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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술관 옛그림 – 김홍도의 <벼타작> – 다음블로그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의 벼타작입니다. 농부들이 볏단을 통나무에 내려치며 타작하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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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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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김홍도 ‘타작’ – 손태호의 옛 그림으로 읽는 불교 – 법보신문

벼 타작이 한창입니다. 현장에 마이크가 있다면 벼를 내리치는 농부의 기합소리, 벼가 나무에 부딪치는 소리, 빗질하는 소리, 수확의 즐거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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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eopbo.com

Date Published: 4/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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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8 3 김흥도 벼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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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김홍도 벼 타작

  • Author: 나은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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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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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보물 검색:국립중앙박물관

<벼타작>은 신분적 갈등과 대립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한 장면에 그린 그림이지만 이 그림에서는 서구의 사실주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현실 부정이나 격렬한 대립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김홍도가 해학과 중용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가) 창작한 벼타작, 《단원 풍속도첩》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백남주의 한복이 있는 옛 그림 이야기(58)] 벼 타작

김홍도作 ‘벼 타작’,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28cm×23.9cm, 보물 제527호,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조선 후기의 화가인 단원(壇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가 그린 벼 타작 장면을 그린 풍속화로, 《단원풍속도첩》에 포함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잘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인 후, 열심히 낟알을 떨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지게로 벼를 잔뜩 져 나르는 사람, 가져온 볏단을 개상이라고 부르는 긴 통나무 위로 메어쳐서 이삭을 털어내고 있는 사람들, 땅에 떨어진 낟알을 빗자루로 쓸어 모으는 사람 등, 모두 여섯 명의 일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그림 상단에는 자리를 펴고 비스듬히 누워 담뱃대를 물고 이들을 감독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지주이거나 혹은 지주가 고용한 마름으로 보인다.

그는 갓을 삐딱하게 젖혀 쓰고, 도포의 팔을 걷고, 한손으로 팔베개를 하고, 담뱃대를 물고 볏단을 베게 삼아 비스듬히 누워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자리 옆에 술병과 잔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이미 술을 한 잔 걸친 모양으로, 맨 정신이 아닌 취한 채 감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일꾼들은 등거리라고 불리는 소매가 없거나 아주 짧은 홑 겉옷에 무릎 까지 오는 반바지인 잠방이를 입고 있거나, 웃통을 벗은 채로 일하고 있는데 둘 다 주로 여름에 입는 일옷이다.

또 일꾼들은 대부분 맨발이지만, 벼 한단을 들어 올려 개상에 내리쳐 이삭을 털고 있는 남자만 버선을 신고 있다.

그의 앞에서 다리를 구부리고 볏단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은 상의는 풀어 헤쳤고, 머리에는 삼각형 모양의 건을 쓰고 있다. 일꾼들은 비록 힘든 노동을 하고 있지만, 수확의 기쁨으로 얼굴엔 미소를 띠고 있다.

<벼 타작> 역시 <풍속화첩>속에 들어있는 다른 풍속화와 마찬가지로 배경은 그리지 않고 인물만 나온다.

화면 상단 오른쪽에 감독하는 인물이 쓴 갓의 끝점에서 출발해 하단의 비질을 하고 있는 일꾼의 신발 끝까지 이으면, 커다란 ‘S’자가 만들어지는 구도로 단원은 인물들을 배치하였다.

이 그림은 한정된 공간 안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놀고 있는 사람을 대비시키며, 타작하는 현장의 사뭇 다른 분위기를 생생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타작 장면은 김홍도 외에 다른 화가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단원보다 아홉 살 어린 화원 화가 김득신(金得臣, 1754~1822)도 같은 장면을 그렸는데, 김득신은 단원과는 달리 배경으로 나무 및 자연의 풍경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김득신作, 풍속팔곡병 중 ‘타작’, 호암미술관 소장.

김홍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로 김해 김씨이고, 호는 단원이다.

그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산수화·인물화·도석화·풍속화·영모화·화조화 등 회화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특히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력,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잘 드러나 있다.

【참고문헌】

단원 김홍도 연구(진준현, 일지사, 1999)

조선 풍속사1-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강명관, 푸른역사, 2016)

조선후기 회화의 사실정신(이태호, 학고재, 1996)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의생활 편(국립민속박물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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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벼타작>, 랄프 헤들리 <타작마당>

여기저기서 가을 노래가 출렁인다. 청량한 음색에서부터 바닥을 훑는 저음까지 가을 노래가 바람이 되어 날아다닌다. 가을 바람이다. 그 바람에 실려온 소리 한 가락을 풀어본다. 먼 과거로부터 온 소리다.

농가월령가 구월(九月)

구월이라 계추되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기러기 언제 왔노/ 벽공에 우는 소리 찬 이슬 재촉는다/ 만산에 풍엽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 밑에 황국화는 추광을 자랑한다/ 구월 구일 가절이라 화전하여 천신하세/ 절서를 다라 가며 추원보본 잊지 마소/ 물색은 좋거니와 추수가 시급하다/ 들마당 집마당에 개상에 탯돌이라/ 무논은 베어 깔고 건답은 베두드려/ 오늘은 접근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밀따리 대추벼와 등트기 경상벼라/ 들에는 조피 어미 집 근처 콩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 비단차조 이부꾸리 매눈이콩 황부대를/ 이삭으로 먼저 잘라 후씨로 따로 두소/ 젊은이는 태질이요 계집 사람 낫질이라/ 아이는 소 몰리고 늙은이는 섬 욱이기/ 이웃집 울력하여 제 일 하듯 하는 것이/ 뒤목추기 짚널기와 마당 끝에 키질하기/ 일변으로 면화틀기 씨앗 소리 요란하다

틀 차려 기름짜기 이웃끼리 합력하세/ 등유도 하려니와 음식도 맛이 나네/ 밤에는 방아 찧어 밥쌀을 장만할 제/ 찬 서리 긴긴 밤에 우는 아기 돌아볼까/ 타작 점심 하오리라 황계 백주 부족할까/ 새우젓 계란찌개 상찬으로 차려 놓고/ 배춧국 무나물에 고춧잎 장아찌라/ 큰 가마에 안친 밥 태반이나 부족하다/ 한가을 흔할 적에 과객도 청하나니/ 한 동네 이웃하여 한 들에 농사하니/ 수고도 나눠 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이 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 아무리 다사하나 농우를 보살펴라/ 핏대에 살을 찌워 제 공을 갚을지라

(조선 헌종 때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가사.)

