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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웬수가 된다 – 아이가스저널
아이가스저널 모바일 사이트, 기사 상세페이지, 우리는 사회적인 관계를 … 은 쉽게 알 수 있지만 한 길 사람 속은 도통 알아채기 어려운 탓이다.
Source: m.igasnet.com
Date Published: 1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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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일 없는’ 두 아이의 소원은? – 한겨레
벤은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페르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의 본뜻을 이해하는 데 서투르고 종종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버리기도 해 도통 알 …
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3/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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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도통주공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아파트아이
아파트아이 이벤트 … 우리 아파트 소식을 모바일에서 빠르고 간편하게! 아파트 생활지원 플랫폼, … Copyright c 남원도통주공 관리사무소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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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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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한약 맞아요?…사탕·젤리등 톡 튀는 제형들
천안에 거주하는 주부 H씨(30)는 얼마 전 집 근처 한의원에서 두 아이의 한약을 … 두 살배기 작은 아이는 도통 먹질 않아서 버리다시피 했다”며 “팩 단위 용량도 …
Source: www.kshp.or.kr
Date Published: 9/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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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와 공공의료, 그리고 젊은 의사 – 헬스포커스
헬스포커스뉴스 모바일 사이트, 기사 상세페이지, …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아이가 금방 나을 거라 기도하며 기다린다.
Source: www.healthfocus.co.kr
Date Published: 6/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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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신의 <광고 한 편, 사진 한 장으로 읽는 대중문화 이야기 ...
실버아이뉴스 모바일 사이트, 기사 상세페이지, 배우 김영철 씨가 진행 … 덮은 본부 안에서 형들이 무슨 짓을 하며 놀았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다.
Source: www.silverinews.com
Date Published: 4/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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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돼지저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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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9. 6. 1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71ErlI8pccA
[생각하는 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웬수가 된다
우리는 사회적인 관계를 중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넘쳐나기 마련이다. 때로는 상대방에 맞춰 눈치를 보기도 한다.
칭찬을 받으면 고래도 춤춘다고 했다. 칭찬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타인에게 무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견디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누군가에게는 호감이 간다. 우리가 보여주는 관심은 햇살과도 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행동은 더욱 향상되지만 그와 반대로 무시하게 되면 곧바로 사그라지게 된다.
결국 상대방이 나에 대한 호감과 애정을 바탕에 두고 관심을 보인다면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와 반대로 반감을 품고 적대시한다면 그에 똑같이 대응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올바로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어떤 조건에서든지 자신이 잘 해냈을 때 갖는 자신의 만족감에 더해 타인으로부터 긍정적인 보상을 받는 경우 그 행동은 계속하고 싶어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상호 간에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한순간에 무너질 때도 있다. 신뢰를 쌓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무수하게 필요하지만 불신과 미움을 받기까지는 단 한 번의 실수나 감정으로 파탄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매스컴 등을 통해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결혼 생활도 한마디의 말실수와 단 한 번의 실수로 감정을 쌓고 신뢰를 잃는 상황을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이렇듯 백번을 잘하다가도 한 번의 실언과 실수가 순식간에 웬수로 돌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백번을 잘못하다가 한번을 잘한다고 해서 관계가 금세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의심을 품게 하는 동시에 그동안의 관계보다도 오랜 시간을 요구할 수도 있다.
진심이라고 아무리 열변을 토해도 열 길 물속은 쉽게 알 수 있지만 한 길 사람 속은 도통 알아채기 어려운 탓이다. 그래서 속을 뒤집어 보이고 싶다는 표현도 적잖이 쓰게 되지만 어르고 달래기는 좀처럼 쉽지 않은 게 사회적 동물의 습성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 한 번의 무관심과 실수로 인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인간관계 뿐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본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실수나 안이한 판단으로 잠깐의 한눈판 사이에 벌어지는 일 중에는 수습할 수 없게 감당하지 못하는 사건, 사고가 빈번하다.
흔한 얘기로 자신만 피해를 보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로 타인에게 끼쳐진 피해가 심각해지면 끝 모를 고난과 괴로움이 평생을 이어갈 수밖에 없게 한다.
우리가 평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군림, 무관심이 아니라 대인관계를 비롯한 사업, 안전 등 관련된 모든 세상의 일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과 믿음 그리고 영속성 있는 진심이 꾸준히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되는 일 없는’ 두 아이의 소원은?
