류했다. 원형문자 다섯 자 가운데 세 자가 가장 여린 소리인 울림소리에 해당된다. 문자 만드는 원리에 소리성질을 바탕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문자에 소리성질을 담다 보니 다른 문자에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1자 1음주의’라는 과학성을 이뤄냈다. 음운과 문자가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최대한 이런 원칙에 근접시킴으로써 읽기 쉽고 쓰기 쉬운 문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특징이 왜 과학적이고 실용적인지는 영어의 불편함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영어는 한 소리가 여러 문자로 표기되거나 한 문자가 여러 소리를 낸다. 이를테면 a는 열 가지 정도의 발음으로, e, o는 열세 가지 정도, u는 아홉 가지 정도로 발음된다. 거꾸로 [o]라는 발음은 ‘all, caught, poll’ 등과 같이 다양한 문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발음기호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다이아몬드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 바 있다.

“영어를 읽고 쓸 줄 아시오?”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의당 이렇게 답할 것이다. “물론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잡지를 어떻게 읽고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영어의 글말에 숨어있는 규칙(맞춤법)을 남에게 설명해 보려고 한 적이 있어요? 말하자면, ‘seed’란 낱말은 왜 ‘cede’나 ‘ceed’, 또는 ‘sied’로 쓰지 않고 하필 그렇게 적으며, [sh] 소리는 왜 ‘ce'(ocean)나, ‘ti'(nation) 또는 ‘ss'(issue)같이 여러 가지로 적을 수도 있는 것인지 말이오.” 물론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모두 영어의 글말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드러내고 있는 악명 높은 보기들이다.

요즘 내가 1학년에 다니는 우리 집 쌍둥이 아들들을 통해서 새로이 느끼고 있는 바이지만, 영어의 맞춤법은 너무나 일관성이 없어서 비록 맞춤법의 기본규칙(그런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을 익힌 어린이라고 해도, 아직도 읽지 못하는 낱말이 많을 뿐 아니라, 들은 말을 글로 적지 못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3)

이러한 영어 알파벳의 발음과 기호의 불일치는 숱하게 지적되어 온 것이며, 존 맨도 한글이 모든 알파벳의 꿈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장에서 반 이상을 영어 알파벳의 불편함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 철자법 알아맞히는 학생들 대회가 매우 비중 있는 행사가 된 것이다.

세계음성기호(IPA)는 그런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인데, 한글은 그 자체가 이런 음성기호 구실을 할 수 있는 바탕문자인 것이다. 한글은 몇 가지 예외는 있으나 한 음운이 한 문자로 표현되고(/a/-ㅏ), 거꾸로 한 문자는 한 음운(ㅏ-/a/)으로 나타난다.

이 원리가 지켜진다면 배우기도 쉽고 표기법을 세우기도 쉽다. 또한 정보기기에서의 음성인식에서도 놀라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핸드폰에서 음성으로 이름과 번호를 검색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더 나아가 훈민정음은 소리의 이치를 따랐기에 음률의 이치까지 담을 수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를 보면 자음들이 어떻게 우리 국악의 오음에서 배치되는지를 분명히 밝혀 놓았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이를 오행에 따른 관습적 배치로만 여겼었다.

그러나 한태동(2003)은 이를 현대음악으로 입증하였다. 4) 이렇게 보면 자음에 아래와 같은 동양의 오행철학을 부여한 것은 자연의 소리성질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모음자의 경우 수리적 의미를 부여했는데, 숫자적 의미 부여를 통해서 자음자에 비해 유동적인 모음자의 체계를 좀 더 짜임새 있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해례에서의 설명을 숫자 차례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위 설명을 입체그림으로 그려 보면 열 개의 모음이 그야말로 정형화된 기하구조로 배치됨을 알 수 있다. 이런 한글의 자질문자로의 위치를 일본의 저명한 훈민정음 연구학자인 우메다 히로유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이 세상의 글자는 크게 3가지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한자와 같은 뜻글자, 일본의 가나와 같은 음절문자 그리고 로마자나 한글과 같은 음소문자가 그것입니다. 이들 글자들은 만들어진 시대상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기능상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음소문자이면서도 로마자보다 한층 차원이 높은 자질문자입니다. 이것은 한글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특징입니다.”

2-4. 음절배합의 과학성

한글은 영어와는 달리 음절단위로 모아쓴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한글은 가로로 뿐 아니라 세로형으로도 글자를 배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아쓰기 음절글자의 장점은,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여 수많은 음절글자를 생성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적 원리의 실용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아래의 표에서 보여주는 현대 자모음들만 보더라도 현대어에서 생성될 수 있는 음절글자는 받침 없는 음절 399자 (초성 19자 X 중성 21자), 받침 있는 음절 10,773자(399자 X 종성 27자) 등 무려 11,172자나 된다. 15세기의 자음자와 모음자는 현대말보다 훨씬 많으므로 생성 가능한 글자 수도 더욱 많았다.

