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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차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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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생한불매향 (梅一生寒不賣香) 상촌 신흠 – 블로그 – 네이버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하지만 매화꽃이 피었다. 신흠의 멋진 시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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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4/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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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 무등일보

매화는 한 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향(香)을 팔지않고 때가 되어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매서운 추위에도 향기를 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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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dilbo.com

Date Published: 6/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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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상촌 신흠 – 다음블로그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위의 시는 조선조의 대학자 퇴계 이황 선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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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2/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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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 위클리서울

[위클리서울=고홍석 기자] 매화 꽃을 담는 것도 쉽지 않은데매향을 담으려고 작정하고 나선 통도사 탐매 여행그러나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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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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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벗 – 유한양행 모바일

야언(野言)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곡조를 간직하고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 매화는 늘 춥게 살지만 향기를 팔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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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uhan.co.kr

Date Published: 3/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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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 장인부채 | 아이디어스

작품정보 배송 / 교환 / 환불 구매후기(1) 댓글.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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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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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생한불매향 ㅡ 한향 – 황보근영의 문촌수기

한향 ㅡ 매일생한불매향. 예전 근무했던 학교의 교직원식당. 난 대체로 이 족자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점심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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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unchon.tistory.com

Date Published: 10/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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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 여수시 – 뉴스탑전남

퇴계 이황선생께서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말이 있다.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라는 말이다.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지만 결코 향기를 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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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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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의 사기그릇] 향기를 내다팔지 않는다 – 한겨레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란 말이 있다. ‘매화는 평생을 추운 곳에서 살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풀이할 수 있다. 고난 속에서 살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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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6/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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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매일 생 한불 매향

  • Author: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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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4. 2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N8jflC0o91Q

흐르던 물따랏 꿴시궁窓 끝머릿,9ㅡ정물않e

한문학의 태두 상촌 신흠(象村 申欽)

=한춘섭 광주권문화협의회 회장 겸 성남문화원장

조선 시대 한문학의 태두, 신흠(申欽, 1566~1628) 선생.

본관 평산(平山). 자 경숙(敬叔). 호 현헌(玄軒)·경당(敬堂)·백졸(百拙)·남고(南皐)·

현옹(玄翁)·상촌(象村)·방옹(放翁)이라 하였다.

시호 문정(文貞). 아버지는 개성도사 승서(承緖)이며, 어머니는 좌참찬 송기수(宋麒壽)의 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목숨을 살리고 대신 순절한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어머니 송씨(宋氏)가 가슴에 큰 별이 들어오는 꿈을 꾸고 이튿날 공을 낳았는데,

이마가 넓고 귀가 컸으며, 눈은 샛별처럼 빛나고, 오른쪽 뺨에 탄환만한 붉은 사마귀가 있었다.

1585년 진사·생원시에 합격하고 다음해에 별시문과에 급제했으나,

대사간이던 외삼촌 송응개(宋應漑)가 병조판서 이이(李珥)를 공박하려는 것을 말렸더니,

그때 정권을 쥔 동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 경원의 훈도를 거쳐 광주향교의 훈도를

지내는 등 높은 관직을 받지 못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재도 찰방(良才道察訪)으로

신립(申砬)을 따라 조령전투에 참가했고, 이어서 도체찰사 정철의 종사관이 되었다.

정철은 공에게 삼남(三南)의 기무(機務)를 모두 맡기니, 영리한 아전과 법규에 익숙한 자

수십 명을 불러서 장부와 문서를 나누어 주어 일제히 읽게 하였다. 또한 군사와 백성들에게

불편한 일을 글로 올리게 하였는데 문서가 번잡하였고 하소연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공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묻고 손으로 판결하니 명쾌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1599년에 장남 익성(翊聖)이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의 부마로 간택됨과 함께

동부승지에 오르고, 형조, 이조, 예조, 병조 참의와 대사간을 역임했다. 1601년 가선대부

예문관 제학에 이어 예조·병조참판, 홍문관 부제학, 성균관 대사성, 도승지, 예문관 제학,

병조참판, 도승지를 차례로 지냈다. 1604년 자헌대부(資憲大夫) 한성판윤이 되었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 이이첨 등 대북파는 선조의 적자(嫡子)이며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왕으로 옹립하고 반역을 도모했다는 구실로 소북파의

우두머리이자 당시의 영의정인 유영경을 사사(賜死)하는 등 소북파를 모조리 몰아냈다.