<농가월령가>는 그림이 되어 내 앞에 펼쳐진다. 벼농사는 가을이면 황금벌판이 바람에 넘실거리며 춤을 춘다. 밀농사는 여름 땡볕속에서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543

김홍도 <벼타작/단원풍속도첩>, 조선, 28 X 23.9cm, 종이. 보물 527 호, 소장품번호 본관 6504 – 1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화원인 단원 김홍도는 풍속화를 통하여 조선의 시대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단원은 서민들의 일상을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그대로 화폭에 옮겼다.

25개의 그림을 엮은 책 <단원 풍속도첩>의 <벼타작> 그림을 들여다 본다. 배경도 없고, 원근도 없는 이 그림은 알파벳 X자 구도를 취했다. 두 개의 사선이 교차하는 X자는 시선을 사방 네 군데로 다 흩기도 하고, 교차점 한 가운데로 모으기도 한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다 훑어보게 된다. 그 시대에는 오른 쪽 위에서부터 글을 썼다. 그림도 그런 순서로 보면 된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지주(또는 마름)와 왼쪽 아래 비질하는 사람이 한 선이고, 지게를 진 사람으로부터 오른쪽 하단 볏단까지가 또 한 선으로 교차되어있는 구조다.

첫 번째 남자, 타작마당에 깨끗한 자리를 깔고 거만한 자세로 누워있는 저 남자는 지주일까, 마름일까? 갓을 썼으니 지주같기는 한데, 갓을 비껴쓰고 자세도 단정치 못하니 마름인 것 같기도 하다. 양반을 돈으로 살 수 있었으니 아마도 마름이 신분세탁을 하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 아닐까? 장죽은 혼자 불을 붙일 수 없으니 담배를 필 때 마다 만만한 사람을 불러서 불을 붙이게 할 것이다. 벗어놓은 신발도 시중드는 사람이 돌려놨을 것이고. 현대의 시선으로 보자면 “을이 을에게 갑질한다.”는 말도 생각나고, 현대판 “졸부”가 떠오르기도 한다.

지게 한가득 타작할 볏가리를 지고오는 사내는 웃는 표정이다. 짐이 무거울텐데 그래도 추수할 것이 많으니 기쁜가 보다. 웃통벗고 태질하는 사내, 탯자리개로 볏짚을 모아 묶는 사내의 표정을 보자. 추수하고 타작하는 곡식이 자신들 것이 아님에도 그들은 즐거운 표정이다. 뒷모습만 보이는 사내의 표정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한다. 화제는 무엇일까? 금년 농사 이야기, 아니면 그렇고 그런 농지거리? 이것은 힘든 노동을 견뎌내는 그들만의 방법일 것이다. 입 꾹 다물고 태질만 한다면 더 힘들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노동의 땀을 씻어내는 지혜를 익혀온 자들의 모습이다. 어쩌면 개상을 평소 괴롭히던 사람이라 여기고 힘껏 후려치며 속이 후련해서 웃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과는 달리 혼자 떨어져서 볏단을 치켜올린 남자의 얼굴은 무척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타작을 해도 자신에게 돌아올 것은 얼마 안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상투를 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총각이다. 마당쇠 모습이다. 이번 가을에도 장가가기는 틀린 것일까? 아래쪽에 비질하는 어른은 낟알 한 톨의 귀함을 아는듯 비질을 허투루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바로 이 그림의 마침표이다.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내년 봄엔 보릿고개가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해마다 체험한 사람으로 마침표를 찍으며 이 그림은 끝난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마당질꾼들의 힘든 노동에 지쳐있는 모습 대신에 그들의 웃음을 보았다.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그들을 감시하는 마름(지주)의 밋밋한 표정과 대비하여 화가는 웃는 일꾼들을 그렸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가 공존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 마당에 있는 그들 사이의 충돌은 없다. 소작인 노동자들의 웃음을 해학으로 표현했다. 중용을 좇는 단원 김홍도의 시선이다.

김홍도 <타작/행려풍속도병>, 조선 1778, 90.9 x 42.9 cm, 비단에 채색. 소장품번호 덕수 1313 – 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또 하나의 <타작>이다. 위의 그림 <단원풍속도첩>보다 앞서 그린 것이다. 강희언의 집 담졸헌(澹拙軒)에서 그린 것으로 배경이 있다. 선비가 세속을 유람하면서 맞닥뜨리는 장면들을 그려서 병풍으로 만든 <행려풍속도병>의 한 장면이다. 각 폭의 위쪽에는 단원의 스승인 표암(豹菴) 강세황의 그림평이 적혀 있다.

<단원풍속도첩>의 <벼타작>은 이 그림의 중심부와 같은 구조이다. 확연히 다른 것이 있다면 배경과 감시자의 모습이다.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장죽을 입에 문 마름과 갓을 쓰고 반듯이 앉아있는 지주의 모습이 다른 점이다. 먼저 그린 <타작/행려풍속도병>엔 산수화 배경이 있다. <벼타작/단원풍속도첩>에는 배경이 없고 인물에 집중했다. 병풍은 양반 지주계급의 사람들이 소장하는 것으로 비단 위에 그린다. 그들의 품격(?)에 맞는 산수화 배경을 그리고 인물을 넣는 식이다.

