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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으로 의식의 변화가 있은 후에
어느 날 여러 스승들에 대해서 궁금해졌습니다
나의 경험은 이러했는데 다른 분들은 어땠을까?
그래서 많은 분들의 삶의 과정을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찾아 보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그 분들의 삶을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에 대해서도 한번 살펴 보았었구요
그 내용을 오늘 여러분과 같이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music:
Angels_Dream
Twinkle_in_the_Night

아이엠TV, 화이트레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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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아이엠TV_마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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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3. 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L95ThvISLq0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성지순례단과 함께 부처님께서 6년 고행을 마치고 목욕을 하다가 쓰러지셨던 네이란자라강을 건너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던 보드가야를 순례했습니다.

부처님이 걸으셨던 바로 그 길을 따라

성지순례단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드린 후 수자타아카데미 정문 앞에서 보드가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늘부터는 A,B팀 450여명이 함께 순례를 합니다.

아직 사방이 깜깜했습니다.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줄을 지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고행을 마치고 걸어가신 바로 그 길입니다.

스님은 순례객들에게 조용히, 먼지가 나지 않도록 신발을 끌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아직 마을 사람들이 자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을을 지날 때마다 수자타아카데미 부속 유치원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마을을 따라서 걷자 모래 사장처럼 보이는 네이란자라 강이 저 멀리 보였습니다.

네이란자라강은 건기라 물이 거의 말랐지만 물이 흐르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강을 건넜습니다.

“시원하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부처님께서는 야윈 몸으로 여기까지 걸어오기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차가운 물에 몸을 씻었을까요. 이 강 어딘가에서 쓰러지는 부처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강을 건너는 사이 붉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네이란자라강을 건너오자 허물어진 탑터가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바로 부처님께서 쓰러진 곳에 세워진 탑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없었다면 알아보기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논두렁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탑을 바라보며 부처님이 쓰러지셨을 당시와 수자타가 공양을 올린 정황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6년 간의 고행을 마치고 전정각산에서 야윈 몸을 이끌고 출발하셨어요. 우리도 오늘 새벽에 전정각산에서 출발을 했잖아요. 부처님은 시신을 덮었던 분소의(糞掃衣)를 하나 주워서 입으시고, 우리가 온 이 길을 따라 이 강에 이르셨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우리가 처음 강을 만난 지점에서 목욕을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왜 강의 건너편까지 오셨는지가 저는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산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우리가 서있는 쪽이 지대가 낮아서 건기에는 물이 이쪽으로 흐르고, 우기가 되면 반대편까지 다 물에 잠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기에는 백사장까지 다 강물이 차오르니까 강이 바다처럼 넓게 보입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부처님께서 쓰러지셨던 때는 건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건기라고 해도 지금보다 더 늦은 시기는 아니었을 거예요. 지금보다 늦으면 물이 말라버리니까요.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쓰러지셔서 물에 떠내려갔다고 하니까 물의 양이 지금 우리가 건넌 물 정도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많아야겠죠. 방금 우리가 건너온 물의 양 정도는 사람이 떠내려갈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보다 조금 더 물이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곳 강가에 이르러 분소의를 빨아서 강변에 널어놓고 목욕을 하셨는데, 워낙 허기가 져서 기운이 없다 보니 그만 물에 빠져 떠내려가셨습니다. 허기가 질 때 목욕을 하면 현기증이 나잖아요. 그렇게 물에 떠내려가다가 나뭇가지를 잡고 기어올랐어요.

부처님이 쓰러지신 곳에 세운 탑

그런데 인도에서는 모든 사물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경전에는 ’아사나 나무 신이 가지를 드리워서 부처님을 건져 올렸다’ 이렇게 인도식으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강가에 아사나 나무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가지를 잡고 기어 올라와서 이곳 강가에 쓰러져 계셨습니다. 그것을 기념해서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에 탑을 쌓았던 겁니다. 강물 위에는 탑을 쌓을 수 없으니까 강 언덕 위에 탑을 쌓아서 부처님이 쓰러진 곳을 기념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경전 독송을 하니 그 때의 모습이 다시 그림 그리듯이 머릿속에 펼쳐졌습니다. 독송을 마치고 한 사람이 겨우 걸을만한 좁은 길을 줄지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토회가 명상 센터를 짓기 위해 구입해 놓은 공터에 도착했습니다. 공터에 들어서니 풀이 말끔히 베어져 있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순례객들이 방문하기 전에 풀을 베어놓았다고 합니다.

명상센터 부지에서 다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조별로 모여서 어제 싸놓은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부처님께서 우루벨라 가섭 3형제를 교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보드가야를 가는 길에 수자타 공양터와 우루벨라 교화터, 수자타 탑터를 지나가는데, 그 때마다 설명을 하면 대중이 모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미리 이 곳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명상센터 부지를 나오자 대문 앞에는 스님으로부터 사탕을 받고자 많은 아이들이 긴 줄로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미리 준비한 사탕을 법사님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먼저 걸어갔습니다.

다음은 부처님이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곳에 세워진 탑을 향해 걸었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무덤 같이 생긴 작은 탑터가 보였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부처님이 수자타로부터 공양을 받으셨던 곳이라고 알려주고 먼저 탑을 향해 삼배를 했습니다. 탑터를 바라보고 반야심경을 한편 독송했습니다. 2천 6백년 전 수자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이 수행했다고 하는 곳을 지나 아주 웅장한 규모로 세워진 수자타의 공양을 기념한 탑 앞에 도착했습니다.

탑 앞에는 ‘아미타부, 아미타부’를 외치며 구걸하는 노인과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돈을 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애매한 표정으로 순례자들은 탑으로 들어섰습니다.

순례단은 탑을 한 바퀴 돌면서 석가모니불 정근을 했습니다. 탑의 규모가 워낙 커서 한 참을 돌아야 했습니다.

드디어 순례단은 보드가야로 향하는 긴 다리를 만났습니다. 여기까지 2만 보 가까이를 걸었습니다.

“다리 아파요? 이렇게 걸어야 순례죠.”(웃음)

강 건너 편에는 높이 우뚝 솟은 대탑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부처님은 대탑이 세워진 바로 그곳에서 마지막 49일 동안의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4시간을 걸어 보드가야 대탑에 도착했습니다. 보드가야 대탑은 부처님이 성도하신 자리에 아쇼카 왕이 세운 불탑으로 ‘Maha Bodhi Stupa마하보디 수투파’라고도 합니다. 불교가 쇠퇴하자 힌두절이 되었는데 미얀마 왕이 거금을 주고 관리 권한을 얻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보드가야대탑에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스님과 순례자들은 가사를 수하고 조용히 석가모니불을 외며 보리수까지 한 줄로 걸어갔습니다.

정토회 성지순례단은 보드가야 대탑 관리측에 요청하여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수 아래 자리잡았습니다. 커다란 보리수 그늘 아래 450명이 너끈히 앉을 수 있었습니다.

450명이 모두 자리를 잡자 마음을 모아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을 마친 후 스님은 부처님께서 성도하기 전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과 후, 98일 동안 일어난 일

“부처님께서는 수자타의 공양을 받으시고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시고, 네이란자라 강을 건너서 이곳 보리수 나무 아래에 오셔서, 목동으로부터 길상초 한아름을 얻어 나무 아래에 깔고, 동편을 향해 앉으셨습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이렇게 크게 다짐을 하시고, 선정에 들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점점 선정이 깊어졌습니다. 마지막 7주째에 이르러서 모든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49일 간의 정진 끝에 동쪽에서 샛별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 첫 번째 일주일 동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깨달음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두 번째 주에는 자리를 옮겨서 자신이 앉았던 보리수 나무를 가만히 응시하면서 일주일을 보내셨습니다. 세 번째 주에는 보리수 나무 주위에서 걷기 명상을 하셨습니다. 네 번째 주에는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온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방광을 했습니다.

다섯 번째 주에는 한 바라문이 지나가다가 ‘무엇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것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바라문이 듣고 싶었던 대답은 ‘부모님 양쪽으로 7대에 걸쳐서 브라만의 피를 물려 받은 사람이 가장 고귀하다’ 하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청정한 자가 가장 고귀하다’ 이렇게 대답했고, 그러자 바라문이 ‘흥!’ 이러면서 지나가 버렸습니다. (모두 웃음)

여섯 번째 주에는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이곳이 전부 물에 잠겼습니다. 이 때 무차린다 용왕이 부처님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머리가 일곱 개가 달린 큰 뱀이 부처님을 보호하는 모양이 그것을 상징합니다. 일곱 번째 주에는 이곳을 지나가던 상인이 복을 빌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은 성도하기 전 49일 동안 식사를 안 했고, 성도 후 49일 동안에도 식사를 안 한 상태였습니다. 짧게는 91일 동안, 길게는 98일 동안 식사를 안 한 겁니다. 이것은 사람이 100일 정도는 아무것도 안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요. 그래서 저도 이것을 실험해 보려고 70일 동안 단식을 해봤습니다. 결국 옆에서 사람들이 말려서 그만두긴 했는데, 100일 동안 단식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스스로 체험해보고 검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전에는 부처님이 고행할 때 숨을 쉬지 않으니까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저는 젊은 시절에 고문을 당하면서 그것을 경험해 봤어요. 얼굴에 수건을 씌워놓고 물을 부으면 숨을 못 쉬거든요. 그때 가슴이 벌럭벌럭 하다가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경전에 나오는 묘사는 그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표현하지 못할 만큼 굉장히 사실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도 후 7주가 지난 후 이 좋은 법을 세상에 나누어주려고 했는데, 이 좋은 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스승은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고행했던 다섯 친구를 찾아 사르나트로 가셨습니다. 이런 성도 전후의 정황을 경전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경전을 독송하고 함께 정진을 했습니다.

“이 곳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생각하면서 정진을 하겠습니다. 다들 피곤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꾸벅꾸벅 졸겠네요.”(모두 웃음)

35분 동안 명상을 하고 108배 절을 했습니다.

다함께 정진을 마치고 자유롭게 정진을 하거나 대탑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탑 주위에는 성도 후 부처님께서 7주간 머무셨던 장소에 표지판이 세워져있었습니다.

보드가야 대탑에는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 불교도인들이 많았고 사람들마다 기도하는 방식도 다양했습니다. 형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저마다 정성스러운 마음이 베어 나왔습니다.

보드가야대탑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길에 가야산을 들렀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산위에 서서 전정각산에서 고행을 하리라 마음먹은 곳이자 천명의 제자들에게 ‘불의 설법’을 한 곳입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걸어서인지 가야산을 오르는데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찼습니다.

산 위에 오르자 흐릿하지만 건너편 전정각산의 윤곽이 보였습니다. 대중이 산에 다 오르자 스님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인도에 처음 왔을 때는 전정각산(前正覺山)이란 이름밖에 몰랐어요. 그래서 인도 젊은이한테 전정각산으로 가는 길을 물어볼 때 ‘마운틴(mountain), 마운틴’ 그랬어요. 유영굴(留影窟)을 영어나 인도말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그렇게 말했더니 이곳 가야산으로 데려다 줬어요. 그래서 이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쫙 돌아봤지만 동굴은 없었어요.