이어서 선조의 계비(繼妃)이며 영창대군의 생모인 인목대비와 그의 친정아버지

김제남(金悌男)을 몰아낼 궁리를 하던 중, 때마침 조령(鳥嶺)에서 은상인(銀商人)을

죽인 이른바 ‘박응서(朴應犀)의 옥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에 연루된 박응서, 서양갑,

심우영 등은 출세를 할 수 없는 서얼출신으로서 사회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던 중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대북파는 이들이 김제남과 반역을 도모했다고 허위 자백케 하여 김제남을

죽이고, 영창대군을 강화 교동도에 위리안치 하고, 강화부사 정항(鄭沆)을 시켜 소사(燒死)하게

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1613년 계축년에 일어났으므로

계축화옥(癸丑禍獄=계축옥사)이라 한다.

이 때 신흠은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파직되어 김포 선영 밑에서 살았는데, 한 칸 초가에서 편안히 거처하며 집 이름을

‘하루암(何陋菴)’이라 써 붙이고 유유자적한 삶의 자세로 일관하였다.

3년 후에 춘천으로 유배를 당하여 그곳에서도 신흠은 초가집을 짓고 ‘방암(放菴)’이라 하였다.

이러한 삶 속에서도 소박한 선비의 모습을 작품 속에 담아 낸 것이 있으니,

“서까래 기나 짧으나 기둥이 기우나 틀어지나 / 두어칸 모옥(茅屋)이 적음을 비웃지 말라

/ 어즈버 만산나월(萬山裸月)이 다 내 것인가 하노라.”하였다.

그로부터 5년 뒤, 인조반정(1623)으로, 광해군은 폐위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도에 위리안치 되었다. 신흠의 운명은 바뀌어 인조 조정의 첫 이조판서가 되고, 홍문관,

예문관의 으뜸 자리에 오르니, 이른바 양관대제학을 겸한 막강한 자리를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을 연달아 맡았다. 정묘호란(1627) 때에는 좌의정으로서 세자를 수행하여

전주로 피란하였으며, 9월 62세 나이로 영의정에 오른 후 질병을 무릅쓰고 오랑캐 사신을

접견하고 귀가하다가 쓰러져 수레에 실려 집에 돌아와서 별세하니 모든 사람들이 탄식하기를

“어찌할거나 어찌할거나 어진 정승이 죽었으니 나라 일도 끝장이다.”하였고, 세자가 직접

상가에 와서 조문하였다.

‘연려실기술’에 “집이 가난하여 간간이 꾸어 먹어도 끼니를 잇지 못하였으며, 거처하는

집과 자는 방이 기울고 허물어져서 집안사람들이 수리하기를 청하니, 공이 말하기를,

‘나라 일이 안정되지 않았는데 집은 수리하여 무엇하느냐.’ 하였고, 죽을 때에도 의복이

한 벌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1651년(효종2)에 인조 묘정에 배향되었고, 문집으로 ‘상촌집’이 있다.

‘영창대군 신도비문과 묘지명’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묘소는 부인 전의 이씨와 함께

광주 퇴촌면 영동리 산 12-1번지에 있으며, 경기도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묘비는 1628년(인조 6)에 건립되었는데 뒷면에 새겨진 비문은 그가 직접 지은 것이다.

1699년(숙종 25)에 건립된 신도비는 총 높이 335㎝의 대형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비례 감각과 세부적으로 생동감 있는 조각 표현 등이 뛰어난 작품이다.

