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일지 독후감 | 백범일지 리뷰, 줄거리 요약/ 백범 김구와 독립운동가들/책읽어드립니다. 18084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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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광복절입니다.
광복 74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리뷰 준비하였습니다.
영상찍다가 눈물 날 것 같아서 참느라 애먹었네요.
잊지 않겠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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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전체 감상문) – 피터팬의 소풍

백 범 일 지 내용이 긴 감상문입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본문 마지막 굵은 글로 쓴 <나의 소원>을 읽어 보세요. 많지 않은 책을 읽고 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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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im826bk.tistory.com

Date Published: 5/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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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백범일지 (대상) – 네이버 블로그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나의 마지막 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이 백범일지 독후감대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셨다. 나는 군대 들어가기 2개월 전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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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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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백범김구) 독서감상문(독후감) – 인포지아

백범일지(김구)를 읽고 이번에 읽은 책은 백범 일지로써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라 평생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 노력하신 독립 운동가 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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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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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 백범일지´를 읽고 – 독후감,독서감상문,도서,책을 … – 좋은글

백범일지에 나타난 김구의 모습은 정말 파란만장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애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대사건이 김구 선생에게는 여러 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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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oungul.co.kr

Date Published: 1/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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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를 읽고 – 성지재단 :: 독후감 및 수행과제

백범일지에 드러난 실제 김구 선생님에게는 분노 말고도 많은 감정이 있었다. 사랑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고, 실수에 대한 후회도 있었으며, 바르지 못한 생각을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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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eongjifd.org

Date Published: 1/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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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백범 김구, 백범일지 독후감) – 방블리의 즐거운 세상

돌베게 출판사의 백범일지”를 읽고 감명받고 독후감식으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본론에 앞서 김구선생님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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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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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독후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백범일지 – YES24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백범일지. 김구 선생이 평생 꿈꿔온 나라 서울 서울대도 5학년 장문* | 2021.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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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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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리뷰, 줄거리 요약/ 백범 김구와 독립운동가들/책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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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백범 일지 독후감

  • Author: 유투북 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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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8. 1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ZsPDa4EWn04

백범일지(전체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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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범 일 지

내용이 긴 감상문입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본문 마지막 굵은 글로 쓴 <나의 소원>을 읽어 보세요.

많지 않은 책을 읽고 있지만 최고의 인생 책이 되고, 최고의 철학서가 되어준 귀중한 책입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많은 분들이 읽어 봤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다시한번 내용을 감상해 보시고 안 읽어 본 분들이라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청소년 추천도서로 지정되어 많은 학생들이 읽도록 되어 있으나, 성인들도 읽어보면 내가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이유와 민족정신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니까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속된 나의 국가가 왜 필요한지도 다시금 느낄수 있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깊은 생각이 담긴 <두 아들에게 전하는 편지>와 책 마지막에 나오는 <나의 소원>은 책을 읽기가 힘든 분들을 위해 따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지은이: 김 구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항상 역사 관련서적을 찾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 가지 책을 읽고 있었지만, 이렇게 중요한 책을 늦게 읽게 된 것에 대해서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역사에도 많은 위인들이 있지만 조선 말기에 태어나 한일합방을 겪고 해방되기까지 인생전체가 우리나라 고난의 역사를 함께 해온 분인 만큼 읽고 나서 많은 감명과 여러 가지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더 대단한 것은 그 많은 고난 속에서도 민족의식을 잃지 않고 오로지 우리나라의 주체성을 뚜렷하게 확립한 것은 지금 현 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본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인 김구 선생님의 생애를 보면 1876년 출생, 1949년 육군 장교 안두희의 총탄에 맞고 서거할 때까지 일제의 조선침탈과 함께 민족의 고난과 수난을 같이한 근대 역사와 함께 전 생애를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되는 항일운동으로 계속 왜의 현상금 수배범으로 지목되어 계속되는 도주와 목숨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기감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백범일지는 상권과 하권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53세에 백범의 어린 시절부터 1919년 3월1일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상해 임시정부에 이동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두 아들에게 전하는 상권의 백범일지가 쓰여 지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항일운동을 하기 위해 상해로 이동해 임시정부 경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67세의 나이에 해방되어 환국하기까지의 일기가 하권으로 쓰여져 일제강점기의 끝없는 도주와 경각에 달린 사선의 위기 속에서 나라의 위기와 함께 한 역사를 자신의 일기에 기록했습니다.

상권의 내용 살펴보기

김구의 집안은 원래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왕족이었고 수년 후 선조인 김자점의 청나라와 내통으로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위기에 처하자 황해도로 도주해서 해주에 정착하게 된었다는 내용으로 시작이 됩니다.

어릴 적 김구는 ‘창암’으로 불리웠습니다. 누가나 한번쯤 겪어봤을 개구쟁이 적 시절을 보내고 철이 들면서 자신은 관상으로는 크게 될 위인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 아버지가 마련해준 서당에서 한문과 한글을 익힙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17살 때 조선의 마지막 과거에 응시하러 해주에 가지만 순수하고 어린 김구로서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맙니다. 세상을 살만큼 살아온 촌로들까지 관직을 사기 위해 매관매직을 하는가 하면 과거를 합격하려고 시험관들에게 갖은 회유를 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다시 고향에 와서 관상이나 풍수지리, 병서를 읽으면서 훈장을 하게 됩니다.