숙소에 돌아가서 전정각산을 다녀왔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어디 다녀왔냐고 물어요. 설명을 했더니 거기는 전정각산이 아니고 브람조니(Bramyoni), 즉 가야산(伽揶山)이래요. 그래서 첫번째로 인도에 왔을 때는 전정각산을 못 봤습니다. (모두 웃음)

두 번째로 인도에 왔을 때는 여행사를 따라왔더니 아예 전정각산 쪽으로는 안 갔어요. 인도에 세 번째로 왔을 때에야 겨우 보드가야에서 걸어서 전정각산에 가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을 처음 만났고, 애들이 구걸하는 모습도 보았고, 이곳에 학교가 필요하다고 해서 수자타 아카데미를 짓게 됐습니다.

우리가 올라온 이 산이 경전에 나오는 가야산입니다. 상두산(象頭山)이라고도 해요. 저쪽이 라즈길(Rajgir, 王舍城)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라즈길에서 여기로 오셔서 가야 시내에서 탁발을 하신 뒤 이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셨어요. 저 앞에 강이 보이죠? 지금은 안개가 껴서 잘 안 보이지만 저 강 건너편이 전정각산입니다. 여기서 전정각산의 모습을 보고 ‘저기에 가서 수행하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셔서 강을 건너가셨다고 합니다. 이 산 아래쪽으로는 가야 가섭을 교화한 자리가 있습니다.”

부처님을 떠올리며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순례단은 보드가야 대탑과 가야산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B팀은 일정상 하지 못한 마을 방문을 하고 A팀은 먼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은 라면이었습니다.

매일 쌀밥에 비슷한 밑반찬을 먹다가 라면을 먹으니 무척 맛있었습니다. 저녁 예불을 드리고, 지바카 병원 2층 홀에 모여 법문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실 수 있어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는데, 그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부처님은 당시에 수행하던 사람들과 달리 새로운 길인 중도(中道)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중도가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부처님이 다른 사람을 깨우치고 대중을 교화할 때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로 다른 사람을 깨우쳤다고 하는데, 사성제가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질문이 많은 겁니다. 자기는 아는 것 같지만 막상 남이 물으면 대답을 못해요.

부처님이 발견한 세상의 모순

부처님 당시에는 고행주의자와 쾌락주의자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 종교인들은 고행주의자에 속할까요, 쾌락주의자에 속할까요?”

“고행주의자요.”

“아니에요. 쾌락주의자입니다. 여러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잖아요. 엄밀히 말해 여러분은 쾌락주의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 2층에서 아무리 좋은 법문을 해도 1층에서 누가 ‘저 강의를 들으면 주식이 대박난다’, ‘저 사람이 말하는 곳에 부동산을 사면 대박난다’ 이런 평을 듣는 강의를 한다면 다들 1층으로 갈 겁니다. (모두 웃음)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자랄 때 사회적 배경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바라문(婆羅門)이라는 주류와 출가사문(出家沙門)이라는 비주류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뿌자를 하면서 복을 빌어주는 사람을 바라문이라고 하고, 고행주의를 주장하면서 새로운 인생철학을 내세운 사람들을 출가사문이라고 해요. 경전을 읽으면 이런 말이 많이 나옵니다.

‘어떤 브라만도, 어떤 사문도 부처님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

출가사문은 주어진 신분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어 그 길을 선택해서 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출가사문에는 브라만 계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왕족도 있고, 장자 계급도 있고, 평민 계급도 있고, 심지어 천민 계급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인도 사회에서 비주류였어요. 주류인 브라만에 반대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왜 이런 비주류가 세상에 출현했을까요? 주류의 주장에 모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어린 시절에 주류에 속했습니다. 신분도 한 나라의 태자였으니 상위 계급에 속했고, 어릴 때 자신을 가르친 교사도 주류의 가치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참여했다가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경전에서는 그 모순을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 농부의 비참한 얼굴을 보고 왕궁의 행복이 농부의 비참함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농부가 소를 모는 모습를 보고 농부의 농사짓는 편리함이 소의 고통에 기반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새가 벌레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 새의 생존이 벌레의 죽음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열두살 때 농경제에 참여했다가 처음으로 이런 모순을 보았어요. 그 모순에 대해 질문했을 때 스승도 부모도 아무 대답을 못했어요. 그래서 탐구를 시작했는데, 그래도 대화가 통했던 사람이 주류 사회가 아닌 비주류에 속했던 출가사문들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주류에서 성장해서 세상에 모순을 느끼고 탐구를 하다가 비주류 사람들을 만난 거예요. 거기에서 뭔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본인도 출가사문의 길을 가려고 했기 때문에 주류 사회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부모입니다. 가장 강력한 주류 사회의 신봉자는 부모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처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최고의 마왕은 부모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부모가 최고의 은혜로운 사람이고, 성장해서는 부모가 최고의 방해자입니다. (모두 웃음)

불법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더욱 공감이 가는 이유

부처님은 이곳 전정각산에 이르러서 자기 스스로 자기의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 극단적으로까지 몰고 가봤습니다. 이건 누구를 따라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극단적으로까지 고행을 몰고 갈 수 있었던 배경은 본인이 출가하기 전에 쾌락을 쫓아봤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싯다르타 태자를 부러워했습니다. 신분이나 건강이나 모든 것이 좋아 보여서 다들 ‘저런 사람은 무슨 걱정이 있겠냐’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본인은 번뇌가 많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적기를 만난 것 같아요. 오늘날에는 여러분의 기본적인 생활이 싯다르타 태자처럼 보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져서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제는 먹는 것이나 입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어쩌면 다른 사람이 보면 ‘이 정도면 뭐가 걱정이냐’라고 할 형편입니다.

부처님은 이미 2,600여 년 전에 그런 조건에 처했고, 그런 조건에서 출발해서 인생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났거나 억압 받고 자라다가 저항심을 갖고 도(道)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현대인들, 그것도 지식인이거나 기본 생존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형편이 좀 되는 사람들이 접했을 때 공감이 많이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처지가 부처님과 유사하기 때문이고, 부처님의 문제의식이 굉장히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2,600년 전의 이야기에도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 당시 수준으로는 왕자 수준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왕자 수준으로 살고 있는데도 괴로워하고 있잖아요. (모두 웃음)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닌, 제3의 길

그 당시에 수행방법으로는 고행주의 외의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쾌락주의는 길이 아니라고 본인이 확인했기 때문에 고행주의를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6년의 극단적인 고행을 한 끝에 고행상의 모습에 이르렀던 거예요. 고행의 끝까지 가 본 겁니다. 우리처럼 하다가 힘들다고 그만두었으면 미련이 남았을 텐데,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곧 정각(正覺)을 이루겠다고 할 만큼 고행을 했습니다. 태자 시절에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하면서 감탄했듯이, 이번에는 그가 고행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감탄했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이 봤을 때는 해탈의 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6년 고행의 끝자락에 자기의 수행과 삶을 돌아봅니다. 출가하기 전을 돌아봤더니 욕망을 따라갔고, 출가한 이후에는 고행을 하면서 욕망을 억제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가자며 내 팔을 잡아당기면, 끌려가거나, 아니면 안 가겠다고 버티겠죠. 둘 다 누군가가 나를 가자고 잡아당기는 데서 생기는 문제예요. 잡아당길 때 따라가든, 안 가겠다고 저항하든, 그것은 나로부터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부터 일어난 거예요. 따라가거나 저항하거나, 둘 다 잡아당기는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명상을 할 때 다리가 아파서 ‘아야!’ 하고 다리를 펴는 것은 욕망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죽비 칠 때까지 참아야지’ 하는 것은 욕망을 억제하는 거예요. 둘 다 욕망에 대한 반응입니다. 드러난 현상은 정반대이지만 뿌리는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 남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에 대한 나의 반응인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에 내가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길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길이었어요. 이것이 중도(中道)라는 거예요. 중도는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닙니다. 쾌락과 고행의 뿌리는 모두 욕망이예요. 그런데 중도는 다만 욕구를 욕구인 줄 알아차릴 뿐, 욕구를 따라가려고 하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돼요. 우리는 통증이 생기면 참거나 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다만 통증을 통증이라고 안다’ 이렇게 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맛이 입에 딱 맞으면 먹으려고 하고, 맛이 입에 딱 안 맞으면 뱉으려고 합니다. ‘다만 신맛을 신맛으로 안다’ 이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 중도가 바로 제3의 길, 알아차림입니다. 부처님은 양쪽을 다 가본 뒤에야 이 제3의 길인 ‘알아차림’을 발견해내신 거예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윤회(輪廻)는 사람이 죽어서 또 태어나는 것을 뜻하죠. 이런 뜻을 가진 윤회는 인도의 전통 사상입니다. 부처님이 말한 윤회는 고(苦)와 락(樂)이 끊임없이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욕망이 충족되면 즐거움이 일어나고, 욕망이 충족이 안 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이 반복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락에서 벗어났다’라는 말은 윤회의 사슬을 끊었다는 뜻입니다.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버리니까 윤회의 고리가 끊어져버린 거예요. 이렇게 되면 고(苦)도 사라지지만 락(樂)도 함께 사라지는 거예요. 그것이 해탈(解脫)입니다.

그러니 고(苦)는 물론이고, 락(樂)이라는 것도 껍데기만 다를 뿐 곧 고(苦)입니다. 이것을 경전에서는 ‘잘 채색된 항아리에 똥을 담아둔 것과 같다’라는 표현으로 나옵니다. 잘 채색된 아름다운 항아리는 즐거움(樂)을 상징하고, 그 속에 똥이 들었다는 것은 괴로움(苦)을 상징합니다. 즉, 락(樂)이 곧 고(苦)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젊은 세 여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노파로 변해버렸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젊은 여인이 락(樂)을 상징한다면 노파는 고(苦)를 상징합니다. 젊은 여인이 노파로 바뀌었다는 것은 락(樂)의 본질이 고(苦)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고성제(苦聖諦)를 안다는 것은 ‘인생은 괴로운 것이다’, ‘인생은 무상하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낙이 곧 고임을 알아야 고성제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사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제 저녁에 낙이던 것이 오늘 새벽에 고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고성제를 체험했기 때문에 단박에 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법문을 듣고 고행을 해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고(苦)를 버리고 락(樂)만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지순례를 와서 죽어라고 고생하는 이유도 나중에 락(樂)을 얻고 싶어서잖아요. (모두 웃음)

이에 대해 경전에는 다양한 비유가 나옵니다. 쥐약의 비유도 나오고, 낚시밥의 비유도 나오고, 젊은 여자와 노파 얘기도 나오고, 공덕천(功德天)과 흑암천(黑暗天) 얘기도 나와요.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서 ‘어서 들어오세요’ 하고 맞아들이니까 좀 있다가 못생긴 여인이 따라 들어오려고 했어요. ‘당신은 들어오지 마세요’ 하니까 못생긴 여인이 ‘우리는 자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때 어리석은 자는 두 여인을 같이 받아들이고, 지혜로운 자는 둘 다 쫓아냅니다. 어리석은 자는 낙에 집착해서 고를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지혜로운 자는 고를 버리기 위해서 낙도 버린다는 뜻이에요. 즉 낙의 본질이 고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만 고(苦)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세속에서 말하는 괴로움입니다. 고집멸도에서 고성제는 낙이 곧 고임을 꿰뚫어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첫 설법 내용이 낙이 고임을 깨닫는 겁니다.