첩(책)은 종이에 그린 작은 그림책이다. 풍경을 배경으로 그리면 자연히 인물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풍속화첩을 제작하며 배경을 없애고 인물에 집중한 단원의 지혜가 돋보인다.

http://ralphhedleyarchive.com/index.html Archive reference 1898_w017

Ralph Hedley 1898, oil on canvas, 121.3 x 161 Cm

Laing Art Gallery, Newcastle upon Tyne, England

이 그림은 1898년 로얄 아카데미에서 처음 전시되었다

세 명의 남자들이 도리깨질을 하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단원의 <벼타작>에는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실감나게 묘사되어있다. <벼타작>은 타작하는 방법이 볏단을 개상에 태질하는 모습인데 이 그림에서는 도리깨질이다. 휘추리 한 개 달린 도리깨로 헛간안에서 타작하는 모습이다. 소년은 볏단 작업을 하는 중이다. 태질은 묶은 볏단을 턴다. 이 그림의 소년은 타작할 볏단을 풀고있는지, 탈곡한 볏단을 묶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짚에 이삭이 달려있는 것을 보아 아마도 털 것을 계속 올려놓기 위한 작업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뒤쪽 중앙에는 흰색 앞치마를 입은 어린 소녀가 앉아 남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한쪽 팔에 바구니를 들고 있는데 새참 심부름을 온 것일까? 옆에는 동행한 개 한 마리가 앉아있다. 이 어린 소녀가 볏단 작업하는 소년만큼 크다면 아마도 타작일을 거들었을 것이다. 농사에는 일손 하나라도 더 보태야 할 만큼 노동력이 필요하니까.

문을 통해 흘러 들어온 빛은 도리깨 막대와 휘추리의 연결 부위로 떨어진다. 도리깨를 내리칠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아마도 오른쪽 남자일 것이다. 그의 휘추리가 왼쪽 남자의 휘추리보다 더 펼쳐져있으니 말이다. 셋이서 돌아가며 내리치는 리듬을 느낄 수가 있는데 이들은 묵묵히 내리치는 반복작업만 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구령이나 노래 같은 것으로 호흡을 맞추는 것은 아닐까? 그림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단원은 <벼타작>에서 태질하는 남자들의 입을 벌린 모습으로 그려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감상자는 그들의 대화를 짐작하며 그림에 더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그림은 인상파 그림이 연상될 만큼 빛은 중앙을 차지하고 시선을 타작도구로 끌어들인다. 빛이 가득한 그림이다. 밝은 그림 속에 힘든 노동의 거친 숨결이 숨겨져있다.

http://ralphhedleyarchive.com/index.html Archive reference 1899_w001a

Ralph Hedley 1899, oil on canvas, 104.9 x 90.8 Cm

Laing Art Gallery, Newcastle upon Tyne, England

모자의 단출한 타작이다. 다듬잇돌 위에 한 줌 짚을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리는 모습이다. 털 것을 나르는 사람은 어린 아이이다. 여인과 어린아이의 탈곡이 쓸쓸해보인다. 추수장면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석한 모습인데, 타작마당에는 기쁨과 시름이 섞인 표정들이 어수선한데, 이 모자의 탈곡은 쓸쓸하다. 곡식을 어디서 조금 얻어왔거나 주워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림은 사선 대각선 구도로 흑백이 대비되고 있다. 알곡 한톨이라도 허실되지 않도록 깔아놓은 깔판이 하얗게 빛난다. 깜깜한 배경과 대조를 이루며 곡식-일용할 양식의 귀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홍도의 <벼타작>은 상반되는 두 계급을 한 장면에 담았다. 지주와 소작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양반과 상놈, 상반되는 계급이 그림틀 안에 갇혀있다. 그런데도 당연히 느껴질 긴장감이 없다. 기름낀 지배계급과 삐쩍 마른 피지배 계급이라는 선입견을 깨뜨렸다. 지주에게 비판적이고 소작인에게 연민을 보이는 그림이 아니다. 풍속화의 해학이 매력적이다. 단원의 낙천적인 성격을 엿 볼 수 있다.

랄프 헤들리의 그림은 사실주의 회화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신화나 역사, 왕권을 그린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그렸다.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습을 사실대로 보여줄 뿐,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물론 감상자가 적극적으로 덤벼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는 있다. 타작할 곡식도 없고, 큰 도구도 없고, 남자도 없는 모자의 빈한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지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풍속화를 대하는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풍속화를 통한 풍자와 해학이 보이지 않음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일까, 작가의 개성 차이일까? 100년의 시대 차이일까?

작가 소개

랄프 헤들리 R.B.A. (1848.12.31 영국 리치먼드 출생, 1913.06.12 영국 뉴캐슬 어폰 타안 사망)는 유화와 수채화를 동시에 작업한 뉴캐슬의 풍속화가이다. 그의 화풍은 사실주의에 속한다. 그는 또한 목공예 작가, 삽화가, 조각가이기도 했다. 아버지도 목공예 작가였다.

그의 부모는 산업화의 물결을 따라 1851년에 뉴캐슬어폰타인(Newcastle-upon-Tyne)으로 이사했다. 13세부터 뉴캐슬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윌리엄 벨 스콧(William Bell Scott)의 라이프 스쿨(Life School실제 모델이 있는 미술학교) 저녁 수업에 참석했다. 산업 혁명의 장면을 그린 풍경 및 역사 화가 윌리엄 벨 스콧은 랄프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랄프는 14세에 정부 예술 과학부로부터 동메달을 수상했다. 견습 과정을 마친 후 랄프는 성공적인 목각 사업을 시작했으며 지역 언론을 위한 석판화를 생산했다. 1884년에 랄프와 뉴캐슬의 여러 동료 예술가들은 목각 조각가인 토마스 베윅(Thomas Bewick)의 이름을 따른 베윅 클럽을 설립했다. 클럽은 지역에서 많은 수의 예술가들을 끌어들이고 다수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전시 작품은 풍경에서 사실주의적인 감각을 지닌 풍속(genre painting) 묘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랄프는 베윅 클럽의 회장이 되었으며, 왕립 영국 예술가 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의 이름 끝에 붙는 R.B.A는 Royal (Society of) British Artists를 의미한다. 가입회원이 아니라 선출회원 제도이다. 랄프는 1879년에서 1911년 사이에 정기적으로 왕립 아카데미에 전시한 뛰어난 화가였다(23개의 전시회에서 총 52개의 그림). 그림의 주제는 일반적으로 그의 고향 북동부의 노동자와 선원에서 어린이와 참전 용사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일하는 삶의 장면이다..