이후 동학의 길로 접어들어 세상의 만인은 평등하다는 평등주의 심취하게 되고 포덕(기독교로 말하면 선교)활동에 매진해서 어린 나이에 접주가 됩니다. 그러던 중 전라도 고부에서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전국의 동학교도들이 연합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당시 정권은 청과 일본의 힘을 빌어 동학교도들을 비적으로 칭하고 탄압, 토벌하게 됩니다. 그 뒤 귀향길에 삼남지방(지금의 전라도와 충청도의 남부지방)에서 올라온 동학 세력과 척양척왜를 외치며 해주성을 습격하지만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그 당시 동학군의 일부세력이 배신하고 습격을 받아 대패하게 된 것입니다.

도주하던 김구는 신천에서 동학 토벌세력인 진사 안태훈의 배려로 은거하게 되었으며, 위정척사(유교를 숭상하는 개화반대파)계열인 유인석의 동문인 고능선의 문하생이 됩니다. 안태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이고, 이 시기에 안중근과 가까이 지내게 됩니다. 고능선으로부터 유교의 가치관을 전수받기도 하지만, 나중에 척양척왜가 망국의 지름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지배를 받거나 정복을 당하자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문물은 받아들여 부국강병에 힘을 실어야 된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이지요.

1895년 만주로 건너가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일본군을 공격하지만 이 역시 참패하게 됩니다. 얼마 뒤 명성왕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게 되어 큰 충격을 받고 1896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은신하다가 체포되게 됩니다. 이듬해 사형이 확정되어 형이 집행되기 전에 고종의 특사로 집행이 정지 되었으나 일본 공사의 압력으로 출옥하지는 못합니다. 1898년 자의로 탈옥하여 삼남지방을 떠돌다가 공주 마곡사로 올라와 승려의 길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일 년이 채 지나기 전에 다시 환속하게 됩니다.

1900년 강화도로 건너가 개화파 인사들과 교육과 애국계몽활동을 하게 되고 교원으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1905년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부지식인들만의 반대운동은 역부족이었고, 무지한 민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교육사업과 계몽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1909년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되자, 김구는 사건 관련자로 일본헌병대로 끌려가서 수감되지만 불기소로 풀려나게 됩니다. 이후 안창호가 주도하는 비밀애국단체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국내에서는 무력항쟁을 하고 만주에서는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무관학교를 세워 일제와 투쟁을 결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주에 독립군을 세우기 위해 부호들을 협박했다는 혐의를 받는 안명근(안중근의 사촌형제)의 사건 관련자로 체포되어 17년형을 받고 수감됩니다. 수감중 동료들과 함께 혹독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고 일부는 죽어나가고 일부는 회유하여 변절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복역중 감형되어 1914년 출옥하게 되고 소작인을 상대로 농촌계몽운동을 하다가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압록강을 건너 상해로 망명하게 됩니다.

하권 내용 살펴보기

하권은 김구 선생이 주로 상해 임시정부 활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상해로 망명한 첫해에 안창호의 권유로 경무국장이 되고 국무총리대리, 국무위원 겸 주석까지 거치게 됩니다.

임시정부 활동에 있어서 내부의 여러 갈등이 있었음 알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 내에서도 여러파가 갈라졌지만 특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배척하고 반대를 했습니다. 우리민족만의 독자적인 사상의 기초에서 독립을 해야지 제3자의 지도나 명령에 의존하여 지배되는 것은 임시정부의 헌장에도 위배가 되고 완전한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리하여 1928년 사회주의계열을 제외한 민족주의계열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동녕, 이시영, 조소앙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습니다. 1932년에는 청년들을 모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일본인 침략주의자들의 암살사건을 지휘합니다. 그 중에서 이봉창,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이 의거로 임시정부는 일본 경찰의 강력한 탄압에 상해를 탈출하게 됩니다.

중국의 여러 곳을 피신 생활을 하던 김구는 1933년 난징에서 장개석을 만나 광복군 무관양성소 설치와 항일 투쟁방식에 대해 협의를 하게 됩니다. 이후 국무위원직을 박탈당하기도 했으나 1935년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한국 국민당을 조직하고 국무위원에 재선됩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의 폭격이 심해지자 다시 임시정부를 장수성 전장으로 옮기는 한편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던 독립 민족주의자들의 조직을 한국 독립당으로 통합하고 주석으로 추대됩니다. 이 후 ‘대한민국건국강령’발표하고 한국의 건국정신은 정치 경제·교육의 평등을 보장하는 삼균주의에 있음을 말합니다. 3·1독립선언에 입각하여 수립된 정부는 민족자력으로 이민족의 전제를 물리치고 5천년 군주정치의 낡은 껍질을 벗겨 새로운 민주제도를 확립하고 사회계급을 타파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이 건국강령은 사회주의적 이념을 도입한 좌우합작 타협의 소산물이었습니다. 이 좌우합작은 전 민족적 차원에서 결성된 것이 아닌 김구와 김원봉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좌우연합전선상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이는 이들을 주체로 민족해방을 쟁취한 뒤 추진할 새로운 국가건설의 가늠자로서 임시정부의 진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광복과 독립을 위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 특이할 만한 것은 광복 직전인 1944년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학도병이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했으며, 미육군OSS와 제휴하여 국내 침투를 위한 특수부대를 편성하고 계획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치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양성했던 군사인력을 활용해 보지도 못하고 김구가 원했던 조국의 완전한 자주적인 독립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임정활동에서 문제가 되었던 사회주의와 김구가 주장하는 민족주의의 대립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38선을 갈라놓았고 미, 영, 소, 중국의 신탁통치안이 결의가 되기에 이릅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김구는 반탁통치투쟁에 들어가게 되고 외세를 제외한 완전자주독립을 주장하게 됩니다.