중도라는 것은 그냥 ‘이것과 저것의 중간’이 아닙니다. 당시 인도에는 주류와 비주류라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인생관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둘의 모순을 보고 그것을 모두 뛰어넘은 새로운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중도(中道)’, ‘제3의 길’이라고 표현하는 것뿐이지, 이것은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새 길이에요. 그래서 중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명상을 해봐도 중도를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리가 아픈 것을 참거나 풀거나, 이렇게 둘 중 하나에 치우치기 쉬워요. 욕망을 따르지도 않고, 억제하지도 않고, 편안한 가운데 다만 알아차리는 것이 중도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줄을 매고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외줄타기를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왼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오른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똑바로 가면 돼요. (모두 웃음)

그런데 줄에 올라가 보면 왼쪽으로 넘어지든, 오른쪽으로 넘어지든, 계속 넘어지게 되죠.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또 가능하다고 해서 쉽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꾸준히 정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치를 깨치는 것은 단박에 할 수 있지만, 체험하는 데는 조금 연습이 필요합니다. 알아차림을 놓친다는 사실을 계속 알아차리는 가운데 놓치면 다시 하고, 놓치면 다시 하기를 반복하며 조금식 나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도 ‘힘들다’, ‘기분 좋다’ 이렇게 반복만 하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해도 해탈하기가 어렵습니다. 힘든 가운데서 편안해지는 길을 찾아야 해요. 기분 좋은 가운데서 치우치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해요. 힘든 것을 참는 것은 성질내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남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자기는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그래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집에 가면 ‘아이고, 이제 살았다!’ 이렇게 됩니다. (모두 웃음)

성지순례를 하면서 불편한 가운데 편안해지는 길을 찾아야 시간 들이고 돈 들여서 여기까지 온 값을 하는 겁니다. 그래야 집에 갔을 때 보름이나 집을 비웠다며 남편이나 아내가 성질을 팍팍 내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여보, 미안해. 혼자서 밥 해먹는다고 고생했지? 이제 내가 잘해줄게.’

이렇게 생글생글 웃어야 성지순례를 한 보람이 있는 거예요. 알았죠?”

“네!”

“부처님은 여기 오셔서 6년 동안 고행을 하면서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해보고, 어디에 모순이 있었는지 발견하고, 제3의 길을 찾아냈습니다. 그 새로운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전정각산에서 내려간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비난하고 외면하는 것도 별로 신경 안 쓰고 목욕을 했고, 음식도 먹어서 건강을 회복하셨던 겁니다.”

1시간 30분 동안 법문을 듣고 순례자들은 ‘온갖 분별심은 다 내 업식이 짓는 상일 뿐입니다’는 명심문을 가지고 하루를 돌아보며 나누기를 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께서 10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왕사성으로 가서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고 설법을 하신 영축산, 죽림정사, 열반하신 후 500 아라한이 모여 경전을 결집한 칠엽굴, 불교가 번창하면서 세워진 나란다 대학 등이 있는 라즈길로 이동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붓다의 생애와 사상(10)-붓다의 깨달음[成道] > 부처님 생애

붓다의 깨달음[成道]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1. 깨달음의 완성

싯닷타 태자가 네란자라(Neranjara) 강가에서 목욕하고, 우루벨라(Uruvela) 근처의 세나니 마을의 촌장 세나니(Senani)의 딸 수자따(Sujata, 善生 )가 공양 올린 우유죽을 먹고 체력을 회복한 뒤, 근처에 있는 앗삿타(assattha) 나무 아래 홀로 앉아 명상에 들었습니다.

앗삿타 나무는 아사왓타(asvattha) 나무 또는 삡빨라(pippala, 畢鉢羅 ) 나무라고도 하는데, 무화과 나무의 일종입니다. 거기서 드디어 석존은 ‘깨달음’ (anttara sammasambodhi, anuttara samyaksambodhi, 無上正等覺 · 無上菩提 )을 얻어 붓다(Buddha, 佛陀 ) 즉 ‘깨달은 자'[ 覺者 ]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중국이나 한국 · 일본에서는 흔히 ‘성도( 成道 )’라고 합니다. 이 말은 ‘깨달음의 완성’이란 뜻입니다.

태자가 깨달음을 이룬 시기는 35세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뒷날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이곳을 붓다가야(Buddhagaya, 佛陀伽倻 , 현재의 보드가야)라 이름하였으며, 앗삿타 나무를 보리수( 菩提樹 )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보리수 밑에는 금강보좌( 金剛寶座 , 성도할 때 앉았다고 하는 돌로 된 좌대)가 있으며 그 옆에는 사각 형태의 대탑( 大塔 )이 우뚝 솟아 있어 불교도에게 가장 중요한 성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4각4면( 四角四面 )으로 위쪽으로 갈수록 좁혀져 있는 높이 52미터의 대탑입니다.

이 탑은 굽타 왕조의 위풍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장은 오랫동안 인도교(힌두교)의 손에 있다가 1953년 5월에야 불교도의 관리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은 탑 그 자체보다도 사실은 그 뒤에 있는 보리수에 이 성지( 聖地 )의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성도한 것은 이 보리수 아래에서였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이 보리수는 부처님이 입멸한 2백년 후에 불교에 귀의한 아쇼카왕( 阿育王 )을 비롯하여 굽타 왕조 때에도 대대로 존경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중국의 법현( 法顯 )이나 현장( 玄奘 ) 스님도 여기에 찾아와 보리수 울타리가 쳐 있다는 것과 그 주변에 정사( 精舍 )와 탑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유적은 그 뒤 정글에 파묻혀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1881년에 이르러 영국인 커닝햄이 발굴,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

붓다의 성도일( 成道日 )은 후대의 전승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12월 8일이라고 하며 남방의 불교국가에서는 베사카(Vesakha 月 ) 3) 의 만월일( 滿月日 )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을 태양력으로 고치면 5월의 만월일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한역경전에서는 2월 8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 까닭은 베사카 달이 인도력의 둘째 달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역법( 曆法 )은 자주 바뀌었으나 주( 周 )의 역법에 의하면 음력의 11월을 첫째 달로 헤아림으로 둘째 달은 음력 12월이 됩니다.

그러므로 중국·한국·일본 등지에서는 붓다의 성도일( 成道日 )을 음력 12월 8일로 보고 경축하게 되었습니다. 4)

2.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석존이 깨달음을 이루기 전후의 사정을 불전문학에서는 아주 장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불전문학에서는 석존께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악마( 惡魔 )와의 싸움을 계속했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팔리어로 씌어진 <마하삿짜까-숫따(Mahasaccaka-sutta, 薩遮迦大經 )> 5) 에서는 악마와의 싸움 부분을 생략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경전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6)

“이제 나는 단단한 음식이나 끊인 쌀죽을 먹어 힘을 얻어서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고, 멀리 떠남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유와 숙고를 멈춘 뒤, 안으로 고요하게 하여 마음을 통일하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나는 희열이 사라진 뒤, 아직 신체적으로 즐거움을 느끼지만, 깊이 새기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평정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고귀한 이들이 “평정하고 새김이 깊고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나는 행복을 버리고 고통을 버려서, 이전의 쾌락과 근심을 사라지게 하고, 괴로움도 뛰어넘고 즐거움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이 깊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전생의 삶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했습니다. …… 이것이 내가 밤의 초경( 初更 )에 도달한 첫 번째의 지혜입니다. 7)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이,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 明知 )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뭇삶(중생)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을 뛰어넘는 청정한 하늘눈으로 뭇삶들을 보았습니다. …… 이것이 내가 밤의 이경에 도달한 두 번째의 지혜입니다. …… 8)

이와 같이 마음이 통일되어 청정하고 순결하고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자, 나는 마음을 번뇌의 소멸에 대한 관찰의 지혜로 향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았습니다. ……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자,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해탈되었을 때에 나에게 ‘해탈되었다’는 앎이 생겨났습니다.

나는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할 일은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밤의 삼경에 도달한 세 번째의 지혜입니다. 9)

참으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듯이,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 10)

위 경전의 내용을 요약하면, 태자는 먼저 사선정( 四禪定 )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태자의 마음은 고요하고, 맑고, 더러움이 없고, 무엇에 의해서도 장애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태자는 과거를 상기( 想起 )하고 먼 몇 세대 이전의 일들을 상기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태자는 초경( 初更 )에 제1의 명지( 明知 )를 얻고, 이경( 二更 )에서는 제2의 명지를, 삼경( 三更 )에서는 제3의 명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명지를 한역경전에서는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서 제3의 명지, 즉 누진통은 곧 네 가지 온전한 지혜[ 四聖諦 ]를 알고, 세속의 허망함이 연기( 緣起 )의 탓임을 아는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지막 지혜가 생긴 것은 새벽이 통틀 무렵이었던 것입니다. 11)

한편 불전문학에 속하는 <방광대장엄경( 方廣大莊嚴經 )>에 묘사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라를 굴복시킨 보살은 사선정( 四禪定 )을 체험하였다고 합니다.

사선정은 보살만이 아니고 다른 많은 수행자들에게도, 또 나중에는 부처님의 제자에게도 공통되는 수행 방법입니다.

성도한 날 밤의 보살은 이것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도한 날 밤 보살의 체험은 초저녁( 初夜 ) · 한밤중( 中夜 ) · 새벽( 後夜 )의 세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 새벽, 즉 먼둥이 틀 무렵 부처로서의 자각( 自覺 )에 도달한 것입니다.

사선정에 의해서 바르게 마음을 통일하고 청정 결백하여 광명으로 빛나며 더러움을 여의고 번뇌를 떨쳐버려 자유로이 활동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부동( 不動 )의 상태에 도달한 초저녁에 보살은 천안통( 天眼通 )을 얻었습니다.

천안통에 의해 중생이 살고 죽는 운명을 관찰하여 바른 지( 智 )를 실현하며, 어둠을 없애고 광명을 일으키고 있을 때 초저녁은 지나갔습니다.

다음으로 보살은 역시 전과 같이 선정( 禪定 )에 든 맑은 심성으로 한밤중에는 숙주지( 宿住智 ) 혹은 숙명지( 宿命智 )를 얻었습니다.

‘숙주지’라고 함은, 마음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자기 자신과 다른 중생들의 무수한 과거의 생애를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다음에 보살은 역시 앞에서처럼 선정에 든 맑은 마음으로 새벽에 들어갔습니다.