‘공감’을 주제로 한 책으로 자폐증 아이의 심리 상태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책을 덮을 때쯤엔 나와 전혀 달라 절대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친구도 사실은 ‘조금’ 밖에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벤은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페르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의 본뜻을 이해하는 데 서투르고 종종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버리기도 해 도통 알 수 없는 아이 취급을 받는다. 관계 맺기가 서툰 벤의 유일한 친구 앤디도 학교 생활이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농구부에 들어가려고 애쓰지만 작은 키 때문에 탈락하고, 친구들에겐 “꺼지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이래저래 되는 게 없는 두 친구가 우연히 꽃밭에서 파란 유리병을 발견한다. 유리병에서는 둘에게만 보이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때마다 하나 둘씩 소원이 이뤄진다. 가난한 벤의 아빠는 로또에 당첨되고, 농구부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던 앤디는 키가 갑자기 쑥쑥 자란다. 하지만 벤이 빌었던 진짜 소원은 따로 있는데…. 자폐증을 앓는 아이의 심리 상태와 불안감,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과 이해에 이르는 과정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 캐시 후프먼 지음, 최정인 그림, 신혜경 옮김. 스콜라 펴냄/8500원. 최현준 기자 [email protected]
한국병원약사회 모바일 홈페이지
이거 한약 맞아요?…사탕·젤리등 톡 튀는 제형들
경희의료원 한약물연구소 새 제형 개발…한방수요창출 기대
딸기·박하향 ‘솔솔’ 커피처럼 타 마시기도
“휴대·복용 간편하고 품질도 객관화”
◀한약물연구소 김남재 부소장
(약사공론 3/6 기사)▲제형 제조 중 엑기스를 추출하는 과정(왼쪽)과 개발중인 만성피로회복제의 항산화효소 활성을 측정하는 모습. 천안에 거주하는 주부 H씨(30)는 얼마 전 집 근처 한의원에서 두 아이의 한약을 지었다. 첫돌이 지나면 녹용 정도는 먹일 수 있다고 해서 작은 아이 것까지 지었지만 어른도 먹기 힘든 한약을 아이들에게 먹이기가 만만치 않았다. H씨는 “네 살난 큰 아이는 그럭저럭 달래가며 먹였는데, 두 살배기 작은 아이는 도통 먹질 않아서 버리다시피 했다”며 “팩 단위 용량도 성인 기준이어서 가지고 다니면서 덜어 먹이려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몸에는 좋다지만 특유의 냄새와 맛, 색깔 때문에 선뜻 복용하기 어려웠던 한약. 가지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보관도 어려운 한약을 좀더 간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는 없을까? 경희의료원 한약물연구소(소장 류봉하)가 최근 한약의 이같은 약점을 개선한 새 제형을 원내에 도입해 환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한의사와 약사의 합동연구를 기반으로 지난해 11월 출범한 한약물연구소는 3개월여 만에 순수 원내 조제로 한방젤리, 건식과립제, 트로키(녹여먹는 사탕) 제형을 개발해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에 발빠르게 다가서고 있다. 경희의료원 최혁재 부속예제팀장(한약물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인구 고령화와 자연친화적 트렌드의 급성장에 힘입어 한약을 포함한 천연물신약의 수요가 꾸준히 맥을 잇고 있지만 기존 투약경로와 형태로는 소비자의 기호와 소비트렌드를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며 “새로 개발된 제형들은 위축되어 가는 한약시장과 소비자 접근도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분석했다.연구소에 따르면 원내에서 가장 폭넓게 처방되고 있는 것은 캔디형 제제인 청인트로키. 기관지염을 치료하는 ‘감길탕’을 기본으로 프로폴리스와 멘톨이 첨가된 트로키는 만성 감염성 목감기, 해수, 천식, 금연보조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됐으며, 원내에 도입되자마자 바로 물량이 동나 한때 투약대기인원이 150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왼쪽부터 트로키, 젤리, 건식과립제형 제제. 필요할 때 곧바로 입안에 털어넣을 수 있는 내소화중탕 과립제(1회당 3g)는 소화불량, 복부팽만, 식욕부진 등 만성적 소화계 질환을 대비한 상비약 개념으로 휴대성과 복용편의를 개선했다. 하루 한 개만 복용하도록 용량을 조절한 젤리 제형에는 딸기향을 첨가해 쓴맛을 최대한 보완하는 한편 올리고당을 사용해 당분흡수의 부담을 줄였으며, 젤리를 싫어하는 환자들은 따뜻한 물에 녹여 차로 마실 수 있도록 물에 잘 녹게 만들었다. 이밖에 구취를 없애주는 한방가글제, 추출량을 극대화해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인 녹용과립제도 호평을 받고 있다고. 최 팀장은 “기존 제형과 새 제형의 처방을 모두 유지한 결과 두 제형의 수요가 동반 창출돼 수익증대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현재까지는 해당진료과에서 주로 처방하고 있지만 향후 처방 연령층을 다양화하고 만성피로회복 등 새로운 목적의 치료제도 속속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구소의 개발프로세스를 통해 탄생한 새로운 한약제형의 부대사업화를 내부적으로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다”며 “향후 신제형 한약이 일반의약품이나 건기식 형태로 상용화될 가능성에 비춰보면 ,10년쯤 후에는 초제·탕약 위주의 한약시장이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초제와 탕약 위주의 재래방식으로는 다소 입증하기 어려웠던 한약의 품질을 최대한 객관화해 소비자에게 보편적으로 다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한약물연구소 김남재 부소장(한방예제팀장)은 트로키, 젤리, 과립제형 등 재래한약을 탈피한 한약의 과감한 변신을 “가능한 복약순응도가 높고 부담없는 형태로 원하는 약효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개선의 일환”으로 평가했다. 무엇보다 원하는 용량을 바르게 먹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약의 특성상 양이 많고 향과 맛이 진한 전통한약이 소비자의 요구를 따라잡지 못한 측면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한약 나름대로의 효능과 강점이 분명 있지만, 근거중심의학의 수요에 맞춰 약효를 계량화·객관화하는 데는 또다른 시도가 필요했다”며 “약효범위 내에서 딸기·바나나향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도를 파악하거나 커피, 분유의 분말형태를 접목한 것도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 추출물과 탕약의 동등성 등에 대해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 부소장은 그러나 “매주 개발회의를 통해 수차례 토론을 거친 결과 탕약·환제와 동등하거나 더 나은 제제 개발의 필요성에 한의사, 한약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공감대가 마련됐다”며 “현재로선 조제실 제제 형태로 일부 환자들에게 공급되고 있지만, 향후 특허출원, 사업화 등을 통해 폭넓은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기사 입력 날짜 : 2007-03-06 02:51:46 허현아([email protected])
무상의료와 공공의료, 그리고 젊은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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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날짜별 기사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늦은 밤의 한적한 한 시골마을. 모두 불을 끄고 있는 와중에 한 집에서만 유달리 전등불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아이에게서 갑자기 열이 난다. 간밤에 먹은 것이 잘못됐는지 구토를 하고 어지럽다고 칭얼대기 시작한다. 아이 몸을 만져보니 데인 듯이 뜨겁게 느껴진다. 아, 야밤에 어찌한다. 근처에는 병원도 없고 응급실에 가려면 구급차를 불러야 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병원비도 많이 나올까 걱정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 참 옆집에 가서 부탁을 좀 해야겠다.’