수십년간을 독립운동을 했지만, 한반도는 다시 38선으로 갈라지게 되고 김구는 또다시 남북을 갈라놓은 38선을 없애기 위해 1948년 평양 모란봉에서 남북협상을 하게 됩니다.이미 2월13일 ‘삼천만동포에게 읍고함’이란 글에서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용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통일을 위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가슴깊이 다가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고 맙니다.

전체 감상문

먼저 백범의 이름이 김창암에서 김창수 그리고 백범 김구가 되기까지를 설명합니다.

이름자를 고친 것은 왜놈의 국적에서 이탈하는 뜻이요. ‘백범’이라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한 범부(평범한 사람)까지 전부가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 하는 내 원을 표시하는 것이니, 우리 동포의 애국심과 지식의 정도를 그만큼이라도 높이지 아니하고는 완전한 독립국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나는 감옥에서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을 때마다 하느님께 빌었다.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여 보고 죽게 하소서 하고.(198p)

독립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자신의 이름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생기면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다는 마음도 상해 임시정부에 가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상해에 가서 가장 맡고 싶은 직책이 무엇이냐고 안창호 선생이 물으니 김구선생은 바로 ‘문지기’라고 말한 것이지요.

상권과 하권은 김구선생의 전 생애에 걸친 일기입니다. 일기만 봐도 개인적인 평화와 가족의 안락함을 가진 시기는 극히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읽었던 <간도특설대>를 보면 독립운동이나 항일 투쟁을 하다가 고통과 고난에 못이겨 변절하는 독립투사들도 많았습니다. 그 속에서도 그 많은 고통을 모두 이겨내고 평생을 항일운동에 온 인생을 받친 김구선생과 독립투사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임시정부 활동 중 많은 독립투사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휩쓸리고 김구선생과 같은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주독립을 외친 독립투사들과 사상적으로 갈라져 해방이후까지 이념대립이 계속된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해방 후에도 김구 선생이 이 일을 해결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 좌우통일을 이루지 못한 결과가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것은 민족적으로 보면 너무도 비극적인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투사들의 항일운동과 임시정부 활동은 역사에서 배운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 감상문에는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김구 선생님이 책 마지막에 남긴 ‘나의 소원’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한평생을 나라 잃은 죄로 피신과 독립운동으로 고단한 인생이었지만, 그 속에서 가슴깊이 새겨진 민족의식과 철학은 다른 어떤 수양서나 사상적 이념보다도 내 마음 속 깊이 다가 왔습니다. 많은 국가통치이념이나 국가철학이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은 민족적 국가이념이 더 나올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나의 소원’에 나오는 한 구절 한 구절 주옥같아서 모든 내용을 이 글에 인용하고 싶지만 고르고 골라 몇 구절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나의 소원의 ‘민족국가’

처음에 첫 째도 둘 째도 셋 째도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요.”라고 대답하며 하는 말입니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70평생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나라 없는 설움을 당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세상에서는 실감하지 못하지요. 김구 선생께서는 젊어서 자주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를 빼앗기는 경험을 하고 다시 자주독립을 하기 위해 평생을 살면서 한 나라의 평범한 국민이 되기를 얼마나 소망하였는가를 짧은 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민족이 다른 나라에 식민지가 되어 겪어야 했던 처참한 경험들은 독립에 대한 정신과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근래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나라를 어느 이웃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니, 나는 그 말을 차마 믿으려 아니하거니와 만일 진실로 그러한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길이 없다.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장,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 없는 것은, 마치 형제도 한 집에서 살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서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해방전 일제강점기와 해방후 이념적,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와 갈라져서 신탁통치에 관한 반대의 신념으로 우리나라의 답답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독립을 했으나 독립운동 중에 공산주의자들과 합세한 세력과 분할 통치의 아픈 역사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으니 김구 선생님이 원했던 자주적 독립과 통일은 이념적 대립 때문에 안타깝게도 현재에도 진행형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김구선생이 이렇게 폭 넓은 세계관과 국가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공자, 석가, 예수 등 많은 종교와 철학 서적을 탐독하여 우리민족이 가져야할 독특한 이념적 철학을 세울 수 있었다는데 주목을 하고 싶습니다. 김구 선생님이 만약 한가지 종교나 철학에 매진했다면 바로 공산주의의 맹신자가 되거나 한 가지 종교에 맹신하게 되어 또 다른 독재를 불러서 다른 위기를 불러왔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으로 나타난 게 지금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이기도 하고요. 그 이유는 ‘민족국가’에서 계속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나의 소원의 ‘정치 이념’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독재다. 군주나 기타 개인 독재자의 독재는 그 개인만 제거되면 그만이거니와, 다수의 개인으로 조직된 한 계급이 독재의 주체일 때에는 이것을 제지하기는 심히 어려운 것이니, 이러한 독재는 그보다도 큰 조직의 힘이거나 국제적 압력이 아니고는 깨뜨리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양반 정치도 일종의 계급 독재이거니와 이것은 수백년 계속하였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일의 나치스의 일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계급 독재 중에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다. 수백년 동안 이조 조선에 행하여 온 계급 독재는 유교, 그중에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다만 정치에 있어서만 독재가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까지도 규정하는 독재였다. 이 독재정치 밑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소멸되고 원기는 마멸된 것이다.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니 이 영향은 예술, 경제, 산업에까지 미치었다. 우리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실로 여기 있었다. 왜 그런고 하면 국민의 머리 속에 아무리 좋은 사상과 경륜이 생기더라도 그가 집권계급의 사람이 아닌 이상, 또 그것이 사문난적이라는 범주 밖에 나지 않는 이상 세상에 발표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싹이 트려다가 죽은 새 사상, 싹도 트지 못하고 밟혀버린 경륜이 얼마나 많았을까.