15세기 자음자의 <표 5>와 모음자의 <표 6>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받침 없는 음절은 986자(34자×29자), 받침 있는 음절은 33,524자(986자×34자)에 이른다. 놀라운 숫자는 한글의 과학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만큼 인간 소리에 대한 표기영역이 넓다는 반증인 것이다.

▲ 갑인자(1434년에 만들어진 동활자)

3. 마무리

한글의 과학적 원리의 원천은 ‘훈민정음 해례본’ 중 제자해에서의 다음 설명이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그 내용을 오늘에 되살려 해석하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만든 문자가 바로 한글이라는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앞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한글이 과학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뿐이다. 곤괘와 복괘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이고 멎고 한 뒤가 음양이 된다. 무릇 천지자연의 어떤 생물이든 음양을 버리고 어찌 살 수 있는가? 따라서 사람의 말소리도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건마는 생각건대 사람들이 살피지 않을 뿐이다.

이제 정음을 만든 것도 처음부터 지혜로써 경영하고 힘써 찾아 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에 따라서 그 음양의 이치를 다하였을 뿐이다.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닌 즉 어찌 천지의 신(귀신)과 더불어 그것을 부려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간의(簡儀)/ 고도와 방위, 낮과 밤의 시각 정밀측정 ▲ 혼천의(渾天儀) / 행성의 위치 측정 ——————————————————————————————-

(주)

1) , 2) 훈민정음 기록 영화 ‘세계로 한글로’(감독:이봉원, 시나리오 초안 구성:김슬옹, 제작:국어정보학회), 1996년 10월 9일 KBS 방송

3) Diamond, Jared, 1994,〈Writing Right〉, Discover, June/ 이현복 옮김,「한글 새소식」1994년 8월호.)

4) 훈민정음의 음률도(한태동 2003: 171)

구분 궁 우 변상 상 각 변치 치 불탁(不濁) ㅁ ㅱ ㅇ ㅿ ㅅ ㅇ ㄹ ㄴ 전청(全淸) ㅂ ㅸ ㆆ ㅈ ㄱ ㄷ 차청(次淸) ㅍ ㆄ ㅎ ㅊ ㅋ ㅌ 전탁(全濁) ㅃ ㆅ ㅆ ㅉ ㄲ ㄸ 기준모음 ㅏ · ㅗ ㅓ ㅡ ㅜ ㅣ

한글을 ‘우수한’ 문자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제67호] 인사동칼럼

한글을 ‘우수한’ 문자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조원형

1. 한글이 ‘과학적인’ 이유

오는 10월 9일은 571돌 한글날이다. 해마다 그래 왔듯이 이날만 되면 언론에서는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이야기하면서 ‘한글’뿐만 아니라 ‘한국어’에 대해서도 매번 하던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은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 보자.

먼저 한글이 ‘과학적인’문자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글이 과학적인 문자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과학적이냐고 묻는다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뜻밖에 그리 많지 않다. 학교와 사회에서 단지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라는 말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데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이다.

한글이 과학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발음하는 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서 자음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어의 모음조화 규칙을 반영해서 모음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음의 경우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ㄱ, ㄴ, ㅁ, ㅅ, ㅇ이라는 다섯 글자를 만들고 발음이 거세어질수록 획을 덧붙이는 방식을 취했다.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지면 관계상 언어학적으로 정밀한 설명은 되도록 줄이고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간단하게 풀이한다는 것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기 바란다.

(1) ㄱ은 혀의 뒷부분이 입천장 뒷부분(여린입천장)에 닿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왼쪽을 앞쪽으로, 오른쪽을 뒤쪽으로 간주하면 ㄱ은 혀의 뒷부분이 위로 올라간 모습을 단순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ㄱ 발음을 할 때 실제로 혀 모양이 그렇게 된다. 이를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아음(牙音), 즉 어금닛소리라고 했다. 입천장 뒷부분이면 어금니 근처니 그렇게 부를 만하다. 그리고 발음할 때 혀의 모양은 똑같이 만들고 소리만 좀 더 거세게 내면 ㅋ 소리가 나는데, ㅋ이라는 글자는 ㄱ에 한 획을 덧붙인 것이다.