그 새벽을 맞을 때 보살은 인간적인 고뇌를 말끔히 없애고, 미혹( 迷惑 )의 근원이 되는 번뇌를 죄다 쳐부수는 지견( 智見 )의 광명을 향해서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그리하여 보살은 누진지( 漏盡智 )를 체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보살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무엇으로 인해 늙음과 죽음이라는 것이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원인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단 말인가.

태어남을 원인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이 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태어나게 될까.

생존[ 有 ]으로 말미암아 태어난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생존하게 되는 것일까.

집착[ 取 ]으로 말미암아 생존이 있다.

무엇으로 인해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갈망( 渴望 · 愛 )으로 말미암아 집착이 있다.

무엇으로 인해 갈망이 생길까.

감수( 感受 · 受 )로 말미암아 갈망이 있다.

무엇으로 인해 접촉이 생기는가.

여섯 가지 감각[ 六處 ]으로 말미암아 접촉이 있다.

무엇으로 인해 여섯 가지 감각이 생기는가.

모양과 물체[ 名色 ]로 말미암아 여섯 감각이 있다.

무엇으로 인해 모양과 물체가 생기는가.

인식[ 識 ]으로 말미암아 모양과 물체가 있다.

무엇으로 인해 인식이 생기는가.

현상[ 行 ]으로 말미암아 인식이 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현상이 생기는가.

무명( 無明 )으로 말미암아 현상이 있다.”

이와 같이 해서 인간 고뇌의 원인을 연쇄적으로 차례차례 거슬러 올라가 고찰한 결과, 모든 것의 근원에는 ‘무명’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무명에서 시작되는 이 연쇄 즉, 무명( 無明 )-행( 行 )-식( 識 )-명색( 名色 )-육처( 六處 )-촉( 觸 )-수( 受 )-애( 愛 )-취( 取 )-유( 有 )-생( 生 )-노사( 老死 )를 십이인연( 十二因緣 ) 혹은 연기( 緣起 )라고 합니다.

3. 깨달음의 내용

사실 붓다께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의 수많 은 학자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초기경전에 나타난 성도( 成道 )의 과정은 일치하지 않으며 많은 이설( 異說 )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루어진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이설은 15가지 정도가 되는데, 크게 네 가지 부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2)

①사제( 四諦 )·십이연기( 十二緣起 )와 같은 이법( 理法 )의 증득에 의했다고 하는 설.

②사념처( 四念處 )·사정근( 四正勤 )·사여의족( 四如意足 )·오근( 五根 )·오력( 五力 )·칠각지( 七覺支 )·팔정도( 八正道 )(이를 모두 합해 三十七助道品 혹은 菩提分法 이라고 함)와 같은 수행도( 修行道 )의 완성에 의했다고 하는 설.

③오온( 五蘊 )·십이처( 十二處 )·사계( 四界 )와 같은 제법( 諸法 )의 여실한 관찰에 의했다고 하는 설.

④사선( 四禪 )·삼명( 三明 )의 체득에 의했다고 하는 설.

이처럼 성도의 과정이 전승하는 바에 따라 일치하지 않은 것은 붓다 자신이 깨달음의 내용을 특정한 교설로서 고정시켜 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듣는 자의 근기에 따라 설하는 방법을 달리했기 때문에 깨달음의 내용이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13)

그러나 성도의 과정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교설 가운데 만약 가장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결국 연기사상( 緣起思想 )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경우 연기( 緣起 )라고 해서 그것이 바로 십이연기( 十二緣起 )처럼 완성된 형태의 연기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십이연기와 같은 형태로 정리되기 이전의, 심원한 종교적 체험으로서의 연기( 緣起 )에 대한 자각이 바로 성도( 成道 )의 근본적 입장일 것입니다. 14)

마스다니 후미오( 增谷文雄 )도 “붓다가 깨달은 존재 법칙으로서의 법이란 결국 연기의 도리였음이 확실하다.” 15) 라고 말했습니다.

붓다의 성도는 출가의 목적인 해탈의 완성이며 현세에 있어서 ‘열반( 涅槃 , nibbana, nirvana)’을 실현한 것입니다.

성도하기 이전의 붓다를 ‘보살( 菩薩 , bodhisatta, bodhisattva, ‘깨달음을 구하는 자’의 뜻)’이라고 하고 붓다가 된 후에는 ‘세존( 世尊 , Bhagavad)’이라고 존칭( 尊稱 )되었습니다. 16)

Notes:

禪의 시작은 부처님 깨달음

육조 혜능대사 진영. 〈육조단경〉을 통해 선에 대해 알 수 있다.

禪이란 무엇인가?

선이라 하면, 흔히 조용히 앉아서 하는 참선을 떠올린다. 참선하면 좌선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선종의 바이블로 불리는 〈육조단경〉에는 ‘좌선’을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禪)”이라 한다. 이를 보면, 좌선은 앉아서 하는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류 문명사에서 선(禪)만큼 어려운 말도 없다. 선이란 무엇인가? 선은 말과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어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한다. 말의 길이 끊어진 것이라니…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하지만, 선은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금강산을 본 사람이 금강산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말을 하더라도 금강산을 직접 본 것과는 천지 차이다. 이처럼 선은 말과 문자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언어도단의 선을 글자와 말로 표현한다면 동쪽으로 가야 할 사람이 서쪽으로 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선이 언어도단의 세계라 할지라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누가 알겠는가? 선에 대하여 무슨 말이라도 해야 그것이 좋은 줄 알듯이 달 찾는 이에게는 손가락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뜻에서 선이 무엇인지 말해 보자. 먼저, 동아시아에 선을 처음 전한 분이 달마대사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달마대사 어록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근거가 약하다. 더구나 선의 종지, 돈오의 입장에도 맞지 않은 부분이 많아 선사들은 일반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종의 최고 어록은 6조 혜능대사의 〈육조단경〉이다. 선종의 교과서, 바이블이라 한다. 〈육조단경〉 전체가 선의 입장을 담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선(禪) 관련하여 두 가지 말이 나온다. ‘좌선’과 ‘선정’이다. 좌선은 앞서 말했듯이 앉아서 하는 참선이 아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것이다. 선정(禪定)이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선(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定)이다”라고 육조스님은 말한다. 즉, 선이란 마음이 내 밖의 모양에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 육조스님 말씀으로 선을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참 대단하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알쏭달쏭할 것이다. 그래서 선을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우리 초조 도의스님이 선을 말하자 ‘마구니말’이라 배척받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선은 노장사상에 영향 받은 중국 조사불교?

불교계 일부에서 “선은 불교가 중국에 와서 노장사상과 만나 탄생했다”는 〈선의 황금시대〉와 같은 주장을 검증 없이 받아들여 그런 인식이 상당하다. 심지어 불교학자와 선의 전문가라는 분들도 그런 주장을 한다. 근래에는 ‘선불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다. ‘선불교’라는 말은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처럼 새로운 흐름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모양이나 과연 그런 개념이 합당한지 의문이다.

근래 남방에서 공부하고 온 분들이 ‘초기불교’라 표현하는 것도 의문이다. ‘초기경전’이라면 몰라도 초기불교란 부처님이나 부처님 직제자들이 가르침을 펴는 시대를 일컫는 말인데,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2600년이나 지난 지금에서 ‘초기불교’라니? 초기경전이라 하는 것이 합당하다.

초기불교란 표현만큼이나 ‘선불교’도 의문이다. 선불교라는 표현은 혼란을 조장한다. 왜냐하면, 선도 불교 안의 한 사상이지, 불교를 떠나거나 선불교라는 또 다른 가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강조한다면 불교 선, 또는 불교의 선사상이 좋을듯하다.

또 남방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들이나 교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더러 “선은 부처님 가르침에 없는 중국불교다”하거나 “선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이것도 오해다. 불교를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만으로 고정시켜 보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다. 〈금강경〉에 “내가 설한 바 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다”라거나 “부처가 부처가 아니라 이름이 부처다”라고 까지 하셨다.

한 때 한국불교계에도 ‘대승비불설’이 전해져 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승불교가 부파불교시대의 편향을 극복하여 부처님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운동으로 정리한다(물론 남방 상좌부승가에서는 부파불교시대의 전통으로 대승 경전을 부정하고 북방 불교의 승가를 부정하는 분들도 있다).

선(禪)도 부처님의 깨달음에서 기원한다. 선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대 현실에 인연하여 나타난 사상이다.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선의 시원은 달마대사로 보는 것에 특별한 이견은 없다. 달마대사가 전한 선은 6조 혜능대에 와서 완전히 정착되며 창조적인 특색이 나타나는데, 〈육조단경〉에 잘 드러나 있다. 보편적으로 부처님 말씀을 모은 것에 ‘경(經)’자를 붙이는데, 유일무이하게 부처님 제자, 그것도 1천년이 넘는 후대에 중국 혜능스님이 말한 어록에 ‘경’자를 붙여 예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비록 선이 중국 당나라시대에 출현하였다 하더라도 한반도 통일신라와 고려, 그리고 일본까지 한자문화권이었고, 당대 불교사상문화가 광범하게 공유되던 시대인바 선은 동아시아 불교의 특색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육조 혜능대사를 비롯하여 마조, 임제, 대혜, 고봉, 중봉 스님이나 우리나라 도의, 보조, 태고, 나옹, 서산 대사 이래 한국불교와 동아시아 어느 선사도 부처님을 교조로 받들었지 노자와 장자를 스승으로 받든 이는 한 분도 없다.

특히, 서산대사는 “선은 부처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 말씀”이라 하셨다. 더 나아가 ‘선은 중국 조사불교’라 폄하하며 한국불교가 왜 중국불교를 따라가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논리라면 부처님은 인도 사람인데 왜 인도불교를 배우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니 불교를 모르는 주장이다.

불교는 예수교나 유교처럼 인류 보편 종교이다. 민족과 인종, 국가와 지역, 계급을 초월하여 인류 보편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 불교다.

같은 이치에서 불교의 선도 인류 보편의 가르침인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 동아시아에서 출현하였다고 지역에 한정된 가르침이 아닌 것이다.

불교란 무엇인가?

선이란 부처님 가르침에서 인연한 것이니 불교를 모르면 선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선을 바르게 알려면 불교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는 누구인가? 깨달은 분이다.

인도 말로 ‘붓다(buddha)’라 하는데, ‘깨어난 자’라는 뜻이다. 누구든지 깨치면 부처라 하니 붓다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보통 명사다.

그럼 부처는 무엇을 깨쳤는가? 이것이 문제다. 부처가 깨어난 자, 깨달은 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무엇을 깨달았는가? 깨달음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해선 이견이 적지 않다. 그러니 부처님의 깨달음을 알려면 말씀인 경전을 봐야 한다. 그런데, 불교의 경전은 8만4천이라 할 정도로 방대하고, 또한 너무나 다양한 말씀을 하여 공부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더구나 경전을 전하는 언어도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한문, 한글 등등 너무나 다양하고, 또한 남방과 북방으로 전하는 경전의 가지 수와 내용도 상당히 다른 것도 있다.