수많은 정치, 종교, 철학 사상이 있지만 이처럼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설명한 글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게 해주는 김구 선생의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나 역시도 학교 교육을 통해 성장했지만, 학교 교육 역시도 얼마나 편협된 것인가를 세상을 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역사나 예절교육을 통해 주입된 유교 사상이란 것이 알고 보면 조선시대 오백년 역사동안의 기득권 세력들의 자기합리화란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정말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에서는 충, 효 같은 예절 교육을 가르치면서 양반들이나 군주는 종이나 계집종으로 신분을 나누거나 자기 재산의 일부로 생각하고 본처 후처 등으로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였습니다. 또한 후처나 계집종으로부터 생겨난 자식들은 자기 자식으로도 생각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 얼마나 그 당시 유교를 바탕으로 한 교육이란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자기 개인주의에 빠진 독단이어나를 알 수 있습니다. 김구 선생님이 말하는 한 가지 철학을 기초로한 계급독재의 병폐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백범이 이러한 객관적인 가치관을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와 고민을 했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조국에 대해서 얼마나 냉정하게 평가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글입니다.

헌법도 결코 독재국의 그것과 같이 신성불가침의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절차로 개정할 수가 있는 것이니, 이러므로 민주, 즉 백성이 나라의 주권자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에서 국론을 움직이려면 그중에서 어떤 개인이나 당파를 움직여서 되지 아니하고, 그 나라 국민의 의견을 움직여서 된다.

백성들의 의견은 이해관계로 결정되거니와, 큰 의견은 그 국민성과 신앙과 철학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이 생긴다.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수정하고 향상하는 것이 문화의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방향도 문화와 교육으로 결정됨이 큰 까닭이다. 교육이란 결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어떠한 철학의 기초 위에, 어떠한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곧 국민교육이다. 그러므로 좋은 민주주의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 건전한 철학의 기초 위에 서지 아니한 지식과 기술의 교육은 그 개인과 그를 포함한 국가에 해갸 된다. 인류 전체를 보아도 그러하다.

본문 상권에서 백범은 나라를 빼앗기고 소수의 지식인들만으로 다시 독립운동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할 때부터 교육에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문맹의 국민들에게 계몽을 함으로써 위기의식을 느낀 일제 지도층은 지식인들을 사상범으로 몰아 가두고 고문을 하고 회유를 하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만큼 깨어있는 국민들이 중요함을 느끼고 교육의 중요성이 국가 존립의 큰 뿌리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행히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백범이 원하는 교육국가가 되기도 했는데요.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주권국가인 대한민국 안에서 다른나라 국기를 들고 시위를 하는 몇몇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이런 백범의 가치관을 하루 빨리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소원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적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왜의 침략으로 독립을 위해 수많은 위기와 독립투사들이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은 인류화합과 문화의 융성이란 말이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고 국가의 소중함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글입니다.

다행히도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에는 문화적, 경제적, 군사적으로도 백범이 원하는 나라에 가깝게 된 것 같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등을 하는 분야가 많아 졌고 그 중 문화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한류문화로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국위선양을 하고 있음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최소한 백범에게 부끄럽지만은 않다고 생각됩니다. 하나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북과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백범이 언급한 바와 같이 아직도 주변 4대 열강의 이해관계 속에서 우리의 자주적인 통일을 하기기 쉽지 않은 상황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우리가 만들고 이룩해 나가야 할 역사의 과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오천년 역사를 지켜오고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구자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후손들이 될 것입니다.