옆집 대문을 두들겨 자고 있는 옆집 아저씨를 깨워 등에 업은 아이를 보여주었다.
“무슨 일이유? 이 밤에..”
“우리 아기가 아파서유. 큰일났네유.”
아저씨가 아이의 몸에 손을 대 열을 재 본다.
“아이고, 열이 펄펄 끓네 끓어. 허이, 이리 눕혀 보슈.”
아이를 본 아저씨는 곧 내 아이의 머리와 손에 침을 놓자고 한다. 그리고는 사물함 서랍 속에 든 침통을 꺼내고 머리칼 사이에 침을 넣어 슥슥 비빈 후, 아이의 머리 속과 손가락에 침을 꽂아 넣고 무어라 중얼거린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아이가 금방 나을 거라 기도하며 기다린다.
“머리에 침 놨응게 열은 곧 떨어질테고, 손가락 땄응게 토도 이내 곧 안 할 거유.”
“야. 감사해유. 금방 나을 수 있겠지유?”
이 밤에 이렇게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끙끙 앓다가 침을 맞아 울고 있는 아이의 입에 용각산 한 수저를 보리차에 녹여 먹인 후 간신히 잠을 재웠다. 큰 병이 아니기를 기도해 본다. 날이 밝으면 다시 아이를 업고 농로까지 나가 버스를 타고 읍내의 의원에 가 보아야 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위 일화는 충청남도의 한 산골마을에서 자란 필자의 이야기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잔병치레가 심해, 병을 앓을 때마다 친할머니께서는 필자를 등에 업고 옆집 아저씨에게 찾아가 침을 맞혔다. 군에서도 워낙 외진 곳에 집이 있었고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 진료를 받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컸던 터라, 동네에서 의사 역할을 대신하는 옆집 아저씨는 주민들에게는 반 의사나 마찬가지였다. 버스조차 들어오지 않고, 동네 주민 중에서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 그런 곳에서 병원을 찾아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동네 주민들은 가벼운 질환이 생길 때마다 그 아저씨를 찾아가 침을 맞곤 했고, 집집마다 상비약으로 이름 모를 정체불명의 가루약과 고약, 환약을 한 통씩 구비해 놓고는 했다. 공공의료기관, 민간의료기관이 전 국민을 제대로 치료하기에는 인력과 시설이 부족했던, 의료보험 도입 이전 시대에는 약사나 침구사와 같은 비의료인이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밖에 없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전 국민 의료보험 확대 실시와 무상의료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적은 돈을 가지고도 쉽게 병ㆍ의원 진료를 받고 약을 탈 수 있게 됐다. 의료 전문가인 의사에 의한 진료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게 됐고, 의료 기관 접근성 또한 무척이나 좋아졌다.
그 후로 23년이 흐른 지금, 총선과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무상의료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슈화된 무상의료 논란은 한 야당이 이것을 당론으로 정하고 발표함으로써 2012년 대한민국 의료계를 뒤흔들 수 있는 쟁점이 됐다.
정부는 2010년 9월 의료안전망 강화를 ‘친 서민정책’ 7대 도전과제 중 하나로 제시하고 그 취지를 ‘재난적 의료비로 인한 서민생활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함’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정부 및 야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명목을 내세움으로써 복지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의료’라는 파이를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속셈이 아닐 수 없다.
무상의료를 정의할 때, 단순히 본인부담금 면제 또는 할인이라는 개념으로 한정 지을 수만은 없다. 좁은 개념으로 볼 때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제도의 보장성 강화로 볼 수 있지만, 넓은 개념으로 볼 때는 의료의 공공성 실현, 건강보험체계의 공공적 개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의료의 공급자인 의사와 소비자인 환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보건의료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는 준비가 국가적으로 돼있는지 의문이 든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11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는 1조 145억 달러로 OECD 회원국 중 10위를 차지했는데 1인당 GDP는 한국 2만 2,961달러, 영국 3만 9,459달러, 미국 4만 8,666달러, 독일 4만 3,205달러, 인도 1382달러 등으로 보고됐다.
야당이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현재 국가적으로 보건의료분야에 투자를 하는지 비교를 해 보아야 우리나라가 무상의료를 시행하기에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발표된 ‘2011 OECD health data’에 따르면, 보건부문 총 지출금액은 916억 200만 달러(OECD 평균 1,516억 1,000만 달러)로 OECD 평균대비 60.4%여서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1인당 총 보건의료비는 1,879달러 (OECD평균 3,361달러)로 아직도 선진국 대비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GDP 대비 국민의료비 수준은 6.9% (OECD평균 9.7%)은 매우 낮은 편인데 이는 20년 전의 OECD 수준(1990년 6.9%)에 불과하고 우리나라보다 낮은 국가는 터키(6.1%)와 멕시코(6.4%) 뿐이다.
그리고 보건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총 보건의료비 대비 공공보건의료비의 비율은 58.2% (OECD평균 72.2%)로 일본 80.8%(2008년 기준), 독일 76.9%, 영국 84.1% 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서,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민간보건의료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 보건의료비 대비 민간보건의료비 비율을 보면 41.8% (OECD평균 28.0%)로 보고돼 다른 지표가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은 것에 비하면 그 동안 정부에서 얼마나 공공 의료에 소홀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총 보건의료비의 절대금액 자체는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크지 않은데, 그 이유는 보건의료부문에 지출된 비용의 증가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비례하지 아니한 것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보건의료부문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의 증가를 억제하는 정책으로 인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무상의료 도입을 통해 의료 접근성을 높이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겠다. 그러나 의료의 공공성은 의료공급자인 의사가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운영할 때 소요되는 자금을 모두 국가에서 부담을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보장될 것이다.