(2) ㄴ은 혀의 앞부분이 잇몸 쪽에 닿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역시 왼쪽을 앞쪽으로, 오른쪽을 뒤쪽으로 간주하면 ㄴ은 혀의 앞부분이 위로 올라간 모습을 단순화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ㄴ 발음을 항 때 실제로 혀 모양이 그렇게 된다. 이를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설음(舌音), 즉 혓소리라고 했다. 혀의 여러 부분 가운데 감각이 가장 발달한 혀끝이 잇몸에 닿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으니 그렇게 부를 만하다. 발음할 때 혀의 모양은 ㄴ과 같아지지만 조금 더 강하게 내는 소리는 ㄷ, 그보다 더 강하게 내는 소리는 ㅌ인데 ㄷ은 ㄴ에서 한 획을, ㅌ은 두 획을 각각 더 그은 글자이다. 획을 많이 추가할수록 소리가 거세어진다는 규칙을 따른 것이다. ㄹ은 발음하는 방법이 ㄴ, ㄷ, ㅌ 등과 조금 다르지만 혀뿌리가 입의 위쪽으로 올라간다는 점에서는 ㄴ과 비슷한 점이 있기에 ㄴ에 획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글자를 만들었다.

(3) ㅁ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순음(脣音), 즉 입술소리라고 했는데 말 그대로 두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다. 그 모양은 한자 입 구(口) 자와 똑같이 입의 모양을 네모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보다 소리가 강한 ㅂ은 ㅁ에 두 획을, ㅂ보다도 소리가 더 강한 ㅍ은 ㅁ에 네 획을 각각 추가한 글자이다. ㅁ이 대칭적인 형상을 갖추고 있으니 획을 추가할 때도 대칭이 되도록 두 획과 네 획을 추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ㅅ은 이의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이를 치음(齒音), 즉 잇소리라고 했다. ㅅ을 발음할 때는 날숨이 윗니와 아랫니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잇소리라고 부르고 글자도 이의 모양을 형상화해서 만든 것이다. ㅈ, ㅊ은 ㅅ에 한 획과 두 획을 각각 덧붙인 것으로서 ㅈ은 ㅅ보다, ㅊ은 ㅈ보다 소리가 거세기 때문에 각각 이런 모양이 생겨난 것이다.

(5)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서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후음(喉音), 즉 목구멍소리라고 불렀다. 다만 ‘목구멍소리’라는 것은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초성 ㅇ은 아무런 소리가 없는 글자, 즉 묵음(默音)이다. 즉 ‘아’는 모음 ‘ㅏ’만으로 구성된 음절이다. 그리고 종성 ㅇ은 엄밀히 따지면 ‘ㄱ’과 같은 계열의 소리다. 즉 혀 모양을 ㄱ과 똑같이 하고 콧소리(비음)를 내면 종성 ㅇ 소리가 된다. 하지만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이 종성 ㅇ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ㄱ을 변경한 글자 대신 ㅇ에 꼭지를 단 옛이응을 사용했다. 다만 ㅇ에 두 획을 덧붙인 ㅎ는 목구멍 쪽에서 마찰이 일어난 소리이니 목구멍소리라는 말 뜻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모음 글자는 한국어의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을 각각 형상화한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에는 점으로 표기되었던 작은 선이 긴 기준선의 오른쪽 또는 위쪽에 붙어 있는 것은 양성모음 ㅏ, ㅑ, ㅗ, ㅛ이며 왼쪽 또는 아래쪽에 붙어 있는 것은 음성모음 ㅓ, ㅕ, ㅜ, ㅠ이다. 그리고 ㅡ는 음성모음에 속하고 ㅣ는 어느 쪽도 아닌 중성모음이다. 수학 그래프에서 1사분면에 점이 찍혀 있으면 양성모음이고 3사분면에 점이 찍혀 있으면 음성모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대립은 현대 한국어에서는 사라져 가는 추세이나(예컨대 1988년 이후로 ‘아름다와’가 아니라 ‘아름다워’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 ‘졸졸’과 ‘줄줄’, ‘탈탈’과 ‘털털’등 일부 의성어와 의태어의 대립 등에서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한글의 글자 모양은 한국어의 발음법을 면밀히 분석해서 만든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국의 음성학 연구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2. 한글은 결코 ‘우수한’ 문자일 수 없다