랄프 헤들리가 뉴캐슬 예술가들 사이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북동부 노동계급의 삶을 그린 그의 그림으로 만든 크로몰리소그래프(Chromolithography 다색 인쇄 방법)의 광범위한 인기 때문이었다.

랄프는 성공적인 목각 및 건축 조각 사업을 개발했다. 자신의 목각 및 건축 조각 사업을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나무 조각가로서 그는 교회의 장식 작업에 대한 많은 의뢰를 받았다.

1882년과 1889년 사이에 뉴캐슬의 성 니콜라스 대성당 교회의 챈슬(chansel 교회 성가대 자리)을 개조하는 작업을 했다. 그는 건축가 로버트 제임스 존슨(Robert James Johnson)이 설계한 합창단과 루드 스크린(Rood screen성가대와 일반 신도를 분리하는 칸막이)을 조각했다.

랄프 헤들리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일반 시민들 일상 생활을 회화로 옮긴 것은 일종의 사회적 공헌이다. 1913년 그가 사망했을 때 뉴캐슬 신문(Newcastle Daily Chronicle)은 그의 작업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 그의 펜으로 스코틀랜드의 농민을 위해 한 것, 그의 붓과 팔레트로 랄프 헤들리가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 잉글랜드 북동부 주) 광부와 노동자를 위해 한 것…”

영국의 산업 혁명은 1780년에서 1830년 사이로 간주된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찾아온 서민들의 생활수준은 열악했고, 노동력도 형편없었고, 취직을 했을 때 임금도 빈약했다. 랄프는 이 어려운 시기를 그의 그림에서 묘사했다. 풍속화는 그 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를 비교합니다. 이건 틀린 말이지요? ‘동양과 서양’이어야겠죠.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냥 ‘조선과 서양’으로 씁니다. ‘동양’이라하면 중국의 산수 인물화가 많고, 조선에서 중국풍의 그림을 많이 그렸기 때문이죠. 일본의 우키요에는 유럽에 자포니즘 선풍을 일으켰고요. 그러니 중국과 일본의 그림을 빼고 ‘동양’이란 말을 쓸 수는 없습니다. 두 단어를 짝지어 놓는 건 맞지 않지만 이런 사정으로 동서양의 비교가 ‘조선과 서양’의 비교가 되었습니다.

서양 화가들 소개글은 매 회 마다 올리고, 조선 화원의 소개글은 작품 몇 가지를 먼저 본 후에 올릴 것입니다.

끝.

우리 미술관 옛그림

우리 미술관 옛그림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 <벼타작>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의 벼타작입니다. 농부들이 볏단을 통나무에 내려치며 타작하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로 일하는 농부들의 역동적인 동작과 얼굴 표정에서 고된 노동의 피로감보다는 함께 노동요를 부르며 일하는 신명난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옆에서 갓을 비껴쓰고 술병을 옆에 놓고 장죽을 입에 문채 비스듬히 누워 감시하고 있는 양반의 모습은 그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풍경이었겠죠. 농촌의 일상은 소박하고 활기차다는 것을 화가가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그림을 살펴보면 지게를 진 맨상투 사내는 볏짐을 지고 오고, 더벅머리 총각은 통나무에 볏단을 힘껏 내려쳐 벼를 털고, 갈퀴질을 하는 사내 둘은 일가락을 맞추고 고깔 차림의 사내는 머리 숙여 웃음을 날리고 있으니 농민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 중년 사내는 낟알을 빗질해서 모으고 있습니다. 볏가리 위에 삿자리를 펴고 장죽을 꼬나문 지주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타작하는 표정들이 밝습니다.

봄부터 논갈고 씨뿌리고 김매다가 가을걷이의 성취감이 그동안 힘이 들었어도 신바람이 나는 것은 당연하겠죠. 당시에는 타작한 뒤 수확의 반 이상을 지주에게 바쳐야 하는 농민들의 현실인데도 마냥 밝은 표정입니다.