의과대학 등록금이 한 학기에 1,000만원에 육박하며 개원 시 소요되는 평균 자금이 4억원 이상이며, 원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영업자와 마찬가지인 의사들에게 무상의료를 받아들이라고 하면 과연 어느 의사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정부가 그 동안 보건의료를 위한 투자에는 소홀했으면서 무슨 느닷없는 의료서비스의 보장성 강화를 주장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요양기관당연지정제에 묶여 진료비 삭감, 원외처방약제비 5배수 환수, 보건복지부 실사 등 수 많은 굴레 속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들의 현실은 무시한 채 정부가 국민들에게 왜곡된 미래를 제시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한 무상의료의 개념 내에 비급여 진료까지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심사평가원이 비급여진료를 조사할 수 있는 직권을 상정하려는 것이 바로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비급여 진료비 때문에 국민 의료비가 상승된다는 주장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보험 질환 진료 수가가 원가의 70%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급여 진료까지 간섭을 한다면 의사들에게는 국민 건강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라는 말 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사평가원은 말 그대로 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료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단체이다. 건강보험료와 비급여 질환, 그리고 무상의료 이 세 단어의 연관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것은 의사인 필자의 시선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일까?
건강보험재정의 정부 부담분 또한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시와의 계획과는 다르게 많이 부족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왜곡된 지급체계가 무상의료 도입으로 흔들릴 것이라 예상된다.
무상의료가 시행돼도 의료 기관 이용행태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도 허구에 불과하다.
이것은 실제로 만 65세 이상의 환자가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의해 혜택을 보고 있어 닥터 쇼핑을 통한 의료서비스 남용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과연 잘못된 예상으로 의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면 누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 그러므로 정치인들이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탁상공론으로 표를 의식해 정책을 입안하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막 전문의 면허를 딴 젊은 의사인 필자가 볼 때, 정치권의 공세로 인해 의료계가 쉽게 흔들리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상의료, 의료라는 중요한 분야가 정치인들의 선거를 위해 이용되는 도구가 아니라, 의사와 환자, 국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지한 고민을 통해 도출해낸 결과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늦은 밤의 한적한 한 시골마을. 모두 불을 끄고 있는 와중에 한 집에서만 유달리 전등불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아이에게서 갑자기 열이 난다. 간밤에 먹은 것이 잘못됐는지 구토를 하고 어지럽다고 칭얼대기 시작한다. 아이 몸을 만져보니 데인 듯이 뜨겁게 느껴진다. 아, 야밤에 어찌한다. 근처에는 병원도 없고 응급실에 가려면 구급차를 불러야 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병원비도 많이 나올까 걱정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아, 참 옆집에 가서 부탁을 좀 해야겠다.’옆집 대문을 두들겨 자고 있는 옆집 아저씨를 깨워 등에 업은 아이를 보여주었다.“무슨 일이유? 이 밤에..”“우리 아기가 아파서유. 큰일났네유.”아저씨가 아이의 몸에 손을 대 열을 재 본다.“아이고, 열이 펄펄 끓네 끓어. 허이, 이리 눕혀 보슈.”아이를 본 아저씨는 곧 내 아이의 머리와 손에 침을 놓자고 한다. 그리고는 사물함 서랍 속에 든 침통을 꺼내고 머리칼 사이에 침을 넣어 슥슥 비빈 후, 아이의 머리 속과 손가락에 침을 꽂아 넣고 무어라 중얼거린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아이가 금방 나을 거라 기도하며 기다린다.“머리에 침 놨응게 열은 곧 떨어질테고, 손가락 땄응게 토도 이내 곧 안 할 거유.”“야. 감사해유. 금방 나을 수 있겠지유?”이 밤에 이렇게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끙끙 앓다가 침을 맞아 울고 있는 아이의 입에 용각산 한 수저를 보리차에 녹여 먹인 후 간신히 잠을 재웠다. 큰 병이 아니기를 기도해 본다. 날이 밝으면 다시 아이를 업고 농로까지 나가 버스를 타고 읍내의 의원에 가 보아야 하지 않을지 걱정이다.위 일화는 충청남도의 한 산골마을에서 자란 필자의 이야기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잔병치레가 심해, 병을 앓을 때마다 친할머니께서는 필자를 등에 업고 옆집 아저씨에게 찾아가 침을 맞혔다. 군에서도 워낙 외진 곳에 집이 있었고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 진료를 받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컸던 터라, 동네에서 의사 역할을 대신하는 옆집 아저씨는 주민들에게는 반 의사나 마찬가지였다. 버스조차 들어오지 않고, 동네 주민 중에서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 그런 곳에서 병원을 찾아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동네 주민들은 가벼운 질환이 생길 때마다 그 아저씨를 찾아가 침을 맞곤 했고, 집집마다 상비약으로 이름 모를 정체불명의 가루약과 고약, 환약을 한 통씩 구비해 놓고는 했다. 공공의료기관, 민간의료기관이 전 국민을 제대로 치료하기에는 인력과 시설이 부족했던, 의료보험 도입 이전 시대에는 약사나 침구사와 같은 비의료인이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밖에 없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적은 돈을 가지고도 쉽게 병ㆍ의원 진료를 받고 약을 탈 수 있게 됐다. 의료 전문가인 의사에 의한 진료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게 됐고, 의료 기관 접근성 또한 무척이나 좋아졌다.그 후로 23년이 흐른 지금, 총선과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무상의료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슈화된 무상의료 논란은 한 야당이 이것을 당론으로 정하고 발표함으로써 2012년 대한민국 의료계를 뒤흔들 수 있는 쟁점이 됐다.정부는 2010년 9월 의료안전망 강화를 ‘친 서민정책’ 7대 도전과제 중 하나로 제시하고 그 취지를 ‘재난적 의료비로 인한 서민생활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함’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이는 정부 및 야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명목을 내세움으로써 복지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의료’라는 파이를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속셈이 아닐 수 없다.무상의료를 정의할 때, 단순히 본인부담금 면제 또는 할인이라는 개념으로 한정 지을 수만은 없다. 좁은 개념으로 볼 때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제도의 보장성 강화로 볼 수 있지만, 넓은 개념으로 볼 때는 의료의 공공성 실현, 건강보험체계의 공공적 개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의료의 공급자인 의사와 소비자인 환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보건의료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는 준비가 국가적으로 돼있는지 의문이 든다.