저는 많지 않은 독서를 해오고 있지만 이만한 철학을 담고 있고 민족적 자긍심을 주는 글은 더 찾아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백범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에게 큰 빚을 지고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요즘 전세계가 코로나 사태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위기를 잘 극복하고 안정화 단계에 있고 다른 나라에 비해 모범적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 바탕에는 5천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세의 침공이 있어왔고 그때마다 국난을 이겨낸 민족적 근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에는 가장 치욕적인 역사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어떤 때에도 빼앗기지 않았던 국권까지 빼앗기고 수많은 국가적 침탈과 수모를 겪어야 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백범같은 위인이 우리에게 지금도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국권을 빼앗기기 전의 나라의 상황을 보면 앞서 백범이 지적했듯이 앞선 조선시대 오백년동안 길고 긴 계급 독재가 존재해 왔습니다. 민비는 국내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청을 끌어들이고 다시 일본군대까지 동원해서 동학난을 제압하였습니다. 일부 역사에서는 민비같은 사람들을 위인으로 미화하기까지 하지만 국권을 상실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지금 현재의 정치인 중에도 국난이 생기면 나라 팔아먹을 정치 지도자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는 국민을 말하고 돌아서서는 자신의 사익을 취하는 정치인들 말입니다. 다행히도 현재는 조선시대와 다른 민주국가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어 국민이 올바른 지도자를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은 누가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하고 백범선생이 원하는 나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면밀히 살피는 냉정한 눈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백범일지가 갖는 위대한 자료로 남아있는 것은 작게는 개인의 일기지만, 많은 부분이 대한민국의 근대사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기 서양에서는 <안네의 일기>가 쓰여져 세계적인 고전문학으로 남았습니다. 안네 프랑크 역시도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 없이 사라졌음에도 홀로 역사에 기록된 것이지요. 안네의 일기는 단순히 문학 작품으로 남았지만, <백범 일지>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당히 우리역사에 기록되고 세계사에 기록 될 우리의 민족적 가치관을 가진 역사의 보물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이 책 <백범일지>를 읽어 보셨으리라고 생각되지만, 만약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꼭 한번 읽기를 추천 드리며, 책을 읽기가 부담되시는 분들이라면 책 머리말(인. 신 두 아들에게)과 뒷부분의 ‘나의 소원’이라도 읽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백범 선생님의 생각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28×90

<독후감> 백범일지 (대상)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나의 마지막 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이 백범일지 독후감대회가 있다는 걸 알려주셨다. 나는 군대 들어가기 2개월 전 내 인생에 가장 뜻깊을 것 같은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여 뜨거운 결의를 갖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어려운 글자와 내용에 나는 수많은 유혹과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분의 자서전을 보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며 목숨 걸고 정독하고 어려운 글자와 한자를 뜻풀이 하며 읽었다. 천리를 걷는 것처럼 고되고 힘들었지만 일제에 독립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 있게 해주신 백범김구를 생각하며 큰 뜻을 갖고 끝까지 읽었다. 책을 읽고 나는 백범김구를 존경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가야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내 삶의 방향을 잡게 해준 별보다 반짝이며 산속 계곡에 흐르는 물보다 청렴한 가장 소중한 책이다. 백범김구는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 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가난했고 집이 고적한 곳이었는데 호랑이가 사람을 문채로 집 앞을 지나갔다고 한다. 지금이 시대가 얼마나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인지 깨닫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김구는 공부하겠다는 투지는 용광로처럼 매우 뜨거웠다. 가난한 집안 때문에 무료 수강을 받기 위해 험한 고개 깊은 계곡을 넘어 다녔다. 어린나이에 험난한 계곡을 넘어 다니며 공부를 하겠다는 배움 의 열정 본받아야겠다고 느낀다. 마지막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데 부정부패를 보고 크게 실망을 한 김구는 선비의 길 접고 관상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관상 공부를 하다 김구는 자신의 안 좋은 관상을 깨닫게 되었고 책에서 나온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라는 구절을 보고 외모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모든 사람이 외모에 대한 편견 없다면 다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부터 외모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18살에 동학 농민운동에 참가하게 되는데 어린나이에 선봉장이 되어 우리나라의 적 왜놈들과 맞서 싸웠다. 나라를 위해 어린나이에 목숨 받쳐 싸웠고 다른 동학군들은 왜군의 총소리에 도망치기 바빴는데 김구는 끝까지 맞서 싸운 용맹함에 크게 감동했다. 어린 시절에 이렇게 큰일을 해내며 주막에 있는 육군 중위 왜놈을 때려잡아 왜놈의 피를 움켜 마시고 얼굴에 칠했고 그리고 국모의 원수를 갚을 목적으로 죽였다고 포고문을 벽에다 붙이고 고향에 재판을 기다리겠다고 떳떳이 떠났다. 그만큼 왜놈을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고 잔인한 정도로 분노로 가득 찼던 김구의 마음을 보았다. 무서울 정도로 애국심이 강한 모습을 보며 소름이 돋았고 애국심이 그 정도로 강한 인물은 처음 보았다. 김구는 결국에 잡혀서 잔인한 고문을 받고 옥중생활을 하면서 장티푸스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느끼다가 자살시도를 하다가 실패하게 된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 고문을 받은 내용이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 책을 보면서 고문이 가해지는 구절을 못 볼 정도로 끔찍했다. 사형하는 날이 다가왔는데 기적처럼 전화가 이어져 사형이 취소되었다. 임금이 사형을 허락해야하는데 죄명에 국무보수 라는 내용이 특이해서 우선 살려보자고 하였던 거다. 바깥에 김구의 용맹한 애국심이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김구를 탈옥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결국에 탈옥을 하게 되어 세상을 보게 된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났고 지인에게 권유받아 승려가 되었다. 승려생활 하다가 고향에 갔는데 편찮으신 아버지를 보살피다가 별세하게 된다.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허벅지살을 뜯었다. 그 극심한 고통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 이였다. 김구의 효심은 뼈 속 깊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무료로 가르쳤고 학교도 세웠고 교육구국운동과 애국계몽활동을 했고 신민회 한인애국단 임시정부 등 대한독립을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고 군에서 준 여비를 뒷돈 없이 청렴하게 정산 하는 김구의 정직함, 화산보다 뜨거운 애국심, 교육에 향한 꽃보다 아름다운 마음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독립을 위해 미국에 도움을 받아 우리나라의 작전으로 독립을 하려고 하였으나 미국의 원자폭탄 공격으로 일본이 항복을 하였다. 김구는 독립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였는데 그 성과를 보여 주기 전에 독립이 되어 아쉬워했다. 마침내 독립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 조상님들은 얼마나 기뻐하였을까? 36년간 일제의 약탈과 부당한 대우 폭력 자유 억압 등 비관한 나날을 살다 독립이 된 그 기분은 어떠하였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대한독립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슴속이 썩어 타들어가는 고통과 괴로움을 참아내고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가슴 뜨거웠던 독립운동가들 나라를 사랑한 국민과 백범김구가 만들어 낸 성과라고 생각한다.