성철스님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 같다. 1967년 해인총림 동안거에서 행한 〈백일법문〉은 “불교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시작한다. 이를 근거로 불교란 무엇인가를 정리해 보자.

〈초전법륜경〉의 중도대선언

부처님이 깨치고 처음 설한 것을 초전법륜이라 하여 불교사에선 가장 중요한 설법으로 평가한다. 깨치고 첫 설법이니만큼 방대한 불교 사상에서도 그렇다. 남방불교 일부에서는 초전법륜경을 외우게 한다고 들었다.

이 초전법륜을 기록한 경전은 남전 팔리어 〈마하박가(율장)〉와 〈쌍윳다니까야〉, 한역(漢譯) 〈율장〉과 〈아함경〉에도 보인다. 내용은 비슷하나 〈마하박가〉의 기록이 가장 자세하다. 이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은 깨친 뒤고 오비구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다. 이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높은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중도란 무엇인가? 여덟 가지 바른 길(八正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생각, 바른 삼매이다. 그리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으니, 괴로움과 괴로움이 일어남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이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은 없다’ ”

부처님의 이 말씀을 성철스님은 ‘중도대선언’이라 한다. 부처님은 이 중도를 깨침으로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영원히 해탈하여 ‘불사(不死)의 문’을 열었다고 선언한다. 부처님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속박된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영원히 해탈하는 중도를 발견하고 우리 인류에게 처음으로 알려주신 것이다.

부처님은 이 〈초전법륜경〉에서 생사의 괴로움에서 영원한 해탈을 선언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중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중도는 곧 팔정도이고 사성제인데, 누구든지 이 중도를 깨치면 생사의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다고 하셨다.

초전법륜 당시 부처님께 직접 이 중도 법문을 들은 교진여(남방에서는 꼰단냐)는 그 자리에서 돈오(頓悟)하여 부처님 이후 첫 깨달음을 성취하고 인가를 받는다. 나머지 네 비구도 차례로 깨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니 이것이 불교의 출발이다.

깨달음의 순간, 붓다가 바라본 새벽별 어떻게 생겼나

백성호의 현문우답 – 붓다를 만나다 (16)

악마는 보리수 아래에 앉은 싯다르타를 공격했다. 폭풍과 불, 바위와 칼을 마구 휘둘렀다.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악마가 일으킨 폭풍은 싯다르타의 옷깃조차 흔들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다. 쏟아지는 폭우에도 싯다르타의 몸은 젖지 않았다. 날아오던 바위와 불덩어리는 꽃이 되었고, 진흙더미는 향(香)으로 변했다.

왜 그랬을까. 싯다르타의 수행이 담벼락을 허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늘 ‘내가 세운 담벼락’이 있다. 담벼락 이쪽은 좋은 것, 저쪽은 나쁜 것이다. 이쪽은 아군이고 저쪽은 적군, 이쪽은 선(善)이고 저쪽은 악(惡)이다. 한 마디로 내게 좋으면 선(善)이고, 내게 나쁘면 악(惡)이다. 그런 담벼락을 누구나 품고 있다. 그 담벼락이 하나둘 모여서 에고가 된다.

싯다르타, 깨달음의 붓다가 되다

악마의 폭우에도 몸이 젖지 않아

선과 악 나누는 ‘담벼락’ 허물어

보리수에서 바라본 붓다의 새벽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되다

바람이 불었다. 나는 싯다르타가 앉았던 보리수 앞으로 갔다. 하늘을 덮는 잎들이 파랬다. 그 앞에 앉았다. 눈을 감았다. ‘싯다르타의 고민은 생로병사였다. 거기서 피어나는 삶의 고통이었다. 그건 정말 피할 수 없는 고통일까.’ 이 물음을 풀고자 싯다르타는 출가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고통은 언제 어디서나 피어난다. 그 출처가 사람이든, 일이든, 세상이든 말이다. 내가 세운 잣대에서 어긋나는 순간, 한 치의 오차 없이 고통이 올라온다. 싯다르타는 그걸 깊이 이해했다. ‘내 안의 고집’ 때문에 남북이 나뉘고, ‘내 안의 담벼락’ 때문에 동서가 갈림을 말이다.

악마가 쏟아낸 불과 창과 폭우도 그랬다. 그건 담벼락 저쪽에서 날아오는 것들이었다. 담벼락이 있어야 불도 있고, 창도 있고, 폭우도 있고, 그리고 악마도 존재한다. 그럼 담벼락을 허물면 어찌 될까. 모두 소멸하고 만다. 가령 동독과 서독을 나누는 담벼락이 있다. 담벼락이 사라지면 어찌 될까. 서독도 없어지고, 동독도 없어진다. 대신 그 자리에는 통일 독일만 남는다. 더는 동서로 갈리지 않는 독일이다.

선도 그렇고, 악도 그렇다. 둘은 담벼락 때문에 존재한다. 담벼락을 허물면 둘 다 사라진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그걸 ‘선악과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한다.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로 말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불어넣었다는 ‘신의 속성’‘하느님 나라의 속성’으로 돌아감을 뜻한다. 그래서 예수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왜 그랬을까. 나와 이웃, 나와 원수를 가르는 ‘내 안의 담벼락’을 허물라는 말이다. 그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자기 십자가’다.

보드가야의 사원에 밤이 깊었다. 나는 일단 숙소로 갔다. 숙소 바깥은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시골 분위기였다. 싯다르타는 새벽별을 보면서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궁금했다.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싯다르타가 앉았던 보리수 아래로 가면 그 새벽별을 볼 수 있을까. 2600년 전에 싯다르타가 봤던 그 새벽별을 지금도 볼 수 있을까. 그 별은 어느 쪽으로 뜰까. 얼마만 한 밝기로, 얼마만 한 크기로 반짝이고 있을까.

새벽 5시였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10분 정도 차를 타고 다시 금강좌의 보리수로 갔다. 이곳은 ‘불교 8대 성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으로 꼽힌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직 새벽인데도 정문 앞에는 순례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 스리랑카에서 온 순례객, 태국에서 온 수행자들,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서양인 부디스트들도 꽤 보였다.

그들의 눈에서는 간절함이 읽혔다. 우리가 품는 고민과 싯다르타가 품었던 고민은 다르지 않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여정에서 피어나는 고통. 거기로부터 자유롭고, 그래서 지혜롭게 사는 길. 다들 그걸 찾는다. 그래서 이곳으로 왔다. 붓다가 몸소 걸어갔던 그 길에서 희미한 발자국이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정문이 열렸다. 순례객들은 자신의 신을 벗어서 신발 주머니에 넣었다. 성지 안에서는 맨발로 다녀야 했다. 남방 불교의 전통이다. 보드가야 성지에는 높다란 대탑이 세워져 있었다. 대탑 주위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을 하고 있었다. 티베트의 승려들은 온몸을 땅바닥에 엎드리며 끊임없이 절을 하는 오체투지를 했다.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스리랑카의 순례객들은 줄지어 앉아 경전을 외고 있었다. 대탑 둘레의 크고 작은 탑들 사이에서 숱한 사람이 명상에 잠겨 있었다. 이처럼 보리수와 대탑 일대는 하나의 거대한 수행처였다.

대탑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나는 보리수 아래로 갔다. 아직 어둑어둑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이리저리 찬찬히 살폈다. 별이 하나 보였다. 하늘을 향해 펼쳐진 보리수의 가지 옆으로 뜬 별. 새벽하늘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별이었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저 별이구나. 2600년 전에 싯다르타는 이 보리수 아래서, 이런 각도로 하늘을 바라보며, 저런 밝기로 반짝이는 새벽별을 봤구나. 바로 그 순간에 싯다르타는 자신을 온전히 허물고 우주와 하나가 되었구나.’

나는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아직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숨은그림찾기처럼 자세히 보면 모래알처럼 반짝이는 새벽별이 사진에서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7년 전에 인도를 찾았을 때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보드가야의 보리수 위로 반짝이는 새벽별을 찾아볼 생각조차 못 했다.

혹자는 “싯다르타가 새벽별 때문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붓다 이후에 깨달음을 얻은 선지식들도 ‘각자의 순간’이 있었다. 누구는 방 문고리를 잡을 때 깨닫고, 누구는 그릇 깨지는 소리를 듣고 깨닫고, 누구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깨달았다. 그렇다고 문고리 때문에, 그릇 때문에, 화장실 때문에 깨달음이 온 건 아니다. 깨닫는 순간에 그들이 그걸 하고 있었을 뿐이다. 싯다르타도 마찬가지다. 새벽별 때문에 깨달은 게 아니라, 깨닫는 순간에 새벽별을 보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싯다르타가 봤던 진정한 새벽별은 무엇일까. 깨달음의 문을 연 그만의 새벽별은 대체 무엇일까. 깊은 명상 속에서, 치열한 수행 속에서 싯다르타가 겨냥했던 표적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게 담벼락이라 본다. 나와 사람과 세상과 우주에 대한 착각의 담벼락이다. 싯다르타는 그걸 허물었다.

담벼락이 무너진 세상은 달리 보인다. 그는 우리가 ‘있는 것(色)’이라 철석같이 믿는 걸 ‘없는 것(空)’이라 했다. 또 우리가 ‘없는 것(空)’이라 여기는 걸 ‘있는 것(色)’이라 했다. 그렇게 뚫린 눈으로 본 세상을 한 마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함축했다. 거기에는 ‘붓다(Buddha)의 눈’이 담겨 있다.

참 오묘하다. ‘붓다의 눈’에 다가갈수록 우리의 어깨가 가벼워진다. 죽을 때까지 내 가슴에 돌덩어리로 박혀서 절대 빠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과거의 상처’가 녹아내린다. 왜 그럴까. 그게 돌덩어리(色)인 줄 알았는데, 붓다의 눈을 통해서 보니 돌 모양의 비눗방울(空)에 불과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리고 용기가 생긴다. 『숫타니파타』의 유명한 구절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된다.

사자는 왜 소리에 놀라지 않을까. 야수의 왕이라서 그럴까. 덩치가 커서 그럴까. 아니면 턱과 이빨이 강해서 그럴까. 아니다. 사자가 소리에 놀라지 않는 까닭은 단 하나다. 세상의 모든 소리(色)가 실은 비어있음(空)을 알기 때문이다(色卽是空).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빈 채로 작용함(空卽是色)’을 알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29세 때 카필라 왕국을 떠났다. 머리를 깎고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6년 고행을 했다. 그 끝자락에서 싯다르타는 내 안의 담벼락을 온전히 허물고 우주와 하나가 됐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 붓다가 됐다. 싯다르타의 나이 35세였다.