김홍도의 풍속화첩

수확의 기쁨이 가득 담긴 농군들의 표정에서

저 유명한 김홍도의 그림 ‘타작’이다. 한때 서울 시내의 어떤 빌딩의 벽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림은 등장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중앙에는 긴 나무둥치(‘개상’이라고 한다)에 볏단을 쳐서 알곡을 떨어내는 사람이 넷이 있다. 그 중 둘은 볏단을 묶고 있고, 둘은 볏단을 털고 있다. 맨 왼쪽 구석에는 떨어진 알곡을 비로 쓸어 한 곳에 모으고 있고, 왼쪽 위에는 볏단을 지게에 지고 오는 사람이 있다. 볏단을 묶는 사람 둘은 싱글벙글 웃고 왼쪽 상단의 볏단을 지고 오는 사람 역시 웃고 있다. 수확의 기쁨이 얼굴에 가득하다. 한 해 몸을 수고롭게 한 끝에 알곡이 충실히 여물었다. 세 사람의 밝은 표정은 바로 이 때문이다. ● 김홍도 그림 중 사회비평 가장 뛰어나 타작하는 사람의 기쁜 심정을 노래한 다산 정약용의 한시가 있다. 위의 그림은 벼 타작을 그린 것이지만, 다산의 시는 ‘보리타작’이다. 종류는 다르나, 기쁨은 매일반이다. 막 거른 탁배기 우유처럼 뽀얗고 큰 사발 보리밥을 한 자나 담았구나 수저 놓고 도리깨 들고 마당으로 나서니 검게 그을린 두 어깨 햇볕에 번들번들 옹헤야 소리 하며 발장단 맞춰 내리치니 순식간에 보리 이삭 질펀하다 앞소리 뒷소리에 소리 더욱 크게 지를 적에 보이는 건 지붕까지 날아오르는 보리이삭이로다 기색을 보아하니 이보다 즐거울까? 노동에 시달린 마음이 도무지 아니로다 낙원이야 천당이 멀리 있지 않으니 무엇이 괴로워 고향 떠나 나그네가 되리오(‘보리타작 노래(打麥行)’) 탁배기를 한 잔 걸치고 앞소리를 매기고 뒷소리로 받는다. 노동은 고되지만,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풍성한 수확이 있는 곳이 낙원이고 천국이다. 어찌 고향을 떠나 떠돌이가 될 것인가. 다시 단원의 그림으로 돌아가자. 그림 왼쪽의 볏단을 털기 위해 머리 위로 한껏 볏단을 치켜들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는 무언가 수심이 가득하다. 이 사람이 문제다. 그림 왼쪽 상단의 모서리에서 오른쪽 하단의 모서리로 직선을 그으면 완벽하게 그림이 반으로 나뉘는데, 빗금 아래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빗금 위에는 한 사내가 볏가리 위에 돗자리를 깔고 비스듬히 기대어 장죽을 물고 있다. 자리 앞에는 담배쌈지와 신발이 놓여 있고, 작은 술단지가 놓여 있다. 술잔으로 덮어 놓았다. 갓을 젖혀 쓴 꼴이 영 게으른 얼굴빛이다. 단원은 한 폭의 그림에 기쁨과 수심, 심드렁함 셋을 동시에 배열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은 지주이거나 지주를 대신하여 소작료를 받아 지주에게 바치는 일을 하는 마름일 것이다. 알다시피 타작마당은 먼지가 펄펄 날리는 곳이다. 타작마당 바로 옆에 사람이 누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단원은 왜 이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 그려놓은 것인가. 여기에 단원의 사회비평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이 김홍도 그림 중에서 가장 탁월한 사회비평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 기쁨의 시간… 고민의 시간 타작의 시간은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가에 바칠 세금과 지주에게 바칠 소작료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고민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조선시대 전 시기를 걸쳐 거의 동일하였다. 선조 때의 관료이자 문인이었던 이산해(1539∼1609)의 ‘전가잡영(田家雜詠)’이란 시를 보자. 이 시는 모두 3수인데, 첫째 수에서는 갓 빚은 막걸리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흰 떡을 쪄서 먹으며 즐긴다. 정말이지 정승판서가 부럽지 않다. 두 번째 수는 타작이 끝난 뒤 등불을 켜고 술과 닭고기를 먹으며 한 해의 회포를 푼다. 문제는 세 번째 수다. 마을 아전 문 앞에 들이닥쳐 늙은 할멈 묶어 가고 아들 셋은 지난해 남쪽으로 수자리 갔다오 솥단지 다 쏟아낸들 세금 납부를 늦출 수 있으리오 밭 갈던 소까지 팔아도 세금을 못 채운다 고을 원님 위세는 어찌 그리 무서운가 관가 마당에서 매질이 잠시도 그치지 않네 부럽구나, 저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비렁뱅이가 아침에 빌어먹다 저녁에 구렁에 뒹굴어 죽는 것이 나라에 낼 세금을 바치지 못하자, 집안의 할멈을 잡아가고 아들 셋을 징발하여 군인으로 끌고 갔다. 솥 안에 있던 것까지 털고 소까지 팔아도 세금을 다 내지 못한다 해서 관청에 끌려가 매를 맞는다. 그러면서 유리걸식하다가 구렁에서 죽는 거지를 부러워한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면, 볏단을 털던 사내의 근심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 온 것이 아닐까. 그림 오른쪽 상단에 단원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게으른 지주(혹은 마름)가 바로, 나의 상상에 합당한 근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앞에서 여러 번 지적했듯, 중세사회에서의 농민은 생산의 전체를 담당하면서도 늘 빈곤하였다. 최대의 수탈자는 국가였다. 국가의 이름으로 강제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거두었던 것인데, 그것은 국가가 독점하는 폭력으로 가능하였다. 한데 국가는 다만 폭력을 집약한 기구일 뿐이고, 그 기구가 작동하게 하는 것은, 국가의 권력기구를 장악한 그 사회의 지배층이었다. 따라서 국가에 바치는 세금이란 사실상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중세, 구체적으로 말해 조선이란 국가에서 왕과 사대부가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들이 세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 농민의 70%가 고통스러운 소작농 농민이 세금을 내어야 할 곳은 국가만이 아니었다. 지주가 있었다. 농민들이 모두 자기 농토를 넉넉히 갖고 농사를 짓는다면 천국이 따로 없겠지만, 여유 있는 자작농의 비율은 대단히 낮았고 대부분이 소작농이었다. 소작농은 가혹한 지대를 바쳐야 하였다. 정약용의 ‘호남 여러 고을의 소작농이 세금을 바치는 풍속을 엄히 금하기를 청하는 차자’라는 긴 제목의 글을 보면 소작농의 딱한 사정이 잘 나와 있다. 이에 의하면, 당시 호남의 농민 100호 중 자작농은 25호 정도, 소작농은 70호, 그리고 땅을 빌려주고 세를 받는 것이 5호라 하였다. 인구의 70%가 소작농인 것이다. 그런데 호남의 경우 소작농은 추수를 하여 거둔 곡식을 지주와 소작농이 반으로 나누지만, 나라에 내는 세금(10분의1)과 곡식 종자는 소작농이 내어야 한다. 경기도의 경우, 지주가 세금과 종자를 맡는 것과 비교해 본다면, 호남의 소작농은 30% 정도의 수확물만 가지는 것이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의 ‘빈민’이란 글에서 충청 전라 경상도는 모두 이런 식으로 소작을 한다 하고 있으니, 곡식을 많이 생산하는 지방은 대부분 그랬던 것이다. 경기도는 지주가 종자와 세금을 내기 때문에 소작농이 50%를 차지할 수 있다지만, 이 역시 충분한 분배는 아니다. 왜냐하면 박지원의 ‘한민명전의’를 보면, 이 50%에서 땔감과 소금, 장을 마련하는 비용, 의복 마련에 드는 비용, 결혼과 상제 등에 드는 비용이 나와야 하고, 여러 가지 계에 드는 돈, 관청에 바치는 잡세를 내어야 한다. 또 홍수와 가뭄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남는 것이 얼마 되겠는가. 해서 추수에서 정말 즐거운 사람은 5%의 지주나 혹은 25%의 자작농이다. 우선은 기뻐하겠지만, 괴로운 사람이 70%다. 위의 찡그리는 사람은 아마도 그 70%에 드는 사람일 것이다. 타작은 노동의 대가를 거두는 것이기에 즐겁기 짝이 없지만 한편으로 그 수확물을 거지반 빼앗기기에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림은 이 복잡한 사정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천재 김홍도가 아니겠는가. –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2008-03-03 서울신문,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조선 풍속사 1―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는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25점의 그림을 실마리로 조선시대 풍속사를 살핀 책이다. 단원이 그린 많은 풍속도는 편의상 시리즈 풍속화, 평생도, 아집도, 기록화 등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책이 제재로 삼은 ‘단원풍속도첩’은 시리즈 풍속화에 속한다.