그런데 한글이 과학적인 문자라고 해서 ‘우수한’ 문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문자도 다른 문자보다 우수하거나 열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적이라는 것이 ‘우수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문자는 단지 사람이 하는 말을 시각 기호로 옮겨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꼭 발음 기관의 모습을 본떠야 할 필요도 없고 그 밖의 다른 규칙을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한글은 단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뜨는 등 발음법을 글자 모양에 반영했다는 특징을 가진 문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발음법을 글자 모양에 반영했다는 것은 관점을 달리 하면 오히려 족쇄가 될 수도 있다. 한글은 단지 한국어 발음법을 반영한 글자이기 때문에 한국어와 말소리 구조가 판이하게 다른 언어를 표기하는 데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한때 찌아찌아어 등을 한글로 표기하려는 시도를 한 적도 있으나, 말소리 구조가 단순하고 간단하면서 한국어에 없는 말소리가 없거나 적은 언어면 몰라도 영어나 아랍어와 같이 한국어에 없는 말소리가 많은 언어를 표기하는 데는 한글이 그리 적합한 문자라 하기 어렵다. 한글의 창제 원리를 살려서 한국어에 없는 말소리를 표기하는 글자를 새로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한글 특유의 발음 기관 상형 방식과 가획 방식이 양날의 칼로 작용해서 글자 모양이 지나치게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난점을 피할 길이 없다. 반면 글자 모양에 발음법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서 글자와 말소리를 자유롭게 대응시킬 수 있는 로마자는 별다른 제약 없이 편의에 따라 다양한 언어에 사용할 수 있으며 그 모양을 단순한 방식으로, 즉 발음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점을 찍거나 가획하는 방식으로 변형해서 다양한 말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 발음이 비슷하면 글자 모양마저 비슷해져서 오히려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한글과 달리 로마자는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글자까지 비슷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글자를 읽고 구분하기가 한글보다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한글에는 없는 로마자의 장점이다. 이는 로마자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자나 키릴 문자 등 한글을 제외한 알파벳식 문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본래 라틴어 문자로 고안된 로마자에 다양한 방법으로 가획을 해서 베트남어 표기에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게 한국어 이외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이 그동안 여러 차례 고안된 바 있다. 동국정운식 표기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번잡하고 불편해서 얼마 쓰이지 않고 사장되었다. 설령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되살린다 하더라도 글자 모양이 지나치게 복잡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로마자를 변형하고 확장해서 사용하는 것보다 특별히 나은 점을 찾기 어렵다. 굳이 동국정운식 표기법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이른바 ‘한글음성문자’등 한글을 바탕으로 고안한 말소리 표기법과 로마자에 기반한 국제음성문자를 대조해 보더라도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한글에 기반한 문자 쪽이 한눈에 보기에도 복잡하고 번잡하다. 이는 한글의 과학성을 고수하면서 한국어 이외의 언어를 표기하려는 시도는 실용성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어느 한 문자를 다른 한 문자보다 일방적으로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우수하다는 말의 판단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수함을 단정할 수 있는 일방적인 판단 기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줄곧 ‘한글은 과학적이니 우수한 문자’라는 생각을 아무런 비판 없이 답습해 왔지만, 세간의 통념과 달리 과학적이라고 해서 우수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글이 지난 ‘과학성’은 ‘우수함’을 가르는 일방적인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당초 그렇게 함부로 단정해서도 안 된다. 어떠한 것이 우수하다는 말은 그 밖의 것이 열등하다는 뜻을 내포하는데, 과연 특정한 문자가 어느 한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열등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각자 개성이 존재할 뿐 어느 누가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거나 열등하다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듯이 문자도 어느 특정한 것이 다른 것보다 우수할 수도 없고 열등할 수도 없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한글은 단지 한국어 발음법을 반영해서 만든 문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결코 다른 문자보다 우수한 문자도 아니고 열등한 문자도 아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우수함’에 대한 논란을 넘어

한국 사회에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남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르려는 통념이 너무나 뿌리깊게 박혀 있다. 한글날만 되면 되풀이되는 한글에 관한 이야기마저 이러한 통념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개성이 존재할 뿐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하면서 한글은 우수한 문자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즉 한글을 창제한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 한자와 한문을 아는 사람들만이 지식과 사상을 독점해 온 불평등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것이 한글의 창제 목적이 아니었던가. 어디서든 어느 한두 가지 특성을 과도하게 일반화한 일방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사람이나 사물의 우열을 가르고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을 구분한다면 이는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서 중국 문자와 서로 맞지 않는 까닭에 그 문자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현실을 외면했던 옛 사람들의 태도와 결과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중국 문자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구분하고 심지어 ‘중화’와 ‘오랑캐’까지 구분해 가면서 중국 문자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최만리 같은 사람들의 행태와 비합리적인 잣대로 우리 문자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오늘날 사람들의 행태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와 같은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에 대한 비이성적 우월 의식이나 열등 의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없으리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한글은 우수한 문자’라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타파하고 이를 계기로 사회 전반에서 ‘우수함’과 ‘열등함’이라는 구분 자체를 넘어서는 논리를 구축했으면 한다. 그리고 곧 다가올 571돌 한글날, 2017년 10월 9일이 그 첫걸음을 떼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인권(人)을 생각(思)하고 동참(同)하는 사람들, 인사동 칼럼

_ 2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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