보드가야(인도)=글·사진 백성호 기자 [email protected]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토론

26일 밤 서울 조계사에선 흥미로운 야단법석이 펼쳐졌다. `깨달음은 무엇인가’를 놓고,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본부장인 도법 스님이 묻고, 원로 선승인 고우 스님이 답변한 형식이었다. 도법 스님은 조계종 개혁의 주역이자, 생명평화운동가다. 고우 스님은 선승들 가운데서도 가장 솔직하고 열린 원로다. 도법 스님처럼 자신의 의문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놓을 용기가 없어도, 고우 스님처럼 이런 야단법석에 기꺼이 내려와 함께 응대해줄 배려가 없어도 이뤄질 수 없는 자리였다. 다음은 즉문즉답 내용이다.

: 일상적으로 보면 높은자리에 모시고 격식도 갖춰 큰 스님 모셨어야 하는데…. 격식 모두 내려 놓고 맨 바닥에 앉아 스님께 여쭙기도 하고 말씀 듣기 위해 모셨다. 너무 감사하다. (큰 박수).

우리 사부대중이 모이긴 했지만, 재가 대중이 많이 모였으니, 높은 자리에 거룩히 모시고 그 분 앞에서 엄숙히 절도하고 엄숙히 법문도 듣고 하는 그런 부처님이나 큰스님이 좋은가? 맨 바닥에 앉아 시시껄렁 이야기도 하고 말도 듣고 하는게 좋은가? 후자가 좋다. 이런 자리 좋은 자리다. 사실 경전에 보면 부처님이 깨달은 이후 첫 법문을 하시고 만난 친구들이 누구인가하면 밤새 술마시고 춤추고 논 청년들이다. 그 청년들이 밤새 술마시고 놀아도 허무하고 의미부여가 안되고 가슴이 쓸쓸하고 버려놔 버린 것처럼 아프기도 해 방황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숲에 앉아 있는 부처님을 만나 대화를 한다. 그 대화 속에 안목이 열리고 출가를 하게 된다. 참선을 한 분이 아니다. 대화 속에 그렇게 된 것이다.

도법스님

육조스님도 나뭇꾼이었다. 나무를 해 시장에서 팔다 금강경을 듣고 출가를 했다. 우리는 해 보면 안 깨달아진다. 깨닫고 싶은데, 저는 깨달음 병 때문에 피눈물나는 젊은 세월을 보냈다. 안 돼서 좌절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고 선방을 떠나기도 했다. 장돌배기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하는 불교, 일상속에서 그런 자리가 만들어 졌으면 해서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 큰 스님 이야기를 들으며 야사비구처럼 육조대사처럼 가슴이 열리기도하고 해 삶의 활로가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몇일을 고생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운 자기고백을 갖고 질문을 만들었다. 스님께서는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답해 주시면 될 것 같다.

깨달음만이 인생의 해답이라는 믿음으로 22살부터 40살까지 참선에 골몰했지만 깨달음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심각한 회의와 좌절감을 안고 선원을 떠났다. 그 후로도 깨달음 병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했고 극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도 완쾌되지 않은 상태다. 돌이켜보면 깨달음과 수행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믿음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여겨진다. 스님께서는 깨달음 때문에 좌절감을 겪은 적이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듣고 싶다.

고우 스님

: 도법 스님의 이런 질문은 하기 어렵다. 대중을 위해 자기의 단점을 부끄럼없이 드러내고 이야기 한 것으로 이해하겠다. 요 대답을 간단히 20대인가 30대에 신문에서 본 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겠다. 장개석이 모택동을 피해 대만으로 갔다. 대만 청년들이 많이 피폐해 있었다. 유학을 가서 대만을 바꿔보겠다고 공부하고 돌아온 후 1년동안 노력해봤지만 안됐다. 2년차에는 어떻게 살지 고민을 했다. 3년차에는 안되니 그냥 같이 살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위직에 있다보니 부정부패가 더 쉬웠다. 우리나라가 부정부패가 많을 때 이런 내용이 기사로 나왔다. 처음 출가를 해서는 용맹정진하다 어느 순간 고민이 들게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상향된 2년차는 이런저런 방법을 사용해 본다. 하향된 2년차는 그냥 풀어진다. 질문을 보고 상향된 2년차에 머물러 있는 분이라고 생각이 된다. 저도 상향된 2년차였다. 강원에서 공부하고 도통하겠다고 선방에서 오랫동안 있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사용해 봤다. 내 위에 성철, 석호 스님 등이 나를 보면 꾸중할지도 모른다. 하향 2년차가 안 된 것이 다행이라고 본다. 성철 스님 가르침이 저와 조금 비슷하다. 참선을 하더라도 노젓기를 알고 하자. 성철 스님이 총림에 있으면 100일동안 법문을 했다. 그게 백일법문이다. 선방에서 안내문 없이 한길로 달려 3년차로 간 분들 상당히 많다. 나는 백일법문이라는 안내문을 가지고 가고 있다. 안내문을 알고 공부를 해야 한다. 소개하는 것이 중도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는데 뭘 깨닫는가? 내 존재원리, 금강경에서는 폐난습하라고 했다. 유정무정, 비비상처 등 9가지가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다. 이 모든 존재는 중도로 존재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걸 깨달은 것이다. 이 존재원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그 시각을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 금오 스님은 제 은사 스님이고 성철 스님 서옹 스님은 직접 모셨다. 20대에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도 들었다. 모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도인 깨달으신 분 이러면 저 나름대로의 상에 불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드린다.

: 스님하고 나도 동감이다. 큰스님이라고 해서 찾아가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도인상과 전혀 안 맞았다. 화도내고 측근과 싸움도 하는데 선방까지 들리더라. 일상생활에 실망하는 부분도 많았다. 중도에 대한 이해를 하고 부분적으로 실망했던 부분이 없어졌다. 그 분들도 인간이니 화도 내고 하는구나, 단 그 분들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렇구나 했다. 중도를 알지 못하고 체험을 못 했기에 알지 못하는 거지만, 스님들 가운데도 중도를 이해를 한 분이 몇이나 될까 하면 보이는 대로 보이는 것이 전부다. 우리가 보는 시각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단서는 달겠다.

:붓다는 ‘귀 있는 자는 와서 들으라, 눈 있는 자는 와서 보라, 나의 가르침은 누구나 현실에서 바로 이해할 수 있고 이루어지고 증명된다’고 했다. 말씀의 뜻으로 보면 즉각 깨달음, 즉각 해탈, 즉각 열반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을 위시로 대부분의 스님들이 깨달음은 난행고행을 거쳐 먼 훗날에 이루어진다고 했다. 부처님의 견해와 스님들의 견해가 상충하는 점이 있는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① 깨달음은 먼 훗날 이루어지는 것인가 지금 바로 즉각 이루어지는 것인가.② 깨달음은 지금 바로 적용되는 것인가 먼 훗날 적용되는 것인가.③ 만일 지금이 아니고 먼 훗날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깨달음이 현재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붓다의 가르침이 ‘바로 이해, 실현, 증명 된다’고 하는 관점에서 ‘나와 그대들은 신과 인간들의 굴레로부터 해탈했다. 그럼으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전법을 떠나라’고 하신 전법선언을 음미해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① 전법선언에 나타나 있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신과 인간의 굴레는 무엇인가② 불교 사유방식으로 볼 때 깨달음 없는 해탈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렇다면 속박의 굴레로부터 해탈하게 하는 전제조건인 깨달음은 무엇인가.③ 깨달음 지상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나와 그대는 깨달았다’라고 할 법한데 왜 (해탈했다)고 표현했을까. ‘깨달음을 위해 전법하라’고 해야 마땅할 터인데 왜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전법하라고 했을까.④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전해야 할 법은 틀림없이 붓다가 깨달은 중도, 즉 팔정도라고 사료되는데 맞는가.⑤ 만일 제 생각이 일리가 있다면 해탈 열반의 길인 팔정도는 참선수행을 통해 먼 훗날 깨달아야 할 특별한 내용이 아니고 지금 바로 실천해야 할 내용이라고 여겨지는데 어떤가.⑥ 안락과 행복의 길인 붓다의 깨달음이 중도 즉 팔정도라면 굳이 참선수행하여 특별하고 신비한 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대화와 토론을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확신하고 실천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데 그렇게 봐야 맞지 않겠는가.⑦ 같은 맥락의 문제의식으로 볼 때 붓다는 최상의 선정삼매와 최고의 고행삼매를 버리고 중도, 즉 팔정도의 사유를 통해 시간적으로는 지금, 공간적으로는 여기, 존재로는 자기 자신 말고 그 밖의 그 어떤 것도 더 거룩하고 존엄하고 신비하고 완전하고 가치 있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도 없다는 엄연한 실상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즉 구원의 주체가 저기에 존재하는 신이 아니고 바로 인간과 신, 구원의 장인 저기에 있는 하늘이 아니고 바로 여기 현장임을 통찰하게 되었다면 그자체가 대단한 깨달음 아닌가.⑧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깨달음이란 깨달음 지상주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신비체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특별한 것이 아니고 5비구, 야사비구, 육조, 원효, 대주 화상 등의 경우처럼 대화를 통해 실체론의 세계관에서 연기론의 세계관, 소유의 가치관에서 존재의 가치관으로 또는 인식의 전환됨을 뜻한다고 해야 맞지 않겠는가.⑨ 상식적으로 볼 때 당연히 깨달음을 위해 난행고행정진을 해야만 된다고 강조하는 기존의 한국불교의 깨달음과 수행관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므로 지금부터라도 정말 허심탄회하게 깨달음과 수행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재정리해야 마땅하다고 여겨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⑩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깨달음에 대해 지금 여기 누구나 이해되고 실현되고 증명되도록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현실에서 바로 이루어지는가. 현실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현실의 일상생활에 실제 적용할 수 있는가, 적용했을 때 어떤 좋은 점이 있는가,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수긍하고 받아 드릴 수 있도록 설명해주시길 청한다. 인과의 법칙으로 볼 때 평화의 씨앗을 심어야 평화의 꽃이 피어나듯이 깨달음의 씨앗을 심어야 깨달음의 꽃이 피어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지금 여기의 일로 설명되고 적용돼야 할 것이다. 자업자득의 논리로 보면 도둑질하면 도둑놈 인생 되듯이 부처로 행동하면 부처 인생이 됨으로 부처란 따로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고 할 것다. “소 타고 소 찾는다” “업은 애기 삼년 찾는다”고 하는데 잃어버린 소와 애기는 참선, 염불, 기도 등 모르는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대화를 통해야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 실제는 이것보다 다양하게 이야기 했다. 팔정도는 다양하게 이야기 한 것 중에 하나다. 포괄적으로 이야기 하면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는데, 그 깨달음은 무엇인가. 존재원리다. 우리는 내가 있다는 전제 하에 삶을 살고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이 잘못 됐다. 성철 스님 책 가운데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책이 있다. 자기를 바로 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자기를 잘못 보니까 잘못 된 생각으로 우리가 한 평생 살고 있다. 이걸 동의해야 한다.