<조선 풍속사 2―조선 사람들, 풍속으로 남다>는 단원과 혜원의 그림이 아닌 그 밖의 조선 후기 풍속화를 중심으로 조선 풍속사를 읽었다. 풍속화라면 으레 혜원과 단원 작품에만 주목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들에서 우리의 풍속을 찾아본 흔치 않은 작업이다. 기산 김준근의 작품 등 평소에 잘 접해보지 못했던 그림들이 많이 등장한다.

<조선 풍속사 3―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는 조선 풍속사 읽기의 단초가 된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2001)의 개정판이다. 출간 당시 잘 알려져 있지 않던 ‘혜원전신첩’에 실린 30장의 그림을 ‘풍속’으로 읽어낸 이 책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최근까지 이어져 온 ‘혜원’ 열풍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조선 풍속사 3>은 내용을 보충하고 도판을 추가해 깊이를 더했다. 농부 여섯 명 가운데 둘은 볏단을 묶고, 둘은 볏단을 쳐서 알곡을 털어내고 있다. 그 떨어진 알곡을 비질을 해 한곳에 모으는 사람이 있고, 나머지 한 명은 볏단을 지게에 지고 온다.

비질을 하는 사람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한데 이와 대조적으로 나머지 다섯 농부는 수확의 기쁨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얼굴이 밝다. 농부들 옆에는 돗자리를 깔고 한가하게 누워 있는 한 사내가 장죽을 빨며 빈들거린다.

단원 김홍도의 그 유명한 `타작` 그림 속 풍경이다.

화폭 속에는 수확의 기쁨과 수탈의 슬픔, 양반의 빈들거림이 동시에 섞여 있다. 양반은 그렇다 치고 왜 같은 농부들 사이에서도 감정이 엇갈릴까. 풍속화를 `회화`가 아닌 `풍속`의 입장에서 다루고 있는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의 분석은 이렇다. 단원 김홍도가 살았을 18세기 중후반 타작의 시간은 기쁨의 시간인 동시에 국가와 지주에게 바칠 세금과 소작료를 고민해야 하는 고통스런 순간이었다. 단원과 동시대 인물인 정약용(1762~1836)의 글에서 이 극명한 차이를 읽을 수 있다.

호남 농민 가운데 소작농은 전체 중 70%, 자작농은 25%를 차지했다. 나머지 5%가 땅을 빌려주고 세를 받는 지주였다. 소작농의 경우 추수를 해 거둔 곡식의 반을 우선 지주에게 바쳐야 하고 세금(10분의 1)과 곡식 종자값은 따로 나라에 내야 했다. 수확물의 30%만 가지는 셈이다. 지주와 자작농을 제외한 농민 70%가 기쁨을 채 누릴 사이도 없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비질을 하는 납작코 사내는 분명 소작농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 강명관 교수의 책이 출간됐다. `조선 풍속사` 시리즈 3권이 동시에 나왔다. 1권인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는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25점을 샅샅이 훑었다. 소 두 마리가 밭을 가는 `쌍겨리`, 반찬 하나에도 정답게 들밥(점심)을 먹는 일꾼들, 바다에 말장을 쳐서 길게 담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 어살(고기잡이) 등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저자는 “신윤복은 여성의 성적인 코드에 몰입해 있는 반면, 김홍도는 농민과 생산하는 사람을 주로 그렸다”며 “김홍도의 그림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풍속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적다”고 말했다. 저자는 여기에 기산 김준근의 작품들을 등장시키며 조선 후기 풍속에 풍부함을 더했다. 시리즈 두 번째 책은 단원과 혜원의 그림이 아닌 그 밖의 조선 후기 풍속화가 중심이 된 책이다.

이 <조선풍속사>는 강 교수가 2001년 혜원 신윤복의 화첩인 ‘혜원전신첩’을 풍속의 관점으로 읽어내 출간한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에다 단원 김홍도와 기산 김준근 등이 그린 풍속화 내용을 추가해 3권 분량의 두툼한 책으로 완성한 것이다.

책의 1권은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25점의 풍속화를, 3권은 신윤복의 풍속화를, 2권은 김홍도와 신윤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던 기산 김준근과 다른 화가들이 그린 풍속화를 서술했다.