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11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는 1조 145억 달러로 OECD 회원국 중 10위를 차지했는데 1인당 GDP는 한국 2만 2,961달러, 영국 3만 9,459달러, 미국 4만 8,666달러, 독일 4만 3,205달러, 인도 1382달러 등으로 보고됐다.야당이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현재 국가적으로 보건의료분야에 투자를 하는지 비교를 해 보아야 우리나라가 무상의료를 시행하기에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최근 발표된 ‘2011 OECD health data’에 따르면, 보건부문 총 지출금액은 916억 200만 달러(OECD 평균 1,516억 1,000만 달러)로 OECD 평균대비 60.4%여서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1인당 총 보건의료비는 1,879달러 (OECD평균 3,361달러)로 아직도 선진국 대비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그리고 GDP 대비 국민의료비 수준은 6.9% (OECD평균 9.7%)은 매우 낮은 편인데 이는 20년 전의 OECD 수준(1990년 6.9%)에 불과하고 우리나라보다 낮은 국가는 터키(6.1%)와 멕시코(6.4%) 뿐이다.그리고 보건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총 보건의료비 대비 공공보건의료비의 비율은 58.2% (OECD평균 72.2%)로 일본 80.8%(2008년 기준), 독일 76.9%, 영국 84.1% 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서,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민간보건의료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총 보건의료비 대비 민간보건의료비 비율을 보면 41.8% (OECD평균 28.0%)로 보고돼 다른 지표가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은 것에 비하면 그 동안 정부에서 얼마나 공공 의료에 소홀했는지 알 수 있다.이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총 보건의료비의 절대금액 자체는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크지 않은데, 그 이유는 보건의료부문에 지출된 비용의 증가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비례하지 아니한 것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즉, 보건의료부문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의 증가를 억제하는 정책으로 인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무상의료 도입을 통해 의료 접근성을 높이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겠다. 그러나 의료의 공공성은 의료공급자인 의사가 의료기관을 개설하고 운영할 때 소요되는 자금을 모두 국가에서 부담을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보장될 것이다.의과대학 등록금이 한 학기에 1,000만원에 육박하며 개원 시 소요되는 평균 자금이 4억원 이상이며, 원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영업자와 마찬가지인 의사들에게 무상의료를 받아들이라고 하면 과연 어느 의사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정부가 그 동안 보건의료를 위한 투자에는 소홀했으면서 무슨 느닷없는 의료서비스의 보장성 강화를 주장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요양기관당연지정제에 묶여 진료비 삭감, 원외처방약제비 5배수 환수, 보건복지부 실사 등 수 많은 굴레 속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들의 현실은 무시한 채 정부가 국민들에게 왜곡된 미래를 제시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또한 무상의료의 개념 내에 비급여 진료까지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심사평가원이 비급여진료를 조사할 수 있는 직권을 상정하려는 것이 바로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비급여 진료비 때문에 국민 의료비가 상승된다는 주장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보험 질환 진료 수가가 원가의 70%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급여 진료까지 간섭을 한다면 의사들에게는 국민 건강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라는 말 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심사평가원은 말 그대로 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료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단체이다. 건강보험료와 비급여 질환, 그리고 무상의료 이 세 단어의 연관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것은 의사인 필자의 시선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일까?건강보험재정의 정부 부담분 또한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시와의 계획과는 다르게 많이 부족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왜곡된 지급체계가 무상의료 도입으로 흔들릴 것이라 예상된다.무상의료가 시행돼도 의료 기관 이용행태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도 허구에 불과하다.이것은 실제로 만 65세 이상의 환자가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의해 혜택을 보고 있어 닥터 쇼핑을 통한 의료서비스 남용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과연 잘못된 예상으로 의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면 누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 그러므로 정치인들이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탁상공론으로 표를 의식해 정책을 입안하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이제 막 전문의 면허를 딴 젊은 의사인 필자가 볼 때, 정치권의 공세로 인해 의료계가 쉽게 흔들리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무상의료, 의료라는 중요한 분야가 정치인들의 선거를 위해 이용되는 도구가 아니라, 의사와 환자, 국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지한 고민을 통해 도출해낸 결과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헬스포커스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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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신의 <광고 한 편, 사진 한 장으로 읽는 대중문화 이야기> (25/마지막회) 동네한바퀴
배우 김영철 씨가 진행하는 KBS1-TV <동네 한 바퀴>를 즐겨본다.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도시기행 다큐멘터리 <동네 한 바퀴>는 골목 사이를 보물찾기하듯 누비며 소소한 도시민의 일상과 따뜻한 이웃의 모습을 발굴하는 보석 같은 프로그램이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갈등과 긴장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할 수 있는 방송이 몇이나 될까. 너털웃음이 매력적인 김 씨가 연출하는 영상의 갈피들에는 마치 오래된 활동사진처럼 우리네 유년의 기억을 하나둘 소환하는 에피소드가 많아 추억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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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1960~70년대 유년시절 대부분을 지금의 강동구 암사동에서 보냈다. 암사동은 행정구역상 성동구에 속해 있다가 한때는 강남구로 편입되었던 곳이다. 그보다 훨씬 전에는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이었다. 동쪽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요충지였지만 그 당시 암사동은 말이 서울이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어서 인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야산과 언덕, 논과 목화밭이 펼쳐지는, 도시 속의 농촌과 다름없었다.