어떻게해야 부처님 말씀처럼 행복하게 살수 있나. 중도를 알아야 한다. 부처님도 중도를 깨달았다. 이 내용을 가지고 오늘 이야기 해도 그 중요성은 다른 이야기 할 필요 없이 잠깐 하겠다. 잠깐이라는 시간동안 설명 드린다고 깨닫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해라도, 아니 소개라도 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보살님은 여자이고 나는 남자다.

남과 여 차별로 본다. 분명히 남과 여는 다르다. 차별 없이 공통된 점이 있다. 현상 말고 본질이 있다. 그걸 소박하고 쉽게 이야기 하면, 시골에 가면 새끼도 있고 짚신도 있고 가마니도 있다. 그 모양 쓰임새 크기 다 다르다. 차별이 있다. 하지만 그 재료는 하나다. 그걸 발견하는게 불교다. 불교에서는 그걸 자성이라고 한다. 그걸 알아채면 견성했다고 한다. 우리는 내가 있다고 하고 살아 간다. 이는 현상만 보는 것이다. 부처님은 본질을 보라 했다.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연기 등을 알아야 한다.

이걸 이해하면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내가 굉장히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본 사람은 나를 포함해 자기를 학대하며 살아간다. 교만, 열등의식 등 내가 존재한다고 하고 살아가는 것이 학대다. 나만 학대하면 되는데 옆 사람도 학대한다. 중도 무아 공 연기 이걸 이해하게 되면 본질을 보게 된다. 본질을 보고나면 이걸 부처라고 한다. 자기가 부처임을 알게 된다. 스스로를 굉장히 존귀하게 대하게 된다. 자존 회복 의식이라고 나는 말한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대하게 된다. 이해했다고 전제하고 중도를 설명한다. 남녀라고 나뉘어 있지만 본질은 그게 없다. 본질은 하나다. 내가 존재한다고 항상 살며 둘로 나눠 살았다. 하나라고 하고 살면 중도다.

거기에는 대립과 차별이 없다. 인종 갈등 등 갈등 대립 등이 없어진다. 불교는 다른 종교를 이런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종교전쟁이 없다. 인도에서 힌두에게 밀린다. 회교에도 밀린다. 그래도 불교가 멸망했는가? 아니다. 우리 존재가 아무리 다른 종교가 잘못된 방식으로 해도 그 존재를 중도로 보기에 대립이 없다.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되면 대립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그들을 일깨워주며 평화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부처님이 열심히 걸어 어느 마을에 갔는데 큰 나무 아래 사람들이 모여 땀을 식히고 있었다. 부처님도 그 그늘로 가려했으나 거기 사람들이 다 힌두교였다. 그래서 그냥 돌아 나가려하니 어느 어르신이 말을 걸었다. 부처님이 그 사람들을 감복시켰다. 부처님은 그들을 부처로 봤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는 감정이 먼저 나와 폭발을 시킨다. 중도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부처다. 개개인도 그렇지만 지구상 곳곳이 갈등과 대립이 있다. 우리 불교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종교인데, 세상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안타깝다.

: 연기사상의 탄생부터. 첫 단락은 십이연기에 대한 이야기다.

: 내 나름대로 방금 질문한 것을 이해한 만큼 대답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연기다. 지금 듣고 보고 한평생 이 몸뚱이를 내가 있다고 하고 산 사람들에게 공이다 무아다 하면 이해가 안된다. 중도를 이해시키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공이기에 연기이고 무아다. 요즘 내가 자주 이야기 하는 것이 있다. 내가 우연히 어떤 여성으로부터 책을 한권 받았다. 달마 안에 6가지 물리 이야기라는 책이다. 얇은 책이다. 재미있어서 금방 읽었다. 한줄 건졌다. 달마씨는 물리 노벨상을 탄 미국 물리학자다. 자기를 표현하는데 우리는 자기가 있다고 표현하지만 그분은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자기를 보고 있었다. 스스로를 수억 만 개의 원자 덩어리라고 했다. 우리는 단일 독립된 나로 생각한다. 이걸 읽고 나는 이 분이 이렇게 생각했다면 이 수억 만 개의 원자 덩어리중 어떤 원자를 나라고 할 것인가도 생각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의 생활을 보니 다른 사람은 정장을 입는 자리에도 항상 캐주얼하게 입고 가는 등 자유분방하고 유쾌하게 살았다. 어떻게 보면 해탈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중도로서 존재한다고 했다. 이것과 유사하다. 연기에 대한 이해를 하시는데, 이 이야기로 곰곰이 생각해 보라. 1세기경에 나온 경전에 보면 지수화풍 4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고 나와 있다. 4가지 원소로 되어 있기에 무아이고 공이라고 대승불교에서는 설명한다. 달마씨는 수억 만 개의 원자덩어리라고 했다. 무아와 공을 이걸로 설명하겠다. 무아와 공을 알면 내가 본질이라는 것으로 있구나하는 것을 알게 된다. 무아와 공을 알면 거기에는 남과 여가 없다. 남과 여가 없이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님이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를 무슨 얘기로 되어 있는 게 있다. 앙굴마라가 부처님을 만나 중도를 깨닫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이는 부처님이 중도와 연기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승속간에 3년차로 오래 머물러 있어도 그분은 불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앙굴마라는 1년차다. 탁발을 갔는데, 산통을 겪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앙굴마라에게 산통이 너무 심하니 이걸 완화시켜달라고 하니 앙굴마라가 부처님께 가서 알아오겠다고 하고 부처님께 간다. 내가 불교를 만난 이후로는 한번도 마음으로도 살생한 적 없다고 하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니 산모가 산통에서 벗어났다. 산통은 뭔가? 있다-없다라는 분별이다. 산통은 중생들 삶을 이야기했고 순산한 것은 중도를 깨달은 이들을 설명한 것이다. 우리도 지금 산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너다-나다라는 이원적 사고를 깨려면 중도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우리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그걸 해결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 지금까진 제 이야기가 아니고 세계 각 학계에서 정리한 내용이다. 지금부터가 우리가 실재로 정리할 내용이다. 깨달음에 대해 정리해야 할 점 이다. 경전내용을 면밀히 짚어가며 보니 이렇게 정리가 됐다. 이렇게 정리하는게 맞는가?

: 계속 이야기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 과정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다. 코스인데 이해하고 그 과정을 체험하는데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 하나로 통일해 이야기 할 수 없다. 비교를 하자면 깨달음에 가는데, 굉장히 쉽게 가는 분이 있다. 육조 스님 같은 분은 금강경의 응무소주라는 말을 듣고 깨달았다. 아무 곳에도 주하지 않고 있다-없다 등에도 주하지 않고 남자 여자 그런 거 없는 자리에서 일으키는 것이다. 그걸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깨달았다. 비교해 보면 고층 건물에 가면 엘리베이터 타고 올가는 것이다. 못 깨닫는 분은 엘리베이터 타고 가는데 각 층마다 쉬었다 가는 것이다. 그보다 못한 분 즉, 3년차는 계단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다 같은 중도 이야기 들으면서 차이가 있다. 불교에서는 1년차는 엘리베이터 타고 쭉 가는 것이다. 2년차는 각층마다 쉬었다 가는 것이다. 3년차는 계단이다. 올라간다는 말은 중도 연기를 이해하고 그것을 체험하기 위해 내 마음을 정화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뭘 정화하는가? 있다-없다라는 2원적 사고에서 1원적 사고로 바꾸는 것이다. 세 단계를 이야기 한다. 법문할 때는 20층 등을 말 안하고 3층으로 말한다. 의식(육식), 잠재의식, 무의식(아뢰아식)이다. 2원적 사고를 정화하는 것이다. 분별심 없이 사고하는 것이다. 정화한다는 것은 2원적으로 갈라놓고 사고하던 것을 1원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가는 방법은 단박에, 각 층마다 쉬어가며, 계단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어렵다 하더라도 몇십 년 고통받고 생을 마치는 것보다는 낫다.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 보면 안타깝다. 계단을 올라가는 것보다 1층으로 한층 올라가는 것이 쉽다. 1층까지라도 이해하고 엘리베이터 타면 되지 않겠는가? 계단을 올라가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나에게 불이익이 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못 참았지만 1층이라도 올라가면 이게 덜하게 된다. 무아와 공을 이해하면 지혜가 생긴다. 생활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내가 영주라는 도시에 있는 식당 아줌마에게 장사 잘 되는 법을 알려 줬다. 사고를 바꿔라. 장사가 잘되는 즐거움이 있지 않는가? 손님을 돈으로 보면 안된다. 그럼 장사가 안되고 장사 할 자격도 안된다. 은인으로 생각해라. 한 달쯤 돼서 연락이 왔다. 너무 잘된다고 했다.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 노사분규가 일어났을 때 서로 서로가 은인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돈을 주는 사람이고 나에게 돈을 벌어주는 사람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갈등과 분규가 생길 일이 없다. 노사분규가 있는 사장이 이 이야기 듣고 가서, 노조측에서 20%를 이야기했는데 25%를 올려줬다고 한다. 선총이라는 모임 이야기다. 소공장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 많이 해 준다. 그렇게 종업원들을 대하니 바뀌더라고 했다. 중도를 이해하고 나면 지혜가 생긴다. 긍정적인 사고가 생긴다. 사회에서 말하는 긍정적 사고와는 다르다. 절대긍정이다. 불교 믿다가 포기한 사람이 많다. 중도 연기를 알면 포기해서 얻어지는 즐거움과 비교가 안된다.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든 마음만 중도로 바꾸면 어떤 일이든 된다고 생각한다. 중도로 바꿔야 할 시기가 왔다. 지금이 중도가 필요한 시기다. 독재에서 산업화 민주화가 이뤄졌다. 과거의 양극화 싸움을 아직도 못 버렸다. 중도의 통합시대로 가야 한다. 그리스 같이 부도 나는 국가가 되고 있다.

개개인, 사회. 국가 모두가 중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정치한 사람들이나 누구에게나 가는 곳에 가면 다 그 이야기 한다. 우리 종단도 마찬가지다. 중도사상을 갖고 수행하고 포교해야 한다. 그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나아갈 것이다.

: 일단 공식적으로 정리한 부분은 여기까지다.

사회자 : 1시간 40여분이 지났다. 공식적인 질문이 끝났다. 꼭 묻고 싶은게 있는 분은 질문해 달라.

: 저는 산본에 살고 있는 이대호이고 대범입니다. 법명을 고우 스님이 주셨다. 좋은 말 많이 들었다. 특히 앙굴마라 이야기 들어보니 우리 사회에서 앙굴마라같은 사람이 중학생들 같다. 이제 조금씩 사회도 알고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다보니 그런 거 같다. 이들을 모아서 한국불교가 우리 사상을 얘기해 줄 수 있는지. 지금 정치하는 분들 보면 아무리 바꾸라 해도 바꾸기 힘들다. 차라리 지금 중학생들 정도를 이런 야단법석을 통해 좋은 법문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 스님들께서는 어떤 방법과 전략을 가지고 계시는가? 부처님 시대에는 꼭 찾아오는 신도들만 에게 법문을 했는가? 청소년들은 어떻게 교화시키고 법문했는가? 궁금하다.