조선후기 풍속화의 쌍벽을 이뤘던 단원과 혜원의 그림 속 풍속을 비교해 보는 것도 책 세 권을 알차게 읽는 방법이다. 여성의 노출에 대한 두 화가의 시각 차는 극명하다. 신윤복의 `단오풍정` 은 기생들이 가슴을 훤히 드러내며 목욕을 하고 있다. 조선 최초로 여성의 신체를 드러낸 일대 사건으로 여성의 목욕 장면을 세밀하게 형상화했다. 이에 반해 김홍도의 `들밥`에는 젖먹이는 여성이 등장하지만 `모성의 유방`으로 그려졌을 뿐이다. 기와집을 짓는 모습을 그린 김홍도의 ‘기와 이기’ 에서 밑에서 던진 기와를 맨손으로 받아내고 흙 반죽 덩어리를 달아 올리는 모습부터 목공이 기둥의 쏠림을 점검하기 위해 한눈을 감은 모습과 목수가 대패질하는 모습까지 하나하나의 부분을 자세히 읽는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림에서 보이는 대패에 지금의 대패와는 달리 좌우 손잡이 역할을 한 ‘대패손’을 볼 수 있다거나 목공이 기둥의 쏠림을 측정하기 위해 추로 쓰는 물건은 ‘먹통’이라 불리는 것으로 원래는 줄을 곧게 치는 데 쓰는 물건이라거나, 그림 오른쪽 아래에 톱이 보이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생긴 톱만 ‘톱’이라 부르고 지금 흔히 보는 칼 모양의 톱은 ‘거도(鋸刀)’라고 불렀다는 설명 등을 덧붙인다.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시 그는 그림 오른쪽 위에 있는 사람은 이 기와집의 주인으로 머리에 사방관을 쓴 것으로 보아 양반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하고, 태종 때 서울의 크고 작은 집이 모두 띠로 지붕을 덮은 초가집이라 중국 사신이 보기에 아름답지 못하고 화재의 염려도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는 사실과 시골에서는 기와집에 사는 사람이 백에 한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민중적 시각도 드러낸다. 신윤복의 유명한 ‘단옷날의 개울가’ 를 살피면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공중목욕탕이 생긴 것은 20세기 초인데, 그 이전에는 어떻게 목욕했을까? 왜 하필이면 목욕하는 여인을 제재로 삼았을까? 은폐되었던 여성의 신체를 재현함으로써 도덕의 명령에 균열을 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면서 여름에는 매일 두 번씩 목욕을 했고 그것도 시냇가에서 남녀가 서로 내외하지 않고 벌거벗고 했으며, 때가 많다고 중국 사람들을 비웃는 고려 사람들이 실제 깨끗하더라고 한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 얘기를 끌어들이고, <소학>과 <세종실록> <춘향전> <용재총화>와 구비문학에 <신약성서>까지 인용하고 김홍도의 ‘빨래터’와도 비교하면서 한바탕 만담처럼 얘기를 풍성하게 끌어간다.

– 2010/06/09 ⓒ atimes 한국미술신문 – 2010.06.11 ⓒ 매일경제 & mk.co.kr – <조선풍속사> 전 3권, 강명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푸른역사, 2010 – Le Temps Des Cerises(버찌가 익을 무렵) / Tino Rossi

20. 김홍도 ‘타작’

김홍도 作 ‘단원풍속화첩’ 중 ‘타작’, 지본담채, 27×22.7cm,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며칠 전 퇴근을 하고 집에 와보니 택배로 쌀 20kg이 배달돼 있었습니다. 지방에 사는 친한 후배가 올해 수확한 햅쌀을 먹어보라고 보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쌀이 도착한 것입니다. 쌀을 선물 받으니 이 쌀이 저희 집에 도착하기까지 수고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떠오르는 그림이 한 점 있었습니다. 바로 김홍도의 ‘타작’이란 그림으로 아마 교과서에서 보았던 낯익은 그림일 것입니다.

교과서에 수록된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너무 유명하고 익숙해서 자세히 감상하지 않고 대충 감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김홍도 그림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김홍도의 풍속화는 꼼꼼히 살펴봐야 그 진가를 알아챌 수 있는 그림입니다.

벼 타작이 한창입니다. 현장에 마이크가 있다면 벼를 내리치는 농부의 기합소리, 벼가 나무에 부딪치는 소리, 빗질하는 소리, 수확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노동요까지 어울려 시끌벅적하고 활기 넘치는 현장감이 넘쳐났을 것입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7명으로 구도를 놓고 보면 김홍도표 ‘X’자 구도입니다. 먼저 눈길이 가는 인물은 오른쪽 위에 갓을 쓰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인물입니다. 짚단 위에 자리를 깔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앞에 술병을 보니 벌써 한 잔을 걸쳤는지 갓이 벗겨지기 직전입니다. 이 사람은 지주 또는 마름으로 벼 타작을 감독하고 있습니다. 마름은 지주를 대신해 소작농을 관리하며 소작료를 받아 지주에게 받치는 일종의 관리자입니다. 이 인물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이유는 우리 옛 그림은 오른쪽 위에서부터 감상이 시작되는데 이는 세로쓰기와 우측에서 좌측으로 글을 쓰고 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인물보다 크게 그렸습니다.

그림 감상이 이 마름에서 시작되어 감상자의 시각은 무심코 벗어놓은 신발로 이어지고 신발 방향을 따라 다시 자연스럽게 양쪽 농부들로 이어집니다. 김홍도가 왜 천재인지 보여주는 탁월한 시선유도 방법입니다. 한쪽 신발 방향은 굳은 표정으로 볏짐을 내리치려는 총각으로 향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즐거운 표정으로 함께 모여 있는 세 명의 인물로 향해 있습니다. 이 네 명의 인물들은 ‘개상’이라고 불리는 나무둥치에 볏단을 쳐서 탈곡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둥치에 쳐서 탈곡하는 것은 오직 벼가 유일하며 보리는 도리깨를 사용합니다.

벼를 털 때 볏짚이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볏짚을 묶어주어야 하는데 제일 오른쪽 인물이 묶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위에 지게를 지고 오는 인물은 추수한 볏단을 가져오고 있는데 지게의 방향과 시선처리가 우 하단으로 이어져 ‘X’자의 나머지 한축을 구성합니다. 등을 보이는 인물은 옷이 올라갈 만큼 힘차게 볏단을 내리치고 있는데 떨어진 쌀을 발로 밟기가 좀 그랬는지 버선을 신고 있고 오른손을 반대로 그린 것은 김홍도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원표 조크((Joke)입니다.