온 국민이 원하던 대한독립의 기쁨과도 잠시 남북이 갈라서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김구는 38선이 갈라져 있어 38선 앞에 저 멀리 고향을 보며 안타까워하였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큰일을 해내고 고향조차 갈수 없는 김구의 마음은 공감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속 한이 가득 하였을 거라고 생각된다.

남북을 통일하려고 하였다가 암살을 당하게 된다. 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쳐 힘씀에도 불구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다. 한평생 나라를 위해 삶을 살아간 김구의 애국심 효심 청렴한 마음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보며 나는 진정한 애국심이 뭔지를 배웠고 우리나라를 사랑해야하는 이유를 배웠다.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독립을 할 수 있고 내가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의 백범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 백범김구란 사람이 우리나라의 위대한 위인 이여서 어렸을 때부터 추상적으로 애국심이 뛰어난 위인으로 알고 있었다.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나는 읽기전과 읽고 난 후의 삶이 뒤바뀌었다. 읽기 전에는 뉴스에서나 대중매체에 나오는 우리나라의 안 좋은 점 다른 나라의 좋은 점을 보았을 때 비교하고 불평만 하였다. 이렇게 좋은 대한민국 인지 모르고 어떻게 이 나라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고 그냥 살아갔다. 지금 나를 일본국민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있게 해준 백범일지를 읽고 난 후에 그토록 독립과 통일을 혼신을 다해 외친 마음을 알게 되었다. 고전 책 이여서 그런지 읽는대 에 어려운 글자와 한자로 일일이 찾아보고 백범일지 라는 책을 이해하기위해 수많은 정독과 재독을 하고 각종 정보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알아보았다. 백범김구에 나는 몰입이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여 가며 사람이 죽을 정도의 고문을 당했는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김구의 애국의 혼에 반해 버렸다. 진정한 이 나라를 사랑해야 할 이유와 이토록 아름답고 위대한 나라인지 깨닫게 되었고 진정한 애국심이란 이 나라를 위해 헌신 할 수 있고 미래를 꿈꾸며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 이 애국심이라고 생각한다. 애국심이 이토록 큰 뜻이 있고 없어서는 안 될 생명과 같은 소중한 거다. 조국 독립을 위해 김구는 불굴의 의지로 일제의 억압을 버틴 모습을 보고 김구의 애국심을 배워 국민의 행복 조국 번영을 위해 군인의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느낀다. 앞으로 내 삶을 조국을 위해 이웃을 위해 후손들을 위해 통일되어 모두 행복한 삶을 위해 2개월 뒤에 특전부사관 으로 입대하여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들을 보며 반드시 포기하지 않고 특전부사관 으로 임관하여 국가의 안보와 국민을 지킬 것이며 백범김구를 비롯해 독립운동가들 의 정신 을 본받아 위국헌신군인본분 할 것이다. 백범김구는 어두운 세상을 자신의 몸 사리지 않고 환하게 하여 세상을 밝게 해준

대한민국의 양초 같은 분이셨다.