: 그런 질문도 필요한데 깨달음에 대한 질문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해주면 좋겠다.

남자 : 성남에 김정기라고 한다. 중도에 대해 스님이 강조하고 중점적으로 말했다. 양변을 자꾸 버리라고 하는데, 깨달음에 대해 이해를 못해서인지 좋다-나쁘다 크다-작다 등의 이런 양변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수십 년을 수행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경지에 든 분이 많으신가? 깨달은 분이 있으니 검증을 할 것 아닌가? 검증은 누가 하는가? 앞뒤가 잘 이해가 안된다. 깨달은 분이 계시다면 일상생활에서 실천적인 면에서 중도적인 관점에서 실제 행동을 하고 있는가? 측근과 싸웠다는 스님이 있었는데, 이걸 중생심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어떻게 봐야 하나? 중생과 같은 행동을 하는 스님이 있다면 이 스님을 어떻게 봐야 하나?

: 이해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 깨달음은 굉장히 어렵다. 이해를 바탕으로 깨달음에 간다면 가는 것만큼 생활에 변화가 온다. 이해를 바탕으로 깨달음에 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혹 이해가 방해가 된다고 해 이해를 안 하려 하는 분이 있다. 그런 분은 양변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포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현대사회에는 이해를 하고 깨달음으로 가는 게 근기에 맞는 것 같다. 실천은 이해하든 깨달음을 얻든 이해한 만큼 실천을 하게 된다. 나도 한다. 안 할 때보다는 마음이 훨신 편하다. 도인도 화를 내더라 했는데, 이건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도인이 화를 내는 것은 중도를 이해한 측면에서 화를 내는 것과 양극단에서 화를 내는 것이다. 도인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하지 않는다. 화도 낸다. 중도를 이해한 측면에서 내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도 적다. 도인들도 사람이다. 양극단에 있으면 우리가 화를 내면 굉장히 마음에 좋은 상태가 아니다. 그것이 더 심하면 상대를 죽일 수도 있다. 우리가 내는 화와 도인들이 내는 화는 감정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그건 중도를 이해하면 내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이다. 중도를 이해하고 생활화 하기 위해 참선도 하고 하는 입장이다. 나도 화를 조금은 내는데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싶어 화를 참기도 한다. 그건 도인의 입장이 아니다. 도인의 세계를 양극단 사고하는 우리의 사고에서는 이해안되는 것이 많다.

: 한남도 양대웅. 깨달음은 무엇인가. 18조사님께서 말한 것인 lTsmsep 송광사 방장 스님은 부처님과 같이 말하고 생각하고 하면 된다 그게 깨달음이라고 했다. 고우 스님께 질문하겠다. 주간불교 2012년 7월 25일자 지상중계 고우 스님 지상강좌 세 번째 언어문자는 소용이 없다. 무비 스님은 2007년 6월 2일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 안타깝다. 참선해서 깨달은 이는 없다. 육조 혜능스님 등은 경전을 통해 깨달았다. 부처님 제자들도 부처님 설법을 듣고 깨닫지 않았는가. 염불 사경 선 등 복잡하다. 용수보살 강원도 건봉사에서는 32명의 스님들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이 있다. 직책이 뭔가? 역할이 뭔가? 어디가면 관세음보살하라 한다. 어디가면 지장보살 하라한다.

: 주간불교에서 나는 참선이 독이라고 표현했다. 도올이 백암록을 강의하다 중간에 그만뒀는데, 임제 스님이 돌아가실 때 제자들 앞에서 “내 전법을 잘 전해야 한다” 하니 삼제 스님이 “스님의 전법을 잘 전하겠습니다. 걱정 하지 마십시오”했다 임제 스님이 “내가 죽었다 하면 넌 다른 사람들에게 내 전법을 어떻게 전할래”하니. 삼제 스님이 왁하고 고함을 쳤다. 도올은 이 장면에서 삼제 스님이 임제 스님의 의미를 몰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그 반대다. 우리는 중도로 존재한다. 우주의 유정무정 모든 존재는 중도원리로 존재한다. 이미 부처가 되어 있는데 무슨 법이 필요한가. 내 전법완장을 내려버렸구나라는 말은 그런의미에서 인정하는 것이다. 참선해라 중도가 뭐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중생들에게 독을 주는 것이다. 본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팔만대장경이 마구니 설이다. 부처님은 돌아가시며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가면 불교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했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내가 건방을 떤 것이다. 염불 등도 수행이 된다. 금강경에 보면 아상 인상 중생상이 없어야 한다고 한다. 칭찬 등을 받고 싶어하고 대가를 원하는 수행은 좋은 일은 되지만 수행은 아니다. 나다 너다가 없는 것은 중도다 이를 이해하고 봉사를 하면 수행이다.

: 2시간이 지났다. 밤새워 끝장을 내자하면 끝장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내일을 생각해 한두 분만 더.

: 평담. 깨달음에 대해 이번 주가 두 번째다. 저번 주는 일상적인 깨달음에 대해 말했다. 교육원장 스님께서는 부파불교 등 일반불자가 알아듣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의 논문을 잘 봤다. 깨달음이란 것이 그럴 것이다 이럴 것이다 문자에 나오는 것처럼 정의할 수 있는가. 남방의 교리 북방의 교리가 조금 다르다. 간화참선은 그럼 뭔가? 깨달음이란 존재 자체도 없는 것 아닌가? 오늘은 남전의 교리를 이야기 했다. 앎을 증득하는 것. 설리와 교리를 분명히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초적인 불교를 배우고 있는 사람에게는 과연 재대로된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해 주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럼 설리와 교리를 분명히 해달라.

: 그러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한다. 이것을 선적으로 표현하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성철 스님이 그랬다. 산은 산이다. 중도를 깨달아야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중도를 깨닫지 않고 그러할 것이다. 산은 산이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하는 것은 분별심을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 깨달음을 통해서 이와 사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사사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위파사나와 간화선의 다른점을 이야기 했다. 영가 스님 방에 위파사나를 비우차나라고 적혀 있다. 비우차나는 우리 성격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성성적적이 되어 있을 때가 위파사나다. 위파사나의 반대가 사마타다 적적성성이 되어 있는 상태다. 우리가 참선을 하나 위파사나를 하나 우리 성격의 의식이 성성적적 또는 적적성성의 상태로 바뀌어 간다. 이걸 나는 정화한다고 표현한다. 의식이 바뀌어 가면 본래 타고난 성격과 수행을 통해 바뀐 성격이 점점 가까워져 가 만난다. 그걸 깨달았다고 한다. 회복시켜가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교리와 설리를 이야기하는데 교리와 설리는 같은 것이다. 이게 다르다면 불교가 여러 개가 된다. 다섯 손가락도 하나의 손에서 나온다. 근본은 하나에서 나눠진다. 어떤 것을 하든 우리 의식이 변하는 것은 똑같다.

: 고우 스님은 백일법문을 통해 계속 이야기하고 계신다. 멀리서 오신 분도 계신다. 아쉬움을 남기고 여기서 끝내고자 한다.

: 우리가 중도로 되어 있다고 했다. 이를 믿어야 부처님 제자다. 이를 믿고 중도가 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중도로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 그걸 알아가면 위대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자존의식 회복이다. 고귀한 존재인데 스스로 천덕꾸러기를 만들어선 안된다. 아끼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25살에 출가했다. 무슨 이유인지 잘 기억안 난다. 스스로를 학대해 폐결핵에 걸렸다. 교회에 갔는데 목사가 나병과 폐병환자는 천역이라고 해 교회에 안 갔다. 절에 요양 갔다가 출가했다. 학대할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강원에 가 경전을 배우며 스스로가 고귀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나이 적은 스님이든 신도든 누구에게도 하대를 하지 않는다. 대등한 입장에서 대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중도가 뭔지. 중도로 되어 있다고 하니, 백일법문 읽어보면 어느정도 다 이해한다. 중도의 존재로 행복하게 살길 부탁드린다. 이걸로 끝내겠다.

: 다시한번 박수를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발원문을 낭독하겠다.

5. 붓다의 깨달음

붓다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을까. 우리는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말한다. 또한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에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할 때 올바른 실천에 전념할 수 있다. 물론 깨달음의 문제를 놓고서 입으로만 왈가왈부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면 바른 실천이란 아예 존재할 수 없다.

붓다는 스스로의 깨달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진적 과정으로 언급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완전한 지혜(aññā)의 성취가 단번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반대로 점차적으로 배우고 점차적으로 실천하고 점차적으로 발전하여 완전한 지혜의 성취가 있게 된다.” 이와 같이 붓다는 점차적으로 무르익는 깨달음을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에게 깨달음에 관한 경직된 태도들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극단적인 고행이라든가, 전문적인 요가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깨달음에 접근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일상의 삶과 더불어 깨달음에 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내용은 과연 어떠할까. 초기경전에서는 중도(中道)를 깨달았다고도 하고, 연기(緣起) 혹은 사성제(四聖諦)를 언급하기도 한다. 이들은 다소 전문적인 용어들로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다지 어려운 내용이 아니며 또한 서로 중복되는 특성을 지닌다. 예컨대 중도란 바른 견해(正見)·바른 의향(正思惟)·바른 언어(正語)·바른 행위(正業)·바른 삶(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마음지킴(正念)·바른 삼매(正定)로 구성된 팔정도(八正道)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팔정도는 사성제의 마지막 항목인 도성제(道聖諦)의 실제 내용을 구성한다. 한편 모든 현상이 서로 의존하여 발생하고 소멸한다는 연기의 교설 또한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 과정을 밝히는 것에 다름이 아니며, 결국 사성제의 집성제(集聖諦)와 멸성제(滅聖諦)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전법륜경’에는 이러한 사성제에 대해 12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깨달음을 심화해 나가는 양상(三轉十二行相)이 묘사된다. 예컨대 모든 존재가 괴로움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했고(苦聖諦), 그것의 원인인 갈망은 끊었으며(集聖諦), 그렇게 해서 괴로움이 소멸된 경지를 실현했고(滅聖諦), 거기에 이르는 길은 닦았다(道聖諦)는 네 과정이 세 차례씩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것은 붓다의 깨달음이 일회적으로 단박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또한 해당 경전에서는 바로 그러한 과정을 걸친 연후에 비로소 ‘위없는 바른 깨달음(anuttaraṃ sammāsaṁbodhi)’을 선언했다는 언급도 나타난다.

초기경전에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無上正等正覺)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주로 사성제와 관련해서 등장한다. 이점은 불교의 궁극 목적이 다름 아닌 사성제의 깨달음과 실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우리는 이러한 사성제가 반드시 점진적인 과정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다시 한 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초기불교의 여러 경전에서는 사성제를 사다리에 오르는 과정 혹은 계단에 오르는 과정에 비유한다. 그리하여 괴로움의 현실을 밝히는 고성제로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하나씩 깨달아 나갈 것을 가르친다.

▲임승택 교수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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