신흠은 일찍이 학문에 전념하여 문명을 떨쳤고, 동인의 배척을 받았으나 선조의 신망이 두터웠다. 정주(程朱)학자로 이름이 높아, 월사 이정구(李廷龜), 계곡 장유(張維), 택당 이식(李植)과 함께 한문학의 태두로 손꼽히고, 조선 4대 문장가로도 칭송된다. 또한 임진왜란 전후로 폭증한 대명 외교문서의 작성, 시문 정리, 각종 의례 문서 작성에 참여하는 등 문운(文運)의 진흥에 크게 이바지 했다. 이정구는 공의 신도비문에서 “붓을 잡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생각하지 않고 휘둘러대는 듯하면서도 전중(典重)한 글이 노련하게 작성되면서 한 점 하자도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문장이 시(詩)보다 훌륭하다고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런데 시를 보면 더욱 맑고 깨끗하여 아취가 있었으며, 남의 흉내를 일체 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였으니, 이런 측면에서는 역시 시가 문장보다 우월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도비문)” 신흠은, 그의 청빈한 마음을 담아 이런 시조를 남기기도 했다.

산촌(山村)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무쳐셰라

/ 산골마을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구나

시비(柴扉)를 여지 마라, 날 찾즈리 뉘 이시리

/ 사립문 열지마라. 이렇게 묻혀 사는 나를 찾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밤즁만 일편명월(一片明月)이 긔 벗인가 하노라

/ 다만 방중에 나타난 한 조각 밝은 달 그것만이 내 벗인가 하노라

‘청구영언’에 실린 시조 한 편이다. 산촌에 은거하면서 청정한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은사(隱士)의 심경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다.

공은 1627년(인조5) 9월 4일, 영의정에 오른다. 하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오른

신흠의 어린 시절은 불우하였다. 일곱 살 때 어머니와 아버지를 연달아 여의고,

외가에서 외할아버지 송기수의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으며 쓸쓸하게 성장하였다.

송기수가 여러 손자들을 가르치면서 ‘춘(春)’자를 내주면서 글을 짓게 하니 공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지만물 가운데 봄이 맏이다.”고 하자 송기수가 감탄하며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공은 비록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친가는 물론 외가와 처가 모두 명문세가였고,

훗날 아들 익성이 선조 임금의 사위가 되기까지 하였으며, 마침내는 최고의 관직에 까지

올랐으니 막강한 부와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사로운 욕

심을 내지 아니하여 양식을 빌려 먹어야 했고, 그나마도 자주 끼니를 거를 만큼

곤궁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흠잡을 데 없는 그의 가문을 당대 제일로 칭송하였다.

신흠의 신도비는 좌의정인 월사 이정구가 짓고, 영의정 심열(沈悅)이 글씨를 썼으며,

이조판서 김상용(金尙容)이 전액(篆額)을 썼는데 이런 내용이 전한다

“(생략)지성으로 우애하며 친족과 화목하게 지냈다. 홀몸이 된 누님과 30년 동안 같이

살면서 어미처럼 섬겼는데, 집안에 시끄러운 말이 전혀 없었다. 스스로 왕실과 혼인을

맺은 일 때문에 늘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다. 큰 며느리를 맞을 때 집이 좁고 누추하여

측근에서 관례에 따라 수선할 것을 청했는데, 공이 말하기를 ‘집이 훌륭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예를 행하기는 충분하다’며 끝내 기둥하나도 바꾸지 않았다.

(중략) 빈곤한 생활을 태연히 견디면서 즐기고 좋아하는 욕심이 전혀 없었으며,

일찍이 집안 일에 마음을 쓴 일이 없었다. 산나물에 껍질만 벗긴 조밥을 먹어도

괴로워하지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싫어하였기에, 문을 닫고 앉아있으면

쓸쓸하기가 가난한 선비와 같았다. 환란을 만나면 지조와 행실을 더욱 굳게 지켰고,

귀하고 높은 자리에서는 가득찬 데 따르는 화를 더욱 경계하였다.”