작가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1960년대 중반만 해도 암사동에는 양짓말, 우묵배미, 점말, 복지말, 볕우물, 새능말 등 시골스러운 이름의 촌락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곳들과 가까운 천호동, 명일동, 고덕동, 상일동, 하일동(현 강일동), 길동, 둔촌동, 성내동 일대는 피난민, 이재민, 철거민들이 대거 몰려 달동네와 판자촌을 형성하면서 서울 하늘 아래 가장 가난한 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릴 적 왕십리와 화양동에 살던 작가는 1965년경 아버지를 따라 암사동 ‘개물’이란 마을로 이사했다. 이곳은 1934년 완공된 광진교와 경기도의 광주, 하남(신장)을 잇는 지역이다. ‘개물’이란 이름은 ‘개(한강)’ 모퉁이에 있는 마을(갯모루, 갯물, 갯말)이라는 지명이 변형된 것으로 짐작된다. 한자어로는 ‘개야현(開野峴)’이라 쓴 기록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 ‘개물’에 구천면사무소가 있었고 6·25 때는 인민위원회가 설치돼 많은 청년들을 의용군으로 끌고 간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
암사동에 살던 때는 지금의 미사리 근처인 한강변 ‘빈양(濱瀁)’이라는 곳으로 자주 물놀이를 갔었다. 강 위에는 황포돛배가 떠다녔으며 기생을 태우고 장구를 치며 풍류를 즐기는 한량들의 나룻배도 심심찮게 목격되던 곳이다. 팔당을 거쳐 온 맑은 물과 어우러진 풍치가 매우 수려했던 ‘빈양’은 여름이면 천렵을 나온 사람과 소풍 나온 가족들로 늘 붐볐다. ‘개물’ 동네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아이 걸음으로 반나절은 꼬박 걸어야 했다.
‘빈양’까지 가려면 고덕산 기슭을 지나야 했는데, 그 길목에는 울긋불긋한 천 쪼가리와 금줄을 두른 커다란 당산나무에 작은 돌무덤을 쌓은 성황당이 있어서 훤한 대낮에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때는 성황당 풀숲에 숨어 있던 문둥이가 튀어나와 어린 애의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있어서 혼자서는 절대 그곳을 지나가지 못했고 꼭 동무들과 어울려 일부러 큰소리를 내며 통과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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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일터로, 아이들이 학교로 빠져나간 동네의 한때는 늘 쥐죽은 듯 조용했다. 점심때쯤 지나 오전반 수업을 마친 개구쟁이들이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제야 온 동네가 시끄러워지며 사람 사는 모습으로 변했다.
책가방을 집어던지기 무섭게 골목으로 몰려나온 개구쟁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방구, 딱지치기, 구슬치기, 공기와 고무줄놀이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동네 전역이 비포장 맨땅이었으니 작대기로 금만 그으면 그곳이 곧 놀이터였다. 가끔은 논두렁이나 개울에 나가 올챙이, 방개, 미꾸라지, 버들붕어를 잡았다. 그럴 때면 고무신이 좋은 놀이도구가 됐다. 신발을 족대삼아 물을 퍼내 고기를 잡았고, 벌이나 잠자리가 꽃잎 끝에 앉으면 살금살금 다가가 고무신으로 휙 낚아챈 뒤 머리 위로 빙빙 돌린 다음 땅바닥에 패대기치기도 했다.
[▲1970년대만 해도 도로 포장 상태가 열악하여 서울 변두리 길은 비만 오면 온통 진흙탕 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동네 뒤편에는 야트막한 야산이 있었는데 주인을 알 수 없는 산소 봉분이 몇 개 있었다. 동네 악동들은 허구한 날 그 산소에 올라가 미끄럼을 타고 놀았는데, 얼마나 아이들이 산소를 못살게 굴었으면 잔디는 누렇게 죽다 못해 아예 반질반질하여 햇빛이 반사될 정도였다. 그렇게 놀다 싫증이 나면 논두렁에서 메뚜기와 개구리를 잡았고 까마중이나 싱아가 보이면 닥치는 대로 따 먹었다.
50~60년 전만 해도 갓난애 다섯 중 하나는 첫돌을 넘기기 전에 숨질 만큼 영아 사망률이 높았다. 오죽했으면 아이가 태어나도 곧바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갓난애가 한두 해 온전하게 살아남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호적에 올리는 것을 예사로 생각했다.
그때는 아이가 죽으면 수의를 쓰지 않고 입던 옷 그대로 홑이불에 둘둘 말아 동네 뒷산에 묻어주었다. 아기무덤은 대개 봉분 없이 평평하게 만들었는데, 매장이 끝나면 무덤 주위에 죽은 아기의 넋을 위로하는 의미로 사탕과 과자를 뿌려주었다. 가끔 산에 올라가 총싸움놀이를 하다가 아기무덤가에 놓인 사탕이나 과자를 발견하면 죄다 주워와 친구들과 나눠먹었다. 어린 나이라 뭘 모르고 저지른 철부지 행동이었다.
한편, 중학교 이상 다니는 형들은 동네 야산에 본부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그곳을 아지트처럼 드나들었다. 땅속 깊이 구덩이를 판 뒤 바닥에는 나뭇잎 등을 깔아놓았으며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지붕까지 덮은 본부 안에서 형들이 무슨 짓을 하며 놀았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다.
동네 한가운데를 지나는 넓은 길은 지금처럼 보도블록이나 콘크리트 포장이 깔리지 않아 비가 오면 늘 물구덩이 진흙탕으로 변했다. 특히 암사동 일대는 한강변 저지대 상습 침수지역이어서 조금만 비가와도 물바다가 되었다. 그래서 장화는 동네사람들의 필수품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 어른들은 장화를 신고 서울승합 시영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까지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근처 단골 상회에 장화를 맡긴 뒤 구두나 운동화를 갈아 신고 출근했다. 귀가할 때는 맡겨둔 장화를 찾아 신고 왔다.