●수정본은 따로 있지만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범일지(백범김구) 독서감상문(독후감)

백범일지(김구)를 읽고

이번에 읽은 책은 백범 일지로써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라 평생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 노력하신 독립 운동가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이다. 김구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국모인 명성 황후를 해치자,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인을 죽여서 감옥에 갈 정도로 애국심이 대단하신 분이다. 김구는 1876년(고종 13년) 황해도 해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서당에 다녔는데 이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험한 산길을 10리나 걸어서 글방에 다녔을 만큼 밤낮없이 열심히 공부했다. 김구는 어렸을 때 집에 있던 숟가락으로 엿을 바꿔먹고 아버지의 돈주머니를 훔쳐서 떡을 사 먹으려 했을 만큼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그는 그 일로 반성하고 아버지의 충고를 들어가면서 쓰러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하여 과거를 보러 갔지만, 시험도 치지 않고 돌아왔다. 썩어빠진 시험장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나라는 점점 어려워지고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이 것을 보고 김구는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옳은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1893년 동학에 입도하였고 팔봉 접주로 임명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선봉 자이 되었고 또 1896년에는 치하포에서 일본 육군 중위 스치다를 처단함으로써 인천감리서에 투옥되었다. 2년 후 나갈 기미가 없자 탈옥해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그 후 학교를 설립하고 국내 최대 비밀조직이었던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하지만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수감되었다. 또한 4년 뒤 출옥한 뒤에는 농민 계몽 운동을 전개했으며 1919년 3월 1일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김구는 우리나라의 독립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광복군을 훈련시키며 일본군을 무찌를 계획을 세웠다.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일으켜 내외에 큰 영향을 끼쳐 일제의 추격을 당해 피신생활을 하면서도 한인 청년들을 중국 학교에 입학시켜 군사훈련을 받게 하는 등 끊임없는 활동을 했다. 1940년에는 임시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활동을 전개하였으면 항상 항일 운동의 최선봉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1945년 드디어 선생이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조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선생의 끝이 아니라 선생은 그 후 민족통일을 위한 운동을 끝없이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4년 후 통일운동을 저해하려던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생을 마감하였다. 김구는 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위하여 평생을 바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의 총에 맞아 죽었으니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나라 사랑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마음을 다시 잡아야겠다. 우리들을 위해 조국을 위해 싸우셨던 분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우리들도 김구 선생님의 사상을 본받아 나라를 위해 더욱 노력해서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려서 강대국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비록 항상은 아니더라도 이 분들의 희생에 감사하면서 조국을 더욱더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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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백범 김구, 백범일지 독후감)

안녕하세요! 학부시절 역사를 전공한 방블리입니다!

일상생활을 포스팅하면서 역사에 관련된 인물이나 주제등도 포스팅할 예정이에요~

많이 들어와서 보고 같이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돌베게 출판사의 백범일지” 를 읽고 감명받고 독후감식으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본론에 앞서 김구선생님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겠습니다.

김구(金九, 1876년 8월 29일(1876년 음력 7월 11일) – 1949년 6월 26일)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통일운동가, 정치인이다. 의열단체 한인애국단을 이끌었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역임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위키백과 참조-

대한민국의 대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사상가로 그의 생애를 생생히 기록한 ‘백범일지’는 모두 한번씩은 들어보았지만 제대로 읽어보는 기회는 많이 없었을거라고 생각듭니다!

포스팅을 보시고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의 확고한 정신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간략하게 제가 감명받은부분을 적어보았습니다!

상권의 시작은 두 아들에게 알리는 글로부터 시작하여 유년 시절의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었다. 백범의 조상은 김자점의 방계 후손으로 김자점이 반역죄를 저질러 온 집안이 화를 입을 때 경기도 고양군으로 피신했다가 그곳 역시 서울과 가까운 지방이라 멀리 해주읍의 백운방 텃골(지금의 북한 벽성군 운산면 오담리)팔봉산 양가봉 밑으로 옮겨 숨어 살았다고 한다. 고로 소위 양반의 자손이지만 역적의 방계 후손이라 일반 양인의 신분으로 속여 숨어 산 것이다. 백범의 유년 시절 ‘상놈’이라 차별받고 힘들었을 모습이 떠올라 뭉클해 졌다.

백범은 ‘병자수호조규’ 흔히 강화도 조약의 체결시기인 1876년 7월 11일에 태어났다. 그리고 서너 살 때에 천연두를 앓았는데, 고름이 돋을 쯤에 어머니가 그 전에 민간에서 해오던 종기 치료 방식처럼 대나무 침으로 따고 고름을 짜내는 바람에 얼굴에 마마자국이 많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천연두는 마마로 불리며 아주 무서운 질병이었는데 백범이 살아남은 것은 운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천연두를 이겨낸 백범은 잘 성장하여 한글과 한문을 익혔는데 타락한 과거를 보고 실망하여 아버지가 주신 관상서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 중에서 『상서』라는 책을 보았다고 하며 마음에 들었다는 구절을 적어 놓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상이 좋은 것은 몸 좋은 것만 못하고 相好不如身好

몸이 좋은 것은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身好不如心好

이 구절은 상당히 유명한 구절이지만,『백범일지』를 처음 정독하는 나에게,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나 자신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복학후에 나의 인생이나 행동, 인간관계에 대해 몸이나 정신적으로 좌절감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의 차이 일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겉이 아무리 화려해도 마음이 외롭고 슬프다면 모두 필요없는 것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을수 있다면 상과 몸도 모두 자연히 따라옴을 배울수 있었다.