신흠은 아들 둘과 딸 다섯을 두었다. 장남 익성은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져 부총관에 올랐고,

차남 익전(翊全)은 도승지에 이르렀다. 손자로는 대사간 면(冕), 함경도 도사 최(最),

이조판서 정(晸)이 있어, 후세가 매우 번창하였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열우신지)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상촌 신흠 선생의 야언(野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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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언(野言)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곡조를 간직하고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 매화는 늘 춥게 살지만 향기를 팔지 않네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 / 달은 천번 이지러져도 본질을 잃지 않고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 버들은 수없이 잘려도 새가지를 피워내네

삶의 여유와 고고한 삶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흠(申欽)의 시입니다. 그는 당대 명문장으로 이름을 날렸고, 외교 문서를 많이 작성해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호는 상촌(象村)으로 『야언(野言)』, 『상촌집(象村集)』 등의 문집을 남겼습니다.

이 시는 『야언』에 나오는 칠언절구 중 하나입니다. 오동나무, 매화, 달, 버드나무 등 자연물을 주제로 하여 지조를 잃지 않고 평생 동안 고고하게 살아가는 선비의 삶을 읊고 있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시간의 수레바퀴에 매몰되어 자기 자신 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인간다움의 본질까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짧은 시 한 편이 삶의 여유를 찾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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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생한불매향 ㅡ 한향

한향 ㅡ 매일생한불매향.예전 근무했던 학교의 교직원식당.난 대체로 이 족자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점심을 든다.마음에 점 찍기에 참 좋은 찬이다.

고향 마을에 매화가 피었다.매화는 늘 나의 마음에 감동을 전한다.

장인ᆞ장모님의 인품을 존경하며 드린 휘호.ㅡ동천년로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

이 시는 정철, 박인로,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의 4대 문장가로 알려진 상촌 신흠(申欽)의 시인이다.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있고,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일생 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고,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버드나무는 100번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 온다.퇴계선생님은 이 시를 좌우명으로 삼고, ‘퇴’의 삶을 살았다.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독한 소리를 즐겨하는 나는 결코 점잖은 사람이 못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손해 보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올 연말까지는 독한 소리를 쉬고 싶었다. 지난 3년 동안 전임 시장과 여수시를 향해 어지간히 독한 소리를 했으니 한두 달 정도는 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쉰다고 난리다. 온갖 제보를 다 넘겨주면서 “왜 아닌 것을 보면서도 침묵하느냐?”며 난리다. 다시 싸움터에 나가 싸움을 시작하라는 성화가 대단하다.

그런데 연말까지는 두 번째 책을 출간해야 하고 3주년 창간기념식 준비도 해야 하고, 내년 사업구상도 해야 한다. 그 때문에 요즘은 일체의 외부행사 참석을 자제하고 오직 그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퇴계 이황선생께서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말이 있다.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라는 말이다.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지만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이다.

개미만 퍼먹고 살 수 없어 올해도 어김없이 책을 쓰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의 출판이 끝날 때까지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하는 마음으로 지내겠다. 독자들께서도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기다려 주기를 당부 드린다.

김충석 시장 취임 이후 이제 다섯 달째 접어들고 있다. 취임 이후 김 시장의 많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아직 미흡한 것들이 많다.

박람회 준비도 그렇고, 공무원들의 기강도 그렇고, 도시의 밑그림도 그렇고… 이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참으로 많다.

밖에서 바라보는 공직사회에 대한 느낌은 대체로 공무원들은 복지부동하고 있는데 김 시장 혼자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공직사회가 무엇인가 일사분란하다는 느낌이 부족하다.

이것은 기강의 문제이기도 하고 리더십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엑스포라는 대사를 앞둔 여수의 공직사회에 팽팽한 긴장감이 없다.