일기예보가 안 맞아 오후에 갑자기 비라도 오는 날은 큰 낭패였다. 대나무를 깎아 만든 파란 비닐우산은 급한 대로 20~30원 주면 살 수 있었지만 장화는 그렇질 못했다. 그래서 저녁시간 차부에는 우산과 장화를 챙겨 나와 귀가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로 복닥거렸다. 마중 나온 가족이 없는 사람은 별수 없이 진흙을 잔뜩 묻히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말이 돌았다. 그만큼 당시의 도로사정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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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이웃과 담을 쌓고 지낸다. 하지만 예전에는 누구네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알 정도로 격 없이 소통하며 살았다. 명호 아버지는 학교 소사, 정덕이 아버지는 버스운전수, 명식이 아버지는 똥 푸는 사람, 석일이 아버지는 집짓는 목수, 순호 아버지는 깎사(이발사), 정태 엄마는 콩나물장수 등등. 그때는 누구네 집이 어떤 일을 해서 먹고 사는지 다들 꿰고 있었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친 것이 문제였다. 너도나도 거리낌 없이 드나들다 보니 가끔은 누가 왔다 간 뒤에 장롱 안에 넣어두었던 금가락지가 없어졌네, 어쨌네 하며 수군덕거렸고 결국은 부녀자들끼리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쌈질하는 볼썽사나운 꼴이 종종 벌어졌다.
그때는 다들 고만고만한 형편인지라 이웃에게 쌀 한 됫박 꾸어오고 연탄 몇 장 빌려 쓰는 것은 큰 흠이 되지 않았다. 마실 왔다가 밥 때가 돼서도 눈치 없이 돌아가지 않고 버티는 이웃을 가자미눈으로 흘겨보고,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면 남의 집 장롱 안에다 대얏물을 쏟아 부을 만큼 막가자는 식으로 다투기도 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훌훌 털고 사이좋게 지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온 동네 사람이 허물없이 지내는 중에도 유독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멀리하는 집이 있었다. 동네에서 가장 부자로 알려진 언덕 위의 파란 철대문집이 그랬다. 주인 문패아래 ‘개 조심’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고, 높은 시멘트 담장 위로 철조망과 깨진 유리조각이 촘촘히 박혀있던 철대문양옥집 주인은 평소에도 동네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철대문집 부자는 외출할 일이 있으면 꼭 집 앞까지 택시를 불러 타고 나갔으며 집에 돌아올 때도 그러했다.
휴일에 동네 남정네들이 몸보신한다며 개를 잡니 어쩌니 소란을 피울 때도 철대문집 부자는 엽총을 들고 거만한 표정으로 수렵행차에 나섰다. 그럴 때면 몸집이 날렵한 얼룩 개 잉글리시포인터가 주인 곁에 바싹 붙어 경계의 눈빛으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사냥터에서 돌아올 때면 철대문집 주인의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허리춤에는 그날 포획한 꿩, 산비둘기, 참새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긴 가죽장화에 털모자를 눌러쓰고 장총을 맨 당당한 모습의 철대문집 부자는 마치 만주벌판을 누비는 마적단 두목과도 같았던 기억이다.
[▲오래전, 흙바닥이 전부였던 동네 골목길은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으며 어른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ㅡ
한참 동네 한복판이 시끌벅적해진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나타나는 ‘구루마 사진관’ 아저씨 때문이다. 바퀴 달린 수레 위에 창경원 연못과 팔각정 그림을 그려 넣은 패널을 세우고 작은 보트까지 얹은 이동식 사진무대가 출현하면 온 동네 꼬마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몰려들었다. 사진기가 드물었던 시절이었으므로 이동사진관이 동네를 찾아오면 부모를 졸라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려 했다. 계약금을 내고 사진을 찍은 뒤 다음 방문 때 사진을 건네받으면 잔금을 지불하는 식이었는데, 어떨 때는 사진아저씨가 도통 오질 않아 사기당했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었다. 리어카에 놀이기구를 싣고 오는 아저씨도 인기 만점이었다. 동요 소리와 함께 콩닥콩닥 뛰는 목마나 빙글빙글 회전하는 허니문 카를 타려고 5원, 10원 동전을 얻어 쏜살같이 달려나가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한낮의 동네는 활기가 넘쳤다. 두부장수의 딸랑이소리, 엿장수의 가위소리, 뻥튀기 장사의 ‘뻥이요’ 소리, ‘우산 고쳐~’ ‘냄비 때워~’ ‘곤로 고쳐, 심지 갈아요~’ 처럼 온갖 장사꾼의 외침까지 더해져 동네는 온종일 조용할 틈이 없었다.
또 그 시절에는 거지도 많아서 남의 집 문 앞에 몰려와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노래를 부르며 동냥질을 했다. 상이용사들은 옷소매 밖으로 삐져나온 갈고리 손을 휘두르며 볼펜이나 고무줄 같은 것을 팔아달라고 집주인과 실랑이를 벌였다. 커다란 망태기를 둘러매고 넝마를 줍는 ‘양아치’도 자주 출몰했다. 넝마주이 중에는 어른뿐 아니라 한참 학교 다닐 나이의 아이들도 있었다. 제 몸집보다 훨씬 큰 망태기를 두른 그 애들은 세수를 잘 하지 않는지 늘 꾀죄죄한 행색이었으며 또래의 동네 아이들과 마주치면 왠지 눈을 가늘게 뜨고 무섭게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가끔씩 머리에 꽃을 꽂은 ‘광녀(狂女)’도 출현했다. 무엇엔가 단단히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던 광녀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길을 걷는 것이 일과였다. 이상하게도 광녀는 항상 입고 있는 치마나 바지를 내려 자신의 아랫도리를 벌겋게 드러낸 채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개구쟁이들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돌을 던졌고, 그러다 갑자기 광녀가 돌아서면 깜짝 놀라 악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도망쳤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커다란 개, 집밖에 나와 아무데나 똥을 싸지르는 꼬맹이들, 길가에 마구 내다버린 개숫물 따위로 골목은 항상 지저분했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 따위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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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과 인접한 천호동은 일찍이 상권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1970년대 초의 천호동은 지금은 상전벽해를 이룬 강남의 송파, 잠실, 논현동보다도 훨씬 번화한 곳이었다. 반면 암사동에는 제대로 된 병·의원이 없어서 갑자기 탈이 나면 복덕방 영업을 하면서 무면허로 침을 놔주는 딸기코 영감님에게 달려가야 했다. 변변한 미장원도 없어서 엄마들은 가끔 보따리에 미용연장을 싸들고 찾아오는 ‘야매’ 아줌마에게 뽀글뽀글 파마를 맡겼다. 동네에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솜틀집, 연탄가게, 푸줏간, 잡화상 정도가 전부였다. 반면 1시간 가까이 걸어 도착하는 천호동은 말 그대로 없는 것이 없는 별천지 세상이었다.