백범은 18살에 동학의 사상에 심취하여 가입, 어린 나이에 접주가 되어 팔봉접주 혹은 ‘아기접주’라 불렸다. 솔직히 백범의 동학 활동에 대해 ‘근현대사의 이해’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백범은 해주성 전투 등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는데 이러한 행동력과 실패가 후에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지도하는 주석으로서의 역량을 키워주는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부터는 계속 수업시간이나 책에서 많이 배운 내용들이었다. 임시정부의 내무총장 도산 안창호에게 문지기를 자청하였다가 경무국장이 되었던 일, 신채호와의 마찰, 등 많은 일들이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 일어났다.

내가 가장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은 한인 애국단 창단 및 활동이었다. 본문에 의하면 재무부장 및 민단장을 겸임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는 “저는 일본에서 온 노동자입니다. 상해에 가정부(일본 사람들이 임시정부를 지칭하는 말)가 있다는 말을 듣고 독립운동을 하고 싶어 며칠 전에 상해에 왔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전차검표원에게 임시정부가 있는 곳을 물어보니 보경리 4호로 찾아가 보라고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이름은 이봉창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 것이 이봉창 의사와 백범의 첫 만남이었다고 한다. 백범이 이봉창 의사에게 이렇게 까지 찾아온 포부를 물으니 이봉창 의사는 “제 나이 서른입니다.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 한들 늙은 생활이 과거 반생동안 방랑생활에서 맛본 것보다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육신의 쾌락이라면 지난 30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모하고 싶습니다. 상해에 온 목적도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 싶어서입니다.”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본디 이봉창 의사는 서울 출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고자 노력했으며 조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철저하게 피했다고 수기에 적을 정도였다. 이러한 그가 2년 만에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다며 뉘우치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그 전처럼 일본인 행세를 하며 살았다면 정말 육체적 쾌락은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그의 한 몸을 내던졌다. 저 춘추시대 공자가 한 말들 중에 “진정 天意가 부귀에 있다면 백이와 숙제의 비참한 아사는 무엇이고 도척의 부귀영화는 무엇인가. 진정으로 天意가 부귀에 있다면 마부로 태어나도 여한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天意는 부귀가 아니라 후대에 의로운 이름으로 남는 것 후세에 칭송받는 것이 진정한 天意이다. 나는 道를 행하고 德을 쌓겠다.” 라고 하였다. 그는 이미 而立의 나이에 공자의 말을 깨달았을까? 나는 이봉창 의사가 최소한 부귀는 잊었으며, 그 칭송을 얻기 보다는 스스로 무언가 핍박받는 민족을 위해 무엇 하나라도 하고자 생각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일지라도. 실제로 그의 의거로 전세계가 놀라 주목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실패로 끝났지만 그의 의거는, 그는 우리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다. 이봉창 의사 뿐만 아니라 윤봉길 의사도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는 정말 그의 웅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국가보훈처 참조

일제의 중국 침략으로 상해, 남경 등 주요 도시가 공략 당하자 피난하며 근근히 임시정부를 유지해나간다. 그러다 곡식 값이 싸 식량을 조달하기 쉬웠던 호남성 장사로 갔을 때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출신의 이운환이 저격하여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등의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저격 등의 생명위협을 받으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그것을 지켜나갔다. 대나무는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백범은 이러한 성질을 가진 흔히 대쪽같은 인물이 아닐까?

백범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미군 등과 협력하여 1945년 9월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8월 15일에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범은 무조건 기뻐하기 보다는 국내 진공작전에 쏟았던 정성이 아깝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걱정하였다. 그는 독립 후 정국에 있어서 민족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을 미래를 이미 내다보고 걱정했던 것이다. ‘만약 국내 진공작전이 시작되고 국내 진격에 성공했다면 우리의 현대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국사를 배웠던 은사님께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이것 이었다. 역사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졌다면 현재의 동북공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분단의 아픔은 없었을 텐데.

「나의 소원」중에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학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 그렇기에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 화합된 힘으로 이기심을 배척하고 국토에 춘풍이 도래하기를 빌었다.

백범은 혼란한 격동기의 시대 속에 부유하지 않은 몰락 양반층에서 ‘김창수’를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18세에 감오농민전쟁에 참가해서 해주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활동,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이미 봉양학교를 설입하여 학교장이 되었고, 신민회, 임시정부 등 많은 경험과 많은 고난과 많은 일들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존경받아 마땅한 민족주의자 백범은 사람들에게 임시정부 주석, 독립운동가의 이미지만 전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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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마지막에 개인적인 느낀점은 포스팅하기 살짝 부끄러워서 올리지못하겟네요ㅎㅎ 지금이라도 꼭 시간내어 읽어주세요… 정말 역사적 지식뿐아니라 백범김구선생님의 깊은 사상과 문체를 배울수 있답니다!

이번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번에는 더욱 알찬내용으로 역사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참고로 2019년 2월 28일에 반영된 tvN ‘어쩌다 어른 2019’에서 백범 김구의 마지막 소원 ‘세계 평화의 중심’ 설민석 강사님이 김구선생님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영상도 매우 유익하니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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