가슴을 풀어 헤친 총각의 얼굴은 가장 어두운 표정입니다. 조선후기에 농부의 5%는 땅만 빌려주고 수확물을 나눠 받는 농민, 25%는 본인 논을 경작하는 자작농, 나머지 70%는 타인의 땅을 빌려 경작하는 소작농입니다. 소작농은 지주와 수확물을 5:5로 나눠야 하는데 경기를 제외한 호남, 경상, 충청 등 대부분의 농촌에서는 자기 몫 50%에서 10%의 세금과 종자 값까지 내야하니 실질적으로는 수확물의 30% 이상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그마저도 봄 보리고개때 빌린 곡식을 갚고 나면 결국 세금과 종자 대금을 갚지 못해 군역으로 끌려가거나 소나 집을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추수는 1년 농사를 수확하는 기쁜 순간이지만 가혹한 수탈이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굳은 표정의 총각은 이런 소작농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좌측 하단의 인물은 털린 낱알을 모으려 비질을 하고 있는데 노동 강도가 쎈 쌀을 터는 일은 젊은이들에게 맡겼으니 비교적 나이가 있는 분은 비질이라도 해야 눈치를 안 받겠지요.

전체적으로 심드렁한 표정의 마름, 수확의 기쁨으로 웃는 농부, 1년 내 고생했지만 가혹한 세금과 종자 값까지 부담해야하는 분노의 표정인 농부, 이젠 기운이 부족해 힘든 노동보다는 보조 역할밖에 할 수 없는 나이 든 농부 등이 어우러진 희비(喜悲)가 교차하는 타작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작’에 대한 기존의 많은 해설에서는 누워 있는 마름보다는 타작을 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타작의 기쁨과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며 김홍도가 저 마름을 시각적 출발 위치에 배치한 것과 다른 인물보다 더 크게 그린 이유가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림은 부감법으로 공중에서 바라본 시점이지만 사실은 누워서 농부들을 바라보는 마름의 시각일수도 있습니다. 마름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여러 인물들의 심리가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과 거래하는 농부들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보는 그런 능력이 없으면 마름의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감상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점도 바로 ‘마름이 바라본 농부들의 마음’, 이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인 계급인 김홍도가 지주들에게 제발 좀 보라고, 농부들이 즐거우면서도 얼마나 불행하며, 기쁘면서도 한없이 고통스러운지를. 좀 알아달라고 농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단원의 풍속화첩은 비록 평범한 민중들을 대상으로 그렸지만 그림의 감상자는 당연히 타작하는 농부가 아니라 양반 계층입니다. 그 양반들에게 힘들게 고생하고 그럼에도 수확이 수탈로 이어지는 농부들의 고통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해석한다면 너무 자의적 해석일까요? 요즘 청소년들은 쌀을 수확하는 광경을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쌀은 쌀 나무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벼는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1만5000년 전 재배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발견될 만큼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농작물입니다. 지금은 농업기계의 발달로 모를 심거나 가을 수확도 전부 기계로 대처하지만 몇십년 전만 해도 가장 힘들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작물이었습니다.

우리 불교에서도 부처님께 쌀을 공양하는 것을 중요시하여 사시예불을 올리면서 늘 흰 쌀을 공양 올리는 사시마지를 행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인 사월초파일에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면서 6가지 재물을 공양하는 육법공양에 향, 연등, 과일, 꽃, 차와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쌀입니다. 또 동지에는 동지마지라고 하여 팥죽으로 불공을 올리고 신자들과 나누어 먹기도 하는 등 한국불교는 민속 고유의 쌀 신앙을 포용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신도들도 현금 대신 일부러 쌀을 가져와 부처님께 정성껏 올렸고 그래서 사찰에서는 공양미 한 톨도 헛되이 낭비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11월11일은 국적 불명의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법정기념일로 쌀로 만든 가래떡의 의미인 ‘농업인의 날’입니다. 밥은 곧 하늘이고 정성이며 부처님이고 자비입니다. 귀한 쌀을 보내준 후배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농부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email protected]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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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상태, 제조사, 브랜드, 원산지, 제조일자에 관한 테이블 상품번호 903371707 상품상태 새상품 부가세 면세여부 과세상품 영수증발행 발행가능 – 신용카드 전표, 온라인 현금영수증 사업자구분 개인사업자 과세자구분 일반과세자+간이과세자(세금계산서 발급사업자) 원산지 상세설명 참조

제품소재, 색상, 치수, 제조사/수입자, 세탁방법 및 취급시 주의사항에 관한 테이블 품명 및 모델명 캔버스액자 허가 관련 해당사항없음 제조국 또는 원산지 국내 제조자/수입자 국내 관련 연락처 053-741-7553 주문후 예상 배송기간 배송은 주문일로 3~5일 사이에 이루어지며 주문제작이나 대량주문일 경우는 시간이 더 소요될수 있습니다. (주말과 공휴일은 휴무입니다.) 구매, 교환, 반품, 배송, 설치 등과 관련하여 추가비용, 제한조건 등의 특이사항이 있는 경우

소비자가 전자상거래등에서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 17조 제1항 또는 제3항에 따라 청약철회를 하고 동법 제 18조 제1항 에 따라 청약철회한 물품을 판매자에게 반환하였음에도 불구 하고 결제 대금의 환급이 3영업일을 넘게 지연된 경우, 소비자 는 전자상거래등에서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2항 및 동법 시행령 제21조 2에 따라 지연일수에 대하여 전상법 시행령으로 정하는 이율을 곱하여 산정한 지연이자(“지연배상금”)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교환∙반품∙보증 및 결제대금의 환급신청은 [나의쇼핑정보]에서 하실 수 있으며, 자세한 문의는 개별 판매자에게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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