당시 천호동에는 서울 중심 을지로를 왕복하는 시내버스의 종점이 있었고 경기 이남지역으로 닿는 시외버스 터미널도 있었다. 각종 병·의원에 다방, 목욕탕, 예식장, 학원, 양복점, 큰 식당은 물론이고 학교도 있었다. 영화관도 3개나 있었다. 천호극장(1960년 개관), 문화극장(1961년 개관), 동서울극장(1968년 개관)이 그곳이다.
비록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3류 영화관들이지만 한때 이곳은 주민 문화생활을 선도하는 지역의 명소였다. 총천연색 영화간판, 타일 벽과 금색 줄이 박힌 도끼다시 바닥, 붉은색 레자 소파, 매점의 오징어 굽는 냄새와 화장실의 나프탈렌 냄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스크린, 장소불문! 극장 안에서 ‘짝짝’거리며 껌을 씹던 언니들과 ‘뽁뽁’거리며 담배연기를 뿜어대던 형님들까지. 그 시절 변두리 단관극장은 온갖 B급 정서로 가득한 곳이었지만 딱히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청춘들의 좋은 데이트 장소였으며 수많은 할리우드 키드의 꿈과 욕망을 채워준 멋진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동네의 흔적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옛 생각이 나 오래전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 봐도 어디가 어딘지 분간조차 힘들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과거의 공간들은 도시계획에 따라 반듯한 도로, 공원, 세련된 주택, 아파트 숲으로 탈바꿈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만큼은 대부분 옛날 장소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오래전 다녔던 학교를 출발점 삼아 시간여행을 떠난다면 추억의 퍼즐을 꿰맞출 단서를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누가 또 알랴. 행운까지 따라준다면 학교 가는 길섶에 올망졸망 피어있던 하얀 망초 꽃을 다시 만나는 기적 같은 일도 생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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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스토리이며 스토리는 골목에서 시작된다. 그 골목들이 뻗어 나와 하나로 이어지는 동네 한길은 곧 이야기의 집산지였으며 주민들의 공회당이나 다름없었다.
‘드르륵 드르륵’ 엄마의 고단한 재봉틀소리, 함진아비의 힘찬 ‘함 사려’ 외침이 그리움처럼 녹아있는 곳.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담장을 넘고, 삶에 지친 어른들의 드잡이 욕설이 사흘 멀다 들리던 곳. 망자의 꽃상여가 지나가는 곳. 골목과 골목이 혈관처럼 이어진 동네 구석 곳곳에는 그렇듯 삶과 죽음, 눈물과 웃음, 다툼과 화해, 공존의 역사가 스며있다.
각자 살아온 공간이 다르더라도 저개발의 고통 속에서 척박한 삶을 살아온 동시대 사람이라면 유사 정서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를 대할 때 쉬 공감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어도 전혀 낯설지 않은 느낌과 왠지 모를 기시감(旣視感)에 빠져들게 되는 것 말이다.
서울 암사동 어느 동네의 이야기도 독자에게 그런 공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별 볼일 없는 에피소드의 나열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한 편의 스토리였으며 역사였기에, 그래서 얼굴도 전혀 모르는 어떤 이가 이 글을 읽더라도 무릎을 탁치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자조해 본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저 부자일 뿐이지만 추억이 많은 이는 인생을 잘 산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충만하길 빌면서 시리즈의 대단원을 맺는다.
#에필로그: 별 헤던 밤 —————–
어스름 저녁,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면 온 동네 굴뚝엔 연기가 피어오르고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풍겼다. “저녁 먹어라” 부르는 소리에 마지못해 집으로 끌려들어 갔고, 마당의 펌프 물을 길어 손과 발을 대충 닦은 뒤 평상에 둘러 앉아 온 식구와 저녁을 먹었다.
상을 물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모기를 쫓는다며 방안에는 ‘에프-킬라’를 잔뜩 뿌려두었다. 그 시절 ‘에프-킬라’는 살충제병에 꽂혀있는 대롱을 입으로 불어 분사하는 식이었다. 한참 모기약을 불고나면 석유냄새 진동하는 액체가 입안 가득 흘러들어 머리가 띵~하니 어지러웠다.
방안의 모기약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가족들은 평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정리했다. 전기를 아끼려면 잠들기 직전까지 최대한 밖에서 시간을 죽이다 방에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검정고무줄로 배터리를 칭칭 동여맨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선 ‘지지직’ 소리와 함께 연속방송극이 흘러나왔고, 모기를 쫓느라 어른들이 휘휘 저어주는 부채바람에 어린 것의 눈꺼풀을 천근만근 무거워지기 일쑤였다.
에라~ 모르겠다. 평상에 벌렁 누우면 새까만 밤하늘의 별이 두 눈 가득히 들어왔다. 그러면 하늘에 흐르는 별을 헤었다. ‘저 별은 누나별, 저 별은 엄마별···’
어떨 때는 유성 하나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멀리 사라졌다. 먼데서, 끊일 듯 말듯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오면 평상의 아이는 까무룩 잠이 들었고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끝).
silverinews 박영신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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