하반기 조직개편을 앞두고 일손을 놓고 있는 공무원도 제법 눈에 띈다. 하루하루가 금쪽같은 시간인데 참으로 느긋한 공직자도 눈에 띈다.

늦었지만 이제 김 시장은 칼을 빼 들어야 한다. 일부 공무원들에게 대단히 미안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일하지 않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야 한다.

이번에 김 시장이 국장 두 사람과 과장 한 사람을 대기발령한 것에 대해서는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지언정 징계 자체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칼을 뺐다는 것에 대해서는 늦었지만 동의한다. 김 시장은 이왕지사 이번에 뽑은 그 칼을 제대로 휘둘러야 한다.

비리에 연루된 공무원, 일하지 않고 상관 눈치나 살피는 공무원, 시민들의 세금을 자신의 호주머니 돈으로 생각하는 공무원, 직위를 이용해 돈을 갈취하는 공무원, 시민들에게 고압적인 공무원, 안 되는 이유부터 들이대는 무능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단호하고도 엄한 인사조치가 있어야 한다.

김 시장의 이 칼은 지난 7월에 취임하자마자 빼어들었어야 했다. 시민들의 피같은 돈에 빨대를 꼽아 빨아먹는 비리사업을 마치 충직한 사냥개같이 추진했던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취임하자마자 단호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비리를 저지르면 어떤 대가를 받게 되는지, 엄청난 시민 혈세가 낭비되는 사업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 사업을 밀어붙인 공무원에 대해서는 그 본보기를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5개월여가 지났다.

그래서 취임 초에 바짝 긴장했던 공무원들도 “이거 별거 아니네?”하는 생각으로 또 다시 과거로 회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지금도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공무원들이 다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능력도 없으면서 과분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고위공무원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김 시장은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부패하고 무능한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인사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도시는 공무원들이 시민들의 상전노릇을 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한다 할지라도 시민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공직이라는 자리가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부패는 시작된다. 권력이 있는 곳에 부패가 있다. 부정부패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시민이다. 우리는 이러한 부패와 부조리가 현재의 틀 속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시민이 이러한 그릇된 일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번 조직개편에서는 이러한 시민들의 욕구가 인사에 제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한번 칼춤을 출 때 제대로 한번 추어야 한다. 그런 다음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으로 패자부활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공무원들이 변하지 않고 여수가 변할 턱이 없다. 무능하고 부패한 공무원이 대접받는 공직사회가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 제대로 대접받는 공직사회가 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이번 조직개편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이유다.

[김영수의 사기그릇] 향기를 내다팔지 않는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란 말이 있다. ‘매화는 평생을 추운 곳에서 살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풀이할 수 있다. 고난 속에서 살아도 그것이 옳은 길이라면 자신의 고귀한 지조를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는 의미다. 뜻깊은 선비들이 매화를 좋아한 까닭도 이 때문이었다.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생을 올곧게 사셨던 조지훈 선생은 이란 글에서 철나서 자신이 세운 뜻을 바꾸는 것은 모두 변절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요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언행을 보노라면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이 생뚱맞아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뜻이 더 귀하고 소중하다.

지금 국무총리의 거취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학자적 양식과는 동떨어진 언행에 대해 엉뚱한 변명과 강변으로 일관해온 그를 보면서 비애를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또한번 그의 양식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

그는 이미 자신의 향기를 내다팔았다. 기왕에 판 것 제값을 받고 당당하게 팔았으면 했는데 그마저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향기는커녕 악취만 남기게 되었다. 지금 그는 인생 최대의 시련기를 맞이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결단의 기회마저 놓치지 말길 바란다.

공자는 “날이 추워진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새삼 알게 된다”(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고 했다. 어렵겠지만 학자적 양심을 되찾아 작은 소나무로나마 남길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원한다. 인간만이 자기 잘못을 알고 바로잡을 수 있는 고귀한 품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수 중국 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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